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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2.19 조회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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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조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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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습니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구소(九韶)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만에 죽어 버리고 말았다.”01
 
 『장자』의 외편 중 「지락(至樂)」편에 등장하는 바닷새 이야기다. 장자의 바닷새 이야기는 결말이 슬프다. 단순히 새 한 마리의 죽음을 놓고 슬프다는 것이 아니다. 슬픔의 핵심은 임금이 바닷새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바닷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었다는 지점에 있다. 노나라 임금은 국빈을 모시듯이 새를 대했지만 그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대개는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을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애초의 기대와 상식을 깨트리는 사랑의 역설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려고 했을 뿐 정작 새가 싫어하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새를 새로서 대하지 않은 것이다.
  새를 새로서 대하는 것이란 새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음을 뜻한다. 인간과 새의 차이를 인정하고 인간의 잣대로 새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를 새답게 하는 것이다. 새가 살던 곳에 살게 하고, 호숫가에 노닐게 하며, 미꾸라지와 송사리를 잡아먹게 하고, 같은 새들과 줄지어 날아가 내려앉고 멋대로 유유히 지내게 놓아주는 것이 새를 대하는 옳은 방법이다. 각자에게는 천부의 본성이 있다. 이것을 무시하고 새를 사람으로 그것도 이 이야기에서처럼 인간이 듣는 음악과 인간이 좋아하는 술과 고기로 대접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곤란 정도가 아니라 새를 죽이는 일이다.
  장자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각자의 머릿속에 깊이 심어진 성심(成心)에 있다고 지적한다. 성심이란 어떠한 생각이나 관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 ‘이미 이루어진 마음’, ‘굳은 마음’, ‘구성된 마음’을 뜻한다. 이때 장자가 문제로 삼는 성심이란 성심 그 자체나 모든 성심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내면에 고착화된 특정한 성심이 모든 사태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데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는 위험성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보면,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규칙을 배우면서 자라났다. 한마디로 우리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규칙에 따른 성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김치를 먹고 한국어를 쓰며 어른을 공경하는 유교 문화를 배웠다. 이것이 바로 성심의 작용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미국에 갔을 때 TV를 보고 있는 아버지의 머리를 툭툭 치는 미국의 어린이를 보았다고 하자. 이것은 미국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유교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그 아이를 무례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성심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서 사태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심은 편견, 선입견, 아집과 같은 말로 이해할 수 있는데 자기본위, 즉 자기중심적인 사고체계라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특정한 기준을 가진 관념이나 가치관에 치우친다면 남의 입장을 헤아리거나 들여다볼 여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한 의지를 가졌다 할지라도 ‘나만의 가치’, ‘나만의 신념’에 함몰될 가능성이 매우 커져 자신의 선의지, 또는 선한 행위가 남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주거나 심할 경우 악으로 비칠 수 있는 우려를 낳게 된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장자는 ‘마음 비움’, 즉 허심(虛心)을 깨우침으로써 역지사지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허심이란 ‘나’라는 자의식을 완전히 비우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비움은 나라는 생각 자체를 모두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작은 나 즉 소아(小我)를 비우는 것이다. 소아란 편견과 가식으로 얼룩진 이기적인 나이며 자신만의 잣대에 똬리를 틀고 있는 비워야 할 성심이다. 이러한 소아를 비움으로써 나와 타인과의 사이에서 나만의 잣대로 이리저리 설정해 놓은 생각의 덫을 해체하고 대아(大我)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장자는 허심을 통해서 천지자연과 인간이 무한히 소통하는 ‘진인(眞人)’을 꿈꿨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오랜 인류 역사에서 발견된 삶의 원리이다. 우리 수도인 역시 이 삶의 원리를 떠나서 살 수 없으며 수도 또한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상제님께서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라고 하셨듯이 남과의 관계를 떠나서 수도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다. 장자의 바닷새 이야기는 인간관계에서 자기 중심성의 극복과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는 서로를 잘되게 해주는 해원상생의 진리와도 부합한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혹은 남을 대할 때 나에게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은 없는지, 그리고 나의 행위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돌아보는 것은 수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들이 실제로는 나의 독선이 아닐까? 나는 평소 주변 사람들의 입장을 살피려고 노력했는가?’ 하고 나에게 물을 수 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가 수도의 시작이듯이 스스로 내면에 물음을 던져보는 것 또한 서로를 잘 되게 해주는 해원상생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순회보> 192호

참고문헌
『전경』
『장자』, 오강남 역, 서울: 현암사, 2012.
강신주,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경기도: 오월의 봄, 2014.
안희진, 『장자 21세기와 소통하다』, 서울: 시그마북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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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장자』, 오강남 역 (서울: 현암사, 2012), p.373: 且女獨不聞邪? 昔者海鳥止於魯郊,魯侯御而觴之于廟,奏九韶以爲樂,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不敢食一臠,不敢飮一杯,三日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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