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神道)란 무엇인가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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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규태 작성일2017.02.20 조회4,246회 댓글0건본문
박규태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신도(神道) 하면 일본의 고유종교, 혹은 일본만의 순수한 전통이라고 말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학자들뿐만 아니라 서구의 일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해가 마치 하나의 상식인 양 통용되어 왔다. 가령 영어권에서 나온 수많은 세계종교사 책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유대교가 유대인들의 민족종교인 것처럼 신도 또한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시 하는 상식들이 실은 오류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정말 신도라는 일본 고유의 순수하고 불변적인 전통이 있고, 그것이 머나먼 상고시대로부터 본질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져 내려왔으며 지금까지도 일본정신의 토대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신도야말로 곧 ‘일본전통=일본정신’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신도의 기원과 전개과정은 매우 다양한 원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 신도의 형성은 한반도 및 대륙의 샤머니즘, 조상숭배, 도교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흔히 말해지듯이 결코 자연발생적이지 않고 오히려 선택적, 조작적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고대일본의 야마토(大和) 조정이 대륙 왕권사상의 영향 하에서 태양숭배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거기에 아마쓰가미(天神) 사상을 결부시켜 만들어낸 것이 다름 아닌 신도라는 말이다.
한편 신도의 기본적 특성으로 흔히 거론되는 다신교적, 애니미즘적 형태는 엄밀히 말하자면 거의 모든 종교의 원초적 형태이며 결코 일본만의 특징은 아니다. 특히 신도는 음양오행설, 신령숭배, 신들림, 점, 기도, 탁선, 다신숭배, 신크레티즘 등에 있어 동아시아 민속종교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신도의례와 도덕에서 우리는 종종 불교적 요소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체로 종교를 포함하여 모든 문화체계는 복합적이며 중층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신도를 ‘순수하게 일본적인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단순화의 오류라 할 수 있겠다. 이하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면서 일본 신도의 정의, 신관념, 신화, 역사, 의례와 관습 등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신도의 정의
먼저 ‘신도’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신도는 원래 『주역』 관(觀)괘에서 “하늘의 신도를 봄에 사시(四時)가 어긋나지 않는다. 성인이 신도로써 가르침을 베푸니 천하가 복종한다” 하여 ‘신묘한 도’라는 의미로 쓰이던 말이다. 일본의 경우 이 말의 최초 출전은 『일본서기(日本書紀)』 31대 요메이(用明)천황 즉위전기(卽位前紀: 천황이 되기 이전의 사항을 서술한 글)편인데, 거기에는 “천황이 불법(佛法)을 믿고 신도를 존숭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서 요메이천황은 한반도로부터 공식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29대 긴메이(欽明)천황의 넷째 아들인데, 이 긴메이천황의 둘째 아들인 30대 비다쓰(敏達)천황의 즉위전기에는 “천황이 불법을 불신하고 중국의 문학과 역사를 귀히 여겼다”는 기록이 나오며, 또한 36대 고토쿠(孝德)천황의 즉위전기에도 “불법을 존숭하고 신도를 경시했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상에서 우리는 신도라는 용어가 천황의 즉위전기와 관련하여 등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불교와의 대비어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때 즉위전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신도를 둘러싼 어법이 후대 사가들의 평가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신도라는 용어는 요메이천황 및 고토쿠천황 당대인 6세기 말에서 7세기 중엽의 실제 용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본서기』가 편찬된 8세기 초엽의 용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신도라는 용어가 불교의 대비어로만 나온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인이 외래의 종교문화와의 대비를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신도라는 용어 자체는 『주역』 외에 『진서(晋書)』 등의 중국고전까지 그 출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특히 단군계 및 증산계 민족종교에서 ‘신명(神明)’이라든가 ‘신교(神敎)’ 등의 개념과 더불어 신도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어쨌든 일본에서 문헌상 처음 등장할 무렵의 그것은 아마도 당시 중국에서 도교가 자칭 ‘신도’라 한 것을 채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일본 신도의 형성과 도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일찍부터 주목하는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일본 학자들은 신도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을까? 가령 『국사대사전(國史大辭典)』은 신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다. “신도란 일본민족의 신관념에 입각, 일본에서 발생하여 주로 일본인 사이에 전개된 전통적인 종교적 실천과 그 배경을 이루는 생활태도 및 이념 등의 총체를 가리킨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나 신도는 교조가 없는 자연발생적인 종교이며, 주로 일본인이 담지자인 민족종교이다. 각 시대별로 다양한 신도론이 있기는 하지만, 확정적인 도그마는 없다. 신도는 정비된 신학이라든가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가치체계, 사유형식, 행동양식으로서 일본인의 생활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런 정의는 기본적으로 신도를 하나의 종교로 간주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본종교사전(日本宗敎事典)』의 다음과 같은 애매한 정의는 본질적으로 신도가 종교 아닌 것으로 규정된다. “신도가 과연 종교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일본의 풍토에서 생겨났고 일본민족의 역사와 함께 성쇠를 거듭해 온 종교문화의 일단면으로서, 일본인의 생활감각에 밀착된 전통문화일 따름이다. 그것은 종교로서의 고유한 역사나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신도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의 풍토와 사회가 그 자체로 종교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도는 종교 이전의 종교이다.”
어떤 경우이건 위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은 신도를 일본인의 생활에 밀착된 전통문화로 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이런 공통점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하여 일본 민속학의 창시자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 1875-1962)를 비롯하여 많은 신도 연구자들은 대체로 신도를 “일본 고래의 가미(神)에 대한 신앙” 혹은 “일본인의 고유한 신앙”으로 규정해 왔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시대와 장소에 따른 가변성과 다양성을 무시한 채 신도를 불변하는 어떤 실체로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이에 비해 신도를 “신사(神社)의 종교 혹은 신사에서 행해지는 의례적 행위 내지 마쓰리(祭)의 종교”로 규정하는 정의는 비교적 구체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신도를 어떻게 정의내리든 간에 일본인의 일상생활 및 문화현장 속에 엄연한 실체로 존재하는 신사와 마쓰리의 풍경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도의 신관념
일본인은 신도의 신(神)을 ‘가미’라고 부른다. 일본 신도에서는 ‘8백만의 가미(야오요로즈노가미)’가 있다고 말해지는데, 이 수많은 가미들의 기원은 주로 조령(祖靈) 즉 조상신이라 할 수 있다. 예부터 일본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사령(死靈)이 가족과 촌락을 수호하는 가미가 된다고 생각하여 숭경해 왔다. 이와 같은 조상숭배의 관념에서 이른바 ‘우지가미’(氏神)라는 촌락공동체의 수호신 관념이 형성되었고 이 우지가미를 중심으로 하여 신사(神社)가 발전된 것이다. 한편 후대로 내려오면서 일본 고래의 조상숭배 관념이 불교와 결합되면서 보다 복잡하게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컨대 현대 일본인들의 가정을 방문해 보면 ‘불단’(佛壇)이 모셔져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불상 대신 조상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런 조상숭배적 관념과 더불어 신도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으로서 자연숭배의 관념을 들 수 있다. 모든 자연물에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신앙은 현재까지도 신도의 에토스(ethos)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사실 신도의 가미 중에는 자연물을 신격화한 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령 일본인이 황조신으로 간주하는 아마테라스(天照大神)는 태양을 신격화한 것이고 그밖에도 달을 신격화한 쓰쿠요미(月讀命), 폭풍우를 신격화한 스사노오(須佐之男命)를 비롯하여 일본 신도의 판테옹에는 산, 들, 강, 바다, 나무, 새, 짐승, 벌레, 풀, 금속, 돌 등의 자연물이 신격화되어 등장한다.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일본인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자연신으로서 대표적으로 산신과 해신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은 국토의 7할이 산악지대인 섬나라인 만큼 일찍부터 산신과 해신에 대한 신앙이 풍부했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죽은 자의 영혼이 산으로 가서 정화된 후에 조령(조상신)이 되어 다시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온다는 민속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일본 민속학에서는 이를 ‘산중타계신앙’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산신이란 비단 산의 신뿐만 아니라, 수목의 신, 수렵의 신, 금속의 신, 돌의 신, 불의 신, 물의 신 등을 모두 총칭하는 말이다. 또한 고대 일본인은 바다 저 건너편에 ‘도코요’(常世)라 불리는 타계가 있으며 그곳에 해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관장하는 이런 해신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신은 에비스(惠比須)이다. 에비스는 오늘날 현대 일본사회 및 특히 상인들 사이에서 상가(商家)의 수호신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오른손에 낚싯대 그리고 왼손에 도미를 들고 있는 해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칠복신(七福神) 가운데 하나로서 인도나 중국 기원이 아닌, 유일하게 일본 고유의 가미라는 점에서도 특징적이다.
어쨌든 일본 신도에서 ‘가미’라고 불리는 신은 유교에서 말하는 신과도 다르고 기독교의 신(God) 개념과도 다르다. 이 가미의 특색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신도의 가미는 인간과 질적으로 상이한 절대타자로서의 창조신이 아니다. 신도에서는 가미와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도의 경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도요쿠니(豊國)신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도쇼궁(東照宮), 메이지천황을 모신 메이지(明治)신궁, 노기 마레스케를 모신 노기(乃木)신사, 도고 헤이하치로를 모신 도고(東鄕)신사 등을 비롯하여 심지어 250여 만 전사자들을 제신으로 삼는 야스쿠니(靖國)신사의 경우처럼 인간이 사후 혹은 생전에 가미로서 숭배되고 제사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국가신도체제 하에서 천황은 살아 있는 가미(現人神)로 숭배 받았으며, 금광교(金光敎)나 천리교(天理敎) 등의 신종교 교조들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 생신(生神)으로 제사지내지기도 했다.
둘째, 신도의 가미는 선악의 구분을 넘어서 있다. 다시 말해 신도의 가미는 서구의 윤리적 유일신관에서 전제가 되어 있는 절대적으로 선한 신이 아닌, 도덕적인 선악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로 상정된다. 이는 일본인의 일반적인 신관념을 가장 전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의 ‘가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가미란 고전(『고사기』 등을 가리킴)에 나오는 천지의 제신들을 비롯하여, 그 신들을 모시는 신사의 어령(御靈), 인간, 조류, 짐승, 초목, 바다, 산 등의 무엇이든, 범상치 않으며 은덕 있고 두려운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가미에는 이렇게 여러 종류가 있다. 가령 귀한 가미, 천한 가미, 강한 가미, 약한 가미, 좋은 가미, 나쁜 가미 등이 있으며, 그 마음도 행함도 여러가지라 어떤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古事記傳』) 반드시 도덕적 가치에만 의존하지 않는 신도의 선악관념이 이런 신관념과 연동함은 말할 나위 없다.
셋째, 신도에서는 추상적이거나 초월적인 신이 숭배된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일본인은 인간에게 매우 친숙하고 현실적인 가미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미를 호칭할 때 마치 이웃집 아저씨를 대하듯이 ‘~가미상’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상’이라는 표현은 우리말의 ‘~님’에 해당하는 일상어이다).
넷째, 신도의 가미와 인간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인 give-and-take의 관계에 가깝다. 즉 인간은 가미를 숭경함으로써 가미의 영위(靈威)를 높여주며, 그 대가로 가미는 인간을 지켜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다섯째, 신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신앙되는 가미는 전술했듯이 조상신이다. 물론 그밖에도 무수한 가미들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신사를 참배할 때 자기가 지금 예배드리는 대상이 어떤 가미인지 그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중요한 것은 가미가 현실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복덕을 가져다주느냐 하는 데 있고, 그 가미의 이름이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긴다. 때문에 가미의 이미지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한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도신화
한편 산신과 해신은 『고사기(古事記: 712년에 편찬된 일본 최초의 역사서이자 서사문학)』와 『일본서기(日本書紀: 720년에 편찬된 일본 최초의 관선 정사)』의 신화체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신 호오리(火遠理命=山幸彦, 야마사치히코)와 해신 호데리(火照命=海幸彦, 우미사치히코) 이야기가 그것이다. 형제신인 이 두 신의 이야기는 일본 신도신화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그 말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서기』에 비해 더 조직화된 신화체계를 보여주는 『고사기』를 중심으로 신도신화의 중요한 장면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태초에 아메노미나카누시노가미(天御中主神) 이하 다섯 천신(別天神, 고토아마쓰가미)과 구니도코다치노가미(?常立神) 이하 일곱쌍의 천신(神世七代, 가미요나나요) 등의 천지창조신들이 출현한다. 이 가미요나나요 중의 한 쌍인 남신 이자나기(伊耶那岐神)와 그의 누이동생 이자나미(伊耶那美神) 양신이 결혼하여 국토와 신들을 낳는다. 이때 불의 신을 출산하다가 죽고 만 이자나미를 잊지 못하여 이자나기는 황천을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이자나미의 분노를 산 탓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간신히 지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이자나기는 물로 부정을 씻어내는 미소기(祓) 의례를 통해 아마테라스(天照大神), 쓰쿠요미(月?命), 스사노오(須佐之男命)의 삼신(三貴子)을 낳는다. 이 삼신은 각각 신들이 사는 다카마노하라(高天原, 그리스 신화의 올림퍼스산처럼 천상의 신들이 거주하는 신화적 공간) 즉 천상세계(아마테라스)와 밤의 세계(쓰쿠요미) 그리고 바다의 세계(스사노오)를 통치하도록 위임받는다. 그러나 스사노오는 이런 결정에 불만을 품고 아마테라스의 통치 영역에 들어가 난폭한 행동을 일삼았는데, 이에 견디지 못한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는 아마노이와토(天岩?)라는 굴에 숨어버린다. 그러자 세상이 어두워졌고, 이에 당황한 신들이 의논 끝에 제사와 춤을 통해 여신을 다시 굴에서 나오게 하는 한편, 스사노오를 다카마가노하라에서 추방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즈모(出雲)라는 곳을 중심 무대로 전개된다. 지상으로 추방된 스사노오는 머리가 여덟 개인 거대한 뱀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한 후 산신의 딸과 결혼하고, 그 후손인 오쿠니누시(大?主神)가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葦原中?) 즉 일본땅을 통치하는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러나 다카마노하라의 신들은 아마테라스의 직계 자손이 지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 수차례 사자를 파견하여 결국 오쿠니누시를 설득함으로써 국토 이양의 동의를 받아 낸다. 이에 새로운 통치자로서 아마테라스의 후손인 니니기(??芸命)가 삼종의 신기(구슬, 거울, 칼)를 가지고 5부족과 함께 휴가(日向) 다카치호(高千?)의 구지후루타케(久士布流多?) 봉우리로 내려온다. 이리하여 무대는 다시 휴가로 바뀌고 니니기는 그곳에서 지상의 여인과 결혼한다. 한편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가운데 호데리와 호오리 형제는 어느 날 서로 도구를 바꾸어 사냥을 하기로 했다가 동생 호오리가 형의 낚싯바늘을 잃어버린다. 이에 상심하여 울고 있던 호오리는 해궁으로 가서 해신의 딸과 결혼하며 거기서 잃어버린 낚싯바늘을 되찾아 나오고 해신의 도움으로 형 호데리를 굴복시킨다.
일본 천황가에서 초대천황으로 말해지는 진무(神武)천황은 바로 산신 호오리의 자손이다. 이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약술한 위 신도신화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인물은 말할 것도 없이 아마테라스이다. 일본 천황가의 시조신으로 간주되는 아마테라스는 위 이야기에서 다카마노하라로부터 니니기를 지상으로 내려 보내 지상적 왕권의 근원으로 삼은 주체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아마테라스를 태양의 여신이자 천황가의 시조신으로 보는 이해는 실은 근대 천황제 국가에서 결정적으로 굳어진 것이며 이후 일본에서 하나의 상식으로 통하게 되었다. 요컨대 신도신화는 태양신앙(아마테라스 신앙)을 배경으로 하여 초월적 권력에 의한 국가통일 과정에 신화적 표현을 부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거기에 산신신앙과 해신신앙이 편입되는 형태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신도신화는 고대 일본 각 지역의 다양하고 개별적인 신화들이 6세기경 이래 정치적 목적 아래 체계화되어 형성된 것이다. 이때 『고사기』의 편자는 다카마노하라와 그곳의 통치자인 아마테라스를 신화의 중심에 놓았다.
우리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를 대표하는 이세신궁(伊勢神宮)과 이즈모대사(出雲大社)를 통해 이와 같은 정황을 잘 엿볼 수 있다. 명실공히 일본신사의 센터라 할 수 있는 이세신궁의 성립과정은 이렇다. 아마테라스가 니니기에게 지상의 통치권을 위임하면서 수여했다는 삼종의 신기는 역대 천황의 황거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3세기경 스이닌(垂仁)천황 때 황녀인 야마토히메노미코토(倭姬命)가 야마토 정부로부터 삼종의 신기 중에 검(쿠사나기노쓰루기)을 빼내어 이세(伊勢)의 이스즈강(五十鈴川) 부근에다 안치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이세신궁 내궁의 기원이 되었다. 또한 5세기경 유라쿠(雄略)천황 때에는 아마테라스의 식사를 관장하는 도요우케(豊受大神)가 다카쿠라산(高倉山) 산록에 모셔졌고 거기서 이세신궁 외궁이 비롯되었다. 한편 니니기에게 국토를 이양한 이후 오쿠니누시는 이즈모에 은거했는데, 아마테라스가 그 이즈모에다 오쿠니누시를 위한 신사를 건립할 것을 명함으로써 이즈모대사가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서 도요우케라든가 오쿠니누시는 지방 각지의 토착신이었는데, 그것이 야마토 정권의 정치적 통합과정에서 아마테라스 신화에 포섭된 것이다. 요컨대 신도신화는 정치적인 의도 하에 만들어진 왕권신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도신화를 이처럼 작위적인 왕권신화로 규정하는 데만 머무른다면 우리는 틈새에 남겨진 많은 여백들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신도신화에서 일본인의 독특한 신화적 상상력을 읽어낼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전술한 가미요나나요 중에서 마지막으로 출현한 남매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근친상간을 통해 일본 국토와 신들을 낳는 장면을 상기해 보자.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표류하는 일본 국토를 단단하게 만들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에 두 신은 천신들이 하사해준 아메노누보코(天之沼矛)라는 보석창을 가지고 아메노우키하시(天浮橋)라 불리는 천상의 다리 위에 서서 밑의 바닷물을 휘젓기 시작했다. 이때 그 거대한 창 끝에서 떨어진 소금물이 굳어져 작은 섬이 되었는데, 이 섬이 곧 ‘저절로 응고된 섬’이라는 뜻의 오노고로시마(?能碁呂嶋)이다. 이윽고 두 신은 이 섬에 내려와 아메노미하시라(天之御柱)라는 큰 기둥을 세웠는데, 이 기둥은 말하자면 엘리아데가 말하는 우주목(cosmic tree) 혹은 세계축(axis mundi)에 해당되는 하나의 중심 상징(center symbolism)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의 여러 문화권에서는 이런 세계축을 중심으로 우주와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묘사하는 신화들이 보편적으로 많이 발견된다. 그런데 신도신화의 경우는 우주나 인간이 아니라 일본 국토의 창조에 세계축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뿐만 아니라 남녀 생식기의 신체적 차이에 관심을 보이는 다음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즉 이자나기는 이자나미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묻는다. 그때 이자나미는 “나의 몸은 잘 자라고 있는데, 한 곳이 전혀 자라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이자나기는 “나의 몸도 잘 자라고 있는데 한 곳이 지나칠 정도로 자라고 있소. 그러니 내 몸에서 지나치게 자라는 부분을 당신 몸에서 전혀 자라지 않는 부분에 집어넣어 국토를 낳으면 어떻겠소?”라고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남녀 생식기와 성교를 묘사하고 있는 이 문답에서 이자나미가 이자나기의 제안에 동의하자, 둘은 세계축 곧 아메노미하시라를 돌면서 구애의 몸짓을 한다. 서로 기둥의 반대쪽에서부터 출발했다가 마주쳤을 때 이자나미가 먼저 “아, 아름다운 남자여!”라고 말하자 이자나기도 “아, 아름다운 여자여!”라고 말했다. 이렇게 눈이 맞은 두 유혹자(두 신의 이름 중에 들어 있는 ‘이자’라는 말은 ‘유혹’을 뜻한다)가 결합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이리하여 두 신 사이에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났지만, 불행히도 그 아이는 히루코(水蛭子) 즉 거머리였다. 둘은 히루코를 갈대배에 태워 바다로 떠내려 보냈다. 그 다음에는 아와시마(淡島)라는 섬을 낳았지만, 이 또한 실패작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두 신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천신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천신들이 점을 친 결과, 이자나미가 먼저 구애를 했기 때문이라는 점괘가 나온다. 이에 따라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다시 한번 탑돌이를 재현했고 이번엔 이자나기가 먼저 프로포즈를 했다. 그러자 이른바 정상적인 출산이 이루어져 여덟 개의 섬을 낳게 되었다. 이것이 일본 국토의 기원이며, 그 최초의 국명은 오호야마노쿠니(大八嶋國)였다.
이 장면은 세계의 여타 신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몸의 상상력’으로 옷을 입고 있다. 그것은 특히 일본 열도와 인간의 몸 사이에 전제된 달짝지근한 유비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이후에도 두 신은 계속해서 여섯 개의 섬을 비롯하여 가옥의 신, 강의 신, 바다의 신, 바람의 신, 나무의 신, 산의 신, 배의 신, 곡물의 신, 불의 신 등을 낳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 장면이다. 이자나미가 불의 신 히노가구쓰치(火之迦具土神)를 출산하다가 생식기가 타버리는 바람에 끙끙 앓다가 죽는다는 극적인 설정이 그것이다. 이자나미는 죽기 전에 구토와 똥오줌을 쌀 정도로 지독하게 고생한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여신은 계속 신들을 생산해 냈다. 그리하여 금속을 표상하는 가나야마비코(金山毗古神)와 가나야마비메(金山毗賣神)가 구토로부터, 점토를 상징하는 하나야스비코(波邇夜須毗古神)와 하니야스비메(波邇須毗賣神)가 똥으로부터, 그리고 관개용수를 담당하는 미쓰하노메(彌都波能賣神)와 생산을 관장하는 와쿠무스비(和久産巢日神)가 오줌으로부터 생겨났고 또한 음식을 관장하는 도요우케비메(豊宇氣毗賣神)가 태어남으로써 도합 35명의 신들과 14개의 섬들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로부터 생겨나게 되었다. 요컨대 신도신화는 일종의 ‘몸’으로서의 일본열도를 낳는 이야기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그것이 천황가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왕권신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황가의 조상신으로 말해지는 아마테라스의 탄생신화에 대해 좀 더 상술해보자. 죽은 아내 이자나미를 황천국에서 데리고 나오는데 실패한 이자나기는 곧바로 츠쿠시(竺紫) 히무카(日向)의 다치바나노오도(橘小門)라는 강가로 달려가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죽음의 부정을 물로 씻어낸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신도 정화의례의 기본을 이루는 이른바 미소기하라에(祓祓) 의식의 기원이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미소기하라에 의식을 통해 일본신도 판테온의 최정점이자 황실의 조상신으로 말해지는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탄생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앞서 이자나기가 벗어 던진 옷조각들에서 재앙과 악을 바로잡는 선신 나호비(直毘神)를 비롯한 많은 신들이 생겨났다. 이어 이자나기가 자기 ‘몸’을 씻자 거기서도 많은 신들이 태어났는데, 그중 삼귀자(三貴子)라 칭해지는 삼신의 탄생담이 특히 중요하다. 즉 이자나기가 왼쪽 눈을 닦자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오른쪽 눈을 닦자 달의 신 쓰쿠요미(月讀命)가, 그리고 코를 씻었을 때 스사노오(須佐之男命)가 태어난다. 이 이야기는 반고(盤古)신의 시체로부터 우주 만물이 생겨났다는 중국의 우주기원신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반고신화에 의하면 왼쪽 눈이 태양이 되고 오른쪽 눈이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아마테라스의 탄생은 죽은 신의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신의 ‘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태양신이자 동시에 황조신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점에서 반고신화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어쨌거나 이자나기가 다름아닌 몸(특히 눈)을 씻었을 때 신도신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황조신 아마테라스가 태어났다는 묘사에서 일본인의 독특한 ‘몸의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장면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아마테라스의 탄생이 이자나기라는 남성신의 단성생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도 부연할 만하다. 남성신에 의한 단성생식의 모티브는 세계의 다른 신화에서도 그렇게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내친 김에 아마테라스가 여신이냐 남신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자. 통상 아마테라스는 태양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여신으로서의 아마테라스 이미지는 메이지시대 이후 천황제 국가의 형성에 따라 정착된 것이며 그 이전에는 대중들 사이에서 오히려 남신으로 관념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더 나아가 원래 천황가의 조상신은 아마테라스가 아니라 다카미무스비였다는 주장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테라스는 원래 ‘히루메(日女)’라 불리웠으며, 이세(伊勢)의 태양신을 섬기는 여제관(齋宮)이자 그 태양신의 아내로 간주되던 무녀였는데, 7세기 말경 덴무(天武)천황의 아내이자 히루메이기도 했던 지토(持統)천황이 즉위한 이래 아마테라스가 태양의 여신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말하자면 원래는 태양신을 모시던 여제관이 태양신 자체로 모셔지게 되면서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라는 이미지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신도신화에는 가령 아프리카의 조그만 부족들도 가지고 있는 우주기원신화라든가 인간기원신화가 나타나지 않으며, 그 대신 국토의 기원에 대한 서술이 강조되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신도신화에는 성적 상징이라든가 몸적 담론이 풍부하다. 일본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먼저 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일까? 그들에게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일단 관심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래서인가 신도신화에는 형이상학적 표현은 그다지 발달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깊이 있는 ‘철학’과 ‘사상’과 ‘사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에 불과하다. 형이상학만이 최고라고 고집하는 도그마에 빠져있지 않는 한 말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제 상상력의 자유를 더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상상력은 결코 형이상학적 정신에만 갇혀 있는 수인(囚人)이 아니다. 몸의 기억으로 각인된 상상력이란 것을 한 번 상상해 보면 어떨까? 기원의 상상력에서 일본인들은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면모를 보여 준다. 세계의 어떤 신화에서도 신도신화만큼 자신들이 서 있는 땅의 기원에 대해 놀랄 만큼 집요하게 파고 든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을 전술했듯이 ‘몸의 상상력’이라고 이름 붙인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우리 앞에는 이 몸의 상상력으로 일본이라는 타자 안에 잠복해 있는 숨은 기호들을 다시 읽어내야 할 과제가 놓여져 있다.
(2부는 다음호에)
《대순회보》 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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