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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강준흠의 시(詩) 금강산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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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4.16 조회9,1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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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金剛山)은 태백산맥 북쪽에서 강원도 금강군ㆍ고성군ㆍ통천군에 걸쳐 있으며 동서로 40km, 남북으로 60km, 면적은 530k㎡에 달한다. 주봉(主峰)인 높이 1,638m의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선 중앙연봉을 경계로 서쪽은 내금강(內金剛), 동쪽은 외금강(外金剛), 동쪽 끝 해안지역은 해금강(海金剛)이라 부른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항공기나 인공위성을 이용해 수많은 산봉우리와 산골짜기로 이루어진 금강산의 절승경개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지만 기껏해야 당나귀가 가장 효과적인 운송수단이었던 옛날에는 이런 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천하명산 금강산의 모든 경치를 한눈에 전망하기를 몹시 갈망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18세기 말엽에 문신(文臣)이자 서예가로 활약한 강준흠(姜浚欽, 1768~?)이다. 그의 자는 백원(百源)이고 호는 삼명(三溟)이며 시(詩)를 잘 짓고 서예에도 능하여 금석문(金石文)을 많이 남겼다.

 

  강준흠은 지인(知人)들로부터 금강산의 경치가 천하 으뜸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금강산유람을 자기 평생의 소원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할 기회가 찾아왔다. 여러 날의 준비 끝에 금강산 입구인 온정리의 골짜기에 들어선 준흠은 사방에서 눈앞을 가로막아선 기암준봉들의 빼어난 경치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원래 성미가 급한 편이던 그는 먼 길을 오느라고 쌓인 피로를 풀 사이도 없이 그 길로 금강산 탐승을 시작하였다. 탐승 길을 따라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조물주가 빚어놓은 것 같은 천태만상의 기묘한 봉우리들이 그의 시선을 끌었고 천길 벼랑 위에는 명주를 드리운 듯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와, 곳곳에 푸른 소(沼)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수정 같은 시냇물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준흠은 매일 저녁 세웠던 탐승노정의 절반도 채 돌지 못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취하여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이곳에 온 뒤로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날짜를 따져보니 당초에 잡았던 일정의 절반 이상이 지나갔는데 금강산 탐승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였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금강산을 언제 다 돌아볼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웠고, 준비해 온 노자와 양식도 부족한 지경이었다. 날짜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자와 양식이 떨어지면 금강산유람도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준흠은 금강산유람을 나선 뒤 처음으로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러던 그에게 문득 ‘금강산의 경치를 한눈에 굽어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에 준흠은 머물고 있던 암자의 스님과 마주 앉아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스님, 한 가지 묻겠소이다. 어디에 오르면 금강산의 경치를 빠짐없이 한눈에 다 볼 수 있겠습니까?”

 

  “한꺼번에 보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지금처럼 한 곳에서 하루를 보낸다면 금강산유람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묻는 말입니다.”

 

  이에 스님은 “그래서 금강산을 찾았던 한 선비도 이렇게 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년하고도 삼만 일을 여기서 보낸다 해도 일만 이천 봉의 한쪽 면도 다 보기 어렵겠네.’ 이럴진대 손님이 바라는 것은 참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소이다. 혹시 금강산의 주봉인 저 비로봉에나 오르면 어떨는지. 그래도 아마 금강산을 한눈으로 다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스님은 고개를 가로젓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듯 고개를 들고 살며시 웃었다.

 

  “스님, 왜 그러십니까?”

 

  “내 수십 년 동안 이 절간에서 살아오면서 한양 대감 행차부터 고을 아전에 이르기까지 숱한 유람객들을 맞고 보냈지만 손님처럼 금강산의 경치를 한눈에 굽어보기를 바라는 사람은 처음이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허허, 그래요?” 준흠도 헤프게 웃었다.

 

  그러는 그를 바라보던 스님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명소들을 다 돌아보자면 끝이 없을 터인즉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곳들을 찾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면서 20여 곳이나 되는 전망대를 알려주었다.

 

  준흠도 스님의 말에 동의해 이튿날부터 금강산의 이름난 전망대를 찾아 나섰다. 천선대, 망양대, 불정대, 구룡대, 혈성루, 백운대 등, 이처럼 유명한 전망대에 매일같이 올라 금강산의 절경을 바라볼 때면 자기의 소원이 어느 정도 성취된 듯싶어 가슴이 후련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 역시 금강산의 일각에 불과하였다. 전망대에 오르면 앞이 탁 트인 것 같지만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선 수려한 봉우리들 때문에 눈길이 닿는 곳까지 내다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는 없었다. 그럴수록 그의 가슴속에는 이루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금강산을 한눈에 굽어보고 싶은 욕망이 불쑥불쑥 치솟곤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에서도 제일 꼭대기에 있는 배바위 위에 올랐다. 이곳에서 바라보니 금강산의 뭇 봉우리와 골짜기들, 그리고 동해 바다까지 한눈에 안겨 들어와 참으로 웅대하고 장쾌하였다. 내ㆍ외금강의 연봉들이 아무리 높아도 손을 쭉 뻗치면 금세 닿을 것 같고, 해금강의 바닷물을 떠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준흠은 비로봉에서 바라보는 전망의 황홀한 경치에 심취되어 한 자리를 계속 맴돌면서 사방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비로봉이 아무리 높다한들 봉우리와 골짜기에 간직된 명소(名所)들의 아름다운 경치를 속속들이 다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찬탄해마지 않으며 무수히 입에 오르내리는 명소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굽어볼 수 없는 것이 정말로 안타까웠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오른 매 한 마리가 마치 금강산의 전경(全景)을 한눈에 굽어보고 있는 듯 유유히 하늘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 매를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준흠은 자기도 모르게 즉흥시 한 편을 소리 높여 읊었다. 이 시가 바로 강준흠이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읊었다는 ‘금강산에 들어가다’이다.

 

  

 

천봉만학 그 사이를 오가며 맴돌아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한쪽 면이 고작이라


이 몸이 어찌하면 날개가 돋아


하늘 위에 날아올라 안팎 금강 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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