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문신상구(愼桑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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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2.05 조회6,079회 댓글0건본문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한 효자가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오랜 지병이 있었는데 아들의 극진한 간호에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아들은 온갖 좋은 약을 구하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녔건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수한 거북이를 고아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효자는 거북이를 찾아 길을 떠났다. 몇 날 며칠을 고생한 끝에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거북이를 발견해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나 크고 무거운지, 거북이를 지게에 묶어 집으로 돌아오던 아들은 지친 나머지 커다란 뽕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 거북이가 거만하게 말했다. “나를 솥에 넣고 100년을 고아봐라. 내가 죽는가… 나처럼 영험한 거북은 아무리 오랫동안 끓여도 죽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구먼.” 이 말을 들은 뽕나무가 이내 대꾸를 했다. “이보게 큰소리치지 말게나. 자네가 아무리 신비한 힘이 있는 거북이라도 나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우면 죽지 않을 수 없을 걸?”
집에 돌아온 아들은 잡아온 거북이를 3일 동안 고았지만, 거북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면 아버지 병세는 점점 위중해지고 있어 하루하루 초조함은 더해갔다. 방법을 고심하던 그는 잠결에 들었던 대화가 번뜩 생각났다. 허겁지겁 그 뽕나무를 베어다가 불을 때자 땔감의 발열량이 높은 덕에 거북이가 곧 죽는 것이 아닌가!
이후 거북이를 푹 고아 만든 약을 먹은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신상구(愼桑龜)’입니다. 공연히 자신을 자랑하는 말 몇 마디로 죽음을 맞이한 뽕나무[桑]와 거북[龜]을 생각하여 늘 말하기를 삼가[愼]라는 뜻에서 ‘신상구’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자신을 과신하고 자만하는 말은 화(禍)를 불러오기 쉽습니다. 잘난척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드러내기보다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말과 행동이 진정성 있는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신상구’와 관련하여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일화01가 있었습니다. 우암이 북쪽 귀양지에서 남쪽 귀양지로 옮기는 도중 갑자기 큰 비를 만나 이를 피하기 위하여 강원도 양양 땅의 물치촌(勿緇村)에 사는 정립(鄭立)이라는 사람의 집에 급히 뛰어 들어가 머문 일이 있었답니다.
그 집의 기둥에는 시가 적혀 있었는데 윗 구절은 정서이나 아랫 구절은 거꾸로 쓰여 있었습니다.
三傳市虎人皆信(삼전시호인개신),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세 사람이 전하면 모두 믿게 되고
一掇裙蜂父亦疑(일철군봉부역의), 치마에 붙은 벌을 한 번 떼어내도 아비마저 의심하네.
世上功名看木雁(세상공명간목안), 세상 공명은 나무와 거위 같은 것
座中談笑愼桑龜(좌중담소신상구), 좌중 담소라도 뽕나무와 거북이를 삼가라.
우암이 주인에게 시구에 대해 물으니 주인이 “지난해 갑인(甲寅) 5월에 어떤 과객이 이 글을 써놓고 명년 이날 다시 오겠다고 하고서는 아직도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과객은 우암이 이날 올 것을 미리 알고 앞날을 경계하여 시를 써서 보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암을 거북이에 비유하여 천하의 현인 우암도 헛소문과 모략에 휘말려 왕의 의심을 받고 불행한 최후를 맡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잠언임이 틀림없으니, 옛사람들의 경지가 사뭇 놀랍습니다.
‘삼전시호 인개신(三傳市虎人皆信)’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세 사람이 말하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는 고사로 『한비자(韓非子)』에 나옵니다.
‘일철군봉 부역의(一掇裙蜂父亦疑)’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애첩이자 태자 신생(申生)의 계모인 여희(驪姬)가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하여 헌공과 신생 사이를 이간시키고자 자신의 치마에 꿀을 바르고 벌이 모이자 신생으로 하여금 쫓아내게 하여 멀리서 지켜보던 헌공이 아들을 의심하게 만든 고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세상공명 간목안(世上功名看木雁)’의 고사는 『장자(莊子)』 「산목(山木)」 편에 산에 있는 큰 나무[木]는 쓸모가 없어서 도끼에 찍히는 재앙을 면하고, 반면에 울지 못하는 거위[雁]는 쓸모가 없다고 하여 요리상에 오르는 것을 보고, 장자의 제자가 처신의 도리를 물으니, 장자가 웃으면서 “나는 재(材)와 부재(不材) 사이에 처하련다.”라고 대답한 이야기에서 연유하였습니다.
‘좌중담소 신상구(座中談笑愼桑龜)’에 대해서는 『송자대전』 제51권에 을묘(1675)년 8월 20일에 김연지(金延之)에게 답하는 편지글에서 우암 자신이 “외서(外書)에, 동해(東海)의 어떤 사람이 한 마리의 신령한 거북을 얻었는데 그 거북의 말이, ‘천하의 나무를 다 태워도 나를 삶아 죽일 수 없을 것이다.’고 하자, 이를 들은 어느 도인의 말이, ‘아무 곳에 있는 마른 뽕나무로 삶아도 죽지 않으랴.’고 하였다. 거북이 이 말을 듣고 곧 머리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네. 그러니 오늘날 좌중에서 한가하게 담소하는데 있어서도 경계할 줄 알아야 하겠네.”라고 하였습니다.
상제님께서 “장차 교만한 자는 패하리라(將驕者敗).”(행록 4장 3절) 하셨습니다. 교(驕) 자는 말 마(馬) 자와 높을 교(喬) 자를 합한 글자로 말 위에 높이 앉아 사람을 내려다보는 형국으로 학식, 지위 등이 높다고 잘난 체하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 상태를 나타냅니다.
인세의 처세에서 ‘좌중담소 신상구’는 뽕나무와 거북이의 고사와 함께 기억해 둘만 한 경구입니다. 앉아서 웃으면서 나누는 담소라도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 도(道)에서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라는 훈회에는 남을 좋게 이야기하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에 대한 말을 조심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그의 장점을 보고 혹시 단점이 보이더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02 항상 남을 좋게 말하기에 힘써서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福)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禍)가 되어 내 몸에 이르는 법입니다.03
그리고 항상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온공(溫恭)·양순(良順)·겸손(謙遜)·사양(辭讓)의 덕으로 남을 존중하여 일체의 자부자찬(自負自讚)의 마음을 버리고 인격의 완성을 기하여야 하겠습니다.
<대순회보> 178호
참고문헌
·『한비자(韓非子)』
·『장자(莊子)』
·『송자대전(宋子大全)』
·한희철, 『나누면 남습니다』, 서울: 바이북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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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하겸진, 『동시화(국역)』, 아세아문화사, (서울: 아세아문화사, 1995) pp.298~300 참조.
『송자대전』 제51권 「서(書)」김연지에게 답함 - 을묘(1675)년 8월 20일 참조.
02 예시 46절 참조.
03 교법 1장 11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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