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읽기『귀곡자(鬼谷子)』타인의 마음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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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정근 작성일2018.12.19 조회4,951회 댓글0건본문
글 신정근
아이는 부모나 주위 사람이 무조건 자기편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하려는 것을 말리거나 뭐라고 하면 말의 내용보다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더 서러워한다. 아이는 설혹 부모나 친구일지라도 자신과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는 일을 겪으면서 타자를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래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자 했다. 사랑하는 이는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내보이는 연인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답답해한다. 장군은 마주한 적의 전략과 정보를 안다면 전쟁을 쉽게 치를 것이라 생각한다. 협상가는 경쟁자의 구상을 엿보고 상대의 의중을 꿰뚫을 수 있다면 자신이 100% 성공하리라 확신한다. 선거에서 후보자는 다수의 마음을 얻어야 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도 비언어적 누설 행위처럼 말하지 않지만, 행위에 드러나는 사람의 속마음을 연구한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일상, 사회, 산업, 학문 모두에서 주목받는 주제이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모르는 데에서 오는 답답함, 불안, 초조, 안타까움 등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귀곡자’ 하면 사람들은 으스스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귀곡 산장’을 떠올리기 쉽다. ‘귀곡’은 흔히 귀신이 살거나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으스스한 납량물의 흔한 주제로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자백가의 일원으로서 귀곡자鬼谷子는 앞에서 말했듯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쳐서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하는 설득술의 대가이다.
● 한비 ‘세난說難’을 넘어서
오늘날 정치인이 유권자들 앞에서 자신의 정견을 밝힐 때 우리는 ‘유세한다’고 한다. 유세는 춘추전국시대에 처음으로 나타난 정치 현상이다. 당시 사상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써줄 군주를 찾아가서 자신의 식견을 펼쳤다. 이 중 사상가와 군주가 의기투합해서 한 나라가 강국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찾아온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내치기도 했다.
맹자는 유세 현상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농가와 법가 그리고 종횡가와 같은 유세객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자신도 유세에 열의를 쏟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이러한 역설을 지적받고서 자신은 유세를 싫어하지만, 시대적 소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다고 변명하기도 했다.01 그는 공손연公孫衍과 장의張儀 등 종횡가를 비판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가 생각하기에 종횡가는 군주를 위해 동맹을 추진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당시 ‘양신良臣’이라 말하지만 ‘민적民賊’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군주를 도리로 이끌지도 않고 사랑의 길에 뜻을 두지 않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폭군으로 알려진 걸을 도와주는 것일 뿐이다.02 우리는 그의 말을 통해서 맹자가 호변好辯이라는 점을 여실히 알 수 있다.
하지만 편견을 내려놓고 공정하게 생각한다면 유세술은 제자백가가 공통으로 탐구하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제자백가 중에서 아마도 한비가 유세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난언難言」과 「세난說難」 두 편에 걸쳐서 유세의 어려움을 참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한비가 바로 옆에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이다. 한비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유세의 어려움은 다음이 아니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어려움이 아니고 나의 뛰어난 변론으로 나의 뜻을 분명하게 하는 어려움이 아니고 내가 거리낌 없이 자유자재로 생각을 펼치는 어려움이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유세 대상의 속마음을 알아내서 나의 주장을 거기에 합치시키는 데에 있다. 유세의 대상이 명예와 절개를 높이 치는데 커다란 이익으로 유세한다면 그는 절개를 낮춘다고 보아 비천하게 대우하고 반드시 멀리하게 된다. 유세의 대상이 커다란 이익을 바라는데 명예와 절개로 유세하면 생각이 없고 실정에 어둡다고 보아 반드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세의 대상이 속으로 커다란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 명예와 절개를 알리려고 하는데 명예와 절개로 유세한다면 겉으로 받아들이는 척하면 실제로 꺼리게 된다. 커다란 이익으로 유세한다면 속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면서 겉으로 베 버리는 척한다.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03
한비는 유세의 성공과 실패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황에서 유세객이 군주의 의중에 일치하여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한비는 유세가 가진 실패의 가능성과 그 결과를 ‘역린逆鱗’과 ‘여도지죄餘桃之罪’로 설명하고 있다. 역린은 상상의 동물인 용의 턱밑에 직경 한 자 정도로 거꾸로 박힌 비늘을 잘못 건드리는 것을 말한다. 여도지죄는 위나라 영공과 총신 미자하彌子瑕 사이에 일어난 고사를 말한다. 둘의 사이가 한참 좋을 때 미자하가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반쯤 먹다가 나머지를 영공에게 주었다. 그때 영공은 미자하가 자신을 사랑하니까 맛있는 것을 다 먹지 않고 준다고 생각했다. 둘의 사이가 멀어지자 영공은 먹다 남은 것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세난」) 또 오자서伍子胥는 오나라가 중원을 넘볼 정도로 국력을 키웠지만 결국 오왕 부차夫差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난언」) 이처럼 유세의 어려움을 알았던 한비 자신도 진나라의 옥중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귀곡자』는 한비가 고민했던 세난說難, 즉 유세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즉 『귀곡자』는 제자백가들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근원적인 문제, 즉 완전한 설득술을 찾기 위해서 나올 수밖에 없던 지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 심리전과 언어놀이
‘귀곡’은 예나 지금이나 그 정체가 미스터리한 인물로 남아있다. 제자백가는 보통 이름, 자字, 호號가 있다. 예컨대 공자는 이름이 공구孔丘이고 자가 중니仲尼이다. 귀곡은 지명에서 유래된 호이지 그의 이름과 출신 등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훗날의 해명에 따르면 ‘귀곡’은 부풍扶風군 지양池陽현(오늘날 산시陝西성 징양涇陽현)과 영천潁川군 양성陽城현(허난河南성 치淇현) 두 곳에 있는 지명인데, 종횡가의 활동 지역을 보면 후자에 해당된다.04 오늘날 치현에 소재한 윈멍산雲夢山 자락에는 곳곳에 귀곡자와 관련되는 각종 유물이 남아있어서 그의 자취를 기리고 있으며 ‘중국 제일의 고대 군사 학교’(中華第一古軍校)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학계나 관광업계에서 ‘귀곡’의 존재를 당연시하고 숭앙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과연 귀곡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선진시대의 문헌에 ‘귀곡’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한 제국 이후의 문헌에 귀곡이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다. 『사기』 「소진열전」에 소진이 “동쪽으로 가서 제나라에서 귀곡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에게 익혔다.”라고 하고 「장의열전」에 장의가 “처음에 소진과 함께 귀곡선생을 모시고 설득술을 배웠다.”라고 한다.05 그 뒤 『법언』, 『설원』 「선세善說」, 『논형』 「답녕答」 등에서도 소진, 장의와 귀곡의 사제 관계를 증언하고 있다.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자료에 따르면 귀곡자가 성이 왕王이고 이름이 후?(또는 점?)라고도 한다.06
귀곡의 실재와 관련해서 유리한 정보도 있지만 불리한 정보도 있다. 유향의 『별록別錄』과 반고의 『한서』 「예문지藝文志」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 고전의 실재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들은 한 제국에 전해진 도서를 정리하면서 작성한 최초의 서지 목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으로서 ‘귀곡자’는 이들의 문헌에 전혀 보이지 않다가 『수서』 「경적지經籍志」에 처음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면 시대의 난제를 해결하는 설득술의 이론화를 위해 ‘귀곡’의 인물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론적인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원이 지명을 딴 귀곡으로 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한비의 「세난」에서 말했듯이 설득술에서 살아남은 기술의 소유는 용의 비늘을 건드리는 위험스럽기 그지없는 행위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론을 내놓고 신원은 감추는 ‘귀곡’으로 정리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귀곡자가 설득술을 펼칠 때 어떤 위험천만한 상황을 그리고 있는지 알아보자. “자신이 함께 어울리면서도 하는 말이 데면데면하면 사이가 멀어진다. 자신이 따로 겉돌면서도 하는 말이 자극적이면 위험스러워진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것을 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상대가 전혀 모르는 것을 그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상대가 솔깃하면 그것을 배워서(캐서) 따라간다. 상대가 거북해하면 그것을 피하고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몰래 길을 찾고 공공연하게 동조한다. 이 때문에 누군가를 없애려면 풀어놓는다. 풀어놓으면 틈을 노릴 수 있다.”07 귀곡자는 유세를 유세객과 상대의 심리전을 전제로 한 언어놀이로 파악하고 있다. 군주와 유세객은 의기투합할 때 절대적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는 고객과 상인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절대적 경쟁 관계에 있다. 유세가 실패했을 때 유세객은 군주와 만남에서 다양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으므로 군주는 치명적 손실이 될 수 있다. 상황이 좀 다르지만 『삼국지』에서 조조와 유비가 한중韓中을 두고 겨룰 때 양수의 계륵鷄肋 고사를 생각해보자. 연이은 전투에서 조조가 유비에게 몰렸을 때 하후돈이 조조에게 군호를 묻자 조조가 무심결에 ‘계륵’이라고 말했다. 양수楊修는 이 군호를 전해 듣고 조조가 철군을 염두에 둔다고 해서 철수 준비를 하다가 사령관의 마음을 엿본 죄로 조조에게 처형을 당하게 된다.08 조조로서는 양수가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게 단순히 꺼림칙한 것을 넘어서 그가 어떠한 일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려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귀곡자의 설득술도 한비의 죽음이나 양수의 처형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유세객은 군주와 의기투합하면 자신의 지혜에다 날개를 날아 온갖 지략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지략 때문에 불행한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 유세객 또는 전문가(신하)는 유세의 위험을 피하는 설득술 또는 독심술을 가지려고 하겠지만, 군주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그런 기술을 가르치는 스승이 있다면 군주는 그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그가 있다면 천기가 언제나 누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벌인다면 시작하기 전에 질 수밖에 없다.
● 반대의 의지를 녹이는 설득의 마법
유세와 토론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둘 다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토론은 참여자의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진리의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유세는 철저하게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복종한다. 아울러 유세는 현실적으로 미묘한 정보와 치명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죽음을 건 검투장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귀곡자는 상대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기술로 췌정?情을 제시한다. 췌정은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속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이 반드시 아주 기뻐할 때 접근해서 그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사람이 욕망을 느낄 때 자신의 실정을 숨길 수 없다. 반드시 아주 두려워할 때 접근해서 그 증오를 극대화시킨다. 사람이 증오를 품을 때 자신의 실정을 숨길 수 없다. 감정과 욕망을 통해 반드시 사람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야 한다.”09 귀곡자는 인간적 약점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환희로 들뜬 사람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그에 맞는 자극을 하면 대상은 감정에 도취되어 경계심을 풀고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나아가 귀곡자는 감정과 욕망의 자극에 움직이지 않는 경우를 상정한다. “감정을 자극했지만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잠시 유세 대상을 내버려둔 채 이야기하지 않고 그와 가까운 사람을 탐문해서 그가 안정된 원인을 알아낸다. 감정이 안에서 바뀌면 그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늘 반드시 드러나는 지점(대상)을 통해 감추어진 것을 알아내야 한다.”10 여기까지 이르면 우리는 첩보영화를 보는 듯하다. 귀곡자는 사람이 마음을 털어놓든지 감추든지 어떠한 상황에서 그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 유세객이 동의를 받으려면 반드시 상대의 속마음에 들어맞아야 하는데, 귀곡자는 이를 불은 마른 나무에 먼저 옮겨 타고 물은 축축한 곳으로 흘러가는 자연 현상과 연결시키면서 “사물은 동류끼리 어울린다”거나 “사물은 동류끼리 서로 호응한다”는 일반론을 끌어내고 있다.11
춘추전국시대는 정세가 늘 변하지만 유세객과 군주의 신뢰와 나라와 나라의 동맹이 지속 가능하기를 희망했다. 어떻게 하면 불안한 신뢰나 동맹을 안전한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 귀곡자는 저희抵?와 비겸飛鉗을 제시하고 있다. 저희는 작은 틈을 막다는 뜻으로 관계에 위기와 모순이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비겸은 상대를 띄워 줘서 같은 편으로 묶어둔다는 뜻으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견제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귀곡자는 유세객과 유세객의 의뢰인에게 자기 보존의 탁월한 기술을 전수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귀곡자는 존재의 이기성을 전제하고 있다. 사람이 이타성을 드러낼 수 있겠지만, 그것도 결국 이기성의 실현을 위한 방법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귀곡자는 춘추시대와 더불어 등장한 소인小人의 철학을 마무리하는 종결자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는 왜 맹자가 귀곡자에게 배웠던 종횡가를 극도로 증오했을까 생각해보자.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믿는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 아동 성폭행범 등 잔인한 범죄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사형제를 철폐해서 안 된다고 말하고, 잔혹한 범죄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보호받기를 포기한 사람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귀곡자가 지키고자 했던 자기 보존의 기술이 처벌받아야 할 악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맹자의 종횡가 비판도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게 된다.
마지막으로 『귀곡자』와 『전국책』의 관계를 알아보자. 둘은 춘추전국시대에 벌어진 약육강식의 상황에서 자기 보존의 기술을 탐구했던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 중 『귀곡자』가 기술의 이론적 측면에 초점이 있다면 『전국책』은 그 기술의 현실적 적용과 실천에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둘을 같이 읽으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전국책』은 『귀곡자』의 주장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는지를 알게 해주고, 『귀곡자』는 『전국책』의 실례가 어떤 이론적 바탕 위에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대순회보> 138호
필자소개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의 교수로 있다. 한국철학회 등 여러 학회의 편집과 연구 분야의 위원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제자백가의 다양한 철학흐름』, 『동중서 중화주의 개막』, 『동양철학의 유혹』, 『사람다움의 발견』,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한비자』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백호통의』, 『유학, 우리 삶의 철학』, 『세상을 삼킨 천자문』 『공자신화』, 『춘추』 『동아시아 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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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등문공」하 9 公都子曰: “外人皆稱夫子好辯, 敢問, 何也?” 孟子曰: “予豈好辯哉? 予不得已也.”
02 「고자」하 9 “‘我能爲君, 約與國, 戰必克.’ 今之所謂良臣, 古之所謂民賊也. 君不鄕道, 不志於仁, 而求爲之强戰, 是輔桀也.”
03 「세난」 “非吾知之有以說之之難也, 又非吾辯之能明吾意之難也, 又非吾敢橫失而能盡之難也. 凡說之難: 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所說出於爲名高者也, 而說之以厚利, 則見下節而遇卑賤, 必棄遠矣. 所說出於厚利者也, 而說之以名高, 則見無心而遠事情, 必不收矣. 所說陰爲厚利而顯爲名高者也, 而說之以名高, 則陽收其身而實疏之. 說之以厚利, 則陰用其言顯棄其身矣. 此不可不察也.”
04 이 내용은 『사기』 「소진열전」에 인용된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나온다.
05 「소진열전」 “東, 事師於齊, 而習之於鬼谷先生.” 「장의열전」“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
06 이와 관련해서 김영식 옮김, 『귀곡자』, 지만지, 2009, 7~18쪽 참조.
07 『귀곡자』 「모편謀篇」 “其身內, 其言外者疏. 其身外, 其言深者危. 無以人之近所不欲, 而强之於人. 無以人之所不知, 而敎之於人. 人之有好也, 學而順之. 人之有惡也, 避而諱之. 故陰道而陽取之也. 故去之者縱之, 縱之者乘之.”
08 『후한서』 「양 수전」
09 「췌편?篇」 “必以其甚喜之時, 往而極其欲也, 其有欲也, 不能隱其情. 必以其甚懼之時, 往而極其惡也, 其有惡也, 不能隱其情. 情欲必知其變.”
10 「췌편?篇」 “感動而不知其變者, 乃且錯其人勿與語, 而更問所親, 知其所安. 夫情變於內者, 形見於外. 故常必以其見者, 而知其隱者. 此所謂測深?情.”
11 「마편摩篇」 “說者聽, 必合於情. 故曰情合者聽, 故物歸類, 抱薪趨火, 燥者先燃. 平地注水, 濕者先濡. 此物類相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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