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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불보살권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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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5.03 조회4,4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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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인(權眞人)의 생몰 년도는 알 수 없다.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걸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거의 오백 년이 지나 조선 중엽 때의 사람인 남궁두에게 신선술을 전수했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불 때, 불가사의한 이인(異人)임이 분명하다.

홍만종이 쓴 《해동이적》에 의하면, 1555년(명종 10)에 당시 사마시에 합격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남궁두(南宮斗)에게 신선술을 전수하였는데 남궁두는 수련 중 욕심이 가시지 않아 거의 신태(神胎)를 다 이룩한 단계에서 실패했다고 한다. 신선술을 완성하지 못한 채 하산(下山)하게 된 남궁두는 스승에게 내력을 묻게 되었는데 그 때 권진인은 자신의 신분과 도를 닦게 된 구체적인 상황을 말해 주었다. 《해동이적》에 실려있는 권진인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 남궁두가 「제자가 어리석고 미련하여 스승님의 가르침을 감당하지 못하였으니, 제 운명이 박함이라 무엇을 한탄하겠습니까. 그런데 제자가 스승님을 모신지 칠 년이 되었으나 아직 스승님의 내력을 알지 못하오니 가르쳐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하고 청하였다. 노인이 웃으며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물으면 굳이 대답하지 않겠지만 너는 참을성이 있어서 말할 터이니 들어 보라. 상락대성(上洛大姓)의 자손인 태사(太師) 행(幸)의 증손이다. 송나라 희녕(熙寧) 2년에 태어났는데 열 네 살 때에 문둥병에 걸려서 부모가 죽은 자식이니 할 수 없다 하고 숲 속에 버렸다. 밤이 되자 호랑이가 나를 물어다 굴속에 갖다 놓고 그 옆에서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빨리고 있었는데 나를 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사가 극에 이른 나는 속히 잡아 먹히지 않는 것만 한탄하면서 굴속을 둘러보니 풀 넝쿨이 바위틈에 뻗어 있는데 잎은 넓고 뿌리는 굵더라. 혹시나 하여 씻어서 먹어보니 배가 덜 고프고 먹을 만하여 그 것을 먹으며 몇 달을 지냈더니 온 몸의 창(瘡)도 차차 낫고 혼자 일어나 활동할 수 있게 되어 그것을 많이 캐 먹었다. 이렇게 그 뿌리를 캐 먹다 보니 온 산의 반쯤을 다 파 제쳤고, 날짜는 몇 백일이 지났다. 문둥병이 완전히 낫고 딱지가 떨어지고 새 털이 돋아 났다. 하도 좋아서 또 백일을 더 먹었더니 몸이 가벼워져 저절로 날아서 산마루에 오르게 되었다. 이미 몸이 나았기에 고향에 찾아가 보러 하였으나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에 마침 한 중이 산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쫓아가 중의 가는 길을 막고 몸을 굽혀 인사하고 물으니 「이 산은 태백산이요 땅은 진주부에 속하였소」한다. 「가까운 곳에 절이 있습니까」하니 「서쪽 봉우리 밑에 난야(蘭若)라는 암자가 있는데 길이 몹시 험해서 올라갈 수가 없소」한다. 나는 중의 말을 듣고 즉시 날아올라가 암자를 찾아가니 그 암자는 낮인데도 문이 잠겼고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내 손으로 문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행랑을 지나 중랑으로 들어가니, 한 늙고 병든 중이 베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안석에 기대 누워 있었다. 헐떡거리며 거의 죽게 되었는데 눈을 뜨고 나에게 말하였다. 「어제 밤 꿈에 한 노인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 스승님의 비서(秘書)라는 사람이 이제 곧 올 것이라고 하더니 너의 관상을 보니 참으로 그 사람이구나」하며 겨우 몸을 일으켜 주머니를 열고 한 함 속의 책을 내어주며「이 책을 만 번 읽으면 자연히 그 뜻을 알게 될 터이니 아무쪼록 노력하여 게을리 하지 말라」하였다. 그래서 내가 「누구에게서 전수하셨습니까」하니「신라 의상대사가 중원에 들어갔을 때 정양진인(正陽眞人:여동빈의 스승)을 만나서 이 책을 전수 받은 것인데 그가 입적할 때 나에게 부탁하기를, 이 백년 후에 마땅히 전할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하였는데 네가 과연 그 예언을 맞힌 사람이구나. 아무쪼록 힘써 공부하라. 나는 이 책을 전할 사람에게 전하였으니 세상을 떠난다.」하고 편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즉시 다비례(茶毘禮)를 하였는데 검푸른 사리가 백 개나 나왔다. 그래서 이 사리를 탑 속에 안장하였다. 그리고 책함을 열어 책을 내어보니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과 금벽용호경(金碧龍虎經), 참동계(參同契), 황정내외경(黃庭內外經), 최공입약경(崔公入藥經), 태식심인(胎息心印), 동고정관(洞古定觀), 대통청정(大通淸淨)등 여러 경이 나왔다. 그래서 그 암자에서 혼자 수련을 쌓았는데 마귀가 만방에서 에워싸도 들은 척도 본 척도 않으니 마귀는 저절로 없어지더라. 모두 십일 년의 수련 끝에 신태법(神胎法)을 이루어 하늘에 올라가 상제님의 명을 받고 이산에 머물러 동국삼도제신(東國三道諸神)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제 이곳에 머무른 지가 벌써 오백 년이 지났으니 기한이 차면 나도 하늘에 올라갈 것이다. 나는 신선술을 전하기 위하여 수십 사람을 겪어 보았다. 그 중에서 혹 기운이 과민한 사람, 혹은 너무 둔한 사람, 그리고 욕심이 많고 하여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만일 성도(成道)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나는 마땅히 나의 할 일을 그에게 맡기고 옥경(玉京)으로 올라갔을 텐데 긴긴 세월을 두고도 한 사람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나의 진세인연(塵世因緣)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였다.』

남궁두는 수련 도중 권진인의 신태(神胎)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권진인이 배 덮개를 벗자 수백 줄기의 금빛이 밖으로 튀어나와 감히 눈으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권진인은 신태법(神胎法)을 이루는데 실패한 남궁두에게 『너는 인연이 없어서 이곳에 머무를 수 없으니 산을 내려가거라. 황정(黃精)을 먹고 북두성을 경배하여 살생과 간음, 도적 질을 하지 않으면 이내 지상선(地上仙)이 될 것이며 천상의 신선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닦는 요결은 오직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 으뜸이니 모든 사람의 한 순간의 선악도 신명이 전후좌우에서 지켜보고 있다. 옥황상제께서는 어디서나 강림하여 뵈니 비록 굴속에서 홀로 조그만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바로 북두궁에 알려져 보응이 나타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창창한 하늘 위에 천지의 주재자(主宰者)가 계심을 모르고 두려워 할 줄 모른다. 너는 비록 참을성이 있으나 욕심의 생각이 없어지지 않았다. 만일이라도 혹시 삼가지 않는다면 다른 길로 빠져 영겁의 고초를 겪을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였다.

이수광의 「지붕유설」에 『남궁두는 함열 사람으로 을묘에 진사가 되었다. 소시에 어떤 일로 망명하여 다니다가 이인(異人)을 만나 비결을 배워 산수간을 노닐었는데 90이 되도록 안색이 늙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지상선(地上仙)이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이인(異人)이 바로 권진인 임이 틀림없다.

 

<대순회보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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