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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한마디과전이하(瓜田李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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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30 조회4,4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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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전이하는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과 그 후궁 우희(虞姬)에 얽힌 고사로,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후궁 우희가 자기에게 가해진 모함을 벗기 위해 비유적으로 썼다는 이 표현은 『열녀전(烈女傳)』 「절의편(節義篇)」에 이렇게 실려 있다.

 

제나라 위왕은 즉위한지 9년이 넘도록 나랏일을 돌보지 않고 정사를 간신 주파호(周破胡)에게 맡겼다. 그러다보니 세상은 안팎으로 어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우희가, “파호는 남을 헐뜯으며 아첨을 잘하는 신하입니다. 그보다는 북곽(北郭) 선생이 어떠하겠습니까? 현명하며 도(道)를 갖추고 있으니 그를 등용하여 신하로 삼으심이 어떻겠습니까?”라고 간언하였다. 이 말에 파호는 “그녀가 어린 시절 민간에 있을 때 북곽 선생과 정을 통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왕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왕은 우희를 감금시켰고, 관리를 시켜 사실을 엄중하게 심문하게 하였다. 그래도 늘 자신의 가까이에서 총애하던 후궁인지라, 왕 자신이 직접 심문을 하였다.

 

“저 우희는 지금껏 왕의 가까이에서 한마음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모함하는 간신에게 걸려 백 길이나 되는 구렁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옥석은 진흙에 굴러도 더러워지지 않고, 유하혜(柳下惠)는 추위에 떠는 여자에게 자기 옷으로 덮어 주어 체온을 나누더라도 음행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평소 행동이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옛말에 ‘오이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 것이며(瓜田不納履), 오얏나무 밭을 지날 때는 관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러한 말을 어겼으므로 이것이 첫 번째 죄이고, 신하들이 저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제 부덕(不德)함이 두 번째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파호를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왕께서 직접 정사를 행하시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라고 우희가 대답하였다. 이 말에 크게 깨닫게 된 위왕은 감금되어 있는 우희를 풀어주고, 파호를 사형에 처했다.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아예 삼가라는 뜻의 이 평범한 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작은 지혜가 아닐까 싶다. 이런 지혜를 생활에 잘 적용해 어긋남 없이 사는 사람은 세상의 불필요한 오해와 부당한 비난을 받지 않는다. 이는 특별한 꾀를 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치우침 없이 공평하고 사사로움 없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장의 본뜻이 남에게 오해를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지만, 반대로 남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의미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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