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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인물소강절(邵康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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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9.13 조회6,3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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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절(邵康節)

  宇宙에 대한 數理ㆍ哲理 강론   천지 생성ㆍ歷史 전개 숫자로 설명 「앎은 康節의 지식이 있다.」 「皇極經世書ㆍ觀物內外篇ㆍ康節觀梅」등의 力著남겨

   

  강상년 <정무>

          

  지혜와 생각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이고 시인인 소강절(邵康節, 1011-1077)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이름은 옹(雍),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 시호는 강절(康節)이다. 관료로서 사색에 힘썼던 주렴계에 비하여 그는 시정(市井, 인가가 모인 곳, 시가, 거리)의 은둔 철학자였다. 북해의 이지재(李之才)가 공성(共城)을 다스릴 때 소강절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찾아가 『그대는 물리성명지학(物理性命之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강절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는 이 선생을 모시고 하도(河圖), 낙서(洛書), 복회(伏會)의 8괘(八卦) 64괘(六十四卦) 도상(圖像)을 전수 받았다. 지재가 전하는 것은 개괄적인 것이었으나, 소옹은 핵심을 찾고 숨긴 뜻을 찾아내어, 그것의 신기하고 묘한 것을 깨달았고, 철저하고 함축성이 있으며, 광활한 것을 스스로 터득하였다.

  소강절은 처음 낙양에 왔을 때, 쑥대나 싸리로 담장을 두고 몸소 나무하고 불을 때서 부모를 공양하였다. 평소에 비록 매우 가난하게 살아도 흔쾌히 즐거움으로 받아들여 그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이 따라 갈 수 없었다. 54세 때에 부친상을 당해서는 몸이 상할 정도로 슬퍼하여 예(禮)를 다했으므로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여공저(呂公著)등이 낙양에 살 때 소옹을 공경하여 항상 함께 지냈으며, 그를 위해 정원과 집을 사 주었다. 그는 해마다 농사지음에 겨우 먹고 입을 정도였다. 그 거처를 「안락와」라고 이름하고 스스로 그의 호를 안락 선생이라고 하였다. 또 향을 피워 놓고 편안히 앉아서 오후 3∼4시 사이에 술을 서너 동이씩 마셨는데, 조금이라도 취하면 곧 그쳐서 항상 취하게 까지는 마시지 않았고, 흥이 오르면 문득 시를 짓고 스스로 노래했다. 봄ㆍ가을이 되면 성중을 유람하였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항상 나가지 않았고, 출타할 때면 한 사람이 말을 몰아 마음먹은 데는 어디든지 갔다고 한다.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는 그의 마차 소리만 들리면 다투어 맞이했고, 어린 아이들이나 하인들이 모두 『우리 집 선생님이 오셨다.』고 말하여 그의 성명을 부르지 않았다. 호사가들은 따로 소옹이 거처하는 집처럼 만들어 놓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그것을 「행와」라고 불렀다.

  사마광이 그를 형으로 섬겼는데 두 사람의 덕성은 향리에서 더욱 흠모 받아 부자 형제들이 서로 조심하도록 하여 『나쁜 짓을 하지 마라. 사마선생이나 소선생님이 알까 무섭다.』라고 하였다. 또 소송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관부로 가지 않고 꼭 소옹에게 갔다. 그의 덕과 기품이 순정하여 바라보면 그의 어질고 현명함을 알겠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과 자리를 두지 않고 여럿이 있을 때도 항상 웃으며 편안하게 하여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그의 착한 점을 즐겨 말하고, 나쁜 점은 숨겼다. 학문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있으면 답해 주고, 억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어리거나 아이들이거나 한번을 대해도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들은 그 덕을 기쁘게 여기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덕화에 감복되었다. 낙양에 인재들이 특히 많았으나 충후(忠厚)한 명성이 천하에 떨쳤다.

그의 인품은 고명(高明)하고 영민 하고 비범하여 천고에 뛰어났으나, 평범하고 심후하여 모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맑으면서도 격하지 않고, 조화로우면서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오래 사귈수록 더욱 그를 존경하고 믿었다. 하남(河南)의 정호(程顥)는 처음 부친을 모시고 소옹을 찾아 종일 예의에 대해 논의하고 물러 나와 『요부(소강절)는 안으로는 성인이요 밖으로는 임금의 학문이다.(堯夫 內聖外王之學也)』라고 감탄했다.

  또한 소옹은 지혜와 생각이 뛰어나 어떤 일을 만날지 미리 알았다. 정이는 『그의 마음은 허허롭고 밝아 스스로 그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학자들은 소옹의 뛰어난 앎 때문에 그의 행위를 높이기에 힘썼고 심지어는 소옹에게는 세상을 희롱하는 뜻이 있다고도 말했으며, 또 그가 앞일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소옹은 모든 사물의 소리와 기를 감촉 하여 곧 그 움직임을 보고 그 변화를 안다고도 말했다.「전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세 기운이 밝혔으니 앎은 강절의 지식이 있고 …』 (교법 2장 42절)

  소옹이 병들자 사마광, 장재, 정호, 정이 등이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물었고 그가 죽으러 하자 정원에게 그의 상사(喪事)를 함께 의논했는데, 소옹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 백을 불러 『여러 사람들이 나를 성 가까이에 장사지내려 하나, 마땅히 선영에 장사하라.』고 말했다. 그의 나이 67세 때(1077년) 세상을 떠나자, 정호가 비명을 썼는데, 소옹의 도는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그 이른바는 편안한 가운데 이루었다.

  그의 저서로는 「황극경세(皇極經世)」, 「관물내외편(觀物內外篇)」,「어초문대(漁樵問對)」,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매화역수법(梅花易數法)」 흔히 「강절관매법(康節觀梅法)」이라고 하는 등이 있다. 그는 30여 년 간 낙양에서 은둔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술수(術數)에서는 사마광의 잠허(潛虛)와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었고, 낙양의 여러 선비는 소강절로부터 그 자연과 인간에 대해 심오한 수리(數理)와 철리(哲理)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남송(南宋)의 주자(朱子), 주염계, 정명도(程命道), 정이천과 함께 강절을 도학(道學)의 중심인물로 간주하였으며, 또한 그는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켜 특이한 수리 철학을 만들었다. 소강절은 천지가 생성된 역사의 전개를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여, 「일원(一元)」 이라는 역사의 생성과정을 고찰하였다. 그는 매일 원은 모두 구체적 세계의 한차례의 생멸(生滅)이고, 시간은 무한한 것이며, 따라서 일원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며, 세계도 부단히 출현하고 소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순환론적 안목은 한 대(漢代)의 오덕삼통설(五德三統說)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일원(一元)은 12回 360運 (12×30), 4320世 (360×12)이며 1世는 30년이므로, 일원은 129,600이 되고 역사는 129,600년을 1주기로 하여 생성, 회전한다. 이것은 실제의 년월일시(年月日時)의 확대였다. 그는 또한 천지인은 모두 물(物)이라고 말하였지만, 그러나 이는 모든 구체적인 사물을 신비적인 최고범주(도,道 혹은 태극, 太極)에 융합해 버리는 수단으로 파악하였다. 도(道) 혹은 太極의 본질은 「정(靜)」, 「무(無)」이며, 또한 신(神)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였다. 일체의 물질적인 것은 모든 신(神)에서 나와서 또 다시 신(神)으로 돌아간다는 말 이였다. 이러한 신(神)은 상제(上帝)란 의미로서 신(神)이며, 또한 인간의 정신이란 의미로서의 신(神)이다. 예컨대 그는 「사람의 신(神)은 곧 천지의 신(神)이다.」 「도(道)와 일(一)은 신(神)의 강명(强名)이다. 그리고 일심(一心)으로써 만심을 본다고 하면서도 내 마음으로써 외물을 보고 물(物)로써 물(物)을 보는 것이라 하여 무심(無心)으로 있는 그대로를 볼 것을 강조하였다. 천지의 감응에 제삼자로써 함께 참여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제거한 허명(虛明)한 경지가 필요하며 우리는 자기를 없앰으로써 천지 감응의 생명에 뚫고 들어갈 수 있음을 밝혔다. 또한 천지를 단순히 대상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일기(日氣)의 생성이나 일기생성, 천지감응의 생명은 내 마음을 버리고 물(物)로써 물(物)을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는 「자여음(自餘吟) 격양집」에서 『신생천지후 심재천지전 천지자아생 자여하족신 (身生天地後 心在天地前 天地自我生 自餘何足信)』(몸은 천지의 뒤에 생기고 마음은 천지에 앞서 있다. 천지는 나로부터 생기고 스스로 저절로 남으니 무엇을 족히 말하리요.) 라고 읊고 있다. 이 시는 인간생성과 의식에 관한 것이며 우리의 마음이 천지에 앞서 있음을 깨달을 때 천지가 나로부터 생겨난다는 시 구절이다. 천지의 조화와 음양의 소장(消長)을 보아 무심의 경지를 깨달았다는 점 즉, 주체의 자유가 존재를 매개로 하고 있다.

《대순회보》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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