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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읽기『이아(爾雅)』, 언어 권력과 동일성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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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정근 작성일2018.12.19 조회3,7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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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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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을 한때 ‘자전거 왕국’으로 불렀다. 2000년 들어 자동차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도 자전거가 거리를 누볐었다. 요즘은 교통 체증을 늘 걱정해야 하고 또 체증의 악화를 막기 위해서 도시마다 차량 보유 대수를 제한시키고 있다. 이제 자전거왕국은 옛날이고 자동차왕국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중국의 도시를 방문해서 서점을 찾으면 늘 각양각색의 사전(辭典 또는 詞典)과 자전(字典)으로 깜짝 놀라게 된다. 어휘사전은 기본이고 이를 다시 동의어, 반의어, 유의어, 신조어 등으로 세분화시키는 사전이 있다. 사전은 말의 전당이라는 뜻이다. 어떤 낱말이 사전에 등재된다면 그것은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다. 신조어 사전을 제외하면 사전의 낱말은 사전 이용자보다 훨씬 선배 격이다. 

  사전하면 한 제국 허신의 『설문해자』, 양웅의 『방언』, 유희의 『석명(釋名)』 등을 떠올린다. 실제로 중국 사전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모습을 드러낸 ‘이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아』의 체제와 방식이 훗날 계승되지 않아서 그 의의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의 속내를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언어와 세계 사이의 그림 관계를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철학 또는 인문학에서 언어의 비중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아』에서는 언어를 탐구하지는 않지만 무수한 언어를 수록하고 있는 만큼 그것은 일독할 만한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이아』를 언어의 전당을 지배하는 권력이라는 측면과 동의어를 나열하는 동일성의 재연을 살펴보도록 하자.  
  


⋅개념 정의의 권력은 누가 갖는가? 권력과 광장


  요즘 새해가 되면 은행과 기업에서 사은품으로 달력을 나누어준다. 고대 사회라면 개인의 달력 배포는 중범죄에 해당된다. 달력은 1년의 시간을 하루 단위로 분절하는 테이블이다. 여기서 1년의 시작과 끝 그리고 시간의 분절은 최고 통치자가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성한 의례이다. 달력의 반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 통치자의 고유한 권리였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의 분할은 과학의 영역에 속하므로 달력 배포가 범죄가 되지 않는다.01 
  고대사회에서 언어의 정의는 시간의 분절만큼이나 최고 통치자의 신성한 권력이었다. 언어의 정의는 공동체에서 사람과 사물 그리고 사건을 무엇으로 또는 어떻게 부를 것인지를 결정하는 명명권(naming right)의 행사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컴퓨터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마다 지역마나 다르게 부른다면 같은 대상을 두고 다르게 말하여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최고 통치자가 명명권을 독점함으로써 이름을 둘러싼 혼란을 없앨 수 있다. 특정한 ‘이름’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왕이 정한 것으로 권위를 가져서 공동체에 통용될 수 있고, 왕은 명명을 통해 권력의 신성성을 뚜렷하게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고대 사회의 사전은 오늘날 상업적 판매나 연구의 편의와 격을 달리하는 특별한 권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또 사전 편찬은 국가적 사업일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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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언어는 개인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쓰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어휘와 의미가 생겨난다. 언어는 특별한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언어 사용자들에 의해서 광장(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고 있다. 명명권의 독점을 다소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사례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아이를 낳은 부모는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기쁨에 겨워서 고민한다. 부모가 자유의사에서 타인에게 이름 짓기를 맡기지 않았는데 누가 이름 짓는 권리를 빼앗으려고 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사춘기는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불리는지 아주 예민한 시기이다. ‘뚱돼지’, ‘바보새끼’처럼 듣기 싫은 별명을 끔찍하게 싫어할 뿐만 아니라 ‘정일’, ‘순자’처럼 부모님이 지은 이름조차 개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최근 기업들이 상호 등록을 통해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관리하고 있는데, 삼성그룹은 영세업체를 제외하고 ‘삼성’ 상호를 사용하지 말 것을 해당 기업에게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02 

  제자백가 중에서 순자는 명명권을 통치자의 언어 권력 문제로 가장 날카롭게 인식한 사람이었다. 사실 『순자』 「정명(正名)」은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언어 권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편이다. 통치자가 명명권을 행사하면 이름이 정해지고 실질이 분명해진다. 다른 인물이 제 주장을 펼쳐서 이름을 어지럽히면 사람들은 의심하게 되고 걸핏하면 소송을 일으키게 된다. 이는 최고로 간악한 존재로서 도량형을 조작하여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03

 『이아』를 풀이했던 당나라 육덕명(陸德明)도 『순자』 「정명」과 같은 관점을 나타냈다. “이아는 진리를 담은 오경의 언어를 풀이하여 차이와 일치를 구분하여 밝히고 있으므로 참으로 여러 학파의 통로이고 여러 사상가의 기준이 된다. 아울러 주위 날짐승과 들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어 두루 살펴서 헷갈리지 않게 한다. ‘이’는 가깝다는 뜻이고 ‘아’는 올바르다, 절대 기준(표준 의미)의 뜻으로 고대와 현대(시간) 그리고 지역과 주변(공간)의 차이를 중심의 절대 기준에 끝없이 가까이 다가가게 해서 통일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04

  이렇게 보면 명명은 주체가 대상을 자신이 정한 방식대로 불러내는 호출 명령이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 따라 거래하도록 하는 놀이 행위의 특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 『이아』의 사전 편찬은 언어 연구에 한정되지 않고 공동체를 도덕적으로 변화시키는 이풍역속(移風易俗)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실례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이행(李荇)은 1504년에 연산군이 폐비 윤씨를 복위하려는 것에 맞선 탓에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1506년에 거제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는 거제도에서 자신이 머무르던 곳의 고개 이름을, 그곳 사람들이 부르는 화자현(火者峴)을 고절령(高節嶺)으로 바꾸었다. 화자는 고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05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동백꽃에 푹 빠져서 시를 지었다. 동백꽃은 가벼워 보이는 복사꽃과 오얏꽃이나 추위를 이기는 소나무와 측백나무와 달리 추위도 이겨내고 어여쁜 꽃을 피워내므로 그냥 겨울 측백나무를 뜻하는 ‘동백(冬栢)’으로 표현하기 아깝다고 생각했다.06

  둘은 다르다. 이행은 왕이 아니라 사대부로서 개명을 통해 이풍역속의 행위를 한 것이고, 이규보는 예술을 통해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 통치자의 명명권을 사대부 또는 학자-관료들도 자유롭게 누렸던 것이다.(우리의 고유 지명은 일제 식민지만이 아니라 조선의 유자들에 의해서도 수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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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속에 핀 동백꽃  

   

⋅편제의 특징과 성서 년대


 『이아』는 모두 7분야의 19편으로 되어 있다. 다소 지루하더라도 전체를 살펴보자. 왜냐하면 현행 『이아』의 편제는 성서 년대를 밝히는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3편은 석고(釋誥) ⋅ 석어(釋語) ⋅ 석훈(釋訓)으로 일반 어휘를 다루고 있다. 4편은 석친(釋親)으로 친족 관계와 호칭을 다루고 있다. 5~7편은 석궁(釋宮) ⋅ 석기(釋器) ⋅ 석악(釋樂)으로 사람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다루고 있다. 8편은 석천(釋天)으로 천문을 다루고 있다. 9~12편은 석지(釋地) ⋅ 석구(釋丘) ⋅ 석산(釋山) ⋅ 석수(釋水)로 자연과 지형을 다루고 있다. 13~14편은 석초(釋草) ⋅ 석목(釋木)으로 식물을 다루고 있다. 15~19편은 석충(釋蟲) ⋅ 석어(釋魚) ⋅ 석조(釋鳥) ⋅ 석수(釋獸) ⋅ 석축(釋蓄)으로 다양한 동물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편제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이아』는 사전인 만큼 1~3편에서 그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겠다는 듯이 특정한 분야로 나뉘지 않는 일반 어휘를 풀이하고 있다. 둘째, 사전의 본연 임무 다음에 바로 4~7편에서 사람의 관계와 기구를 풀이하고 있다. 셋째, 사람 다음에 8~12편에서 하늘과 대지, 즉 천지(天地)를 풀이하고 있다. 넷째, 인(人)과 천(天) ⋅ 지(地)의 삼재를 다룬 뒤에 13~19편에서 천지에 존재하는 식물과 동물을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은 일반 어휘가 제일 먼저 나오고, 또 사람이 천지보다 앞에서 나오는 점이다.  
 『이아』의 이러한 편제는 송나라 성리학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책의 편제와 아주 다르다. 주희가 여조겸과 함께 송나라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성리학(도학)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서 만든 독본인 『근사록』(1175)을 살펴보자. 『근사록』은 모두 622조의 항목이 14권으로 분류되어 있고 각 권의 편명은 후대의 학자들이 붙였다가 제목으로 굳어졌다. 실례를 들어보면 도체(道體) ⋅ 위학(爲學) ⋅ 치지(致知) ⋅ 존양(存養) ⋅ 극기(克己) ⋅ 가도(家道) ⋅ 출처(出處) ⋅ 치체(治體) ⋅ 치법(治法) ⋅ 정사(政事) ⋅ 교학(敎學) ⋅ 경계(警戒) ⋅ 변이단(辨異端) ⋅ 관성현(觀聖賢)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사록』은 세계의 근원을 나타내는 ‘도체’로부터 학문과 수행 그리고 응용과 실천이라는 순서로 편성되어 있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편집자가 분명히 의식하고서 짜놓은 합리적 배열인 것이다. 편집자들은 세계가 다양성을 보이지만 모두 도체의 토대로부터 연역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나타내고 있다. 
  미덥지 못하다면 여정덕(黎靖德)이 편집한 140권의 『주자어류』(1270) 정식 명칭은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의 편제를 살펴보자. 권1~2에서 리기(理氣)(태극천지(太極天地)), 권3에서 귀신, 권4~6에서 성리(性理)를 다루고 나서야 권7~13에서 학(學), 권14~92에서 사서와 오경(악경 포함)을 다루고, 이어서 권93~140에서 유학의 학인과 제자백가의 학인, 역대 인물과 제도 그리고 문장을 다루고 있다. 『근사록』의 도체가 『주자어류』에서 리기 ⋅ 귀신 ⋅ 성리 등으로 명시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 둘 사이에 체제의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즉 세계의 근원으로부터 학문과 사람이 파생되고, 사람과 학문은 근원을 모방해야 한다는 사고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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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형식은 주희와 관련된 집단이 송나라에서 처음 선보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당나라 구양순(歐陽詢)이 고조의 명령을 받아서 편찬한 『예문유취(藝文類聚)』(624)를 살펴보자. 이 책은 100권으로 된 유서(類書), 일종의 백과전서이다. 편제는 천(天) ⋅ 세시(歲時) ⋅ 지(地) ⋅ 주(州) ⋅ 군(郡) ⋅ 산(山) ⋅ 수(水) ⋅ 부명(符命) ⋅ 제왕(帝王) 등 48부部로 나누어져 있고, 먼저 사실을 기록하고 다음에 그것에 관한 시문(詩文)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서도 후대의 『근사록』, 『주자어류』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기원을 가리키는 천지를 제일 앞에 두고 있다. 물론 『근사록』의 처음은 형이상적 추상적 토대에 가깝다면 『예문유취』의 처음은 구체적 형상과 연관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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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이아』와 허신(許愼)(30~124)의 『설문해자』를 비교해보자. 『설문해자』는 한자에 들어 있는 부수를 중심으로 되어 있다. 제일 먼저 일부(一部)로 시작해서 일(一), 원(元), 천(天), 비(丕), 리(吏) 네 자를 풀이하고 다음으로 이부(二部)에서 이(二), 제(帝), 방(旁) 등을 풀이하고 있다. 이어서 순서대로 시부(示部)에서 시(示), 호(祜), 례(禮) 등을 풀이하고, 삼부(三部)에서 삼(三)을 풀이하고, 왕부(王部)에서 왕(王), 윤(閏), 황(皇) 등을 풀이하고 있다. 『설문해자』가 부수와 획수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일(一), 이(二), 삼(三)의 수와 시(示), 왕(王)의 위치는 예사롭지 않다. 『노자』 42장을 떠올린다면 수는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세계의 발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07 시(示)는 귀신처럼 신적 존재를 가리키고 왕(王)은 세계의 중심적 존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설문해자』는 앞서 살펴본 문헌과 비교해서 형식의 제약을 받지만 조자(造字)의 구성과 가치의 근원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토대를 두고 있다. 
 『이아』는 분명히 『예문유취』와 『태평어람』의 백과전서, 『근사록』과 『주자어류』의 사상서와 달리 세계를 근원으로부터 연역하는 사유가 생겨나기 이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아』는 세계의 생성을 원기(元氣)로 풀어내는 한 제국 이전이며 천지(天地)의 우주 발생론과 천지인(天地人)의 삼재를 담고 있는 『중용』 이전의 저작이다. 즉 『이아』는 전국 중기에 오늘의 편제로 구성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08

   


⋅동의어와 동일성의 제국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처음’은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으로 풀이되고 있다. 표제어 ‘처음’은 그 말을 포함하지 않는 다른 낱말에 의해서 뜻이 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특별할 것이 없이 사전이라면 당연히 갖추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설문해자』는 표제자를 소전(小篆)의 서체로 제시하고서 먼저 뜻을 제시하고 자형을 분석한다. 예컨대 원(元)은 “元은 처음이다. 일(一)을 의미소로 하고 올(兀)을 음소로 한다.”09 허신은 원(元)을 일(一)의 의미와 연결시켜서 둘 다 처음의 의미를 공유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아』의 개념 풀이는 오늘날 사전과도 다르고 『설문해자』와도 다르다. 『이아』의 제일 앞에 나오는 경우를 실례로 살펴보자. “초(初) ⋅ 재(哉) ⋅ 수(首) ⋅ 기(基) ⋅ 조(肇) ⋅ 조(祖) ⋅ 원(元) ⋅ 태(胎) ⋅ 숙(⋅) ⋅ 락(落) ⋅ 권여(權輿), 처음의 뜻이다.”10 얼핏 보면 이게 사전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아』의 방식은 낯설기 그지없다. 사전은 낱말과 낱말의 의미 차이를 드러낸다고 생각하는데 『이아』는 동일성의 집합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을 기호로 표시하면 “a, b, c, d, e, f, … n, x也”의 꼴이 된다. a에서 n까지는 피정의항이고 x가 정의항이다. 즉 a에서 n까지 동의어를 기계적으로 쭉 늘어놓고서 마지막에 그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풀이는 사실 초학자에게 낯설 뿐만 아니라 유용하지도 않다. 물론 원문 자체만으로 『이아』의 정의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곽박(郭璞)(276~324)의 『이아주(爾雅注)』, 육덕명(陸德明)(550~630)의 『이아음의(爾雅音義)』(『경전석문(經典釋文)』의 일부), 형병(邢昺)(932~1010)의 『이아소(爾雅疏)』를 보면 오경(五經)에서 a부터 n에 이르는 동의어의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오경을 읽은 사람들은 a에서 n까지 여러 가지 낱말이 모두 처음이라는 의미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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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의 도움을 받든 개인의 학습에 의존하던 초(初)는 옷 만드는 처음이고, 재哉는 재(才)와 같은 글자로 초목이 싹트는 처음이고, 수(首)는 머리로 몸의 처음이고, 기(基)는 담을 쌓는 처음이고, 조(肇)는 처음 열리는 것이고, 조(祖)는 종묘의 처음이고, 원(元)은 선의 처음이고, 태(胎)는 사람의 꼴이 처음으로 갖추어진 것이다.(이충구 외 역주, 101~102) 
 『이아』는 『설문해자』의 공통 자형(부수)이 아니라 공통 의미에 근거해서 동의어의 어군(語群)을 늘어놓고 있다. 동의어가 어군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표현이 풍부하고 대상이 다양하여 세계가 완전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울러 『이아』는 중원 지역의 단일 기원(표준어)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독자성을 동일성의 범주로 수렴해서 재배치하고 있다. a에서 n까지의 열거는 결국 중원의 언어(문명)에는 n까지의 갈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아』의 정의 형식은 다의어의 처리를 힘들게 만든다. 이때 한 낱말은 결국 또 다른 공통 의미에 재배속되면서 동일성 속의 차별성을 드러내게 된다. 예컨대 “앙(⋅) ⋅ 오(吾) ⋅ 이(台) ⋅ 여(予) ⋅ 짐(朕) ⋅ 신(身) ⋅ 보(甫) ⋅ 여(余) ⋅ 언(言), 나의 뜻이다.”11 9가지 낱말이 모두 1인칭 대명사로 쓰인다는 것이다. 이중에 몇몇은 나 이외에 또 주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台) ⋅ 짐(朕) ⋅ 뢰(賚) ⋅ 비(⋅) ⋅ 복(卜) ⋅ 양(陽), 주다의 뜻이다.”12 이처럼 다의어가 복수의 동일성에 소속되면서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이아』는 이후에 확장될 수 있지만 결국 절대적 아(雅)의 폐쇄적 울타리 안에서 동일성의 자장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아』는 모두 19편으로 2091항목에 걸쳐 모두 4300어휘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완성의 범위, 즉 완전수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대순회보> 131호


필자소개
신정근: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의 교수로 있다. 한국철학회 등 여러 학회의 편집과 연구 분야의 위원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제자백가의 다양한 철학흐름』 『동중서 중화주의 개막』 『동양철학의 유혹』 『사람다움의 발견』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한비자』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백호통의』 『유학, 우리 삶의 철학』 『세상을 삼킨 천자문』 『공자신화』 『춘추』 『동아시아 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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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오늘날 북한은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 연호(주체력)을 사용하고 고대에 1년을 10달로 구분하는 등 다양한 역법이 있다.

02 『아시아경제』 2011.01.21자 기사

03 『순자』 「정명」 “王者之制名, 名定而實辨, 道行而志通, 則愼率民而一焉. 故析辭擅作, 名以亂正名, 使民疑惑, 人多辨訟, 則謂之大姦. 其罪猶爲符節度量之罪也. 故其民莫敢託爲寄辭, 以亂正名, 故其民慤, 慤則易使, 易使則功.”

04 「『爾雅』註解傳述人」 “爾雅者, 所以訓釋五經, 辯章同異, 實九流之通路, 百氏之指南, 多識鳥獸草木之名, 博覽而不惑者也. 爾, 近也. 雅, 正也. 言可近而取正也.”(이충구 외 역주, 61) 『이아』는 이충구 ⋅ 임재완 ⋅ 김병헌 ⋅ 성당제 역주, 『이아주소』(전6권), 소명출판, 2004. 

05 『용재집(容齋集)』권6 「해도록(海島錄)」 「소요동기(逍遙洞記)」 “余竄配巨濟島, 幽于高絶嶺之下. 嶺俗, 傳火者峴, 余定今名, 亦號曰高節.”(한국고전종합DB 참조) 이와 관련해서 자세한 내용은 안대회 외,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북스코프, 2011 참조. 

06 「冬栢花」 “桃李雖夭夭, 浮花難可恃. 松栢無嬌顔, 所貴耐寒耳. 此木有好花, 亦能開雪裏. 細思勝於栢, 冬栢名非是.” 번역은 기태완, 『꽃, 들여다보다』(구판 『화정만필』), 푸른지식, 2012, 13~14 참조.

07 『노자』 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설문해자』에서도 일一, 이二, 삼三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일一을 “惟初大極, 道立於一, 造分天地, 化成萬物.”로 풀이하며 그 의미를 은연 중에 『노자』 42장과 연결시키고 있다. 삼三을 “三, 數名. 天地人之道也. 於文一⋅二爲三, 成數也.”로 풀이하며 삼재三才와 연관시키고 있다. 원문은 段玉裁 注, 『說文解字注』, 上海古籍出版社, 1984 참조. 아울러 허신의 원元 강조는 동중서가 『춘추』를 원元으로 풀이하는 해석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신정근, 『동중서: 중화주의의 개막』, 태학사, 2004 참조. 

08 형병邢昺(932~1010)은 『이아소爾雅疏』에서 『이아』의 편제에 근거해서 시대를 고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이아』는 어떤 통일적 규범이 없고 뒤죽박죽되어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或以爲有親必須宮室, 宮室旣備, 事資器用, 今謂不然, 何則⋅ 造物之始, 莫先兩儀, 而樂器居天地之先, 豈天地乃惡器所資乎! 蓋以先作者居前, 增益者處後, 作非一時, 故題次無定例也. 其篇之名義, 逐篇具釋, 此不繁言.”(이충구 외 역주, 1: 95)

09 제1편 “元, 始也. 從一, 兀聲.”

10 「석고釋⋅」상 권1 “初⋅哉⋅首⋅基⋅肇⋅祖⋅元⋅胎⋅⋅⋅落⋅權輿, 始也.”(이충구 외 역주, 98)

11 「석고」하 “⋅吾台予朕身甫余言, 我也.”(이충구 외 역주, 1: 189)

12 「석고」하 “台朕賚⋅卜陽, 予也.”(이충구 외 역주, 1: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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