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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한마디배수지진(背水之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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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30 조회4,8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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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지진(背水之陣)은 ‘강을 등지고 펼친 진’이라는 뜻으로, 결사(決死)의 각오로써 적군에 대진하는 일인데, 성패를 좌우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에 비유하여 쓰인다.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한 고조 유방(劉邦)이 제위(帝位)에 오르기 2년 전(기원전 204)의 일이다. 회음(淮陰)출신의 명장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에 따라 위(魏)나라를 쳐부순 다음 조(趙)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20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인 정형(井)의 협도(狹道) 출구 쪽에 성채(城砦)를 구축하고 방어선을 폈다.

 

이에 앞서 군략가인 이좌거(李左車)가 재상 진여(陳餘)에게 “한나라 군사가 협도를 통과할 때 정면으로 돌파하고 샛길을 봉쇄하면 한신의 원정부대는 후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건의했으나 진여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첩자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한신은 서둘러 협도를 통과하다가 정형 출구 30리쯤 앞둔 곳에서 행군을 멈추고 물을 등지고 진지를 잡았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한신은 2,000여 기병을 조나라의 성채 바로 뒷산에 매복시키기로 하고 매복 임무를 맡은 장수에게 이렇게 명했다.

 

“본대(本隊)는 내일 싸움에서 거짓 패주(敗走)할 것이다. 그때 제군들은 적이 비운 성채를 점령한 뒤 한나라 깃발을 세우도록 하라.” 그리고 한신은 1만여 군사를 협도 출구 쪽으로 보내어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背水之陣]’ 한 다음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채를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한나라 군사가 북을 울리며 진격하자 조나라 군사는 성채를 나와 응전했다. 2~3차 접전 끝에 한나라 군사는 퇴각하여 강가에 진을 친 부대에 합류했고, 승세(勝勢)를 탄 조나라 군사는 맹렬히 추격해 왔다. 한편 이러한 틈에 매복하고 있던 2,000여 한나라 기병대는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웠다. 강을 등지고 진을 친 한나라 군사는 물러나지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필사적으로 대항하여 싸웠다. 이에 견디지 못한 조 나라 군사가 성채로 돌아와 보니, 한나라 깃발이 나부끼고 있지 않는가. 당연히 전쟁은 한신의 대승리로 끝났다.

 

전승 축하연 때 부하 장수들이 “병법에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며 싸우라 했는데, 장군님은 물을 등지고도 어떻게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한신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 방법도 병법에 있다. 단지 너희들이 주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병법은 ‘사지에 빠진 연후에야 살고, 궁지에 놓인 연후에야 남는다.(陷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또한 나 한신(韓信)은 평소에 장졸들을 어루만져 따르게 할 기회가 없었다. 이것은 이른바 ‘사람들을 몰아붙여 싸우게 한 것’인데, 그 형세가 사지에 놓지 않고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사지에 빠지고 망하는 지경에 놓이면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하여 분투노력하게 되므로 그 과정에 생존(生存)의 이치를 터득하게 된다. 이 배수진의 교훈은 우리 도인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성(誠)·경(敬)·신(信)을 더욱 지극히 하여 성지우성(誠之又誠)한다면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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