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그 역사적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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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방룡 작성일2017.02.20 조회2,712회 댓글0건본문
글 김방룡*
○ 부처님의 깨달음과 근본 가르침
오랜 옛날부터 인간에게 있어서 종교란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宗敎’라는 한자를 풀이해 보면 ‘가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진정한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도 타종교에 대해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불교란 인도의 왕자였던 싯타르타가 29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그 깨달음을 설파하였던 역사에서 출발한다. ‘佛’이란 각(覺) 즉 깨달음을 의미하니, 불교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 진리를 깨달은 주체인 석가모니 부처님(佛), 깨달음의 대상인 진리(法), 깨달음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단(僧)의 세 가지가 갖추어져 불교란 종교가 탄생하였다. 이 불ㆍ법ㆍ승을 불교에서는 삼보(三寶)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싯타르타가 깨달았던 내용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을 깨달아 석가모니부처님이 된 것일까? 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부처님의 근본교설이다. 사성제ㆍ삼법인ㆍ연기ㆍ십이연기ㆍ12처ㆍ18계ㆍ오온무아ㆍ윤회와 해탈 등 많은 이론을 통하여 부처님은 그것을 말씀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연기(緣起)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깨친 눈에 비친 존재의 실상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없게 되고, 이것이 멸함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는 것이 연기(緣起)의 진리이다. 모든 존재는 이것과 저것이 상호 의존하고 있고, 인연에 따라 생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이 연기의 진리가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이다.
연기의 진리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그것을 ‘공’(空)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마음’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들도 결국 ‘하나’의 핵심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 즉, 나와 남, 나와 우주가 ‘하나’인 바탕이고 ‘하나’인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깨치지 못한 우리들에게는 그것들이 다들 제 각각이다. 나와 남이 둘이고 나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육신을 중심으로 해서 울타리를 쳐놓고 안에 있는 것은 ‘나’이고 밖에 있는 것은 다 ‘남’이라고들 말한다. 그래서 밖에 있는 것은 다 세계, 자연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나와 남, 나와 세계가 분리ㆍ대립되어 있는 현실 속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 남을 갈라놓고 살아가는 세계를 상대적인 세계라 한다. 이 세계는 나와 남, 나와 우주를 ‘둘’로 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것들이 대립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깨침’은 확연히 다르다. 나뉘어져 있던 것이 통하고, 분리되어 대립하던 나와 남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이웃이 하나가 되고 나와 세계가 하나 되는 그런 세계가 바로 깨침의 세계이다. 그 ‘하나’라는 말을 불교에서는 ‘불이(不二)’라고 한다. 이와 같이 ‘나다’하는 생각이 깨지면 비로소 우리는 우리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깨침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그 깨침을 통해서 참다운 자비의 실천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나’라고 하는 벽이 허물어짐으로 해서 진정한 자비의 실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비’라고 할 때는 항상 그 앞에 동체(同體), 즉 한 몸이라는 형용사가 늘 따라 다닌다. 진정한 의미의 자비는 동체자비(同體慈悲)라는 것이다. 동체자비는 나는 ‘여기에’ 있고,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저기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이 하나 되는 바탕에서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삶의 몸짓을 말한다. 이러한 삶이 바로 우주적인 삶이며, ‘하나’인 샘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을 온 세상에 적시는 삶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인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존재의 실상은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인 세계라는 ‘깨침’과 나와 남이 하나 된 차원의 ‘자비’, 이 둘이 불교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 불교 교단의 역사적 전개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45년 동안 꾸준히 진리에 대하여 설파하였다. 그리고 부처님 사후 그의 제자들 중 깨달음에 들은 500명이 왕사성의 칠엽굴에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의 내용을 정리하여 경과 율을 만들었다. 이후 한 백 년 동안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전해지고 교단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부처님 사후 100년이 지나자 교단은 두 개로 분열되게 된다. 분열이 된 직접적인 이유는 계율의 해석에 대한 문제였다. 바이샬리 지역을 중심으로 포교를 잘하던 젊은 승려들과 보수적인 장로들 사이에서 10가지의 계율에 관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 계율의 융통성을 강조했던 젊은 대중부와 계율의 원칙성을 강조한 장로들의 상좌부가 갈라지게 된다. 이것을 근본분열이라 말한다. 이렇게 시작된 불교의 분열은 시간적으로 400여 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20여 개의 많은 부파로 분열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를 부파불교의 시대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 기간 동안 각 부파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생활규범인 경과 율에 대한 해석을 하게 되었는데, 이를 불교에서는 논(論)이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논(論)을 ‘아비달마(Abhidharma)’라고 하는데, ‘법에 대한 연구’라는 뜻이다. 이것은 각 부파들이 자기들 입장에 따라 경을 해석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불교의 성전인 삼장(三藏)이 완성된 것이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經)과 계율, 그리고 경의 주석서인 논을 합하여 삼장이라 하고 이에 통달한 사람을 삼장법사라 말한다.
그리고 이 시기 불교계의 학문적 연구가 왕성하게 진행된 데는 불멸 후 2백 년경 출현한 아쇼카대왕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쇼카대왕은 기원전 268년부터 232년까지 36년간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3대왕으로 있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정법에 입각해서 나라를 다스린 인도 최고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이었다. 그는 원래 천민출신이었고 용모도 보기 흉할 정도로 못났다. 뿐만 아니라 성격도 난폭하고 잔인해서 왕위에 오르기까지 99명의 이복동생을 살해했고 즉위 후에도 난폭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불교에 귀의한 후에는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고 참배한 후 석주를 세워 기념하였다. 또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유골과 사리는 팔등분되었는데, 그는 이것을 다시 나누어 인도 전역에 팔만 사천 개의 탑을 세우고 봉안했다. 그리고 불법을 인도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널리 전하였다. 왕은 불법을 전하기 위해 다섯 명을 한 조로 하는 포교사 조직을 만들어 각국에 파견하였는데, 여기에는 카슈미르·미얀마·그리스의 박트리아왕국ㆍ시리아ㆍ이집트ㆍ마케도니아ㆍ실론 등도 포함된다.
이렇게 불교교단은 상좌부와 대중부 계통이 나뉘어져 부파불교 시대를 거친 후 상좌부 계통의 가르침은 동남아시아 쪽으로 전해지게 되고, 대중부 계통에서 대승불교사상이 출현하여 티벳과 중국, 한국 및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게 된다. 남방계통으로 전해진 불교를 남방불교 혹은 소승불교라고 말하고 북방계통으로 전해진 불교를 대승불교라고 말한다.
남방불교의 전통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불교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경전에 있어서도 부처님이 당시 대중들에게 설했던 팔리어로 된 경전만을 인정하며, 계율 또한 부처님 당시의 계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수행에 있어서도 부처님 당시 유행하였던 위빠사나 수행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팔리어로 이루어진 경전을 ‘5부 니까야’라 부르는데, 남방불교는 이 경전만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정하고 있다.
○ 인도 대승불교의 성립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하여 대중부 계통의 영향 속에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대승이란 ‘마하야나(Mahayana)’라는 인도말을 번역한 것으로 마하는 ‘크다(大)’는 뜻이며 야나는 ‘수레(乘)’의 의미이다. 수레란 깨닫지 못한 이 언덕(此岸)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彼岸)으로 건너가게 해 주는 도구이다. 대승 즉 큰 수레란 나 혼자만의 구제가 아닌 모든 중생과 함께 깨달음의 세계로 건너가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불교가 소승으로 개인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아라한이 목표였다면, 대승불교에서는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서원을 통하여 모두 함께 깨달음에 이르는 보살이 목표가 된다.
대승불교가 출현한 배경에는 부파불교가 너무 학문적인 경향을 띠게 되어 종교적인 실천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반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야쇼카대왕에 의하여 부처님의 탑이 인도전역에 만들어지자 재가신도들은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탑을 중심으로 하여 부처님을 그리워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신앙하려는 움직임이 있게 되었다. 그러자 여기에 찬불승들이 가세하여 부처님의 가르침과 더불어 부처님의 전생담을 소개하였다. 역사적인 싯타르타가 출가하여 6년의 구도과정을 통하여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과거 전생에 보살로 있으면서 수없는 세월을 수행한 결과 인도에 태어나 부처가 되었다는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게 된 것이다.
‘보살’이란 인도의 ‘보디사트바’를 중국말로 음역하여 보리살타라 하였는데, 그것을 줄여 보살이라 한 것이다. 그것은 ‘중생을 깨닫게 하는 자’란 의미와 ‘이미 부처가 될 것을 과거부처님으로부터 예견 받은 자’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말이다. 바로 이 보살정신이 대승불교의 중요한 사상이 된다.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서원과 동시에 구체적인 실천인 육바라밀을 통하여 그들의 신앙을 키워나갔다. 보살들이 자신의 서원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지혜의 바탕인 불성(佛性)이 있기 때문이며 불성이 있기에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는 서원과 육바라밀의 실천을 중시하는 실천불교의 성격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모두 공통되는 원으로서 사홍서원이 있는데, 첫째,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즉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건지리라는 것이다. 둘째,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즉 다함이 없는 번뇌를 맹세코 끊겠다는 것이다. 셋째,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무량한 법문 즉 진리에 들어가는 길을 맹세코 다 배우겠다는 것이다. 넷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즉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육바라밀은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여섯 가지 실천으로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를 말한다.
이러한 대승불교의 출현에는 중요한 두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첫째 부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인간 석가모니가 아닌 진리의 몸 그대로 온 석가모니로서 법신불(法身佛)이 등장하였으며, 법신불과 더불어 수많은 불·보살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새롭게 출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석가모니 부처가 설했던 경전은 『아함경』 뿐이었다. 『아함경』은 일반 민중들이 사용하던 빨리어가 아닌 귀족들이 사용하던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으로 ‘아가마’라 불리었는데, 이것이 중국말로 ‘아함’이라고 번역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 대승불교에서는 새롭게 수많은 경전을 만들어내었다. 『금강경』ㆍ『법화경』ㆍ『화엄경』ㆍ『아미타경』 등 현재 한국불교에서 중시하는 대부분의 경전들은 이 시기 새롭게 만들어진 경전들이다.
인도의 대승불교는 성격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까지로 이 시기에는 반야 공(空)사상이 출현하였다. 반야부 계통의 600권의 경전이 만들어졌는데,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이 대표적이다. ‘반야’란 직관을 통한 지혜를 의미하며, ‘공(空)’이란 연기적 관점에서 일체의 모든 것은 변치 않는 고정된 성질을 가진 것이 없으므로 모두 공하다는 것이다. 인간을 이루는 것은 육체와 정신인데, 그 육체는 지ㆍ수ㆍ화ㆍ풍의 사대로 이루어져 있어 시간이 지나면 사멸되어간다. 또 정신은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인식작용을 통하여 자아를 형성하는데 그 모든 과정 또한 인연에 따라 임시로 이루어진 것으로 공이란 의미이다.
둘째, 3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로 여래장계 경전과 유식계 경전이 만들어진다. 『해심밀경』과 『유가사지론』 그리고 『대승기신론』 등이 대표적인 경전이다. 여래장이란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의 씨앗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불성(佛性)을 간직한 존재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 여래장 사상이다. ‘유식(唯識)’이란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준말로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일 뿐 바깥의 대상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 작용을 분명히 이해하여 모든 분별 망상을 제거하고 부처님의 지견(佛知見)을 가져 깨닫자는 가르침이다.
셋째, 6세기 중엽부터 13세기까지로 진언만다라와 밀교계 경전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밀교이며, 『대일경』과 『금강정경』 등이 대표적인 경전이다. 밀교는 힌두교의 영향 속에서 법신불을 통하여 힌두교적 요소를 불교화한 것이다. 밀교(密敎)란 현교(顯敎)에 대립되는 용어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은밀히 전해진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밀교에서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강조하는데, 우리의 몸 그대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身)·구(口)·의(意) 삼밀(三密)을 주장하는데 몸으로는 부처님의 수인 즉 무드라를 결인하고, 입으로는 주문 즉 진언(다라니)을 지송하며, 마음으로는 삼매(사마디)에 들어 나의 모든 것을 부처와 합일시키는 수행을 강조한다. 이러한 밀교는 13세기 티벳에 들어가 지금 달라이라마가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후 인도에는 아랍의 이슬람교가 들어와 크게 활약함으로 인하여 불교의 세력은 급격히 쇠퇴하게 되고, 동남아지역에서는 소승불교가 동북아지역에서는 대승불교가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 중국의 불교전래와 중국불교의 성립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남북조 시대이다. 중국의 불교는 인도의 불교경전들이 한문으로 번역되어지고 한역(漢譯)된 경전을 중심으로 불교신앙이 이루어졌다. 특히 불교의 다양한 종파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서는 ‘경전’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종,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 『정토삼부경』을 소의경전으로 정토종 등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불교의 경전이 한역되는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인도불교의 ‘공(空)’ 사상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중국인들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빌어 공사상을 설명하였다. 따라서 중국불교는 번역과정에서부터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인도의 사람들은 철저히 탈속적이며, 윤회와 해탈을 중시한 반면 중국의 사람들은 철저히 현실적이었다. 따라서 해탈도 죽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상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도불교의 형성과정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부족하여 대승불교의 경전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서 설한 가르침으로 믿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와는 약간 성격이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으며, 한국과 일본의 불교 또한 이러한 중국불교의 영향 속에 놓이게 되었다.
한역경전들은 수많은 역경사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인도 구자국 출신의 구마라집과 당나라의 현장이다. 구마라집은 인도인으로 중국에 들어와 수많은 경전을 번역하였고, 현장은 중국인으로 인도에 들어가 인도어를 공부하고 많은 경전을 가지고 다시 중국에 돌아와서 수많은 경전을 번역하였다. 따라서 구마라집의 번역을 구역이라 하고 현장의 번역을 신역이라 말한다.
이렇게 번역된 경전을 중심으로 중국에서는 수많은 종파가 만들어지게 된다. 초창기에는 인도불교적인 영향 속에서 여러 종파가 형성되었고 수나라 이후에는 중국적인 불교종파가 탄생하게 된다. 초창기 불교로는 비담종ㆍ성실종ㆍ삼론종ㆍ섭론종ㆍ법상종ㆍ지론종ㆍ율종ㆍ열반종 등을 들 수 있으며, 중국적인 불교로는 천태종ㆍ화엄종ㆍ진언종ㆍ정토종ㆍ선종 들을 들 수 있다.
우선 소승에 속하는 것으로 비담종은 유부(有部)의 논서인 『아비담팔건도론』과 『아비담심론』 따위를 중심으로 하는 학파이다. 또 성실종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성실론』을 연구하는 학파이다.
대승에 속하는 것으로 삼론종(三論宗)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중론(中論)』ㆍ『백론(百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파이다. 섭론종(攝論宗)은 진제가 번역한 『섭대승론』과 『섭대승론석』을 연구하는 학파이다. 법상종(法相宗)은 현장이 번역한 『성유식론』에 의거해서, 그 제자 규기를 중심으로 성립한 학파이다. 지론종(地論宗)은 보리유지가 번역한 『십지경론(十地經論)』에 의거하는 학파이다. 이 논은 『화엄경』에서 보살의 수행 단계를 설한 ‘십지품(十地品)’을 주석한 것이니, 후일 화엄종이 성립함에 이르러 그 속에 흡수된다. 이외에 계율에 관한 것을 주로 연구하는 율종(律宗)과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열반종이 있다.
중국의 불교가 완전히 중국화되어 나타난 최초의 불교는 천태종이라 할 수 있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법화경』을 숭상하는 종파인 천태종은 혜문과 혜사를 거쳐 지의에 의하여 대성하게 된다.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면서도 ‘천태종’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천태 지의’에 의하여 『법화경』이 새롭게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양(梁)나라의 귀족으로 태어난 지의는 어려서 진(陳)나라에 나라가 망하고 연이어 부모의 죽음을 겪게 됨으로 인하여 출가하게 된다. 이후 혜사를 스승으로 하여 크게 깨달아 진나라 왕실의 숭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진(陳)나라마저 수(隋)나라에 의해 멸망되어지고 자기를 따르는 진나라의 왕실의 모든 사람들이 참살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의는 수나라의 진왕 양광의 귀의를 받고 수나라 황실에 협조하게 된다. 이러한 삶의 과정에서 지의는 『법화경』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더불어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성품이란 성구설(性具說)과 함께 공(空)·가(假)·중(中)의 삼제원융사상을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천태의 사상은 수나라를 통하여 중국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한국은 물론 특히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면서 화엄종과 정토종 및 선종이 크게 융성하게 된다. 화엄종은 『화엄경』에 의지하는 종파로 두순과 지엄 및 법장에 의하여 대성되게 된다. 화엄의 주불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이다. 진리 그대로 부처의 몸이 된 법신불이 지배하는 세계는 연화장세계로 하나의 법계(法界)를 이룬다. 이 법계의 모습은 이법계(理法界)ㆍ사법계(事法界)ㆍ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ㆍ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의 네 가지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법계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 그대로 현존하는 모습이다. 또 화엄에서는 우리의 마음 그대로가 부처님의 마음과 같다고 주장한다. 불성이 그대로 발현되는 불성현기(佛性現起) 즉 ‘성기설(性起說)’을 주장한다. 우리가 사는 이 땅 그대로가 정토가 되고, 우리의 마음 그대로가 부처의 마음이 되는 세계라고 주장하는 것이 화엄의 사상이다. 이러한 화엄의 사상은 우리나라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토종은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과 『아미타경』 및 『관무량수경』 등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다. 여산의 혜원은 백련사에서 123인이 아미타불에게 서원을 하고 나서 절 밖을 나가지 않고 30년 동안 염불수행을 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중국 전역에 정토종이 퍼지게 되었다.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누구나 죽어서 극락정토에 태어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주된 수행법으로 삼는 종파가 정토종이다.
진언종(眞言宗)은 선무외가 번역한 『대일경(大日經)』을 중심으로 하는 밀교 종파이다. 선무외의 뒤를 이어 금강지·불공이 건너오고, 또 일행은 선무외의 설에 따라 『대일경소(大日經疏)』를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교계에 대한 탄압으로 인하여 크게 성장하지는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선종(禪宗)은 특별한 소의경전을 세우지 않고, 도리어 교외별전(敎外別傳) 즉 부처님이 경전 밖에 따로 마음으로 전한 소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520년경 양나라에 들어온 보리 달마를 초조로 하여 당나라 시기 육조인 혜능에 의하여 크게 성장하게 된다. 반야의 지혜와 누구나 불성(佛性)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선수행을 통하여 곧장 마음을 깨쳐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선종의 특성이다.
○ 한국불교의 전개와 특징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이다. 가야의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가 인도의 불교를 들여오기도 하였지만 삼국 모두는 중국을 통하여 중국화 된 불교를 수용하였다. 비록 중국불교가 유입되긴 하였지만 한국불교 역시 한국의 고유사상적인 토대위에서 중국불교를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한국적인 특징이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불교의 특징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원융회통성과 현실정토적 경향 그리고 호국불교적 경향을 말한다. 원융회통이란 다양한 성격의 불교를 모두 하나로 융합하여 회통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원효와 지눌과 서산의 사상 등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정토란 우리가 사는 이 땅 그대로 부처님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으로 미륵정토, 아미타정토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호국불교란 삼국시대로부터 현재까지 국난을 당하여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역사적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삼국시대 불교는 왕실을 중심으로 하여 유입되었으며, 중국으로부터 많은 경전이 들어오면서 이를 중심으로 하여 종파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에 이르러 한국불교는 크게 발전하였는데, 의상의 화엄종이 전국에 화엄10찰을 만들어 번성하였고 진표의 미륵법상종이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번성하였다. 또한 통일신라 말기에는 중국으로부터 선종이 들어와 구산선문을 형성하며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 불교계의 대표적인 인물은 원효이다. 원효는 당시 중국에서 유입되는 수많은 종파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화쟁사상을 주장하였다. 즉 『대승기신론』의 일심(一心)에 근거하여 모든 종파의 궁극적인 가르침은 결국 하나인 마음자리에 돌아간다고 주장하여 갈등의 원인을 해소함으로써 화쟁을 일구어내었다.
고려시대의 불교계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되어진다. 태조 왕건에서 광종 대에는 불교계의 통합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기존의 선종 세력 대신에 새롭게 중국으로부터 법안종을 들여왔으며, 후삼국시기 견훤과 왕건을 지지하던 두 파로 분열되어 있던 화엄종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탄문과 균여의 활동을 지지하였다. 이후 무신정권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귀족의 지원 아래 법상종ㆍ화엄종ㆍ천태종 등 교종의 세력들이 크게 부각되었다. 특히 대각국사 의천의 활약으로 속장경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무신집권기에는 송광사를 중심으로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일으켜 불교계에 새로운 선수행의 풍토를 진작시켰으며, 원묘 요세가 출현하여 강진의 백련사를 중심으로 천태 염불결사 운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공민왕 대에는 중국으로부터 임제종의 간화선의 법맥을 이어온 태고 보우ㆍ나옹 혜근ㆍ백운 경한 등이 출현하여 새롭게 선풍운동을 진작시키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하여 불교계는 심한 압박을 받게 된다. 조선 초기 몇몇 승려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도 하였지만 유학자의 탄압은 지속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와중에서 서산과 사명 등 의승군의 활약에 힘입어 불교계는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게 된다. 이때 서산과 부휴에 의하여 새로운 선풍이 일어나게 되고 이들의 제자들에 의하여 한국의 선맥(禪脈)이 지금까지 계승되어 오게 된다. 또한 이 시기 호남지역에는 부처님의 후신불로 알려진 진묵조사가 출현하여 민중들로부터 추앙받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승려의 지위는 팔천민의 하나로 떨어지게 되었으나, 불교는 오히려 민중 속에 깊이 스며들어 민중불교의 모습을 띠게 된다.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한국불교는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다. 일제시대 불교계는 일본불교의 진출과 조선총독부의 간섭 등의 난관이 있었지만, 승려의 지위가 회복되고 불교교학에 대한 발전이 이루어지며 많은 단체가 출현하면서 민족의 대표적인 종단으로서의 모습을 회복해 간다. 특히 경허 이후 수많은 선승들이 철저한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이를 따르는 신도들이 증가함으로써 선종 중심의 한국불교의 성격을 만들어 간다. 이 시기 불교계의 가장 큰 목표는 단일한 불교종단의 출범이었는데, 1941년 드디어 조선불교조계종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해방 이후 한국불교계는 한동안 비구-대처 간에 분쟁이 있었으나 결국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의 분종으로 일단락 된다. 이후 한국의 불교계는 수많은 종파로 분열하게 되는데, 현재 120여 개가 넘는 종파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조계종과 태고종ㆍ진각종ㆍ천태종 등을 대표적인 4대 종단이라 말하고 있다.
__주__
* 충남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
《대순회보》 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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