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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원껍질을 벗고 참다운 세계로 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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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26 조회6,2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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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하기 전 나는 친구에게 석 달 넘게 교화를 들었다. 당시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몇몇이 모여 함께 공부할 때여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내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후에 생각해보니 우리 도에 관한 기초적인 교화였다)를 해주었다. 친구의 진지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 내용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잘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약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를 돌이키면, 진학시험 준비로 바쁘고 고단한 와중에도 그렇게 여러 날에 걸쳐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니 나도 어지간히 무던했나 보다! 만날 때마다 ‘이제 더는 듣고 싶지 않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런데도 쉽사리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 친구는 항상 너무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다. 석 달이 조금 지났을까, 나는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그런데 왜 나에게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거야?”라고 물었다. 이 물음에 친구는 입도치성에 대해 말했고, 나는 왠지 모를 묘한 감정을 느끼며 흔쾌히 치성을 모셨다.

 

치성 전수(奠需)를 준비하느라 포덕소 분위기가 약간 부산스러운 와중에도 한 편에서 정성스럽게 밤껍질을 벗기고 가지런히 다듬는 모습이 진한 감동을 주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로 기억에 남아 있다. 치성이 끝난 후 음복을 하며 내 친구의 선각자라는 분이 치성 때 올렸던 밤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밤이란 과실은 영양분이 풍부하기는 한데 껍질을 벗기려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자리 겉면은 가시로 둘러싸고 있어 위험하고, 이 가시를 벗기면 보기 좋게 윤택하지만 단단한 껍질입니다. 이 껍질을 지나 마지막 까칠한 한 겹을 또 벗겨야 온전히 알맹이가 드러납니다. 우리의 내면세계도 이 밤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라고.

 

이때 여러 가지 내용의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치성 전 밤 치던 모습에서 받은 진한 감동 때문이었을 런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이 밤 이야기가 마음에 새겨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나 자신이 꼭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이 껍질의 정체가 무엇일까?’ 며칠을 숙고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마치 새벽안개가 아침 햇살에 걷히며 만물이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듯 분명한 자각이 일어났다.

 

공학을 전공한 나는 과학적인 사실만을 신뢰했다. 근거가 확실하고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이 실재라고 믿었다. 이러한 과학적 인식 방법에 갇혀 이 세상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동안 들었던 친구의 도담이 잘 이해되지 않았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과학으로 밝힐 수 없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일련의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물론 선각분들이 해 주는 교화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몽매했던 나의 껍질을 벗겨 이렇게 진리의 길로 인도한 것은 친구였던 선각자의 정성스러움 때문이었다. 무척이나 수고스러웠을 것인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대순회보 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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