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문고르디우스의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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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04 조회5,803회 댓글0건본문
글 교무부
기원전 800년, 소아시아의 한 수도(지금의 터키 내 한 지역)인 프리지아에 평범한 농부로 태어난 고르디우스(Gordius)는 농사일을 하였는데, 하루는 독수리 한 마리가 그의 쟁기 자루에 앉아 하루 종일 떠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기이한 일이라 여기며 티르메소스라는 마을에 가게 되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예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고르디우스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자, 우물에서 물을 긷던 처녀가 그 독수리를 제우스 신전에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다. 후에 고르디우스는 이 처녀(키벨레)와 결혼하여 미다스를 낳았다.
당시 프리지아는 내란이 거듭되어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제사장이 신에게 해결책을 묻자,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神託)이 내려졌다. 당시 프리지아에는 이륜마차가 드물어 의아하게 생각하던 중 고르디우스가 이륜마차를 타고 나타나자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프리지아의 수도가 된 고르디온을 세웠다.
신탁을 통해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신들에게 특별한 헌신을 할 결심을 하고 신전(神殿) 안에 그의 마차를 갖다 놓고 제우스신께 바쳤다. 그리고 그는 아무도 그 마차를 사용할 수 없게 하려고 몇 가닥의 밧줄을 가져와 그 밧줄 끝을 덮어 가리는 복잡한 장식매듭과 함께 마차의 가로대와 나무로 된 차축을 함께 묶었다. 그런데 신전의 여사제가 그 마차를 보자 무아경에 빠져 예언을 하였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 전역을 통치하는 지배자가 되리라.”
아시아의 통치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이들이 신전으로 모여들어 매듭 풀기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334년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길에 이곳에 들러 매듭을 풀려다가 실패하자 칼로 잘라 버렸다. 신탁대로 알렉산더 대왕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으나, 칼에 잘린 매듭이 여러 조각으로 나뉜 것처럼 그가 정복한 땅도 4개 지역으로 나뉘었고, 인도원정에 실패한 후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사람들은 모두 알렉산더 대왕이 속임수를 썼다고 했지만, 그는 예언을 단순하게 이해했다. 신탁은 ‘풀다(untie)’라는 단어를 쓴 것이 아니라 ‘해결(undo)’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은 매듭을 풀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칼에 해결하겠다는 창조적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의미하거나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매듭을 잘라 버린 것처럼 대담한 행동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동양에는 이 비슷한 뜻으로 ‘쾌도난마(快刀亂麻)’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날랜 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삼을 베다.’라는 뜻인데, 곧 어지럽게 뒤얽힌 일이나 정황(情況)을 재빠르고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북조(南北朝)시대 북제(北齊)의 창시자 고환(高歡)은 선비족화(鮮卑族化)한 한족(漢族)으로 그의 부하도 대부분 북방 변경지대의 선비족이었습니다. 선비족의 군사는 난폭했지만, 전투에는 용감했기 때문에 고환은 이러한 선비족 군사의 힘을 배경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고환은 아들을 여럿 두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 싶어 한 자리에 불러들였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뒤얽힌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 풀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한 올 한 올 뽑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양(洋)이라는 아들은 달랐습니다. 그는 잘 드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싹둑 잘라버리고 득의(得意)에 찬 표정을 지으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아버지 앞에 나아가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합니다(亂者須斬).”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쾌도난마(快刀亂麻)란 성어가 생겨났는데 오늘날의 쓰임새와는 달리 애초에는 통치자가 백성들을 참혹하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뒷날 문선제(文宣帝)가 된 고양은 술김에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정도의 폭군(暴君)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 당나라 역사서인 『북제서(北齊書)』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인간관계나 일의 정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는 칼로 베듯이 끊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더 나아가 원망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해법이 아닙니다. 해원상생의 법리는 상제님께서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교법 1장 56절) 하셨듯이 풀어내는 법이지 끊어내는 법이 아닙니다. 순리(順理)로 풀어야 합니다. 해원상생·보은상생의 상생의 법리인 대순진리로 풀어야 합니다.
도전님께서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이해하라.”01 하셨듯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의 무한한 포용력으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로 처신하고 처세한다면 인간사 모든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사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해원상생·보은상생의 법리에 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평소에 도장에서 물건을 결속한 매듭도 자르지 말고 항상 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일상의 생활습관은 축적된 생각의 산물이며, 생각은 마음의 밭에서 일어납니다. 평소 심덕(心德)을 닦지 않고서는 거친 생각의 준동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매듭을 하나 풀더라도 가위나 칼로 싹둑 자를 것이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순리대로 풀어내는 습관을 갖는 것도 수도의 일환이라 봅니다.
우리 조상들은 엉킨 실타래는 당기면 당길수록 조여지니, 한 올 한 올 느슨하게 해서 풀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명심해야 할 경구입니다. 급기(急氣)는 손기(損氣)요 욕속(欲速)은 부달(不達)이라, 급한 기운은 손해 보는 기운이고 마음만 급해서는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사에는 효율이나 실리만이 아니라 감정이나 명분 등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일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나 원척을 맺지 않게 차근차근 풀어가려는 인내와 상생의 마음이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대순회보> 159호
[참고문헌]
ㆍ킴 마이클즈, 『빛을 향한 내면의 길』, 은하문명 편집부 옮김, 서울: 은하문명,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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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지침』,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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