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 속 인물소호 금천씨(少昊 金天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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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8.21 조회7,377회 댓글0건본문
도주님께서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癸亥, 1923)년에 밝히신 「전교(傳敎)」를 통해 소호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전교」에는 인류 역사의 시기마다 성인(聖人)이 나타나 세상을 교화한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그는 초통(初統) 초회(初會)의 성인으로 등장하고 있다.02 하지만, 상고시대의 역사에서 소호의 존재 여부는 아직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다만 중국 역사서인 『사기』를 비롯하여 『습유기(拾遺記)』·『산해경(山海經)』·『춘추좌전(春秋左傳)』 등에서 소호와 관련된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4세기경 왕가(王嘉)가 지은 소설집 『습유기』에 소호의 탄생신화가 실려있다. 소호의 어머니는 황아(皇娥)라고 불렸다. 그녀는 선궁(璇宮)에 거처하며 밤에는 베를 짜고 낮에는 뗏목을 띄우며 놀았다. 어느 날 황아는 뗏목을 타고 노닐다가 서쪽 바닷가의 거대한 뽕나무에 이르렀다. 궁상(窮桑)이라고 부르는 이 뽕나무는 높이가 만 장(丈)이나 되고, 꽃과 가지는 무성했다. 그 잎은 붉은색을 띠고 열매는 자줏빛이었다. 그 열매는 1만 년에 한 번 열리는데 그것을 먹으면 장수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황아는 그곳에서 빼어난 용모의 신동(神童)을 만났다. 그는 백제(白帝)의 아들이라 자칭하였는데 사실은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빛나는 계명성(啟明星), 즉 금성(金星)이었다. 금성은 해가 뜨기 전 동쪽에 있을 때 계명이라 하고, 해가 지고 난 후 서쪽에 있을 때는 장경(長庚)이라 불린다고 한다. 두 사람은 뽕나무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며 즐거움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잊었다. 그 후 황아가 아들을 낳았으니 바로 소호이며 궁상씨다.03 그가 궁상(窮桑: 산동성 곡부시)을 도읍으로 삼아 궁상씨라고 불렸다고 한다.04
소호는 장성하여 동쪽 바다 바깥에 나라를 세우고 소호지국(少昊之國)이라 불렀다.05 그의 부족은 새를 숭상하여 이를 관직명으로 삼았다. 『춘추좌전』 「권지삼십구(卷之三十九)·소공(昭公)」에 따르면 소공 17년 가을에 담자(郯子)가 조회하니 소공이 소호가 관직의 명칭을 새의 이름으로 삼은 유래를 물었다. 이에 담자는 “자신의 선조인 소호가 즉위하자 봉황이 날아들었다. 이로 인해 소호는 새로써 법도를 정하고 이를 관직명으로 삼았다. 봉조씨(鳳鳥氏)는 역(歷)을 주관하였고 현조씨(玄鳥氏)는 춘분과 추분의 시기를 구별하는 일을 담당하며 백조씨(伯鳥氏)는 하지와 동지를 구별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청조씨(靑鳥氏)는 양기가 만물의 힘을 열어주는 일을 관장하고 저구씨(雎鳩氏)는 사마(司馬)를 관장하며 축구씨(祝鳩氏)는 사도(司徒)를 담당했다. 시구씨(鳲鳩氏)는 사공(司空)을 맡았고 상조씨(爽鳥氏)는 사구(司寇)를 관장하며 골구씨(鶻鳩氏)는 사사(司事)를 담당하였다”라고 말했다.06
고대 중국의 동이족은 새를 숭배하였는데 소호의 부족도 동일한 토템 신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07 당시 동이족은 원시 형태의 봉황 문화를 탄생시켰고, 소호의 재위 기간 봉황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또한, 그는 농정(農正)과 공정(工正) 같은 농업과 수공업 관련 관직을 설치하였다. 소호 부족의 활동 거점은 엄(奄: 산동성 곡부시) 지역으로 주변에는 24개의 작은 부족이 산동반도 대부분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소호 부족의 활동 지역은 태호(太昊)의 활동 지역과 인접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소호는 자신이 태어났던 서방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회남자(淮南子)』 「시칙훈(時則訓)」에는 소호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구망(句芒)이라는 아들을 동방에 남겨두어 복희의 보좌신이 되게 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다른 아들인 욕수(蓐收)를 데리고 서방으로 떠났다. 서방의 천제가 된 소호는 곤륜(崑崙)08에서 삼위지국(三危之國: 간수성 돈황현)에 이르는 1만2천 리의 땅을 다스렸다.09 그리고 장류산(長留山)에 살면서 서쪽으로 지는 해의 운행상태를 살피는 일을 하였다. 아들인 욕수는 장류산 부근 유산(游山)에서 태양과 노을의 빛깔을 살피는 일을 하였다.
『산해경(山海經)』 「서차삼경(西次三經)」에 “장류산은 백제 소호가 사는 곳이다. 그곳 짐승의 꼬리와 새의 머리에 무늬가 있는데 대부분은 옥석의 무늬이다. 이곳은 원신외씨(員神磈氏)의 궁이며 이 신(神)은 저녁놀을 관장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10 이곳의 석양신(夕陽神) 원신외씨는 바로 소호를 가리킨다. 소호는 원래 동방의 태양신이었으나 여기서는 서방의 석양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소호가 원래 거주하던 지역에서 서방으로 이주해 간 후 소호국을 다시 세운 결과로 볼 수 있다.11
그는 100세까지 장수하여 84년간 제위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소호가 엄(奄)에서 붕어하자 운양산(雲陽山: 산동성 곡부시 서남부)에 장사지냈다. 소호릉은 산동성 곡부시 구현촌(舊縣村) 동북지역에 위치한다. 소호는 중국인의 공동 시조로 추앙받아 후대에 그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신라의 왕족인 경주 김씨의 시조를 소호금천씨로 여기는 견해도 있다. 그를 신라의 시조로 보는 관념은 현존하는 일부의 금석문(金石文)과 사서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 고사(古事)에 ‘하늘이 금궤를 내려보냈기에 성을 김씨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 내가 역사를 편찬하면서 이 말이 전해 내려온 지 오래되었으나 이를 없애지 못하였다. 그런데 또한 들으니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 금천씨의 후손이라 하여 김씨를 성으로 삼았다”12라는 사관(史官)의 논평이 기록되어 있다. 7세기 후반에 건립된 문무대왕릉비의 비문을 통해 문무왕의 가계(家系)를 중국 상고시대의 전승에 연결하여 신라 김씨의 유래를 소호금천씨라고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13
소호는 황제와 더불어 오제의 첫머리에 등장한 제왕이다. 그는 황제 부족과 동이족을 연결하는 인물로 고대 중국 문명의 기초를 다졌다. 재위 시절 황제의 증손인 어린 전욱을 양육하면서 동이족 수장의 직무를 겸하여 두 부족 간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또한, 공정과 농정의 관직을 설치하여 수공업과 농업을 관리하여 고대 농업 생산력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는 천문을 관측하여 역법을 제정하였고 음악을 좋아하여 다양한 악기도 발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소호는 선사(先史) 시대의 인물로 고고학적 근거가 거의 없어 그 실재성 여부를 의심할 수는 있으나 고대 중국의 민족 간의 화합을 실현하여 태평성세를 이룬 성군으로 여겨진다.
01 오제는 중국에서 고대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며 오행설이 생겨난 이후 진(秦)나라 시절부터 확립된 개념으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선자, 『중국신화 이야기』, (서울: 아카넷, 2004), p.182 참고)
02 교운 2장 26절 참고.
03 『습유기』, 「권일(卷一)ㆍ소호(少昊)」, “少昊以金德王, 母曰皇娥,處璇宮而夜織. 或乘桴木而晝游, 經歷窮桑滄茫之浦. 時有神童, 容貌絕俗, 稱為白帝之子, 即太白之精, 降乎水際, 與皇娥宴戲, 奏(女更)娟之樂, 游漾忘歸. 窮桑者, 西海之濱, 有孤桑之樹, 直上千尋, 葉紅椹紫, 萬歲一實, 食之後天而老. 帝子與皇娥泛於海上, 以桂枝為表, 結熏茅為旌, 刻玉為鳩, 置於表端, 言鳩知四時之候, 故『春秋傳』曰司至, 是也. 今之相風, 此之遺像也. 帝子與皇娥並坐, 撫桐峰梓瑟. 皇娥倚瑟而清歌曰:天清地曠浩茫茫, 萬象迴薄化無方. 涵天蕩蕩望滄滄, 乘桴輕漾著日傍. 當其何所至窮桑, 心知和樂悅未央. 俗謂遊樂之處為桑中也. 『詩』中「衛風」云:期我乎桑中. 蓋類此也. 白帝子答歌:四維八埏眇難極, 驅光逐影窮水域. 璇宮夜靜當軒織. 桐峰文梓千尋直, 伐梓作器成琴瑟. 清歌流暢樂難極, 滄湄海浦來棲息. 及皇娥生少昊, 號曰窮桑氏, 亦曰桑丘氏.”
04 사마천 『사기』에 나타난 소호 금천씨의 탄생 계보를 살펴보면, 황제가 누조(嫘祖)를 아내로 맞아 현효(玄囂)를 낳았다고 한다. 그가 황제를 이어 제위에 오르니 바로 소호이다. 그의 성은 기(己)이고 이름은 지(挚)이며 호는 금천씨다. 또는 궁상씨(窮桑氏), 청양씨(靑陽氏)라고 불린다. 소호는 ‘금(金)’ 자로 자신의 정치와 덕을 나타내며 금덕(金德)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여 금천씨라 불리었다.
05 『산해경』, 「대황동경(大荒東經)」, “東海之外大壑, 少昊之國.”
06 『춘추좌전』, 「권지삼십구ㆍ소공」, “秋, 郯子來朝, 公與之宴, 昭子問焉, 曰, 少皞氏鳥名官, 何故也, 郯子曰, 吾祖也, 我知之.; 我高祖少皞, 摯之立也, 鳳鳥適至, 故紀於鳥, 為鳥師而鳥名, 鳳鳥氏歷正也, 玄鳥氏司分者也, 伯趙氏司至者也, 青鳥氏司啟者也, 丹鳥氏司閉者也, 祝鳩氏司徒也, 鴡鳩氏司馬也, 鳲鳩氏司空也, 爽鳩氏司寇也, 鶻鳩氏司事也.”
07 김영권, 『신화로 읽는 중국의 문화』, 임진규 옮김, (서울: 문현, 2010), p.41 참고.
08 중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큰 산으로 멀리 서쪽에 있어 황하강의 발원점으로 믿어지는 성산(聖山)이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 고원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맥 이름 ‘곤륜’과는 상관이 없다.
09 『회남자』, 「시칙훈」, “五位, 東方之極, 自碣石山過朝鮮, 貫大人之國, 東至日出之次, 木之地, 青土樹木之野, 太皞, 句芒之所司者, 萬二千里. 西方之極, 自昆侖絕流沙, 沈羽, 西至三危之國, 石城金室, 飲氣之民, 不死之野, 少皞, 蓐收之所司者, 萬二千里.”
10 『산해경』, 「서차삼경」, “又西二百里, 曰長留之山, 其神白帝少昊居之. 其獸皆文尾, 其鳥皆文首. 是多文玉石. 實惟員神磈氏之宮. 是神也, 主司反景.”
11 김영권, 같은 책, p.54 참고.
12 『삼국사기ㆍ권 28』 「의자왕(義慈王) 史論」, “論曰 新羅古事云, 天降金樻, 故姓金氏, 其言可怪而不可信, 臣修史, 以其傳之舊, 不得刪落其辭, 然而又聞, 新羅人, 自以小昊金天氏之後, 故姓金氏”
13 이문기, 「신라 김씨 왕실의 소호금천씨 출자관념의 표방과 변화」, 『역사교육논집』 24 (1999), 참고.
<대순회보 2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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