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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이야기고부(古阜)와 삼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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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2.01.30 조회5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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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수저수지에서 바라본 두승산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곳은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이며, 이는 1896년 전라도의 남도와 북도가 구분되기 이전의 행정구역상 위치를 가리킨다. 지금의 고부는 정읍시 고부면이라는 작은 면 단위 행정구역으로 축소되었지만, 강세 당시의 고부군은 두승산을 중심으로 정읍을 포함하여 부안과 고창의 넓은 지역까지 관할하고 대표하는 지명이었으며, 삼신산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이 이어진 곳이었다. 당시의 고부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른 까닭에 상제님의 강세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에 대한 역사·문화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고부의 역사와 지형 그리고 문화를 살펴보면서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고부 땅의 숨은 의미를 발견해 보자.

 

 

고부의 유래와 역사
  삼한 시대에 고부는 마한 고비리국(古卑離國)의 땅이었다. 4세기 들어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면서 이곳을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이라 하였고, 백제의 지방행정조직인 5방 중 중방을 설치하여 지방통치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부군(古阜郡)이라 칭하였으며, 고려 태조 시기에 영주(瀛州)로 개칭하면서 관찰사를 두었다. 광종 때 안남(安南)으로 바꾸었다가 현종 때 다시 고부군이라 하여 조선말까지 이어졌다.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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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전라북도 정읍시 소속의 고부면이라는 작은 행정단위로 남아 있지만, 백제, 고려, 조선을 거치며 오랫동안 전라도 제일의 곡창지대와 연결된 군사, 교통의 요충지로서 고부는 19개 면이 소속된 행정 중심지였다. 당시의 고부는 중앙에 두승산을 우뚝 세우고 동쪽으로는 회문산과 접하며, 서쪽으로는 줄포만 해안과 변산(邊山)에 이르는 동시에 북쪽으로 백산면, 그리고 남쪽으로는 방장산(方丈山)까지 닿아 있었다.
  고려 시기에 고부군수는 부안현, 흥덕현, 고창현, 무장현, 정읍현, 태산현, 인의현 등의 속현을 관할하였고, 조선 시기에도 부안현, 흥덕현, 고창현, 무장현, 정읍현, 태인현 등의 현감을 지휘 감독하였다.02 부안현에 변산이 있고, 흥덕현에 방장산이 속하니 이곳까지도 모두 고부군의 영역이었다. 한 마디로 고부는 지금의 정읍, 부안, 고창을 아우르며 삼신산으로 불리는 두승산(영주), 방장산, 변산(봉래)을 품고 있는 큰 땅이었던 것이다.
  고부(古阜)라는 글자는 사전적으로 ‘옛 언덕’, ‘첫 발상지’, ‘태고로부터 크게 융성하다’의 의미를 가진다.03 고부는 예로부터 토질이 좋고 물산(物産)이 풍부하여 1890년대까지만 해도 주위의 많은 나루를 거쳐 어선과 상선이 활발하게 오갔고, 이를 통해 주변 지역의 농산물과 수산물이 이곳에 모이는 등 해상과 내륙을 오가는 상업의 중심지이며, 인근 지역 쌀의 집산지였다.04


35f7f4f748f51c591fb4ed80d4e01a0d_1643534▲ 말목장터 고부농민봉기도: (정읍시 이평면 말목장터 소재, 2012년 촬영) 

 


  고부가 전라도에서 으뜸가는 곡창지대의 하나였지만, 이 지역 농민들은 오히려 그로 인해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19세기 삼정(三政)의 문란과 함께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1894년(고종 31)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이 극에 이르자 전봉준을 앞세운 수백 명의 농민이 봉기하여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수탈에 앞장선 아전들을 처벌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시작으로 농민군이 조직되고 대규모 농민봉기로 이어지면서 외세에 대항하고 민족의 자주 의식을 불러일으킨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항쟁이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항쟁이 기원한 곳이기에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는 고부군의 관할지역을 부안, 고창, 정읍의 3개 군에 분산시키고, 고부군을 고부면으로 축소하여 당시 정읍군에 병합시켰다.05 이는 고부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였기 때문에 민심의 재집결을 막고자 고부군을 고부면으로 격하시키고, 최초의 봉기가 일어났던 말목장터가 위치한 이평면을 정읍군에, 백산 봉기가 일어났던 백산면을 부안군에 병합시키는 등 고부의 주요 지역을 쪼개고 나눈 것이다. 그리고 1995년 시군통합으로 인해 정주시와 정읍군이 합하여 정읍시가 되면서, 현재 고부는 정읍시 고부면이라는 작은 행정구역으로 남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고부의 옛 지형
  『전경』 행록 1장 2절에는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고부에 대하여 “이곳은 예로부터 봉래산(蓬萊山)·영주산(瀛洲山) 일명 신선봉(一名 神仙峰)·방장산(方丈山)의 세 산이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리어 오던 곳이로다.”라는 설명이 언급되어 있다. 원래 삼신산은 고대 중국의 삼신산 설화에서 비롯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삼신산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금강산을 봉래산으로, 지리산을 방장산으로,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하지만, 고부지역에서도 변산을 봉래산으로, 두승산을 영주산으로, 방장산을 이름 그대로 방장산으로 부르며 삼신산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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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장산 

 


202105161446_Daesoon_243_%EC%A0%84%EA%B2  삼신산과 관련하여 고부의 지형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예전의 이곳 깊숙한 내륙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흥미로운 것은 삼신산 설화가 소개된 옛 기록에 삼신산의 위치가 바다와 관련 있다는 언급 때문이다. 삼신산에 관하여 『열자(列子)』 「탕문(湯問)」06편에 “발해(渤海)07의 동쪽에 위치하며 처음에는 다섯 개의 산이었다가 두 개가 가라앉아 세 개의 산이 된 것으로, 신선이 살고 불로불사(不老不死)하는 선약이 존재하는 신성한 지역”이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발해는 전국시대 제나라와 연나라가 자리한 발해만 연안의 바다를 말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동쪽이면 곧 한반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언급으로 인해 삼신산은 오랫동안 한반도의 어느 지역이거나 바다 위의 섬이라고 추정되어왔다. 하지만, 『사기』의 “삼신산은 사람을 떠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此三神山者 … 去人不遠)”라는 서술과 함께 생각해 볼 때 삼신산은 육지와 동떨어진 섬이 아니라 해안 인근의 산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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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익산의 황등제(黃登堤)와 함께 ‘호남의 3호(湖)’로 불리는 눌제(訥堤: 고부면 소재)는 바닷물의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으로 백제 혹은 후백제 시기에 축조했다고 추정되는데, 이 지역에 바닷물이 지금의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 왔다는 흔적은 이 눌제와 관련된 옛 기록에서 언급된다.
  옛 고부군의 속현이었던 『흥덕현 읍지(邑誌)』 산천(山川)조 태산(台山) 항목에는 “아래에 조선동(造船洞)이 있다. 전해오는 말에, 옛적에 바닷물이 부딪혀서 조선(造船)에 이르렀으나 여기에 강감찬이 눌제를 쌓은 뒤로부터 조수가 밀려오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옛일과 관련하여 이름을 붙였다”08라는 기록이 있다. 태산은 지금의 동림저수지(고창군 성내면) 동쪽에 있는 덕산리 도덕마을의 백갑산을 말하는데, 이는 방장산과 가까운 곳이다.09 눌제는 때로 홍수로 인해 범람하고 무너지기도 하여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고 하는데, 흥덕 읍지의 기록은 고려 시기에 ‘조선동’이라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나 눌제를 보수하여 개축한 이후 조수가 밀려오지 않았다는 내용과 함께 ‘배 만드는 곳[造船]’의 뜻을 가진 지명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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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산 의상봉

 


  이뿐 아니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부 항목에서도 “대포는 군의 서쪽 10리에 있다. 눌제천의 하류가 되는데, 조수가 드나든다”10라고 하며, 예전에 대포(大浦)라 불리던 영원면 앵성리의 수성마을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전하니 이곳은 두승산과 가깝다. 정읍시에서도 인근의 ‘앵성리 산성’에 관해 ‘선착장을 지키던 포구(浦口)의 성’이라는 설명과 함께 옛날에 고부천을 따라 동진만(東津灣)에서 이곳 대포까지 선박이 왕래하였다고 전하며, 대포를 백제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의 선착장으로 추정하기도 한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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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부의 주요지역 (문화, 조수관련)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지역주민들의 구전(口傳)과 함께 토양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지역민들의 구전에 따르면 방장산에서 불과 3~4km 거리인 지금의 소성면 중광리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전하고, 태인, 이평까지 배가 들어왔다 하여 그 지역에 ‘배들평야’라는    이름이 있으며, 입암면 지선리(芝仙里)에도 어룡포(魚龍浦)와 같이 바다와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또한, 농촌진흥청 식물환경연구소에서 토양도를 기초로 추정한 고대의 해안선12에서도 고부천을 따라 두승산은 물론이고 방장산 인근까지 해안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고부의 삼신산 중 ‘해변의 산’13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변산(邊山)은 이미 해안과 접하여 있고, 두승산과 방장산은 줄포만 해안과 불과 1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기본적으로 해안 가까이에 위치한다. 이에 더하여 옛 문헌의 기록과 구전(口傳)을 통해 전해지는 두승산과 방장산에 가까운 내륙 안쪽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고대 삼신산 설화와 관련하여 흥미롭게 다가오며,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고부지역의 역사·문화를 재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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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해안선(a)(자료: 농촌진흥청 식물환경 연구소) 및 현재 지도와 겹친 모습(b) 

 


삼신산과 관련 문화 
  고부의 삼신산은 인근에 신선과 관련된 일화를 남겼고, 고부지역은 성리학적 이념이 독단으로 치닫던 조선 중기 이후에도 선도(仙道)문화의 주요 거점이 되어 선도나 내단 수련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을 이어 왔다.
  상제님 강세 이전에도 고부지역에는 신선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특히 두승산의 한 자락인 천태산 인근의 영원면 은선리와 관련하여, 영원이라는 지명은 현재 일제 강점기에 바뀐 영원(永元)이라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조선 후기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의 한자 표기에서도 확인되듯이 그 이전에 사용하던 한자는 영원(瀛原)이었다. ‘바다’ 혹은 ‘신선이 사는 섬’14이라는 뜻을 가진 영(瀛)이라는 글자는 신선 세계를 상징하며,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의 영자와도 동일하다. 그러기에 영원은 ‘신선 세계의 근원지’라는 의미를 가지며, 영원면에 있는 은선리(隱仙里)는 신선이 사는 고을로서 백제 부여의 삼산(三山)에 거처하는 신인이 두승산으로 날아와 영원의 천태산 신선봉에 숨어들었다는 유래가 전해지기도 한다.15
202105161450_Daesoon_243_%EC%A0%84%EA%B2  신선과 관련된 이야기는 예로부터 신선 세계에 오르기 위해 수행 정진하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는 두승산 유선사(遊仙寺)의 일화16에서도 나타난다. 두승산 가파른 산길을 따라 3km쯤 올라가면 유선사가 있는데, 절 이름에 신선 선(仙)자가 들어가 있어 이채롭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의상 대사가 이곳에서 신선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훗날 그 아래에 나무를 꽂으며 절을 지으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놀 유(遊), 신선 선(仙)의 글자를 써 ‘신선들이 노닐던 자리’라는 의미를 붙여 유선사라 한 것이다. 신선들이 놀았다는 칠성대(七星臺)에서는 하늘에 천제와 기우제를 지냈으며, 현재 절 뒤쪽에 의상대사가 꽂은 나무가 자라났다고 하는 회화나무 8그루가 있다고 한다.17
  또한, 조선 중기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許筠, 1569~1618)은 고부에서 자신을 찾아온 도사 남궁두(南宮斗, 1526~1620)를 만나 도교 경전과 그가 ‘권진인(權眞人)’이라는 신선을 만나 선도를 수련하게 된 과정을 전해 듣고, 부안(扶安)에 은거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하여 소설 『남궁선생전』을 집필하였다. 이를 통해 선도의 수련문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렇게 촉발된 선도문화의 기풍이 17세기 이후 고부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일어났는데 이때 내단 수련문화를 성숙시킨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권극중(權克中, 1585~1659)이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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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루산 

 


  고부 사람 권극중은 상제님 모친이신 권씨 부인의 선조이기도 한 인물로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머무르지 않고 평생을 수련과 학문에만 열중하며 은둔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유교를 뛰어넘어 단학(丹學)에 심취하였고, 단경(丹經)의 왕으로 불리는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를 독자적으로 해석한 『참동계주해(參同契註解)』라는 저서를 남겨 우리나라 단학 이론의 개창자로 평가된다. 권극중의 외조부가 함열 사람 남궁희(南宮熺)였음을 근거로 권극중이 남궁두와 교류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며,19 그가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공부를 했다고 해서 이평면의 그가 살던 마을이 서산리(書山里: 지금의 팔선리)로 불리기도 했다.
이처럼 고부지역에서는 당시 지배적 이념이었던 성리학에서 이단시하던 신선술[仙道] 내지는 단학(丹學) 수련의 기풍이 크게 번지며, 조선 중후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사상·학술적 조류를 형성하였다.

 

 

나가는 말
  방장산으로부터 연결된 지맥이 두승산과 변산에 닿으며 삼신산을 이루고, 그중 두승산의 지맥은 상제님의 강세지인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의 시루산까지 연결된다. 고부는 일제강점기에 호남선 철도가 정읍을 지나가면서 현(縣)에 불과했던 정읍이 이 지역의 중심지로 부상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중심지로서 기능하였고, 상제님 강세 당시에는 두승산(영주산), 변산(봉래산), 방장산으로 불리는 삼신산을 품고 있는 큰 땅이었다. 신선과 관련된 오랜 문화적 전통과 함께 삼신산을 품은 까닭에 고부는 상제님의 강세에 따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라 생각된다. 또한, 『사기』, 『열자』 등 옛 기록에 전설의 삼신산 위치가 바다와 관련 깊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오래전의 시기에 고부의 깊숙한 내륙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고부의 삼신산이 바다에 인접했었다는 점은 꽤 흥미로운 대목이 아닌가 한다.

 

 

 

 


01 김기덕 외, 『두승산 유선사』, (전주 : 신아출판사, 2016), pp.43-45
02 김태웅(서울대), 「현대 고부인이 되찾은 고부군의 사화(史話)」,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kyujanggak.snu.ac.kr/geo/contents/con_story_view.jsp?seq=41
03 같은 글.
04 교무부, 「전경 속의 옛땅을 찾아서: 고부」, 《대순회보》 18 (1990).
05 김기덕 외, 앞의 책, p.47.
06 『열자』는 『노자』, 『장자』와 함께 ‘도가(道家) 삼서(三書)’라 하여 널리 읽혀 온 책으로 도교를 숭상했던 당나라 때에는 과거시험의 주요 경전으로 지정되었다. 『열자』 「탕문(湯問)」편에서 상(商)나라(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046년)를 세운 탕임금과 하극이라는 사람과의 대화 속에 삼신산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07 요동 반도와 남쪽의 산둥반도를 잇는 보하이[渤海] 해협을 경계로 황해와 나뉘는 내만성(內灣性) 해역을 가리킨다. 중국 전국시대에 제나라와 연나라가 인접하였다. 『두산백과』 “보하이해(渤海)”
08 『흥덕현읍지』(1792년경 추정), 「산천」, “下有造船洞 諺傳上世海潮衛至造船 於此自姜邯贊築訥堤以後潮不得至 故困旧而名焉”.
09 이병렬, 「눌제를 중심으로 본 고부천의 역사지리」, 『정읍문화원 눌제 규명 학술용역 조사보고서』 (2017), p.20 참고.
10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고부산천」, “大浦在君西十里 訥堤川下流 潮水往來”.
11 《정읍시청》 (htps://www.jeongeup.go.kr), 문화관광 “앵성리 산성”
12 이병렬, 앞의 글, p.18, 재인용. 청동기 시기로 추정.
13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외, 『한국지명유래집: 전라ㆍ제주편』, (수원: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10) p.18
14 단국대 동양학 연구원, 『한국한자어사전』, “영(瀛)”
15 김기덕 외, 앞의 책, pp.82~97 참고.
16 『두산백과』 “유선사” 참고.
17 한국관광공사, 「유선사(정읍)」,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
18 김성환 외, 『(개벽과 상생의 문화지대) 새만금문화권』 (고양 : 정보와사람, 2006), pp.195~197.
19 김낙필, 『조선시대의 내단사상』 (서울 : 한길사, 2000),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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