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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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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04 조회6,3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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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교무부  

 

  추운 북부 지방에 사는 한 학자가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갔다. 날씨가 더우니 학자는 창문을 닫고 온종일 집에서 지내야 했다. 태양이 지고 난 저녁이 되서야 학자와 학자의 그림자는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방에 램프를 켜면 그림자는 벽 위로 누웠다가 천장까지 몸을 쭉 늘어뜨리곤 했다.
  그 시각에 거리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촛불을 켜고 이야기하거나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아이들이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학자가 사는 집 건너편 집만은 이상하게도 아주 조용했다. 발코니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녁이 되면 그 집 발코니로 통하는 문이 반쯤 열리고 어두운 방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학자는 꽃 한가운데 호리호리한 여자가 빛을 내며 서 있는 꿈을 꾸고 잠에서 깨었지만 실제로 처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학자가 발코니에 앉아 있을 때였다. 등불은 그 뒤쪽에 있는 방에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학자의 그림자는 당연히 건너편 집 벽에 드리워졌다. 학자는 농담 삼아 그림자에게 말했다. “자 문이 살짝 열려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안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무엇이 있는지 내게 얘기해다오.” 학자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자연히 그림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학자는 커피와 신문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어떻게 된 거야? 그림자가 없잖아? 어젯밤 정말로 건너편 집에 가서 안 돌아온 모양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더운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빨리 자란다.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학자가 햇볕을 받으며 걷고 있는데 새 그림자가 발밑에서 자라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학자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진실함, 선함, 아름다움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밤 학자가 서재에 앉아 있는데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학자의 그림자가 사람의 모습으로 치장하고 부자가 되었다고 하며 찾아왔다. 학자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말해 보라고 하자 그림자는 다 말하는 대신에 내가 당신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절대로 말하지 말 것을 약속받았다.
  “그 건너편 집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여신이 살고 있었어요. 난 그 집에서 3주 동안 지냈는데 인간의 기준으로 3천 년 동안 시를 짓고 책을 읽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지요.” 그림자는 자신이 사람들의 비리를 그들에게 직접 글을 써서 폭로하는 방식으로 치부하였다는 자신의 성공담을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홀연히 가버렸다.
  그 뒤 수년이 지난 어느 날 그림자가 다시 학자를 찾아왔다. 그림자는 학자에게 당신은 참됨, 선함,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쓰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여행 경비를 다 지급할 테니 자신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여행을 떠날 것을 권한다.
  “그건 말도 안 돼! 내가 당신의 그림자가 되어 여행하다니! 주객이 전도되어도 유분수지.” 그림자는 떠나고 학자는 하는 일마다 실패했다. 참됨, 선함, 아름다움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실망한 학자는 병이 들고 말았다.
  학자를 다시 찾아온 그림자는 학자에게 휴식을 위해 온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고 학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그림자가 주인이고 주인이 그림자가 되어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함께 마차를 타고 배도 탔다. 해님의 위치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기도 하고 나란히 걷기도 했다. 그림자는 끊임없이 좋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학자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학자는 마음씨가 착하고 매우 너그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천에 도착했는데 거기에는 사람을 너무 잘 꿰뚫어보는 병이 있는 공주가 와 있었다. 공주는 그림자를 보자 그가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림자는 공주에게 자신은 매우 특별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은 그에게 사람처럼 옷을 해 입히고 그림자까지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저녁이 되자 공주와 그림자는 널따란 무도회장에서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림자는 자신이 미리 보고 온 궁전에 대해서 공주에게 이야기하며 여러 가지 지식을 자랑하여 공주를 놀라게 하였다. 공주의 어려운 질문에는 그런 것쯤은 자신의 그림자도 알고 있다면서 학자에게 질문하도록 하였다. 해와 달,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학자의 해박한 답변을 들은 공주는 이렇게 똑똑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저 사람은 굉장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며 그림자와 결혼할 것을 결심했다.
  그림자는 학자에게 말했다. “이봐 친구. 내가 널 위해 특별한 것을 해주려고 해. 대신 사람들이 널 보고 그림자라고 부르게 하겠어. 그리고 네가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절대로 말해선 안 돼. 1년에 한 번씩 내가 햇살이 비치는 발코니로 나가 앉아 있을 때 넌 내 발아래 누워 있어야 해. 예전에 내가 그림자였을 때처럼 말이야. 난 공주와 결혼하기로 했거든. 바로 오늘 저녁에 결혼식을 올릴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난 그렇게 못 해!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말을 따르라고 하는 거지? 그건 온 나라와 공주를 속이는 짓이야. 모두 사실대로 털어놓겠어. 내가 사람이고 넌 사람 옷을 입은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이야.” 학자가 소리쳤다.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을걸. 자,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은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난 호위병을 부르겠어.” 학자는 그림자의 말처럼 되고 말았다.
  “떨고 있군요. 무슨 일 있어요? 오늘은 아프면 안 돼요. 오늘 저녁은 결혼식을 올려야 하니까요.” 그림자가 다가오자 공주가 말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당했다오. 글쎄 내 그림자가 미쳤다오. 그런 얄팍한 머리로 그렇게 많은 일을 견뎌 낼 수가 없었겠지. 글쎄, 자기가 사람이고 내가 자기 그림자라고 우기지 뭐요.”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그래서 당신 그림자를 감옥에 가두었나요?” 공주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렇소, 그런데 그림자가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오.”
  “불쌍한 그림자! 참 안 됐어요. 그렇게 사느니 차라니 그림자를 삶에서 해방시켜주는 게 어때요?”
  “충실한 하인이었는데, 그것 참 못할 짓이구려.” 그림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매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정말 고귀한 성품을 가졌군요.” 공주는 감탄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녁이 되자 도시 전체에 환한 등불이 켜지고 축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참으로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공주와 그림자는 발코니에 나와서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그렇지만 학자는 이 결혼식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이미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원저자인 안데르센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었는지는 몰라도 인간 에고[ego: 거짓 자아, 사심(私心)]의 속성에 대한 적절한 비유를 지닌 동화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에고(ego)는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기는 진아[眞我: 양심(良心)]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천지의 은덕을 잊고 살아가는 인간이나 영(靈)의 존재를 망각하고 자신이 주인 행세를 하는 마음이나 다 같은 처지입니다. 한 나라에 군주가 있는데 신하가 왕 노릇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생명과 수명과 복록이 천지의 은혜라는 것을 자각하고 상제님의 천은(天恩)에 성(誠)·경(敬)·신(信)으로 보답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기본도리를 실천하는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하는 자신의 권력과 권한이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자신이 곧 임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신하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고 임금을 보필하고 만백성을 위한 정치를 행할 때 비로소 남의 신하된 자로서 근본도리를 다하는 충신이 됩니다. 인간의 마음도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도하여 심령(心靈)을 통일하여야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듯이 인간의 에고(ego)를 다루는 방법 또한 에고(ego)를 없애고 끊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위상을 자각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대순회보> 183호


참고문헌
ㆍH. C. 안데르센, 『안데르센동화전집』, 김유경 옮김, 동서문화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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