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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한마디비복오하아몽 非復吳下阿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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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30 조회4,2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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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오나라의 여몽이 아니다 

 

삼국시대 때 양자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오나라(吳, 222~280)는 위(魏), 촉(蜀)과 대치하며 국력을 유지했다. 이 오나라에는 무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여몽(呂蒙)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여몽은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하여 글을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싸움만 잘했을 뿐 병법에 관해서는 무지하였다. 그가 이렇게 학문적인 소양이 없는 것에 대해 일부 벼슬아치들은 은근히 그를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오나라의 왕인 손권(孫權)은 이런 그를 안타깝게 여겨 어느 날 여몽에게 말했다.

 

“자네는 용장(勇將)이기는 하지만, 지장(智將)이라고는 할 수 없네.”

 

이에 여몽이 발끈하며 말했다.

 

“용장과 지장 중에서 어느 쪽이 낫습니까?”

 

“어느 한쪽이 낫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네. 용맹하면서도 지모가 있어야 비로소 명장이라고 할 수 있네. 무인이라면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 하네.”

 

“어떻게 하면 명장이 될 수 있습니까?”

 

“학문을 연마하여 눈이 뜨여야 하네.”

 

왕의 대답에 여몽은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저는 항상 진중에서 생활하느라 학문을 연마할 겨를이 없습니다.”

 

여몽의 변명에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정말 그런가? 나도 나라의 군주로서 자네 이상으로 바쁘지만 정무를 보다 틈틈이 경서와 사서, 병법서를 읽고 있다네.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린 걸세.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는 법이야.”

 

손권의 충고에 감동한 여몽은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진중에 있을 때도 촌음을 아껴가며 책을 읽고, 학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낮추어 배움을 청했다.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이전의 여몽이 아니었다. 학문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기에 이처럼 겸허해진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어느 날, 주유(周瑜: 오나라의 명장)를 대신해서 도독이 된 노숙(魯肅)이 지방 시찰을 하던 길에 여몽의 병영을 지나가게 되었다. 진중을 찾아 여몽과 얘기를 나누던 노숙은 깜짝 놀랐다. 그저 용맹하기만 하던 예전의 여몽과는 달리 말에서 깊은 식견과 논리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숙이 말하였다.

 

“다시 봐야겠는걸. 그저 싸움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자네의 달라진 모습에 감탄했네. 예전의 여몽이 아니구먼.”

 

‘비복오하아몽(非復吳下阿蒙)’은 『삼국지(三國志)』 「오지여몽전(吳志呂蒙傳)」에 나오는 말로, 학문이 진보하여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새로워지고 인간적으로도 성장했음을 비유할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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