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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소크라테스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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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02 조회6,6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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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교무부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을 철학의 주제로 삼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내면(영혼의 차원)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진짜 괴짜였다고 한다. 다른 남자라면 그런 여자와 단 하루도 살지 못할 것이다. 아내는 종종 소크라테스를 때리기도 했는데, 그런 때에도 소크라테스는 그냥 자리에 앉아 있곤 했다. 

  제자들이 거기에 대해 물으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건 아내의 문제다. 아내가 화를 내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아내의 문제다. 스스로 고통 받는 것이다. 그런 고통과 분노 때문에 내게 짜증을 내는 것이다. 아내는 옆에 앉으면 나를 때린다. 그건 아내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다.”  

  c81b4321aaff7cd76426f96b13bf542e_1538439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화가 난 아내가 들어왔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자기는 신경도 쓰지 않고 허구한 날 진리와 자유 따위를 말하는 것에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는데 남편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아무런 매력도 없는 사람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아내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자기는 아내인데 남편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긁는 바가지 소리다.

  ‘우리 남편은 바둑만 둔다. 담배만 피운다. 신문만 읽는다.’

  아내가 소리를 질러도 남편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남편은 ‘알았어, 알았어.’만을 반복한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곧바로 코를 곤다. 그런데 낯선 사람과는…. 
  아내는 차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소크라테스는 토론하느라 일어나 보지도 않았다. 토론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차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아내는 주전자에 담긴 끓는 물을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 부어 버렸다. 얼굴 반쪽이 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이때 생긴 흉터는 평생 없어지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얼굴에 커다란 화상을 입었음에도 토론을 계속했다. 거기에 있던 사람은 자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를 만큼 충격을 받았는데도 소크라테스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했다.

  사람들은 물었다.

  “지금 무엇을 토론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다.

  “물론. 이건 아내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야.” 
  이런 사람에게는 분노도 오만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욕망도 없다. 심지어 자신이 보통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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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소크라테스의 마음의 경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도 일정한 마음의 경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가 나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 상대방의 문제인지 아니면 환경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지 명확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크라테스와 같이 내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사람은 주변의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상대방의 태도에 대하여 초연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무심(無心)의 경지란 이런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내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면 발생하는 그 문제는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순진리의 해원상생적 관점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전경』에 상제님께서는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 (교법 1장 56절) 하셨고, 도전님께서는 뺨을 맞으면 상대방의 손을 어루만져주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척을 맺는 것도 나요, 척을 푸는 것도 나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01 그리고 해원(解?)이 되어야 상생(相生)이 되고 상생이 되어야 해원이 된다 하셨습니다.02

  ‘그것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하는 것도 마음의 한 경지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천지 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 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한다(교법 3장 29절) 하였는데 자신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해원상생(解?相生)은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라는 자각 속에 책임을 지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내 뺨을 친 사람의 손을 어루만져주는 것은 오해이든 사실이든 상대방이 나에 대하여 품고 있는 원한 맺힌 마음을 어루만져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해원상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원한 맺힌 마음에 책임을 지는 것이 첫째로 중요합니다. 스스로 원(?)이 풀려야 상생할 수 있고 먼저 사랑을 주어야 해원이 됩니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라 일렀으되 그 부친 고수(??)의 이름을 벗기지 못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리오.”(교법 1장 44절)라 하셨듯이 소크라테스는 성인(聖人)이지만 그의 처는 악처라는 오명을 대대로 남기게 하였으니 어찌 대덕(大德)이라 하겠습니까. 자신과 인연이 되어 부인이 된 이상 자신에게 품은 아내의 원한 맺힌 마음에 책임을 지고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줌으로써 그 아내의 맺힌 마음을 위무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해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아내의 마음이 풀려 악처라는 오명만 벗어도 소크라테스의 덕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해원상생은 원수에 대한 원한도 스스로 풀고 그를 마치 목숨의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는 진리인데 하물며 자신이 선택하여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임에랴….

 <대순회보> 137호


참고문헌
ㆍ오쇼 라즈니쉬 저/ 손민규 역, 『인생에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승과의 위대한 만남』, 비전코리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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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순회보』 29호, 「도전님 훈시」 참조.
02 『대순지침』, p.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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