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읽기『중용』의 기우뚱한 균형과 혁명 논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신정근 작성일2018.12.18 조회4,601회 댓글0건본문
글 신정근
장정일이 자신의 책 읽기를 다룬 책의 머리말에서 그는 자신도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그것이 나중에 무지의 소산으로 허위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라며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01
우리는 분명히 모난 사람보다 둥근 사람을, 까다로운 사람보다 원만한 사람을 선호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또 달리 생각해보면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튀어야 사는 세상이다. 옷차림이며 장신구며 외모며 사람들은 뭔가 자신을 다르게 보이려고 한다. 이를 두고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면 외모와 생업에서는 개성을 드러내지만 사고방식에서는 중용을 선호한다는 식으로 절충론을 펼칠 수도 있다.
장정일이 말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 ‘중용’과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의 내용이 서로 일치하는 것일까? 중용은 바람직한 가치일까 아니면 주인 의식을 갖진 못한 노예의 도덕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기보다는 좀 차분하게 따져보고서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을 듯하다.
⋅ 극단의 시대
현대 사회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인륜, 인종, 인권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사상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근대사회의 진입 과정이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이념 대결과 남북 분단의 상황으로 인해 한때 극우적 경향이 강했다. 민주화가 진행된 이래로 극우에서 극좌의 이념 스펙트럼에 다양한 주의 주장이 혼재되어있다.
예컨대 동성애의 경우 과거 커밍아웃이 곧 사회적 사망 선고에 가까웠다. 아직도 동성애가 성적 취향으로서 자유롭고 편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드라마의 주제가 되기도 하는 한편 반인륜 현상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중용』은 전근대의 저작인 만큼 사상의 자유보다는 통제를 받았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았던 탓에 사상적으로 전통과 규범의 권위가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다. 그 틈새를 뚫고서 실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난세를 헤쳐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 중용도 사람과 지역마다 달리 받아들여졌다. 예컨대 한쪽은 너그럽고 부드러움으로 뒤처지는 사람을 가르치고 무도한 자에게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것을 중용이라 보았다. 다른 한쪽은 나날이 바뀌는 숙영지에서 병기와 갑옷을 깔고 잠을 자며 싸우다 죽더라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을 중용이라 생각했다.
『중용』의 이러한 혼란상을 색은행괴(索隱行怪)라는 말로 정리했다. 번역하자면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주장을 찾아내고 납득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길을 버젓이 실행하여 그것으로 후세에 칭찬받고 기리는 대상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나 범죄 영화를 보면 범인은 자신의 범죄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고서 단지 유명해지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쉽사리 볼 수 있다. 엽기적인 범죄, 기괴한 몸차림을 하면서도 자신이 알려지기만 하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품 판매와 선전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전략까지 있으니 두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중용』의 시대에도 사회적 합의를 거두기 어려운 극단들이 통제의 시대에 얼굴도 내밀지 못했겠지만 정치적 혼란을 틈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극단의 시대는 사람이 어디까지 가고 무엇까지 생각해낼 수 있는지, 스스로 실험하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중용의 기구한 팔자
오늘날 『중용』은 『논어』 · 『맹자』 · 『대학』과 함께 사서(四書)로 불리며 유학의 핵심 가치를 담은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중용』이 공인된 이후의 신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니 그런 것이지 공인 이전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논어』와 『맹자』는 일찍부터 독립된 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중용』은 『대학』과 마찬가지로 전국시대의 저작으로 알려진 『예기(禮記)』라는 책의 한 부분이었다. 학파로서 유가는 불교와 도가에 비해 늘 형이상적 관심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에 콤플렉스를 가진 학자들은 일찍부터 이 혐의를 벗겨줄 만한 자료를 찾다가 『예기』의 두 편에 주목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용』의 첫 장은 “하늘이 명령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리라고 하고 도리에 체득하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철학자들의 형이상적 탐구를 만족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주목들이 점차 공인을 얻으면서 송나라의 주희에 이르러 모태를 벗어나 독립된 책으로 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변신을 통해서 『중용』은 『대학』과 함께 어머니 『예기』만큼이나 중요한 문헌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자식이 부모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셈이다.
이렇게 떡하니 부모 옆자리에 설만큼 든든한 자식이라면 뭔가도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책을 누가 지었을까? 역사적으로 사마천의 『사기』에서 “자사가 중용을 지었다”고 주장한 이래로 그것은 공자의 손자 자사의 저작으로 알려져 왔다. 문제는 오늘날처럼 서적의 필수 정보가 도서관이나 DB에 체계적으로 관리되지도 구축되지도 않았던 탓에 자사 저작설은 딱히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따르기는 하지만 반신반의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시대 후기 지성사를 대표하는 정약용은 『서경』 등에서 중(中)의 용례와 주창자를 분석해서 저자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가능성을 모색했다. 최근에 김용옥은 『중용』 관련 서적을 잇달아 출간하면서 자사 저작설의 신빙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02 그는 자사의 저작설이 단순히 공자, 자사, 맹자로 이어지는 도통의 고리를 잇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논어』의 공자와 『중용』의 자사 사이에 학문적 계승 관계가 보인다는 논증을 설득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두 사람의 주장으로 인해 『중용』 저자 문제가 단순히 추정과 고집의 사안이 아니라 한층 학문적 논의의 가능성을 가진 탐구 주제로 되었다고 할 수 있다.03
지은이도 분명하지 않고 부모와 맞장 뜨는 자식이 동아시아 전근대와 근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다니 역설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중용은 기우뚱한 균형이다
‘중용’에 관심을 가지고 『중용』을 들추면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량이 짧지만 그 속에 ‘중용’이 뚜렷하게 정의되지도 않고 중화(中和), 귀신(鬼神), 효(孝), 변화, 성(誠) 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단 중용은 사람의 행위와 관련이 되므로 이론적인 계기와 실천적인 계기를 아울러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문맥과 후대의 주석을 고려하면, 중과 용은 각각 물리적이고 산술적인 의미가 아니라 객관적인 맥락에서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과 공정, 일상생활에서 바람직한 행위를 되풀이해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습성을 길들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람들은 흔히 중용 또는 중과 용을 2와 8 사이의 산술적 평균인 5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균형 지점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균형을 어떤 변화가 불가능한 신성한 가치와 절대적 중심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무엇이 중용 또는 중과 용이 정해지면 그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대안의 검토가 무의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용에 대한 이러한 오해를 피하려면 우리는 손에 막대기를 쥐고서 그 끝에 동그란 판을 올려놓은 장면을 생각해보자. 바람, 습도, 밀도 등 상황 변수가 없는 절대 진공 상태라면 막대기로 중심을 잡고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원판이 절대 중심에 놓여서 꼼짝하지 않으리라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공간은 자연적 사회적 변수에 의해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므로 원판은 계속해서 기우뚱거리며 자칫하면 땅바닥으로 굴려 떨어지려고 한다.
우리가 원판을 놓치지 않으려면 막대기로 중심을 자꾸 바꾸어가면서 움직이면 그때마다 원판은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우뚱거리면서 중심을 유지하며 떨어지지 않는다. 중용 또는 중과 용은 절대지에 의해 절대 기준을 찾아서 그것을 모든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을 가지면서 상황의 특수성을 끊임없이 고려하면서 현실 정합적인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용은 기우뚱한 균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중용의 형식
우리가 중용을 기우뚱한 균형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생활에서 중용대로 살려면 어떤 지침이나 원칙을 필요로 한다. 동아시아의 중용은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과 차이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이 양극단의 중간대로 살아가는 습성을 기르는 것으로 본다. 예컨대 위험한 상황에서 무조건 피하고 보는 비겁과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무모와 달리 용기가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중용은 꼭 양극단의 중간일 필요는 없다. 이를 형식으로 표현하면 세 가지로 규정할 수가 있다. 첫째, A하면서도 B하기. 사람이 너그러운 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너그럽게 굴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즉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바로 잡아서 균형을 맞추려면 너그러움과 반대되는 엄격하게 굴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한편으로 너그러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엄격하게 군다면 기우뚱한 균형이 지켜질 것이다.
둘째, A하지도 않고 B하지도 않기. 현실 정치에 참여하느냐 마느냐, 라는 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정권보다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면서 참여 논리를 펼칠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은 국가와 민족보다는 정권의 부도덕성을 내세우면서 불참의 정당성을 옹호할 수가 있다. 하지만 참여와 불참 두 가지 경우의 수밖에 없는 것 같아도 꼭 그렇지는 않다. 혁명도 있을 수 있고 망명도 있을 수 있고 불참하지만 개혁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용의 창조성이 강조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A하면서도 B하지 않기.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공짜에 너무 길들이게 되면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약해지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며 꼼짝하지 않을 수 있다. 균형을 맞추려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더라도 힘의 낭비가 되지 않게끔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중용과 혁명의 논리
이제 다시 제일 앞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장정일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중용이 주류적인 가치에 맞서지 않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순응하는 것을 나타낸다든지 중용이 하기로 한 것을 이의를 달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중용은 내가 따져보아야 하고 찾아내야 할 길이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결정된 길이다. 내가 나의 길을 열어가지 못하고 있는 길을 나의 것으로 그냥 받아들이므로 당연히 무지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칼날 이야기는 『중용』에서 말하는 중용이 아니라 일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중용’을 『중용』에서 실례로 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 그렇다고 치자. 중용이 무지의 모험에 기대서 묵묵히 따라간다면 양비론의 천사만이 아니라 양시론의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중용의 길을 찾기에 분투를 한다면 중용은 양비론과 양시론 너머의 새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피곤으로 모든 게 귀찮은 채 귀가를 했다. 누가 청소를 해야 할까? 서로 피곤을 내세우며 다음에 청소하자고 할 수 있고 바득바득 상대가 청소를 해야 한다고 우길 수도 있다. 또 간혹 덜 떨어진 왕자병과 공주병 환자는 상대에게 섬김의 태도를 요구할 수도 있다. 여기서 다른 길을 생각하기조차 싫다. 여기에 굴복하는 것이 결코 중용이 아니다. 또 중용은 아무런 생각하지 말라고 은근하게 유혹하는 대중 기만의 빅브라더도 결코 아니다. 중용은 귀찮음과 피곤함의 몸을 일으켜서 그 상황에 맞는 답을 찾게 만든다. 중용은 무뇌아나 개념 없는 상태의 무지가 아니라 귀찮음에 굴복하지 않고 사유의 발동하는 분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중용은 혁명의 논리마저 수용할 수 있다. 예컨대 근대 이후에 어떤 정부가 언론을 압살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할 경우 삶의 공동체는 독재로 너무나 기울어져 있다. 이 상황에서 중용이 기우뚱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면 혁명의 논리를 펼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혁명의 논리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또 그 상황에 맞는 답을 찾는 것이 중용의 길이다.
귀찮음을 이유로 움직이지 않고 무기력을 이유로 가만히 앉아있고 탄압을 이유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대중 기만이자 허위의식일 뿐이다. 중용의 이름으로 안주와 순응을 말한다면 그것은 중용이 아닌 것이다. 중용은 삶에 자유의 날개를 다는 분투의 여정인 것이다.
“뭘 먹을까요? 그냥 대충 먹어.” 이 말은 몸져누운 사람에게 중용일 수 있지만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게으름이지 중용은 아니다. “아냐, 뭐라도 먹어야지.” 이 말은 몸져누운 사람을 밥하게 일으킨다면 중용이지 않지만 게으른 사람에게 중용일 수가 있다. 중용의 타락이 비판의 대상이 될지언정 중용의 창조는 고통스런 자유의 날개 짓이다. “중용을 따르는 군자의 삶은 자율적으로 중을 현실에 적용하려고 한다. 중용에 어긋나는 사람의 삶은 이해관계에 빠져서 어려워하거나 거리끼는 것이 없다.”04
<대순회보> 127호
필자소개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의 교수로 있다. 한국철학회 등 여러 학회의 편집과 연구 분야의 위원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제자백가의 다양한 철학흐름』 『동중서 중화주의 개막』 『동양철학의 유혹』 『사람다움의 발견』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한비자』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백호통의』 『유학, 우리 삶의 철학』 『세상을 삼킨 천자문』 『공자신화』 『춘추』 『동아시아 미학』 등이 있다.
--------------------------------------------------------------
01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02 김용옥, 『도올선생 중용강의 상』(통나무, 1995) 『중용한글역주』(통나무, 2011) 『중용 인간의 맛』(통나무, 2011).
03 『중용』의 저자 문제는 신정근,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사계절, 2010); 신정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용에 따른 삶인가[김용옥, 『중용한글역주』 서평]」, 『창작과 비평』 통권 154호, 2011년 겨울호, 462~466쪽 참조.
04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反中庸, 小人而無忌憚也.(2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