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온 넋을 빼앗긴 화가, 최북[上] >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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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금강산에 온 넋을 빼앗긴 화가, 최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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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5.02 조회4,9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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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북(崔北, 1712~1786)은 18세기 우리나라 사실주의 풍경화 발전에 기여한 재능 있는 화가의 한 사람이다. 호가 성재(星齋)ㆍ기암(箕庵)ㆍ호생관(毫生館)인 그는, 산천초목을 남달리 사랑해 주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화폭에 담은 산수화를 많이 그렸다. 그가 산수화에 얼마나 정력을 쏟아 부었던지 가까운 친지들은 그의 호나 이름 대신 ‘최산수’란 별칭으로 즐겨 불렀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호방하여 까다로운 세습이나 유교적 관습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권세를 휘두르는 양반 사대부들 앞에서도 절대로 굽실거리는 일이 없었다. 더욱이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창작의도를 모르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누구이건 간에 참지 못하고 쏘아붙이곤 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조정(朝廷)에서도 상당한 세도를 지닌 대감이 화려하게 꾸며진 자기 집 사랑방의 병풍에 그림이 필요해 최북을 청한 일이 있었다. 평소부터 당시에 유행하던 문인화(文人畵)01를 숭상하던 대감은 최북에게 신선도(神仙圖)를 그리라고 하였다. 현실세계에 없는 환상속의 신선을 그리라는 요구에 화가 울컥 치민 최북은 자기는 그리지 못하겠으니 다른 화원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노기등등해진 대감이 만일 그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최북은 손에 쥐고 있던 붓대로 자신의 한쪽 눈을 찌르면서 “나에게 눈이 없다면 신선도를 그리라고 하지 못할 것이 아닙니까.” 하고 반발하니, 그 기세에 놀란 대감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언젠가는 한 벼슬아치가 그에게 찾아와 산수도(山水圖)를 그리되 꼭 산을 감아 돌아 흐르는 물을 그려달라고 요구하였다. 최북은 자기 혼자 그림을 아는 것처럼 우쭐대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해 화판에 우뚝우뚝 선 산봉우리만 그려 넣었다. 그림을 받아든 양반이 볼멘소리를 하자 최북은 “산수도에서 산을 제외하면 전부 물인데 구태여 물을 그려서 무엇 하겠소.”라며 핀잔을 준 일도 있었다.

  그는 이처럼 그림을 한갓 집안의 치장물쯤으로 여기면서 도화서의 화원들을 업신여기는 사대부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양반들의 비위에 맞는 그림을 그리지 않다보니 그의 살림은 늘 구차했다. 그 때문에 그렇게도 소원이던 금강산 유람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런 최북에게도 자기 평생의 소원을 풀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최북은 울적한 심사나 풀어보려고 인왕산의 막다른 곳에 있는 친구의 집을 찾았다. 그가 들어서자 신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최산수 마침 잘 왔네. 방금 자네 이야기를 하던 참이야.”

  “아니, 내 이야기를 왜?”

  “여기 이 사람이 금강산에 다녀왔는데 시(詩) 한 수 짓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하기에 만약 최산수가 금강산에 갔다면 모름지기 천 폭의 명화(名畵)를 그려가지고 왔을 거라고 말하던 참일세.”

  금강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최북은 금강산을 유람하고 왔다는 친구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래 금강산이 어떠하던가?”

  “글쎄 그 절묘함을 어찌 한마디로 다 이야기할 수 있겠나. 내 재간으론 정말 말 못하겠네. 아마 금강산을 보면 내 심정을 알걸세.”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형용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최북은 당장이라도 금강산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누를 길이 없었다. 얼마나 동경해 오던 금강산인가! 하지만 가난한 화원의 살림에 노자를 마련할 길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그였다.

  최북이 안타까운 나머지 “아, 나도 한번 보았으면….” 하는 말을 입속으로 되뇌며 불끈 쥔 주먹으로 가슴을 치자 그를 지켜보던 친구들이 놀라서 에워쌌다.

  “아니, 자네 왜 그러나” 하며 여럿이 물었다.

  그러나 최북은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자 한 친구가 “여보게들, 아직 최산수의 심정을 모르겠나? 금강산을 보고 싶은 마음이 부쩍 동해서 그러는걸세.”라고 하였다.

  그제야 친구들은 최북이 벌써 오래전부터 금강산으로 가고 싶은 심중을 토로해 왔으나 노자 때문에 번번이 뒤로 미뤄왔음을 상기하였다. 이때 한 친구가 좌중을 돌아보며, “그가 아직까지 천하명승 금강산을 못 봤다면 최산수라 할 수 없지. 안 그런가?” 하고 물었다.

  “아무렴, 최산수라 할 수 없지.” 모두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러니 우리 모두 푼돈을 모아서라도 최산수를 금강산에 보내는 게 어떤가.”

  “옳거니 그렇게 하세.” 하고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호응해 나섰다. 이렇게 의논이 되자 어떤 친구들은 안주머니에 찔러두었던 몇 푼 안 되는 돈을 서둘러 꺼내 최북의 손에 쥐어주기까지 하였다. 최북은 자기를 아껴주고 생각해주는 친구들의 진심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그는 이렇게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토록 소원하던 금강산 유람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던 날 최북을 멀리까지 바래다준 친구들은 이번에 금강산에 가면 세상에 으뜸가는 산수화를 많이 그려서 한 짐 정도 지고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최북은 자신의 금강산 유람을 도와준 벗들의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리라 결심하면서 한양을 떠나 금강산으로 향했다. (다음 호에 계속)

   

<대순회보> 86호 

<참고문헌>
안재청, 리용준 저, 『금강산일화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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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전문적인 직업 화가가 아닌 시인, 학자 등의 사대부 계층의 사람들이 취미로 그린 그림. 문인들은 심성을 기르고 심의(心意)와 감흥을 표현하는 교양적 매체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화원들의 기교에 토대를 둔 사실적이고 장식적인 채색풍을 반대하고, 그 대신 대상물의 정신과 고매한 인품을 지닌 작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데 목표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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