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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오해의 벽 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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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12.11 조회5,2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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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해 즐겨 찾는 국숫집이 있었다. 어느 날, 국수를 만드는 분이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에서 무뚝뚝해 보이는 아주머니로 바뀌었지만, 국수 맛이 여전해 그 아주머니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번은 동료들과 국수를 먹다가 김치가 떨어져 직접 가지러 갔다. 반찬을 갖다 주어야 하는 아주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김치를 더 달라는 말에 아주머니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 모습을 보고 ‘아주머니는 손님들이 반찬을 더 먹는 걸 아까워하시는구나. 좋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팔아서 인심 좋은 분이라 생각했는데 불친절하고 인색하시네’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혼자 국숫집에 갔다. 아주머니가 국수를 갖다 주고는 옆쪽 테이블 한편에 서 있었는데 국수 먹을 줄 모른다면서 국수는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며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핀잔하는 듯한 아주머니 말씀에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나중에 국숫값을 계산하면서 “음식은 자기 기호에 따라 먹는 거지, 그런 것까지 간섭하세요?”라며 아주머니에게 불쾌한 심정을 표현했다. 말문이 막힌 건지, 말을 못 알아들은 건지 아주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로 국숫집에 가는 것이 껄끄럽긴 했지만, 모른 척하고 동료들과 몇 차례 더 갔는데 몇 개월 뒤 그 국숫집은 문을 닫았다.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끼며 동료에게 말했다. “국수가 맛있었는데 폐업하고 나니 아쉬워요. 아주머니가 불친절해 기분이 상한 적도 있지만 좋은 식당이었는데…” “그래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문을 닫았다고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중풍기로 안면 마비 증세가 있다고 하던데…” 이 말을 듣고 자신이 아주머니를 오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 중에도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본인은 미소 짓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고서야 자신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반찬을 주기 싫어 얼굴을 찡그리신 게 아니셨어. 호의적인 표정을 보인 것이었으나 안면 장애로 인해 찡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거야. 또 내게 국수 먹을 줄 모른다고 무시하신 게 아니라 단골손님이다 보니 투박하게나마 말을 거신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괜히 사정도 모르고….’ 자신이 오해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절친한 친구가 겪은 일화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생기는 오해와 그 오해가 쌓여서 생기는 부정적 감정들, 그리고 그것이 풀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친구는 아주머니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불친절하다고 판단했다. 이후에 아주머니의 딱딱한 말투와 표현을 경험하면서 그 판단은 더 확고해져 험담까지 했다. 다행히 아주머니의 처지를 알게 되어 오해를 풀었는데, 상대방을 이해해보려는 노력 없이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 상대방을 함부로 평가한 자신을 반성했다. 만약 오해가 풀리지 않았다면 친구는 자신이 만든 아주머니에 대한 잘못된 상(像)에 갇혀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아주머니를 함부로 평가하고 미워한 척(慼) 또한 풀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오해와 척이 많을수록 진실로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오해는 어떤 표현이나 사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이해를 말하는 것으로 대인관계에 있어서 오해가 생기는 경우는 다양하다. 윗 이야기 처럼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모를 때 말투나 표정 그리고 태도 등을 불친절하거나 화를 내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또 어떤 상황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부족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일례로 아동들은 발달 과정에서 부모나 교사와 같은 권위자의 말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충성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권위자가 정해놓은 규칙을 어기면 이것을 권위자에게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부모나 교사에게 친구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아이에 대해 바르지 못하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이외에도 상대방의 말을 잘못 들었거나 자신의 피해의식 또는 선입견 등으로 인해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경로로 오해가 생기지만 결국 오해는 타인의 입장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타인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오해는 단순하게 한바탕 웃고 끝날 수도 있고, 오해가 풀려 대인관계가 제자리를 찾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때, 상대방에 대한 편견이나 미움, 원망, 의심,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이 동반되므로 척을 짓는 것은 물론,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상대방을 그릇되게 평가함으로써 상대방의 인격을 침해하고 자신은 오해라는 거짓된 세계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상대방과의 관계가 서먹해지거나 급기야 원수지간으로 악화할 수 있으며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기도 한다. 서로 돕고 존중하며 참된 세상으로 나아가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오해라는 망상에 갇혀 미움과 갈등 속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오해의 벽을 넘어 타인을 좀 더 참되게 보고자 한다면 먼저 사람이 ‘오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Philip Roth, 1933~2018)는 그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 『미국의 목가』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사람은 오해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조차 자신을 스스로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타인에 대해 다 알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오해하지 않는다고 자만하는 사람은 그 벽에 갇혀 있을 확률이 높다. ‘오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자신을 더욱 성찰하고 타인을 향해 마음의 문을 더 열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오해하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오해가 부정적 감정을 동반하는 것을 참작하여 상대방의 언행과 처사가 못마땅하거나 불쾌하게 느껴질 때 자신이 상대방을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상대방에게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와 대화를 나누어 오해를 풀어야 한다. 만약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판단과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부정적 감정들을 통제해야 한다. 이런 연습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어느새 그 벽에 갇혀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오해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항상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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