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 속 인물요(堯)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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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19 조회6,381회 댓글0건본문
황 제헌원(皇帝軒轅)의 증손자인 제곡고신(帝嚳高辛)이 진봉씨(陳鋒氏)의 딸을 아내로 맞아 방훈(放勳)을 낳았다. 그가 고신씨를 이어 제위(帝位)에 오르니 바로 요임금이다. 방훈은 이름이고 성은 이기(伊祁)이며 호는 도당(陶唐)이다. 흔히들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라고 부른다. 진(晉)나라의 학자였던 황보밀(皇甫謐, 215~282)은 요임금이 118세에 붕어하였고 98년간 제위에 있었다고 한다.01
요임금은 인자함이 하늘과 같았고 앎이 신(神)과 같았으며, 가까이서 보면 해와 같았고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과 같이 우뚝해 보였다. 또한, 부유했으나 교만하지 않았고 고귀했으나 나태하지 않았다. 크나큰 덕을 잘 밝혀 구족(九族)02을 친화케 하고, 구족이 화목하니 모든 백성이 올바르게 다스려졌다. 백성의 마음을 밝혀 온 나라를 두루 화합하게 하니, 백성이 변하여 이에 화합하였다.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명하여 하늘을 삼가 받들어 ‘해와 달과 별들[星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헤아려 책력으로 기록하여 공경스럽게 사람들에게 농사철을 알려주게 하였다.’(歷象日月星辰 敬授人時)03 희중(羲仲: 희씨의 둘째 아들)에게 양곡(暘谷)04이라 불리는 욱이(郁夷)05에 거(居)하게 하여 떠오르는 해를 공손히 맞이하고 봄 농사를 때맞추어 하도록 명하였다. 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조성(鳥星)06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 정확한 춘분(春分)을 정하게 했는데,07 이때는 백성이 들에 나가 농사를 지었고 새와 짐승들은 교미하여 새끼를 낳았다. 희숙(羲叔: 희씨의 셋째 아들)에게는 남교(南交)에 살며 여름 농사를 때맞추어 가르치도록 명하였다. 낮이 가장 긴 날 화성(火星)08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 정확한 하지(夏至)를 정하게 했는데, 백성이 계속하여 농사에 바빴고 새와 짐승들은 털갈이를 하였다. 화중(和仲: 화씨의 둘째 아들)에게는 매곡(昧谷)09이라 불리는 서토(西土)에 살며 지는 해를 공경하여 배웅하고 가을 농사 일정을 잘 살피도록 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날 허성(虛星)10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 정확한 추분(秋分)을 정하게 했는데, 이때 백성이 편안해 하고 기뻐하였으며 새와 짐승들은 깃털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화숙(和叔: 화씨의 셋째 아들)에게는 유도(幽都)라고 불리는 북방에 살며 곡식을 저장하는 일을 살피게 했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 모성(昴星)11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 정확히 동지(冬至)를 정하게 했는데, 이때 백성은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고 새와 짐승들은 따뜻한 솜털이 났다. 또한, 요임금은 1년을 366일로 정하고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넣어 사계절의 오차를 바로잡았으며, 여러 관직을 갖추고 그 업무를 명백히 밝히니 모든 공적이 향상되었다.
요임금은 만년(晩年)에 이르러 제위를 물려주고자 대신(大臣)들에게 적임자를 물었다. 이에 방제(放齊)가 요의 맏아들인 단주(丹朱)가 사리에 밝고 총명하다고 천거하였다. 요임금은 단주가 말에 진실성이 없고 논쟁을 좋아한다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환도(驩兜)는 공공(共工)12이 민심을 널리 얻었고 많은 공을 세웠으니 적합할 것이라 추천하였다. 요임금은 그가 말은 잘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고 겉으로는 공손하나 거만함이 지나치다 하여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
다시 요임금이 넘실거리는 홍수는 그 기세가 하늘에 닿을 듯하여 산을 무너뜨리고 구릉 위로 넘쳐흘러 백성의 근심이 태산과 같으니, 누가 능히 이 홍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를 물었다. 대신들이 일제히 곤(鯤: 우임금의 아버지)을 천거하였다. 이에 요임금은 곤이 명을 어겼고 동족의 친목을 해쳤으니 불가하다 하였다. 사악(四岳)13이 비록 그렇지만 그가 능력이 뛰어나니 시험 삼아 써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청하였다. 요임금이 수락하여 치수(治水)의 일을 맡겼으나 곤이 9년 동안 공을 들여도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요임금은 자신의 재위(在位) 70년간 사악이 명을 잘 받들었으니, 사악에게 제위를 맡기겠노라고 하였다. 사악은 자신들이 덕이 부족하여 제위를 욕되게 할 것이라고 사양하였다. 이에 요임금은 덕이 밝되 신분이 천한 사람도 가리지 말고 천거하라 재차 말하였다. 그들은 모두 우순(虞舜)을 천거하며 “그는 장님의 아들로 아비는 완고하며 탐욕스럽고 어미는 어리석고 거짓이 많으며 아우는 오만하지만, 효로써 능히 화목하게 하였고 지극한 정성으로 그들이 간악함에 이르지 않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요임금은 그를 시험해 보겠노라 하며 아황과 여영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어 그녀들을 대하는 그의 덕행을 관찰하였다. 이후에도 요임금은 순에게 백규(百揆: 모든 벼슬아치를 관장하는 자리)의 직책을 맡기기도 하고, 사문(四門)에서 제후를 영접하게 하는 등 여러 일을 맡겨본 후 제위를 넘겨주었다.14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불초하여 천하를 물려받기에는 부족함을 알았다. 이에 순에게 권력을 넘겨주면 천하가 이익을 얻고 단주는 손해를 보지만, 단주에게 주면 천하가 손해를 보고 단주가 이익을 본다고 여겼다. 요임금은 “결코 천하에 손해를 끼치게 하고 한 사람에게만 이익을 보게 할 수는 없노라.”라고 말하며 마침내 천하를 순에게 물려주었다. 요임금은 제위에 오른 지 70년 만에 순을 얻어 그에게 정치를 대행하게 하고 스스로 은거한 지 28년 만에 붕어하였다. 백성들의 슬퍼함이 마치 부모를 잃은 듯하여 3년 동안 사방에서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요임금을 추모하였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상서(尙書)』의 「우서(虞書)」15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한편, 송나라 말에서 원나라 초에 걸쳐 활약했던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역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 「오제(五帝)」 편에는 요임금의 덕치(德治)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천하가 잘 다스려 지는가와 백성들이 자신이 계속 제위에 있기를 원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미복(微服) 차림으로 길거리에 잠행을 나섰다. … (이때) 어떤 노인이 음식을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리더니 땅을 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며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서 먹노라.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16
여기에서 노인이 부른 노래를 ‘땅을 치며 불렀다’ 하여 ‘격양가(擊壤歌)’라고 부른다. 이는 요임금의 덕치를 찬양하는 노래로 후대에 창작된 위작(僞作)이라는 설이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태평성세를 상징하는 의미로 널리 회자하고 있다.
요임금은 순임금과 더불어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 유교적 정치이념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성군(聖君)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것은 유교의 개조(開祖)인 공자뿐만 아니라 맹자 또한 요임금을 이상적 덕치의 전범(典範: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으로 내세움으로써 말미암는다.
공자가 말했다. “위대하도다! 요의 임금다움이시여. 높고 높도다! 하늘만이 위대하거늘, 오직 요임금만이 하늘을 본받으시도다. (그 덕이) 넓고 넓으니, 백성들은 그 이름을 몰라라. 높고 또 드높아라! 그 공을 이루심이여. 빛나도다! 그 찬란한 문화여.”17
맹자가 말했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정치는 내면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하신 것이요, 탕임금과 무왕의 정치는 몸을 닦아 (그 본성을 회복하여) 행하신 것이다.”18
공자는 요임금이 하늘의 뜻을 그대로 치세(治世)에 펼쳐 백성들이 그가 누구인지 이름조차도 모르지만, 그 업적이 찬란하다고 찬탄하였다. 그리고 맹자는 요임금은 하늘에서 품부한 순선(純善)한 본성을 그대로 발현하여 정치를 한 성스러운 분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로써 유교 전통에서는 공·맹 이래로 수많은 유학자가 요순을 전범으로 삼아 사사로움이 없이 지극히 공정한[무사지공(無私至公)] 정치적 치세를 위해 자신의 덕성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인류는 이러한 이상적 정치를 그저 이상으로만 남겨두었을 뿐, 한 번도 역사적 현실로 맛보지 못했다.
상제님께서는 장차 요순의 도(道)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예시하셨다.19 이 말씀은 상제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에 의해 예정된 후천(後天)의 실상과 결부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설처럼 전해지며 우리에게 이상적 태평성세로 인식된 요순의 시대에 비유하여 지극히 이상적이고 온전한 도가 인류에게 실현될 것이라는 축복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전경』에서는 “후천에는 또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 .”20라는 말로써 묘사하고 있다.
비록 수도 과정의 지난함이야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겠지만, 여기 희망의 메시지를 안고 오늘도 묵묵히 본분을 다하고 있을 우리 도인들에게 무사지공을 실현했던 요임금의 덕성은 시사하는 점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전경』『상서(尙書)』『사기(史記)』『논어(論語)』『맹자(孟子)』『십팔사략(十八史略)』사마천, 『사기(史記) 1-본기(本紀)』, 정범진 외 역, 서울: 까치, 2001.이기석ㆍ백연욱 역, 『신역 서경(新譯 書經)』, 서울: 홍신문화사, 1997.
01 皇甫謐曰, 堯以甲申歲生, 甲辰即帝位, 甲午徵舜, 甲寅舜代行天子事, 辛巳崩, 年百十八, 在位九十八年.(『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細註)
02 고조(高祖), 증조(曾祖), 조(祖), 부(父), 자신, 자(子), 손(孫), 증손(曾孫), 현손(玄孫)까지의 친족(親族)을 이르는 말.
03 『서경』, 「요전(堯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전경』 교운 1장 30절에는 ‘象’ 자가 ‘像’으로 되어있다. ‘상(象)’과 ‘상(像)’은 ‘꼴’이나 ‘모양’의 의미로 쓰일 때는 같은 자로 쓰인다.
04 전설에 태양이 떠오르는 곳.[사마천, 『사기(史記) 1-본기(本紀)』, 정범진 외 역 (서울: 까치, 2001). p.12]
05 지금의 섬서성에 있는 지명(위의 책, 같은 곳)
06 남쪽에 뜨는 남방주작칠수[南方朱雀七宿: 정(丼), 귀(鬼), 유(柳), 성(星), 장(張), 익(翼), 진(軫)] 중의 네 번째 별인 ‘성수(星宿)’를 말한다.(위의 책, p.13)
07 옛날 사람들은 초저녁에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여 절후를 정했다. 『서경』의 「요전」에 의하면 당시에는 중춘(仲春: 춘분), 중하(仲夏: 하지), 중추(仲秋: 추분), 중동(仲冬: 동지)의 네 절후만 있었으나, 후에 점차 많아져서 24절기로 늘어났다.(위의 책, 같은 곳)
08 동쪽에 뜨는 동방청룡칠수[東方靑龍七宿: 각(角), 항(亢), 저(氐), 방(房), 심(心), 미(尾), 기(箕)] 중의 심수(心宿), 특히 그것의 주성(主星)인 ‘대화성(大火星)’을 가리키는 말이다.(위의 책, 같은 곳)
09 서쪽의 해가 지는 골짜기. 해가 지면 어둡기 때문에 ‘매곡’이라 불렀다. 일설에는 감숙성(甘肅省)에 있었다고 한다.(위의 책, 같은 곳)
10 북쪽에 뜨는 북방현무칠수[北方玄武七宿: 두(斗), 우(牛), 여(如), 허(虛), 위(危), 실(室), 벽(壁)] 중의 허수(虛宿).
11 서쪽에 뜨는 서방백호칠수[西方白虎七宿: 규(奎), 루(婁), 위(胃), 모(昴), 필(畢), 자(觜), 삼(參)] 중의 모수(昴宿). ‘昴’의 한자음은 ‘묘’이나 주문에서는 ‘모’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모’라고 표기하였다.
12 백공[百工: 여러 장인(匠人)]을 관장하던 인물.
13 사방의 제후들을 나누어 관장하던 수령들.
14 여러 일을 맡긴 사실에 대한 내용은 ‘《대순회보》, 170호, pp.44-45’를 참고하기 바람.
15 「우서(虞書)」는 요순의 치적을 기록한 것이라 한다. 우(虞)는 유우(有虞)씨라는 순의 씨족 이름에서 유래했다. 내용은 요순의 치적을 위주로 하여 그 당시 큰 공을 세웠던 신하들의 말이나 업적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요전(堯典)ㆍ순전(舜典)ㆍ대우모(大禹謨)ㆍ고요모(皐陶謨)ㆍ익직(益稷)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기록들은 춘추시대 사가(史家)들의 추기(追記: 본문에 추가하여 적어 넣음)라고 한다. 대우모는 보다 후세의 위작(僞作)이라고 한다.[이기석ㆍ백연욱 역, 『신역 서경(新譯 書經)』 (서울: 홍신문화사, 1997), p.16]
16 治天下五十年, 不知天下治歟, 不治歟. 億兆願戴己歟, 不願戴己歟, … 有老人含哺鼓腹, 擊壤而歌曰,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畊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
17 『논어』, 「태백(泰伯)」: 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 民無能名焉. 巍巍乎, 其有成功也. 煥乎, 其有文章.”
18 『맹자』, 「진심(盡心) 상」: 孟子曰, 堯舜性之也, 湯武身之也.
19 류 찬명이 어느 날 상제를 모시고 있을 때 상제로부터 요ㆍ순(堯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하는도다.(교운 1장 46절)
20 예시 81절.
<대순회보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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