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愼子)』의 다수의 힘과 공권력[勢]의 발견 >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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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읽기『신자(愼子)』의 다수의 힘과 공권력[勢]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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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정근 작성일2018.12.19 조회3,8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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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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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이 물음은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업은 최근 드라마에서 잘 나가는 배우를 모델로 섭외해서 매출액을 늘리는 방안에 대해 신경을 쓴다. 식당은 음식을 맛있게 해서 손님들이 자주 오게 하려고 한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환심을 사서 자신에게 많은 표를 던지게 하려고 한다.
  동아시아 사상은 경학 시대부터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중심 주제로 삼아왔다. 『서경』과 『시경』에는 그 두 가지 힘을 덕德과 력力으로 보았다. 력은 압도적인 물리력, 군사력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이고 덕은 자신이 가진 역량으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경학 시대에는 력보다 덕을 우선시하면서 명덕明德이야말로 사람 사이의 원망을 줄여서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원칙이라고 보았다.

  자학子學 시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인간적 약점을 뛰어넘은 성왕이 아니라 인간적 약점에다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 찬 소인小人이 등장하자,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도愼到(BC 395~BC 315: 존칭으로 신자愼子)는 세勢야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라고 주장했다.

 


한 명의 영웅보다 열 명의 보통 사람이 중요하다

 
  경학 시대의 성왕은 세계를 창조하는 절대신이 아니지만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한 가지는 사람에게 기준이 될 정도로 거부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세계의 질서와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 성왕이 아닌 일반 사람은 성왕을 모방하면 충분하므로 머리를 써서 좋은 방안을 짜낼 필요가 없었다. 
  약육강식의 상황에 맞서 개별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성왕의 말씀은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도 아니고 필연적인 참조체계도 아니었다. 성왕의 말씀은 참으로 좋고 당위적이어서 변칙과 폭력을 앞세우는 시대에 먹혀들 수가 없었다. 당장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간첩도 보내고 뇌물도 뿌리고 기만전술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덕을 베풀어라!”라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한가한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신도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상을 도량형 이야기를 통해서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수십 근 또는 수백 근 되는 무거운 물건을 놓아두고서 성왕 우임금으로 하여금 몇 근 몇 양처럼 아주 작은 단위까지 계산하게 한다면 그는 결코 알아낼 수 없다. 물건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단다면 아주 미세한 차이도 나지 않게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이처럼 무게 측량은 우임금 같은 성왕의 지식을 빌릴 필요가 없고 저울 눈금을 볼 줄 아는 보통 사람의 지식이면 알아낼 수가 있다.”01 


  우임금은 요와 순임금과 함께 경학 시대를 대표하는 성왕 중의 한 사람이다. 중원 지역은 황하를 비롯해서 홍수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바로 이때 우임금이 치수 사업에 헌신적으로 종사해서 그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이로써 중원 지역은 생존을 위협받던 자연 상태에서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인간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우는 자연의 위력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출중한 지식을 갖춘 인물로 여겨져 왔다. 우가 아무리 특별한 지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물건의 무게를 재는 데에는 간단한 저울보다 뛰어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바로 춘추전국 시대가 우와 같은 소수 영웅(성왕)에 의해서 운영되지 않고 중인中人, 즉 보통의 지능을 가진 다수의 사람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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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의 사람은 개인적으로 우의 지능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우의 지능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계산 가능성에 근거한 일종의 합리성이다. 즉 도량형은 동일한 기준에 의해서 측량할 수 있어서 누구에게도 불리하지도 않으므로 시비가 생겨날 수가 없었다. 신도는 도량형의 합리성을, 사회를 운영하는 원칙으로 확장시켰다. 도량형이 측량測量의 정확성과 합리성을 제공하듯이 그것을 담은 법도(법률, 법제)도 지배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02

  신도는 춘추전국 시대의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서 질서의 원칙을 우의 개인적 탁월성에서 보통 사람의 합리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는 제도의 완비보다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공자의 사상과 날카롭게 대립한다고 할 수 있다.

  신도는 성왕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고 다시 충신 역할론마저 부정한다. 흔히 충신이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 혜성처럼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한다. 신도는 치세만이 아니라 난세에도 충신이 있었지만, 개인의 명예는 드날릴지언정 군주의 생명을 살리지도 못했고 국가의 명운을 유지할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그는 거대한 건물을 한 그루의 나무로 지울 수 없고 흰 갖옷을 한 마리 여우의 털로 만들 수 없듯이, 사회의 안정과 불안 등이 한 사람의 힘으로 좌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03 이렇게 보면 춘추전국 시대는 결국 다수의 힘을 합리성에 따라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느냐를 두고 고민했다고 볼 수 있다.

  신도는 인간적 약점과 세속적 욕망을 가진 소인을 만족하게 하는 합리적 틀을 마련하면서도 제도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설거지, 청소, 심부름 등을 하거나 상금, 기회, 이익 등을 나눌 때 제비뽑기와 추첨을 하곤 한다. 그때 누가 당첨되더라도 불만을 터뜨릴 수는 있지만 게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누구라도 걸릴 수는 있지만 제비뽑기와 추첨이 특정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도는 제비뽑기와 도량형이 가장 공정하지도 가장 완벽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위덕威德」) 하지만 그것이 다른 제도보다 개인적인 원망怨望을 가지지 않고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누구도 더 이익을 가져야 한다거나 누구도 더 손해를 봐야 한다는 사적 이해관계를 제거[棄私]할 수 있기 때문에 신도는 차선책으로 개인의 탁월성이 아니라 제비뽑기의 공정성에 의해 사회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세勢: 사람을 움직이는 힘


  경학 시대는 성왕이 말하고 움직이기만 하면 사회는 온통 그쪽으로 움직였다. 공자의 말로 표현하면 군자는 바람이고 소인은 풀이어서 군자가 어떤 방향으로 바람을 일으키기만 하면 소인은 그 방향대로 모두 따라 넘어갔다.04 『맹자』에 나오는 ‘과화존신過化存神’의 말처럼 성왕이 어떤 곳을 지나가면 사람이 바뀌고 어떤 곳에 머무르면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05

  하지만 신도가 생각하는 춘추전국 시대에는 성왕이든 군자든 특정한 개인이 다수의 사람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특히 부국강병과 같은 양화된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키려면 경학 시대에 말 없던 다수를 큰 힘을 가진 다수로 조직화해내야 했다. 이처럼 다수의 사람을 하나의 집중된 힘으로 변환시키기 위해서 춘추전국 시대에는 경학 시대와 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 신도는 사람이 아직 생각하지 못했거나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사실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모장毛?과 서시西施는 고대 미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두 미인은 어떠한 복장을 하더라도 모두 사람으로부터 환대를 받을까? 본바탕이 아름답다면 의복을 다소 잘 입든 못 입든 상관없이 사람은 두 미인을 다 좋아하리라 생각할 수 있다. 신도는 관찰을 통해서 이러한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단정을 했다. “짐승 가죽이나 거친 옷을 걸치게 하면 사람이 그들을 보고 모두 도망을 하지만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으면 길 가던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생김새 자체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떤 옷을 입느냐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06

  또 신도는 사람이 걸어서 가면 멀리 못 가지만 마차를 타면 서서 오래갈 수 있고 배를 타고 앉아서 멀리 갈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이 수고스럽게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도구의 힘을 빌리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았다.07

  신도는 이러한 두 가지 관찰을 통해서 다수의 사람이 가진 힘을 한 곳으로 집중할 수 있는 근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늘 나는 뱀이 안갯속에 노닐고 하늘 나는 용이 구름을 타지만 구름과 안개가 걷히면 이들은 땅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와 같아진다. 이것은 이들이 기댈 대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전자의 권세가 약하기 때문이고,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후자의 권위가 높기 때문이다. 요임금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때는 옆집 사람도 부릴 수 없었지만, 왕의 자리를 차지하자 명령하면 시행하고 금하면 그치게 되었다.”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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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자신이 힘을 가져야만 다른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도구를 사용해서 멀리 갈 수 있듯이 사람이 권세를 가지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도록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신도는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복종시킬 수 없지만 권세와 권위는 잘난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09 이로써 신도는 춘추전국 시대의 사람이 경학 시대의 고상한 행위나 탁월한 인품에 의해 자발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권력에 의해서 움직여진다는 사실을 포착해냈던 것이다. 
  신도의 결론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첫째, 지배와 복종은 도덕적 인격의 높낮이가 아니라 공권력(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세의 소유에 달려있다. 둘째, ‘나’의 힘은 권세에 의해서 타자의 역량을 극대로 도출해낼 수 있는 조직 역량에 따라 가감될 수 있다. 셋째, 사람은 타자를 나와 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목적적 대우를 하지 않고 나의 이익을 실현해줄 수 있는 도구적 존재로 간주하게 되었다. 넷째,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타자에게 강요할 수 있는 권세를 소유하기 위해서 항구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에 놓여 있게 된다. 사람은 합리성을 통해 예측 가능한 시야를 갖추게 되었지만 권세의 소유를 향해 투쟁을 배제할 수 없어서 내연의 불안과 잠재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이로써 춘추전국 시대는 경학 시대와는 다른 그 시대만의 뚜렷한 명암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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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신도 비판


  흥미롭게도 신도가 춘추전국 시대를 지탱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의 창출을 위해 세웠던 논법이 장자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는 『신자』를 비판적으로 다루거나 틀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있다. 인용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분명 장자는 신도가 제안한 세勢를 읽고서 나름대로 그 한계를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우연한 일치라기보다 의도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장자가 모장과 서시를 모장과 여희로 바꿔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을 살펴보자.  


  “모장이나 여희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대상이지만 물고기가 그들을 보면 물속 깊이 숨어버리고 새가 그들을 보면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리고 순록이 그들을 보면 있는 힘껏 달아나 버린다. 넷 중 누가 이 세상의 올바른 아름다움을 알고 있을까?”10

  
  신도는 두 사람의 본바탕이 제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미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아름다움은 옷의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장자는 두 사람의 아름다움은 사람에게 적용되지만 다른 동물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고 오히려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사회에서 사람에게 규범으로 제시되는 당위적 가치를 가리킨다. 즉 인의仁義와 시비是非를 말한다. 비슷한 시대에 맹자는 이를 사람의 보편적이며 본질적 가치로 보고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마음(의식)에서 경험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다. 장자는 이를 사람에게만 적용되거나 강요되는 특수한 가치로 깎아내리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도의 주장도 기껏해야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게 된다.  


  “열자는 바람을 몰고 다니니 가뿐하고 좋다. 한 번 바람을 타면 15일 지나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바람을 따라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저 스스로 걷는 것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기대하는 대상이 있다. 천지의 정기를 타고 다양한 기운의 변화를 거느리며 무궁한 세계에 노닌다며 무엇을 기댈 것이 있겠는가!”11

  
  신도는 사람이 바람, 기계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신도는 묵적, 상앙, 손무처럼 인간이 자연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고 또 불리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주관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과 도구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다. 화석 연료는 근대의 산업혁명을 낳은 원동력이었다. 자동차든 냉난방이든 화석 연료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람은 그 연료를 구입하기 위해서 소득의 많은 부분을 지불해야 하고 국가는 그 연료의 확보를 위해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사람이 화석 연료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화석 연료에 얽매여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 즉 처음에는 사람이 화석 연료의 이로움을 누리고 지금도 누리고 있지만 점차로 그것에 의해서 제약을 받는 측면이 늘어나고 있다. 장자는 도구의 이로움에 현혹되지 않고 도구의 얽매임에 주의를 돌리고 있다. 그것은 분명 신도가 눈여겨보지 못한 측면이리라.  

 


조숙하지만 해답 없는 결론


  유가儒家와 관련해서 맹자와 순자를 성선과 성악의 구도로 대립시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법가와 관련해서도 다음과 같은 ‘미신’이 하나 있다. “상앙商?은 법法을, 신불해申不害는 술術을, 신도愼到는 세勢를 발견했고, 훗날 한비는 법·술·세를 종합하여 법가를 완성했다.” 신도의 경우만 해도 앞에서 보았듯이 세와 법을 동시에 말하고 있으므로 그 ‘미신’은 역시 미신이니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철학사를 거칠게 재단하려는 말들에 의해 철학자(사상가)의 귀중한 문제 제기와 주장이 제대로 음미 되지 않고 값싸게 낭비되고 있다. 신도는 법과 세의 가치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사에 말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누구보다 일찍 발견하였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발견은 조숙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철저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신도는 맹자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천자가 왜 있는가?”, “천자의 존재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그는 “천자를 세우고 그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천자 한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12 이 주장은 전제 군주의 출현을 막고 천자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전제 군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연법의 근거가 되지도 못하고 축출할 제도적 장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신도는 “법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아예 법이 없는 것보다 낫다. 사람의 판단 기준을 하나로 할 수 있는 바탕이기 때문이다.”라는 통찰을 했다.13 법의 불완전성과 무법의 혼란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춘추전국 시대가 성왕과 같은 영웅이 아니라 세속적 욕망과 인간적 약점을 지닌 소인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신도는 무법보다 차선의 법이 갖는 우위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차선의 법이 갖는 위험성도 인지하고 있었다. 법을 정해놓고도 사적 욕망을 앞세운다면 이것은 법과 개인 의지가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때 법은 사회의 질서를 가져다주기보다는 개인의 사적 욕망을 이루는 보호 장치가 된다. 그는 이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대비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14 신도는 조숙했지만, 해답 없는 발견은 오늘날 동아시아 사회에서도 여전히 숙제이다. 근대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전제적 성향이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것을 발본색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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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회보> 135호


필자소개
신정근: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의 교수로 있다. 한국철학회 등 여러 학회의 편집과 연구 분야의 위원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제자백가의 다양한 철학흐름』, 『동중서 중화주의 개막』, 『동양철학의 유혹』, 『사람다움의 발견』,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한비자』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백호통의』, 『유학, 우리 삶의 철학』, 『세상을 삼킨 천자문』 『공자신화』, 『춘추』 『동아시아 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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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신자』 「일문逸文」: “措鈞石, 使禹察?銖之重, 則不識也. 懸於權衡, 則?髮之不可差. 則不待禹之知, 中人之知, 莫不足以識之矣.” 최근에 『신자』가 번역되어 한문을 모르는 이도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조영래 옮김, 『신자』, 지만지, 2011 참조.)

02 「일문」: “有權衡者, 不可欺以輕重. 有尺寸者, 不可差以長短. 有法度者, 不可巧以詐僞.”(저울이 있으면 무게를 속일 수 없고 자가 있으면 길이를 다르게 할 수 없다. 법도가 있으면 사기술로 속일 수 없다.)

03 「지충知忠」: “廊廟之材, 蓋非一木之枝也. 粹白之?, 蓋非一狐之皮也. 治亂安危, 存亡榮辱之施, 非一人之力也.”
04 「안연」 19[313]: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05 「진심」상 13: “孟子曰: 覇者之民驩虞如也, 王者之民??如也. 殺之而不怨, 利之而不庸, 民日遷善, 而不知爲之者. 夫君子, 所過者化, 所存者神, 上下與天地同流, 豈曰小補之哉?”

06 「위덕威德」 “衣之以皮?, 則見者皆走. 易之以元?, 則行者皆止. 由是觀之, 則元?色之助也. ?者辭之, 則色厭矣.”
07 「일문」: “行海者, 坐而至越, 有舟也. 行陸者, 立而至秦, 有車也. 秦越遠途也, 安坐而至者, 械也.”
08 「위덕」: “故騰蛇遊霧, 飛龍乘雲, 雲罷霧霽, 則?蚓同, 則失其所乘也. 故賢而屈於不肖者, 權輕也. 不肖而服於賢者, 位尊也. 堯爲匹夫, 不能使其?家, 至南面而王, 則令行禁止.”   
09 「위덕」: “賢不足以服不肖, 而勢位足以屈賢矣.”

10 「제물론」: “毛?麗姬, 人之所美也, 魚見之深入, 鳥見之高飛, ?鹿見之決驟.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11 「소요유」: “夫列子御風而行, ?然善也, 旬有五日而後反. 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 猶有所待者也. 若乎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辯, 以遊無窮者, 彼且惡乎待哉!”
12 「위덕」: “古者, 立千字而貴之者, 非以利一人也.”
13 「위덕」: “法雖不善, 猶愈於無法. 所以一人心也.”
14 「일문」: “今立法而行私, 是私與法爭, 其亂甚於無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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