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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한마디당랑포선(螳螂捕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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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4.01 조회5,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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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시대 오(吳)나라 왕 수몽(壽夢)은 국력이 강성해지자 형(荊)나라를 치기 위해 온 나라에 전쟁 준비를 시켰다. 하지만 문무 대신들은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오나라의 출병이 자국에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출병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왕이 크게 화를 내며 “누구든지 내 출병을 막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겠다.”라고 엄명을 내리자 대신들 중에 감히 나서서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당시 궁(宮) 안에는 오왕의 젊은 태자 우(友)가 있었다. 그도 간언을 하고 싶었지만 감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부왕(父王)의 출병을 저지할 방안을 고심하던 태자는 마침내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아침마다 활과 화살을 들고 궁전의 후원을 두루 돌아다녔다. 이른 아침인지라 짙은 안개와 이슬로 그의 옷이 흠뻑 젖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오왕의 주의를 끌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오왕은 옷이 흠뻑 젖은 채 활을 들고 서성거리는 태자를 발견하고는 그의 행동이 이상하여 물었다. 

  “너는 무슨 까닭으로 이른 아침부터 옷을 다 적시면서 여기에 있느냐?”

  태자가 대답하기를, “정원의 나무 위에 매미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매미는 높은 가지에 붙어서 노래를 부르고 이슬을 먹으며 편안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사마귀 한 마리가 두 팔을 뻗어 매미를 잡으려고 했는데, 매미는 그런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는 몸을 웅크려 매미를 잡는 데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뒤에 참새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참새 또한 목을 길게 늘여 사마귀를 쪼아 먹으려는 순간 아래에 저의 화살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셋(매미, 사마귀, 새)은 모두 자기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뒤에 닥쳐올 화(禍)를 생각지 못하니 참으로 한심한 것들입니다.” 

  오왕이 그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옳도다!” 하고는 드디어 군사를 흩어버렸다.

 

 

  이고사는 전한(前漢) 때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 「정간(正諫)」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한시외전(韓詩外傳)』과 『장자(莊子)』 「산목(山木)」편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고전에 등장하는 사마귀가 자기 뒤에 참새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매미를 노렸다는 데서 ‘당랑포선(螳螂捕蟬)’이란 말이 유래하였습니다. 여기서 당랑(螳螂)은 ‘사마귀’이고, 포(捕)는 ‘사로잡다’, 선(蟬)은 ‘매미’를 뜻합니다. 즉 사마귀가 눈앞의 매미를 잡는 데 온 정신이 팔려 뒤에서 참새가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당랑포선 황작재후(黃雀在後: 참새는 사마귀 뒤에 있다)’라고도 하며, ‘당랑규선(螳螂窺蟬)’이나 ‘당랑박선(螳螂搏蟬)’ 등으로도 씁니다. 이 이야기는 눈앞의 작은 이익만을 탐한 나머지 자신에게 닥쳐올 재난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할 때 흔히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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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이야기에서 오나라 왕은 자국(自國)의 국력을 과신한 나머지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형나라를 정벌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오나라의 배후에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적국(敵國)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오왕은 자신이 얻을 이익에만 마음이 쏠려 그러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신들이 간언하여 오왕의 출병을 막고 싶었지만 그의 서슬 퍼런 경고가 두려워 감히 나서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나라의 국운을 염려한 태자가 오랜 고심 끝에 지혜로운 계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오왕의 출병을 반대하는 대신 매미와 사마귀, 참새, 그리고 사냥꾼의 먹이사슬 관계에 빗대어 당시 오나라가 처한 상황을 일깨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태자는 부왕(父王)에게 후환을 생각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사로잡히는 것이 얼마나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일깨워 국난(國難)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당랑포선’은 사람들이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함부로 날뛰는 어리석음을 가리킬 때 옛 사람들이 흔히 쓰던 말입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는 소탐대실(小貪大失)도 이와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도전님께서 당랑포선의 고사를 언급하시며, “자기 처지를 모르는 사마귀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유한 것이다. 자기는 살피지 아니하고 탐욕에 급급하면 위태로움이 경각에 닥쳐온다는 것을 말함이니, 이를 깨달아 지성으로 발심대원(發心大願)하여 만복의 근원인 진실의 자아를 완성하도록 교화 육성하는 데 정성을 쏟아 나가야 할 것이다.”01라고 훈시(訓示)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가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요건이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無自欺)’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 자신을 반성하며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서 고쳐나가야 합니다. 수도인이 자신의 본성인 양심(良心)을 저버린 채 사심(私心)에 사로잡혀 일신(一身)의 안일과 영달만을 추구한다면 거짓되고 허황된 자아를 만들게 됩니다. 이는 사마귀가 눈앞의 먹잇감에 사로잡혀 큰 화(禍)를 초래하게 된 것처럼 자신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교법 3장 24절) 하셨고, 훈회의 첫 번째가 “마음을 속이지 말라.”인 것도 무자기가 도인의 옥조(玉條)이기 때문입니다. 

  도전님께서는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02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수도인이 물욕에 의해 발동하는 욕심에 사로잡혀 진실을 왜곡하거나 거짓을 추구한다면 말과 행동에 진실성이 없어 수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만물이 결실을 맺는 우주의 가을을 맞아 거짓된 자는 길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도인은 도주님께서 「각도문(覺道文)」에서 강조하신 것처럼 문장의 색채나 겉치레, 명성과 같은 헛된 욕망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03 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義理)를 세우고, 나의 지극한 보배인 심령(心靈)을 구하여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 수 있는 진실한 도인이 됨으로써 수도의 목적인 도통(道通)에 이를 수 있도록 자신을 혁신해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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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전님 훈시(1986년 5월 20일)

02 『대순지침』, p.38.

03 교운 2장 33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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