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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엿장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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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23 조회6,3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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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장사하는 수법이 탁월하여 돈을 많이 번 엿장수 한 사람이 있었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까 하고 궁리하던 한 청년이 그 엿장수를 찾아갔다.

“저에게 장사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청년이 그 엿장수에게 간곡히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엿판을 하나 만들어 짊어지고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하는 걸 잘 보고 장사하는 법을 배우시오.”  

  청년은 그 엿장수가 시키는 대로 했다. 탁월한 엿장수가 엿판을 짊어진 채 앞장서 가고, 청년은 제자가 되어 뒤를 따랐다. 앞장을 선 스승 엿장수는 가위질 소리를 멋들어지게 내고, 엉덩이춤에다 어깨춤까지 추면서, “둘이 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 사시요오” 하고 노랫가락을 섞어 가며 외쳤다. 뒤따라 가는 제자 엿장수는 그 소리를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목구멍 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앞장서 가는 스승 엿장수가 뒤따르는 제자 엿장수에게 얼른 따라해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조금 전에 스승 엿장수가 소리친 말을 열심히 따라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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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데 앞장 선 스승 엿장수가, “첫사랑의 맛같이 새콤달콤한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엿 사시요오.” 하고 말을 바꾸어 소리쳤다. 뒤따르는 제자 엿장수는 또 그 말을 열심히 외웠다. 그러자 스승 엿장수는 또 말을 바꾸었다.

  “장가 못 간 총각은 장가가게 하고, 시집 못 간 처녀는 시집가게 하는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그러고는 제자에게 얼른 따라해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또다시 조금 전에 스승이 한 말을 머릿속에 외워 담았다. 그런데 스승 엿장수는 곯리기라도 하듯이 또 말을 바꾸어 소리쳤다.

  “시어머니가 이 엿을 먹으면 주름살이 펴지고, 며느리가 먹으면 나온 입이 들어가는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엿 사시요오.” 그때까지 제자 엿장수는 한마디도 외치지를 못했다. 스승엿장수가 제자 엿장수를 향해 무얼 하고 있느냐고, 얼른 따라 외쳐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그 재촉에 못 이겨, 앞장선 스승 엿장수가 소리를 지른 다음에 기껏, “나~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앞장서서 다니는 스승 엿장수의 엿은 사는데, 뒤따라 다니며 “나도” 하고 외치는 제자 엿장수의 엿은 사려고 하지 않았다. 제자 엿장수는 사람들이 왜 자기의 엿을 사려고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슬픈 목소리로, 스승이 외친 다음에 곧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고 또 외쳤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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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 엿장수의 비결은 선전문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엿의 맛을 묘사하는 그 선전문구에 엿이 팔리는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엿이 가지고 있는 맛에 그 비결이 있는 것이고 그 문구는 그 엿이 맛있다는 데로부터 천변만화의 수식어가 붙어 그 맛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본질은 엿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엿을 묘사한 그 말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묘사하는 말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엿의 맛을 볼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도 도를 묘사한 경전이 많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사람들은 그 손가락을 보는 데 머무르면서 달은 보지 못한다는 비유와 같습니다. 손가락은 달을 묘사하는 도구이지 달 그 자체는 아닙니다. 경전은 도를 묘사하는 것이지 도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도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닦아서 깨닫는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교지학(敎之學) 도지각(道之覺)”은 이것을 나타내는 가르침입니다. 도는 직접 닦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말로 전해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듣는 것은 엿장수가 스승 엿장수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엿장수는 그 엿을 먹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그 엿을 먹어보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감미로운 맛을 느껴보았을 때 그것을 묘사하는 문구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면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이 하는 문구를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안에서 나오는 묘사가 바로 그 엿에 대한 진실한 표현이 될 것이고 자신이 엿의 맛을 깊이 느끼면 느낄수록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맛에 대한 묘사가 마음에 다가오게 외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묘사가 사람들의 가슴에 전해져야 사람들은 그의 엿을 사게 될 것입니다.

  도리(道理)는 하나입니다. 엿이 그것입니다. 엿을 묘사하는 천변만화하는 문구에 매이면 안 됩니다. 문구에 매이는 순간 영원히 엿에 대해서는 알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직접 그것을 먹어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도지행(道之行) 도지각(道之覺)”이라 합니다. 도리를 실천함으로써 깨닫게 됩니다. 소경이 꽃을 보지는 못해도 냄새로써 그것이 꽃임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수도하는 데 있어서도 도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닦고 몸으로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대순진리를 심수덕행(心修德行)하는 여기에 깨달음의 이치가 있다 하겠습니다.  

<대순회보> 130호

 

참고문헌

·한승원,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문학사상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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