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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太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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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5.24 조회2,7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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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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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말이자 정겨운 이미지다. 국기인 태극기를 보며 성장하고 태극기를 통해 조국을 떠올리니 말이다. 그렇게 한국인의 가슴에는 늘 태극이 함께한다. 또한 우리 수도인들에게도 태극은 종단 창설 유래문을 통해 가까이해온 뜻깊은 어구이다.

 

 

“대순(大巡)이 원(圓)이며 원(圓)이 무극(無極)이고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라. 우주(宇宙)가 우주(宇宙)된 본연법칙(本然法則)은 그 신비(神秘)의 묘(妙)함이 태극(太極)에 재(在)한 바 태극(太極)은 외차무극(外此無極)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리(眞理)인 것이다.…”

 

 

여기에서 보듯 대순진리를 면이수지(勉而修之) 하는 우리 수도인들과 태극 사이에는 뭔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 인연의 끈을 따라 태극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태극은 실로 거대해서 그 크기가 없다. 그래서 ‘太: 큼’ ‘極: 매우 높고 요원함’이라 일러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거대함을 이 한 단어 속에 집적(集積)했다. 태극은 만물의 본원이다. 그렇듯 태극은 근원으로서 천지와 만물 그리고 인간이 시작된 곳이다. 사물처럼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마음의 깨달음 가운데 다가설 수 있으며 그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학문과 수행의 한 목표이기도 하다.

 

태극이라는 말은 중국 고전인 『주역』에 가장 먼저 등장한다.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는다(易有太極, 是生兩儀)”라고 소개된다. 뒤로 중국 후한의 반고가 지은 전한 시대 역사서 『한서(漢書)』에 태극은 원기(元氣)로 되어 있고, 당나라 시대 오경(五經) 주석서의 하나인 『주역정의(周易正義)』에도 하늘과 땅이 둘로 갈라지기 이전의 혼돈 상태의 원기(元氣)로 태극은 설명된다. 이처럼 우주의 시원으로서의 태극을 기(氣)로 본 것은 노장사상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유학에서 태극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북송시대의 주돈이(周敦頤, 1017~1073)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통해 태극을 우주의 궁극적 근원으로 소개했다. 태극을 설명하기 위해 무극(無極)과 동정(動靜)의 개념을 넣어 “무극이면서 태극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음을 낳는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고 하였으며 나아가 오행(五行)의 내용을 첨가해 태극으로부터 음양오행 그리고 만물의 순서로 우주 형성의 과정을 설명했다.

 

같은 북송시대의 장재(張載, 1020~1077)는 우주의 본체로서 태극과 같은 의미인 ‘태허(太虛: 크게 비어 있음)’를 이야기했다. 태허에는 기(氣)가 있고 기가 모여 만물이 된다고 했으며, 만물이 흩어지면 다시 태허가 된다고 했다. 태극에 대한 장재의 이러한 입장은 우주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의 물음에 대해 기를 중심에 둔 질료적 측면에 주목한 데 있다.

 

장재와 달리 남송시대의 주자(朱子, 1130~1200)는 태극을 질료로서의 기(氣)가 아닌 이치로서의 리(理)로 규정했다. 우주를 이루는 가장 궁극적인 시초를 질료적 측면보다는 원리적 측면에서 보고 리를 제시한 것이다. 리는 형체가 없는 틀로서 우주 만물이 그 틀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그러한 틀로서의 이치가 질료보다는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그는 태극을 ‘통체태극(統體太極)’과 ‘각구태극(各具太極)’으로 설명한다. 태극은 만물의 시원으로서 만물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데 이때의 태극 그 자체로서의 고유한 모습을 통체태극이라 하며, 이 태극이 만물을 생성하면서 그 속에 내재해있는 상태의 태극을 각구태극이라 했다. 즉 주자는 태극을 초월적 시원이면서도 늘 만물과 함께 있음을 강조하고자 했다.

 

우리나라 성리학에서 태극에 대한 논의는 조선 초기에 매우 활발했다. 초기의 논의는 이언적(李彦迪, 1491~1553)에 의해 주로 나타났다. 주자를 계승하여 태극을 리(理)라고 봤다. 따라서 태극은 만물에 대해 초월해 있으면서도 현실적 존재자들 속에 실재하는, 초월과 실재의 양면적 모습을 보인다. 시공을 초월한 근원적 존재인 태극을 혼연(渾然: 포괄성)과 찬연(粲然: 순수성)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다고 하였으며 빈 듯하면서도 있고[虛而有: 무와 유의 동시성], 고요와 움직임을 동시에 지닌[寂而感: 정지와 운동의 동시성] 존재라 주장했다.

 

주자와 장재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듯 이언적과 서경덕(徐敬德, 1489~1546) 또한 동일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이언적과 동시대 인물인 서경덕은 장자(莊子)와 장재(張載)의 영향으로 기(氣)를 우위에 두는 관점에서 태극을 바라보았다. 그는 우주의 모습을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나누고, 선천은 태허(太虛)라 했으며 태허의 본질은 허(虛)로서의 기(氣)라 했다. 따라서 선천에는 오직 기만 있고, 기가 드러나는 시점인 후천에 이르러 원재료로서의 기가 동(動)과 정(靜)이라는 양면적인 특징으로 나타나는데, 그 나타남의 원리가 태극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서경덕이 말하는 태극은 근원적 기 다음에 나타나는 기의 후발주자이다. 따라서 그는 기가 선행하고 그 뒤에 기가 변화하고 흐르는 법칙으로서의 태극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태극에 대한 이러한 이언적과 서경덕의 엇갈린 견해는 이황(李滉, 1501~1570)과 이이(李珥, 1536~1584)로 이어진다. 이황은 이언적이 리로서의 태극의 능동성을 강조한 점에서 이언적의 편에 섰다. 태극은 기의 음양(陰陽) 동정(動靜)과 분리돼 있지 않다는 불리성(不離性)과 함께, 이기(理氣)가 서로 하나로 섞일 수 없다는 부잡성(不雜性)을 강조해 리(理) 자체의 독보성으로 태극의 본질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이이는 리(理)로서의 태극은 기와 하나이면서 능동성을 가지지 않고 변화하는 기의 현상적 활동성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움직이는 것은 리가 아닌 기이고, 리는 그 기의 움직임에 올라타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과 한국의 사상사에서 태극은 사유 체계의 중심에 있으며 이것을 토대로 거대한 사상적 축조물이 세워졌다. 태극은 우주의 근본 자리이자 인간 본성의 기원으로 제시되어 유한한 현상 세계의 기원과 인간 세계의 질서 회복을 위한 인문(人文)적 가치를 가진다.

이제 ‘종단 창설 유래문’과 ‘도전님 훈시 말씀’이 전하는 태극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태극이야말로 지리(至理)의 소이재(所以載)요, 지기(至氣)의 소유행(所由行)이며, 지도(至道)의 소자출(所自出)이라. 그러므로 이 우주의 모든 사물(事物) 곧 천지일월(天地日月)과 풍뢰우로(風雷雨露)와 군생만물(群生萬物)이 태극의 신묘한 기동작용(機動作用)에 속하지 않음이 있으리오.…”

(종단 창설 유래문)

 

 

“우리 종단의 명칭은 ‘大巡眞理會’이다. 대순은 동그라미다. 원(圓)이고 막힘이 없다. 진(眞)은 진리(眞理)의 진이다. 대순은 큰 大, 돌 巡 해서 크게 돈다는 것이다. 각(角)은 가다가 보면 꺾이고 막히는 데가 있다. 원은 걸리는 데도 막히는 데도 없다. 이것을 대순이라 한다. 원이 무극이다. 무극은 끝이 없다. 극이 없다. 태극은 무극이란 말과 동일하다. 태극의 太는 클 태이다. 대순은 아주 무궁무진하고 한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것이다. 대순진리회는 크게 도는 참된 진리이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다.”

(도전님 훈시, 1991년 9월 19일)

 

 

 

종단 창설 유래문과 도전님 훈시 말씀 또한 태극에 대한 전통적 정의와 마찬가지로 태극이 가진 근원성과 무한성을 강조하고 있다. 태극의 태(太)가 ‘클 태’라는 자전적 의미와 ‘태극이 지리(至理)의 소이재(所以載: 실려 있는 바)요 지기(至氣)의 소유행(所由行: 말미암아 운행되는 바)이며 지도(至道)의 소자출(所自出: 나오는 곳)’이라는 구절에서 보듯, 무량한 단 하나의 궁극적인 진리로서의 태극이 모든 이치와 천지만물의 근원이며 끝이 없을 만큼 크다는 내용이 말씀의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수행은 이러한 태극의 크고 막힘없는 진리를 배워 서로 다투지 않는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밉고 고움 없이 사람과 만물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처럼 태극이란 개념은 우리 종단의 진리를 비롯해 인류 지성사의 큰 물줄기 가운데 흘러온 유서 깊은 주제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논의 가운데서도 태극에 대한 가장 공통적인 특징만 모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태극은 만물 내지는 현상 세계의 근본 자리이다. 태극은 정해진 형체와, 특정한 자리, 일정한 소리와 냄새가 없다. 그리고 태극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디에나 있으며 또한 각각의 모든 군생 만물을 껴안고 늘 그들과 함께한다. 또한, 우리 도인들이 믿고 수행해야 하는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의 종지가 바로 대순진리(大巡眞理)인데, 이것은 ‘원=무극=태극’과 같이 무궁무진하고 이 천지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진리이다. 크나 큰 우주의 무상한 진리라는 의미로서의 태극은 대순진리회의 창설 유래에 전해져 대순(大巡)이라는 새로운 명칭 가운데 ‘지상신선실현과 지상천국건설’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 수도인들의 깨달음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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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서울: 예문서원, 2002).

 

 

<대순회보 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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