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문도전과 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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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04 조회6,726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박영수
옛날 영국의 북쪽 바다에서 청어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는 어부들에게 한 가지 큰 화두가 있었는데, 그것은 어떻게 하면 북해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런던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보내서 비싼 값으로 청어를 팔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시 청어는 영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생선이었기 때문에 런던까지만 청어를 싱싱하게 유지한 채 가지고 갈 수 있으면 큰돈을 버는 것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어부들이 온갖 꾀를 내어 아무리 시도를 해보아도 배가 런던에 도착할 즈음이면 백이면 백 모두 청어들이 거의 다 비실거리며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런데 어떤 한 어부는 북해에서 잡은 청어들을 정말 싱싱하게 산채로 런던에 가지고 와서 비싸게 팔아서 혼자 큰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를 아는 모든 동료 어부들이 그 비법을 물어보았으나 그는 자기만의 비밀이라며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 어렵게 살아가는 한 동료를 가엾게 여긴 어부는 그 동료에게 자신만의 비법을 몰래 알려주었는데, “나는 청어를 넣은 통 속에다 물메기를 한 마리 같이 집어넣는다네.”라고 말해주었다.
그 동료 어부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러면 물메기가 청어를 다 잡아먹지 않아?”라고 물었다.
그 어부는 “맞아, 처음에는 당연히 몇 마리의 청어를 잡아먹지. 그러나 단지 몇 마리뿐이야. 재미있는 것은 나머지 살아 있는 청어들은 그 물메기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모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게 되니까, 결국 그 물메기 때문에 살아 있는 청어들을 전부 다 싱싱하게 만들어주더라니까!”
이 ‘청어 이야기’는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1889~1975)가 그의 강연에서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속성과 반복성에 대한 인식 아래 세계사 28개 문명의 발생과 성장, 해체의 과정을 비교 분석하여 불후의 명저인 『역사의 연구』 12권을 27년 동안 저술하는 위업을 세웠습니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기원전 480?~420?)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고 한 것처럼 이집트 문명은 해마다 겪게 되는 나일강의 범람 때문에 태양력과 기하학, 건축술, 천문학이 발달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을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 설명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자연환경이 좋은 나라는 늘 발전에서 뒤처졌고 고대문명과 세계 종교의 발상지는 모두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토인비는 가혹한 환경에 성공적으로 응전한 사례로 이집트 문명, 수메르 문명, 미노스 문명, 인도 문명, 안데스 문명, 중국 문명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잉카문명, 마야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은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토인비는 이 부분에 주목하여 자연재해나 외세의 침략과 같은 심각한 도전을 받은 문명은 지금까지 찬란하게 발전해오고 있지만 그런 도전을 받지 않은 문명은 스스로 멸망하고 말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도전이 없는 곳에 멸망이 있다는 것은 ‘도도새의 이야기’가 대변합니다. 도도새는 인도양의 모리셔스(Mauritius) 섬에 서식했던 새인데, 섬에는 포유류가 없었고 아주 다양한 종의 조류들이 울창한 숲에서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이 새는 매우 오랫동안 아무런 도전 없이 살았고, 하늘을 날아야 할 필요가 없어져 그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섬을 처음 발견했을 때 이 새들은 도망도 못 가고 멍청히 쳐다만 보고 있어서 선원들은 ‘바보, 멍청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도도’라고 붙였다고 전해집니다. 후에 네덜란드가 이 섬을 유배지로 선정함과 동시에 쥐, 돼지, 원숭이 등이 배를 통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동물들은 섬을 차지하고 땅 위에 둥지를 틀고 한 번에 한 개만 낳는 도도의 귀중한 알을 훔쳐 먹었습니다. 도도새는 결국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편하게 살려고만 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도도새의 법칙’이라 합니다.
이 도전과 응전의 원리는 역사관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바로 도전과 응전입니다. 토인비는 바로 이런 삶의 원리를 역사의 연구를 통하여 이론화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 개인 삶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삶을 영위해나갑니다. 개인의 운명은 공동체의 운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도전은 우리 삶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통입니다. 시련과 고통이란 것도 하나의 인식이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경험이 있을 뿐인데 그것을 겪는 인간이 어떤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힘들지만 버틸만하다고 느끼며, 어떤 사람은 그 속에서 기쁨과 교훈을 찾습니다. 이를 응전이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느끼게 되는 응전의 세 가지 측면입니다.
응전에 대한 세 가지 삶의 태도는 우리 도(道)의 심우도(尋牛圖)에 비유하자면 면이수지(勉而修之)와 성지우성(誠之又誠), 도통진경(道通眞境)의 차이입니다. 심우도는 외면적인 환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면적인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것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 마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상징적 그림입니다.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법칙은 우리가 깊이 숙고할 만한 삶의 진실입니다. 역사적 통계로 그러한 법칙을 발견한 것은 토인비의 위대한 업적이므로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학자가 그런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있었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나 그런 진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토인비의 저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사마천의 『사기』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우리 훈민정음이 어떻게 창제되었는지 그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모든 위대한 업적의 이면에는 그만한 시련과 역경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고난이 인간을 옥으로 만든다는 말이 빛을 발하는 부분입니다. 고난과 역경의 아름다운 역설을 이해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상제님께서 하늘이 인재를 쓰는 섭리에 대해 『맹자』의 한 구절을 인용하시어 말씀하셨듯이, 맹자는 “순임금은 농사를 짓다가 제왕이 되었고, 부열(傅說)은 성벽 쌓는 일을 하다가 기용되었으며, 교격(膠鬲)은 어물과 소금을 팔다가 기용되었고, 관이오(管夷吾)는 옥리에게 잡혀 있다가 기용되었으며,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 살다가 기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판에서 기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그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함에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을성 있게 연성하여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01라고 하면서 “안으로 군주를 분발시킬 법도 있는 가문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밖으로 적국과 외환이 없는 나라는 항상 멸망한다. 이로써 근심과 걱정은 사람을 살아나게 하고, 안일과 쾌락은 사람을 죽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02라고 하였습니다.03
현대 농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설적인 농구감독 존 우든(1910~2010)은 “리더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인한지, 회복력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운명은 때때로 리더를 지목해 시련을 준다. 모든 불행과 고통은 그 고통이 끝났을 때 전보다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놓고 떠나간다. 고난은 리더에게 주어지는 신의 특별한 배려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모든 일에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과정에는 반드시 장애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겁액(劫厄)이라 한다고 하시며, 겁액을 극복해 나가는 데 성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04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 겁액에 굴복하여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데서 탈선이 되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앞길을 막아 버리는 사례가 많다고 하시며 매사에 “겁액을 극복하라!” 하셨습니다.05
인생의 광풍은 아무리 심해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검은 구름 뒤엔 언제나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듭니다. 오늘의 역경이 내일의 성공의 밑거름임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명검으로 거듭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썰물이 있으면 밀물이 있어 반드시 배를 띄울 수 있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어려운 때든 성공의 때든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괴롭다고 낙담하지 말고, 작은 성취에 자만하지 말며, 먹은 마음 다시 먹고 쉬지 않고 나아갈 때, 운수도 거기 있고 도통도 거기 있으며 지상천국의 길도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맡겨진 직분에 성·경·신을 다하며, 정심입의(正心立義)하고 구심령(求心靈)하여 모든 것을 상제님의 임의(任意)에 맡깁니다!
<대순회보> 197호
참고 문헌
·금시명, 『하도와 낙서』, 서울: 학고방,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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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맹자』 「고자 하」.
02 앞의 책.
03 행록 3장 50절 참조.
04 『대순지침』, p.93 참조.
05 『대순지침』, pp.93-9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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