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성이야기추석치성과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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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2.15 조회6,414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류병무
‘추석(秋夕)’은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의 세시풍속 중에서 으뜸 명절로 손꼽히는 날이다. 우리 민족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큰 명절답게 불리는 이름 또한 다양하다. 가위, 한가위01, 가배(嘉俳)02, 가배일(嘉俳日), 중추(仲秋)03,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 등이 모두 추석의 이명(異名)이다.
추석의 기원은 현재 우리가 아는 것처럼 추수 감사의 성격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 듯하다. 추수하기 전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추석의 시원(始原)이나 유래에 관하여 정확히 밝힌 문헌은 없지만, 관련 기록의 고문헌은 우리나라 역사책인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중국 역사서인 『수서(隋書)』 「동이열전(東夷列傳)」 및 『구당서(舊唐書)』 「동이열전(東夷列傳)」, 일본 승려 엔닌이 쓴 기행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가 있다.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 조(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왕이 육부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짜고,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게 하고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多少)를 살펴, 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
추석의 기원을 보통 여기서 찾기도 하는데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면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로 신라 초기부터 음력 8월 15일을 특별한 날로 정해 기념했다는 것이고, 둘째로 추수 감사보다는 부녀자들이 모여서 길쌈 경연대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문헌들도 비슷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수서』 「동이열전」에는 “신라에서는 8월 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라고 했다. 또 『구당서』 「동이열전」에는 “신라에서는 해마다 정월 초하루와 함께 8월 15일을 중히 여겨 풍류를 베풀고 군신이 궁정에서 활쏘기 한다.”라고 하였다.
추석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의복을 장만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04 옷감을 짜는 풍속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는데 세시 명절이 농경에 적응하여 생성된 것으로 볼 때, 이미 신라시대에 추석이 일반화된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남자들은 활을 쏘는 일처럼 무예를, 여자들은 옷감을 장만하는 일을 중요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농경이 점점 정착되고 안정화되면서 추석이 현재의 추수 감사와 같은 의미로 점차 변한 것으로 보인다.05
『입당구법순례행기』06는 지금의 ‘송편’을 먹는 것처럼 ‘박탁(餺飥)’07과 같은 떡을 먹었다는 것과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신라에만 있는 명절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도 8월 15일은 중추절(仲秋節)로 명절이다. 그런데 왜 우리 고유의 명절로 기록하고 있을까? 한국과 중국의 중추절은 날짜와 이름만 같을 뿐 뿌리가 다르다. 추석은 1세기 신라 때 있었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께 성묘하며 길쌈 및 무예 경연 등의 복합적인 의미의 명절이다. 물론 중국도 고대 주례(周禮)에 중추(中秋)라는 단어가 보이고 옛날부터 중추절에 달을 감상하는 풍속이 있었으며 중추절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에서 중추절을 명절로 성대하게 쇠게 된 것은 송나라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추석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란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가 있다. 정월 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과 함께 추석은 보름 명절이다. 달은 농업과 관련된 풍요, 시간의 질서와 시절의 운행 및 섭리, 여성 생산력의 근원, 풍요로운 생산력과 생명력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달은 차서 기울고, 기울었다가 다시 찬다. 이것이 항구적으로 되풀이되기 때문에 달은 삶이나 시절의 영고(榮枯)08와 기복, 흥망성쇠를 상징함과 동시에 재생(再生) 또는 부활(復活)의 기본적 원형이 된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보름의 만월은 농사의 ‘풍작’을 비롯하여 ‘풍요(豊饒) 다산(多産)’을 상징하여 대단히 중시된다. 추석은 만월이 뜨는 보름날이다. 만월인 보름달은 곡물로 치면 알이 꽉 찬 수확물의 모습이다. 이처럼 풍요의 상징인 만월을 중시하는 만월 명절은 당연히 중시되며, 그중에서 수확 시기의 만월 명절인 추석은 더욱 중시되는 것이다.
설날을 대표하는 명절식이 떡국인 반면 추석을 대표하는 명절식은 송편이다.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나오는 박탁은 떡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다. 쌀가루를 반죽한 박탁을 찐 것이 발전해 떡이 됐고, 밀가루를 반죽한 박탁이 발달해 국수와 수제비 등 다양한 밀가루 음식이 나왔으며, 박탁에다 소를 넣어 싼 음식이 만두라고 할 수 있다. 송편은 멥쌀가루를 익반죽09하여 녹두, 청태콩, 동부, 깨, 밤, 대추, 고구마, 곶감, 계핏가루 등을 소로 넣어 빚는다. 소나무 떡인 송병(松餠), 즉 송편은 찔 때 켜마다 솔잎을 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솔잎에 떡을 찌면 향이 배어 맛도 좋고 떡도 오래 보존할 수 있으며, 소나무와 솔잎은 건강에 좋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소나무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었으니 떡을 먹으며 그 기상을 본받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음력 8월 15일에 우리나라[추석]는 송편을, 중국[중추절]은 월병(月餠)을, 일본[중추 명월]은 쓰키미당코[月見團子]라는 떡을 먹는다. 추석이 달과 관련이 깊어서, 중국의 월병이나 일본의 쓰키미당코는 보름달을 형상화해서 만든 음식이다. 월병은 ‘달떡’이라는 뜻이고, 쓰키미당코는 ‘달을 보며[月見] 먹는 떡[團子]’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송편의 모양은 다르다. 송편에 달을 의미하는 글자가 없으며, 보름달인 추석에 먹는 떡이면서 생긴 모양도 보름달이 아니다. 송편이 달을 닮지 않은 이유는 특별히 추석 때 먹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의 월병이나 일본의 쓰키미당코는 모두 8월 15일인 보름달이 뜨는 날에 먹는 음식이었으나, 우리나라의 송편은 명절 때마다 장만한 떡이었으니 굳이 추석의 보름달 모양으로 빚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송편을 ‘고려(高麗)떡’이라고 부른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떡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송편을 빚는 명절은 추석 이외에도 정월 대보름,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절, 6월 유둣날 등이다. 거의 명절 때마다 장만한 민족의 떡이다. 다만 추석에 먹는 송편은 올벼를 수확한 후 빻은 햅쌀로 빚은 송편이라고 하여 ‘오려송편’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달함에 따라 농경사회의 명절들이 설날과 추석을 제외하고 모두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설날은 떡국, 추석은 송편으로 정착되면서 우리에게 송편은 추석에 먹는 떡으로 그 의미가 정착되고 말았다.
대순진리회에서도 음력 8월 15일을 기해 추석치성을 모신다. 치성이란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께 특정한 의례절차에 따라 영대에 전수(奠需)를 올리면서 소원성취를 축원하는 동시에 상제님을 위시한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리는 의례이다. 추석치성은 한 해 동안 수확한 곡물을 상제님 전에 올리면서 풍작에 대한 감사함과 만물을 지배자양하시는 상제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추수 감사의 의미가 가장 강한 치성이다.
추석치성에는 송편을 빚어 올리는데 이때의 송편은 햇쌀로 빚은 ‘오려송편’이다. 추석치성을 준비하기 위하여 각 방면에서 올라온 상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해 갓 수확한 멥쌀 반죽에 콩, 밤, 깨 등의 소를 넣어 반달 모양으로 송편을 예쁘게 빚는다. 이렇게 빚은 송편에 준비한 솔잎을 켜켜이 깔고 쪄서 상제님 전에 진상한다.
대순진리회의 치성에서는 추석 때의 오려송편 이외에도 치성마다 송편이 진설된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명절마다 만들었던 송편의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모양은 중국의 월병처럼 둥근 보름달에 가깝다. 이 송편은 치성을 준비하는 전수원들이 모여 멥쌀 반죽에 서리태와 완두콩을 넣고 둥근 모양으로 빚어낸다. 따라서 대순진리회의 치성에 진설되는 송편은, 각 치성마다 올리는 둥근 모양의 송편과 추석치성에만 추가되는 갓 수확한 곡물로 만든 반달 모양의 오려송편이 있는 셈이다.
명절마다 먹던 송편이 추석 때의 떡으로 의미가 변했다 해도, 그해에 수확한 곡물로 만든 오려송편은 추석만의 고유한 떡이다. 오려송편을 추석치성에 올리는 의미는 한 해의 풍작에 대한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정성이며, 그 정성을 바탕으로 다음 해의 풍작을 소원하는 것이다. 원래 ‘밥 위에 떡’이라고 하여 옛부터 떡을 귀히 여겼으며, 특히 조상이나 신명에게 올려진 떡은 ‘복떡’이라고 하여 가까운 이웃과 꼭 나눠 먹는 풍습이 있었다. 따라서 이번 추석 치성에 송편을 음복(飮福)하면서 복을 얻고 송편에 담겨 있는 지조와 절개의 기상을 본받는 것은 어떨까? 또 둥근 모양의 송편처럼 둥글고 원만한 마음으로 만월이 의미하는 풍요와 다산, 그리고 끊임없이 재생하고 부활하는 생명력처럼 알이 꽉찬 도의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보자.
《대순회보》 174호
참고문헌
≪대순회보≫ 124호.
『두산백과사전』
『삼국사기(三國史記)』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한국세시풍속사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004.
한국 문화 상징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문화 상징사전 1』, 서울: 동아출판사, 1996.
김길소, 『떡에 얽힌 문양의 신비』, 강원 춘천: 강원일보사출판국, 2000.
윤덕노, 『떡국을 먹으면 부자가 된다』, 경기 성남: 청보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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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한’은 ‘크다’, ‘가위’는 ‘가운데’라는 의미로, 8월 가운데 큰 날을 의미한다.
02 ‘가배’는 ‘가위’를 이두식의 한자로 쓰는 말이다.
03 중추는 가을인 음력 7, 8, 9월의 중간이어서 중추(中秋)인데, 이날의 달이 평소보다 배나 밝아 월석(月夕)이라고 한다.
04 현재는 ‘추석빔’으로 여름옷에서 가을옷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 풍속이 남아 있다.
05 『고려사』에는 추석이면 왕이 조상께 제례를 올린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동국세시기』에서 추수 감사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06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당나라 불교성지를 순례한 후의 기록을 남겨 놓은 책이다. 이 기록에서는 추석의 기원을 신라가 옛날 발해와 싸웠을 때 이날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명절로 삼아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긴 데서 찾고 있다. 하지만 발해는 고구려가 망한 후인 698년에 세워진 나라로, 636년에 쓰여진 『수서(隋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 이미 신라에서는 8월 15일을 명절로 삼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서도 서기 32년 유리 이사금 때 8월 15일에 잔치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잘못된 기록으로 추정된다.
07 수제비처럼 밀가루를 반죽하여 ‘맑은장국’이나 ‘미역국’ 따위에 적당한 크기로 떼어 넣어 익힌 음식을 말한다.
08 초록이 무성(茂盛)함과 말라죽음을 사물(事物)의 번영(繁榮)과 쇠락에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이다.
09 곡류의 가루를 끓는 물로 하는 반죽. 경단이나 송편과 같은 떡이나 세면(細麵)을 만들 때 쓰인다. 익반죽을 하는 이유는 쌀에는 밀과 같은 글루텐 단백질이 없어 반죽하였을 때 점성 있는 반죽이 되지 않기 때문에 끓는 물을 넣어서 전분의 일부를 호화시켜 점성을 가하여 모양을 만들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두산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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