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야기은선대전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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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4.12 조회6,230회 댓글0건본문
하늘선녀 채선이와 금강총각 금동이의 결혼 [下]
<전편에서> ~ 하늘나라의 선녀들은 종종 남악의 봉우리에 내려와 노닐곤 했지만 위부인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인간세계와 접한 일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선이란 선녀가 구슬을 잃어버린 것을 기회로 채선은 인간세계의 금강산에 내려갔다가 물속에 있는 구슬을 건지기 위해 잠수까지 하고 나왔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들려와 그녀들을 크게 당황케 했지만 이내 그녀들은 그 소리에 이끌려 피리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선녀들이 작은 산등성을 하나 넘으니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는데 피리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 사내가 소나무에 등을 기댄 채 피리 부는 모습을 먼발치서 볼 수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피리소리는 더욱 고결하고 우아한 곡조로 변해있었다.
채선은 위부인에게서 속세의 인간이란 모두 보잘것없다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는데 저렇게 아름다운 곡조의 피리를 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그래서 채선은 금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 피리를 부는 남자의 얼굴이 뚜렷이 보일 때까지 다가갔다. 그 남자는 얼굴은 거무스름했지만 피리 위로 오가는 손끝과 고즈넉한 눈, 그리고 곡조가 바뀔 때마다 내젓곤 하는 이마에서 이팔청춘의 활력이 넘쳐보였다.
낯선 사람의 인기척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선녀의 진한 향기가 풍겨서인지 얼마 후 사내는 입에서 피리를 떼고 앞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에는 놀라운 빛이 어려 있었다. 세상에서 보기 드문 채선의 자태에 매혹된 사내는 천천히 일어서며 아가씨가 누군지 물었다. 채선은 “흥취를 깨서 죄송하나이다. 너무도 피리소리가 아름다워 외람되지만 뉘신지 성함이나 알고 싶어서 ….”라며 말끝을 흐렸다.
“금강산 기슭에 사는 저의 이름은 그저 금동이라 부르지요. 그런데 아가씨는 어디서 오신 분인지….”
“소녀는 남악봉에 사는 선녀올시다. 우연히 이 고장에 들렀다가 아름다운 피리소리를 들었나이다.” 채선은 고맙다는 듯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그리고 소원이라며 한번만 더 피리소리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금동은 흔쾌히 허락하고 천천히 피리를 입에 가져갔다. 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쿵!~”하는 둔중한 북소리가 울렸다. 하늘에서 위부인이 어서 올라오라는 독촉의 소리였다. 이때 금선이 채선을 다급하게 찾자 채선은 하는 수 없이 금동에게 양해를 구하고 훗날을 기약하며 떠났다. 금동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말도 못하고 서 있는데 갑자기 솔밭 속에 영롱한 무지개가 드리우더니 선녀의 목소리가 머리위에서 들려왔다.
“안녕히, 다시 만나기를 바라나이다.”
“선녀 아가씨~” 금동은 아득히 뻗어나간 무지개를 따라 하늘로 오르는 두 선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이 흘렀건만 채선은 금동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그리움이 나날이 더해 갈 무렵, 고요한 밤이면 인간세상에서 애절한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그 피리소리를 듣고 채선은 그가 지금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채선은 금동을 만나기 위해 인간세상에 내려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채선은 위부인이 옥경대로 가고 다른 선녀들도 놀러나간 틈을 타 금강산 기슭의 솔밭 속으로 내려갔다. 금동은 여느 때처럼 피리를 불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채선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그들 사이에는 이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이 맺어졌다.
이제 채선은 하루라도 금동을 만나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채선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금선이 채선에게 그 사유를 물으니, 채선은 서글픈 눈물을 흘리며 금선에게 도움을 청했다. 금선이도 무척 안타까웠지만 이렇다 할 방도가 없어 채선과 가장 친한 옥선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옥선도 채선을 동정해 어떻게든지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고 싶었다.
얼마 후 그녀들은 남악봉에 사는 팔만옹에게 무슨 묘안이 없을까 하고 찾아갔다. 채선의 사정을 들은 팔만옹은 하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무엇을 생각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은 딱하게 되었다만 이런 일은 내가 남악봉에서 살아온 팔만 년 동안 한번도 없었어.” 그녀들이 눈물을 흘리며 사정을 하자 시간을 두고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시 며칠이 지났을 때, 위부인은 남해 용왕이 초청하는 생일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위부인은 떠나기에 앞서 팔만옹에게 선녀들을 잘 돌보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팔만옹은 위부인이 떠나자 채선과 옥선, 그리고 금선을 불러 오늘이 가장 좋은 때라며 부인이 없는 틈을 타 함께 내려가 두 사람의 혼례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팔만옹이 결연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지만 이는 참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잘못했다간 모두 엄벌을 면치 못할 판이었다.
채선은 팔만옹에게 큰 절을 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곧 채선의 혼례식에 찬동하는 여러 선녀들이 팔만옹을 앞세우고 금동이 있는 솔밭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해서 솔밭 속에서 채선과 금동의 혼례식이 열렸다. 채선은 기쁜 마음에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고 금동도 행복한 웃음이 만연하였다. 옥선은 팔만옹과 금동에게 신선들이 마신다는 유하주를 권했고 금선은 선녀들에게 천일주를 돌렸다. 모두들 술을 마시고 즐겁게 노래와 춤을 추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던 선녀들은 어느 덧 위부인이 용궁에서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날이 저물 무렵 하늘에서 “쿵!”하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팔만옹과 모든 선녀들이 깜짝 놀랐다. 북은 오직 위부인만이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때 팔만옹이, “이제는 별 도리가 없다. 천상에 올라가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영원히 이 금강산에 남는 방법뿐이다.”라고 했다.
채선을 비롯한 모든 선녀들은 금동이 있는 금강산에 남길 원했다. 그래서 팔만옹에게 그 방법을 물었더니, 위부인은 한 번에 선녀 한 명만 하늘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선녀들이 뭉치면 위부인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녀들은 곧바로 팔만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다시 “쿵!”하는 북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 선녀들을 말아 올리려 했다. 그러나 한데 뭉친 선녀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수차례 그러자 이번에는 비가 억수같이 퍼부으니, 선녀들은 점점 지쳐갔다. “손을 놓으면 안 된다. 쓰러지면 안 된다.”고 팔만옹이 소리쳤다. 노인의 그 목소리에 다시 기운을 얻은 선녀들은 드디어 위부인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살아남고 보니 하늘에 죄를 짓고 이 아름다운 강산에 사는 것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골, 저 골의 크고 작은 폭포와 담소들을 옮겨 다니다가 어느 남쪽의 산등성이에 이르렀다. 그곳은 사면에 연봉(連峰)이 둘러있고 복판에 서너 길 가량 되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들이 바위 근처에 가보니 한결 아늑할 뿐더러, 거기서도 얼마든지 변화무쌍한 금강산의 사계절을 즐길 수 있었다.
그곳은 금강산의 한쪽 변두리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던 하늘나라에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웠다. 무섭던 위부인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곳에서 그들은 천년만년 숨어살자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이름이 없던 그곳을 신선(神仙)이 숨어사는 곳이라 하여 ‘은선대(隱仙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순회보> 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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