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야기지옥에 다녀 온 석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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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2.20 조회4,435회 댓글0건본문
내금강의 만천 상류에서 백천이 합쳐지는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좁고 깊숙하여 끝없이 이어질 듯한 비경이 펼쳐진다. 개울의 너비는 불과 10여 미터 안팎인데 좌우에 늘어선 벼랑들은 자못 기세가 등등하여 마치 사방에 갇힌 듯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백천동 계곡의 석가봉(釋迦峰: 946m)과 시왕봉(十王峰: 1,141m)을 사이에 둔 채, 맑고 아름다운 물과 기암괴석들에 정신을 팔면서 꼬불꼬불한 계곡을 따라 오르노라면 갑자기 앞이 열리면서 개울이 좀 넓어진 곳에 이른다.
여기서 왼편의 석가봉 줄기에서 뻗어 내린 벼랑 위를 바라보면 개울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리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보면서 왼쪽으로 한 굽이를 돌면 둥그런 큰 바위가 길가에 앉아 있다. 이 바위 위에는 ‘옥경대(玉鏡臺)’·‘업경대(業鏡臺)’·‘명경대(明鏡臺)’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사람들이 명경대를 향해 무릎을 굻고 앉았다는 무릎자리와 죄 지은 자들의 눈물이 흐른 자리라고 하는 좁은 홈도 있다. 이 바위가 바로 배석대(拜石臺)이다. 배석대 위에서 맞은편을 바라보면 널따랗고 길쭉한 장방형의 명경대가 우뚝 선 것이 확연하게 보이고, 오른편에는 높이 솟은 시왕봉을 필두로 판관봉, 인봉, 죄인봉(罪人峰), 사자봉(使者峰), 지옥문(地獄門), 극락문(極樂門)이 순차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왕봉’은 마치 인간세상의 왕이 용상에 앉아 문무백관들의 조회를 받고 죄인을 다스리는 듯한 형상이다. 그리고 시왕봉 아래에 있는 ‘판관봉(判官峰)’은 마치 머리에 관을 쓴 판관이 시왕 앞에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의 명령을 듣고 있는 것 같고, 시왕봉 곁의 ‘인봉(印峰)’은 시왕이 판결을 내려 도장을 찍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배석대에 올라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 명경대에 그의 죄의 유무가 환히 비친다고 한다. 그러면 시왕들은 그것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도장을 찍은 뒤 죄인들은 좁은 지옥문으로 보내고, 죄가 없는 사람들은 넓은 극락문으로 보냈다. 한편, 옛날 영원조사(靈源祖師)라는 스님이 이 봉우리 밑에 영원암(靈源庵)을 짓고 불도를 닦았는데 해가 지고 고요한 밤이 되면 이 봉우리 밑에서 죄인을 다스리는 소리가 은은히 드려왔다고 전한다.
배석대를 지나면 곧 깊이 3.8m, 넓이가 180㎡의 둥그런 소(沼)가 있는데 이것이 ‘옥경담(玉鏡潭)’이다. 소의 바닥은 나뭇잎들이 깔려서 검은데 물에는 명경대와 주변의 산봉우리 그림자가 비쳐 어른거린다. 그리고 옥경담 아래에서 개울을 건너면 소 오른쪽에 수왕성터(이른바 ‘마의태자 성터’)가 있다. 무너지긴 했으나 아직도 50여미터 구간에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성터를 지나 오르면 왼쪽의 산줄기가 개울 쪽으로 쑥 삐져나온 곳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봉우리처럼 우뚝 서서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벽면이 깨끗이 다듬고 연마한 듯 반듯하고 불그스름하면서도 누런빛을 띠고 있다. 마치 커다란 거울을 산에 의지하여 세워놓은 것만 같은 이 바위가 그 유명한 ‘명경대(明鏡臺: 일명 업경대)’이다. 그 자태가 마치 거울을 세워놓은 것 같기도 하고 계곡 물에 비친 그림자가 거울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어왔다.
거대한 기념비마냥 높이 서 있는 명경대 주변의 산비탈에는 단풍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등 활엽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으며 개울은 명경대를 에돌아 원형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명경대는 주위의 모든 바위와 소, 산림을 손안에 쥐고 있는 거장인 양 서 있고, 주변의 기암괴석과 나무들도 그에 복종하는 듯한 모습인데 이런 풍경은 명경대구역에서도 으뜸가는 절경이다. 이처럼 명경대는 들어가는 입구인 지장봉(地藏峰)을 비롯해 부근의 지명들이 모두 불경에 나오는 염라국의 관직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진 채 여러 가지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는데, 다음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염라국에 다녀 온 석봉만에 관한 내용이다.
옛날에 석봉만이란 사람은 성품이 어질고 부지런하여 평생 남에게 해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죽더니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염라국(명부)에 가게 되었다. 염라국은 너비가 이십여 만 리나 되고 거기에 오백 개의 지옥이 있었다. 사면에는 문이 없고 오직 위에만 한 개의 문이 뚫어져 있기 때문에 석봉만도 지옥의 옥졸들에게 두 팔을 묶인 채 공중으로부터 지옥에 끌려 내려갔다.
그가 명부(冥府)에 이르자 시왕(十王)이 밝은 거울인 명경(明鏡)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고, 옆에는 판결문에 사용되는 큼직한 도장이 놓여 있었다. 시왕 아래에는 판관(判官)들이 관을 쓰고 홀(笏)01을 받쳐 든 채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시왕의 명(命)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상하 좌우에는 백여 명의 사졸들이 엄숙히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 형상이 마치 인간세상에서 제왕이 옥좌에 앉아 문무백관들의 조회를 받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였다. 또 이곳에 사자(使者)들이 창검을 들고 앉아 있거나 드나들면서 죄인처럼 명령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어 참으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석봉만이 두려움에 떨면서 시왕 앞에 꿇어앉자 벼락같은 소리가 들렸다.
“네 이놈, 살아생전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사실대로 고하라!” 시왕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죄인을 위압하면서 우렁차게 울렸다. 그러나 그는 “대왕님, 저는 아무 죄도 지은 바가 없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아뢰었다.
석봉만은 겁에 질려 온몸이 후들거렸으나 사실 지은 죄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저편에서는 심문을 받는 죄인들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눈을 흘겨보니 그것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그 광경을 본 석봉만은 겁이 났지만 억울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듣건대 죄를 지어야 지옥에 간다고 하는데 죄 없는 내가 극락에는 못 갈지언정 여기에 붙잡혀 와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불가에서 하던 소리는 다 거짓이었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화가 나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크게 소리쳤다.
“재삼 말씀드리거니와 저는 죄가 없는 사람이니 마땅히 놓아주어야 옳은 것으로 아옵니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큰소리를 치느냐. 거짓말을 하면 용서 없을 줄 알아라.” 시왕들은 다시 위엄 있게 말하고 나서 각기 손에 든 명경을 석봉만에게 비쳤다. 이 명경은 인간 수명의 장단과 죄의 유무, 빈부귀천 등을 사실대로 비춰줌으로써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는 거울이다. 그러자 석봉만이 살아생전에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시왕이 그 거울에 비친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더니 곧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기웃거리고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판관과 사자, 사졸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의아한 눈초리로 시왕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석봉만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다시 한번 목청을 높였다. “죄 없는 인간을 지옥에 부른 것은 천만번 부당하오니 속히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하소연처럼 명경에 비쳐진 석봉만의 일생에는 죄로 다스릴 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자 시왕은 “너는 이름이 명부에 잘못 기재되어 잡혀온 것이구나. 어서 인간 세계로 돌아가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시왕의 명령을 판관이 외우고 판관의 지시는 사자에게 전달되었다. 사자는 그의 팔을 묶었던 쇠밧줄을 풀어주고 지옥문 밖으로 내보냈다. 이렇게 해서 석봉만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옥에서 나온 곳은 바로 내금강 명경대 앞이었고 주변의 경치는 신기하게도 자신이 방금 보았던 명부의 모습과 흡사했다고 한다.
01 국가의례 시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 두 손에 쥐던 길쭉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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