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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06.13 조회4,2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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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말에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고 했듯이 우리는 다양한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산다. 어쩌면 자신이 헤쳐 갈 불확실한 미래는 당연한 고민거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크고 작은 걱정이 지나칠 때마다 그것이 현재의 삶을 너무 힘겹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특히 오늘날의 과도한 성과주의와 물질주의는 지나친 경쟁을 부추겨 삶 자체가 초조하고 불안한 근심 덩어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살았던 맹자(孟子, 기원전 372~기원전 289)는 이러한 근심과 걱정을 삶의 중요한 철학적 문제로 주목하였다. 그는 유가(儒家)를 창시한 공자(孔子, 기원전 551~기원전 479)의 가르침을 더욱 발전시켜 선진(先秦) 유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맹자는 공자가 그랬듯이 고대에 이상세계를 실현하였다고 하는 요순우탕(堯舜禹湯)을 성군(聖君)으로 추앙하고, 그 태평성대를 대표하는 요순의 시대를 간절히 희구했다. 그들에게 있어 궁극적인 인간상은 요순과 같은 성인(聖人)이다. 하지만 현실사회에서 실현이 가능한 이상적인 사람으로 군자(君子)를 지향한다. 맹자는 군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걱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자유종신지우 무일조지환야(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01

 

 

  즉 군자는 종신토록 하는 근심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걱정은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이 말만으로는 군자의 걱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맹자는 군자의 걱정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순임금을 예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설명한다. 그는 “순(舜)처럼 할 뿐이다. 군자는 근심하는 것이 없으니, 인(仁)이 아니면 하지 않고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설령 하루아침이면 해결될 일에 대한 걱정이 있더라도 군자는 걱정하지 않는다.”02라고 하였다. 군자의 삶은 순임금과 같이 내면의 도덕적 품성[인·예]을 완성하고 실천하는데 평생의 걱정을 둬야 한다는 뜻이다. 맹자의 결론은 군자는 종신토록 자신의 인격 완성과 도덕 실천을 걱정할 뿐이지 하루아침에 왔다가 사라지는 개인적인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에서 개인적인 걱정이 없을 수 있을까? 그 걱정은 자신의 안위와 출세 등 사익을 항상 먼저 염두에 두는 의식(意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유가에서는 군자와 대비되는 소인(小人)의 태도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맹자가 주장하는 종신의 걱정은 하루아침에 불과한 개인적인 걱정과 달리 도덕의 완성과 실천이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자신이 공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는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맹자에게 있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태도와 의식이 어떠한 이익[공익 또는 사익]을 중심으로 작동되는가에 따라 군자와 소인은 구별되는 것이다. 이러한 군자의 근심을 현대신유가(現代新儒家)의 한 명인 대만의 서복관(徐復觀, 1903~1982)은 ‘우환의식(憂患意識)’이라고 하였다.

  맹자는 혼란한 전국시대에서 힘과 권모술수를 통한 패도(覇道)의 정치보다 통치자가 인정(仁政)을 베푸는 왕도(王道)의 정치를 설파하였다. 그러므로 맹자는 공자의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 스스로는 이상적인 도덕 인격을 완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편안한 세상을 만든다)’에 근거하여 성왕(聖王)을 비롯한 위정자(爲政者)는 도덕적 인격 완성과 실천을 자신의 의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내면을 완성하는 수기(修己)와 남을 편안히 하는 안인(安人)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군자]만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맹자는 우(禹: 하나라를 세운 인물)와 직(稷: 주나라의 시조로 여기는 인물)이 세 번이나 자기의 집 앞을 지나갔지만 들어가지 않으니 공자가 그들을 어질게 여겼다고 밝혔다.03 이것은 치수(治水)를 담당했던 우임금과 곡식(穀食)을 관장했던 후직(后稷)이 홍수와 기근으로 일어나는 타인들의 불상사가 모두 자신의 탓이라 여겼기 때문에 개인사를 돌볼 겨를이 없었던 일화를 예로 든 것이다.

  이후 맹자가 술회한 우임금의 일화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지도자인 통치자 또는 위정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인 ‘군자유종신지우(君子有終身之憂)’로 강조되었다. 조선 시대의 지도층인 선비들에게 이 덕목은 학문[수기]과 정치[치인]의 영역에서 우환의식이자 특별한 사명감으로 여겨져 왔다. 그들의 우환의식은 자신이 성현(聖賢)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여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이상적인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이루고자 하는 지도자의 엄격한 자기절제로 표출되었다. 때로는 소인과 군자, 학파(學派)와 당파(黨派)를 구분 짓는 도화선이 되어 정쟁(政爭)에서 상대를 탄압하는 사화(士禍)도 입었지만, 대체로 군자를 꿈꾸며 도덕적 이상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강력한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군자의 종신지우와 상통하는 이야기를 『전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상제님께서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교법 2장 52절)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천하를 위하는 자는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다’라는 직역이 가능하다. 물론 액면대로라면 세상의 일을 크게 이루려는 사람은 당연히 가정을 돌보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읽어진다. 그러나 맹자가 말한 우임금의 일화에 비춰보면 천하의 일을 하는 사람은 가정의 일을 돌볼 겨를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즉 세상의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개인의 이익과 관련된 일을 따로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맹자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인격 수양과 도덕 실천을 걱정하는 ‘종신지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군자가 추구하는 종신지우의 삶은 타인과 사회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맹자가 종신지우를 외친지 2천 년이 훨씬 지났지만, 우리가 사회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첨단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그 주장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그렇다면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되고자 수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종신지우는 무엇일까? 개인마다 입장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본질적 내용은 아마도 ‘남을 잘 되게 하라’는 훈회(訓誨)가 아닐까 생각된다.

 

 

 

 

01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

02 『맹자』, 「이루하」, “如舜而已矣. 若夫君子所患則亡矣, 非仁無爲也, 非禮無行也. 如有一朝之患, 則君子不患矣.”

03 『맹자』, 「이루하」, “禹稷當平世, 三過其門而不入, 孔子賢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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