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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전통가락 풍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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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09 조회2,5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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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이 다섯 박자의 응원 장단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한국인 모두를 하나 되게 했다. 7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나라 응원문화의 한 부분으로 정착된 이 장단은 다름아닌 우리 전통 풍물가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이 다섯 장단이 그렇게도 우리에게 친숙한 이유는 어쩌면 선조들로부터 온 전통 풍물가락의 흥취가 이미 우리 몸 속 깊은 곳으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치 DNA 유전자로 우리에게 이어져 오는 듯 살가운 우리 풍물놀이, 그 문화의 맥을 되짚어 보자.

 

풍물놀이의 유래와 명칭

 

  우리 고유의 음악적 장르인 풍물놀이는 민족의 토속적 삶 속에서 생성되었고 변형, 발달을 거쳐 지금의 문화적 결정체를 이루었다. 그 유래는 정확히 알 수가 없고 풍물놀이를 지칭하는 여러 다른 명칭들을 통해 단지 짐작할 뿐이다. 풍물놀이는 ‘굿’이라는 이름 하에 풍물굿, 풍장굿, 두레굿이라 하기도 했다. 행사의 주체나 목적에 따라서는 마을굿, 당산굿, 걸립굿, 판굿, 마당밝기라고도 했으며 행사 시기에 따라 대보름굿, 백중굿, 호미씻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져 왔다.

  풍물놀이를 굿이라고 하여 세시놀이와 함께한 것을 보면, 풍물놀이에는 놀이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각종 세시명절 가운데 행해져 액운을 쫓고 경사를 기원하며 한 해 풍년에 감사의 뜻을 올리는 민간신앙과 관련해 유래된 것이라 하겠다. 어쩌면 풍물놀이는 민족의 토속적 삶의 뿌리와 그것을 표현하고자 한 고유의 미적 감각에서 창출된 민속놀이의 기본 토대인 것이다.

  그런데 풍물놀이는 일반적으로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축소되어 불려진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민족의식 말살과 농업 장려 정책의 의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31년 일본인 학자 오청이 지은 『조선의 연중행사』라는 책에 ‘농사일에만 쓰는 음악’이라고 풀이되어 그 의미가 오늘날까지 굳어진 것이다. 그래서 1993년 국립국악원과 국악 교육협의회에서 국악 교육내용 통일안을 마련해 ‘농악’이란 이름 대신 ‘풍물놀이’로 고쳐 부르기로 한 것이다.

  또한 풍물놀이는 ‘사물놀이’로도 흔히 인식된다. 사물놀이는 1978년 2월 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의 네 사람이 풍물악기 중 징, 장구, 북, 꽹과리의 네 가지 타악기로 만들어 낸 최초의 실내 무대극 가락이다. 그전에는 ‘웃다리 풍물 앉은 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민속학자 심우성씨가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풍물놀이가 다양한 문화적 형태로 뻗어갈 수 있는 창조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풍물놀이가 이전 선조들의 생업과 삶의 한 형태로부터 음악·춤·연극 등의 종합문화예술로 거듭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체계와 질서가 담긴 풍물놀이의 편성

 

  풍물놀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체계와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상쇠를 중심으로 그 이하 치배와 잡색 등의 역할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그 구성형태를 보자면 지역에 따라 그 인원과 편성법이 조금씩 다른데 기본적으로는 깃대, 나발, 꽹과리, 징, 장구, 북과 소고, 잡색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꽹과리를 치는 ‘쇠잽이’는 1~5명인데 이중 대표자를 ‘상쇠’라고 부른다. 상쇠는 직접 놀이에 출연하면서 연출자와 지휘자의 역할을 겸함으로써 전체 풍물놀이를 이끌어간다. 상쇠의 보조역할에는 징을 다루는 ‘징수’가 있다. 대개 1~2명인 이들은 놀이 중 가락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잡아 준다. 장구를 치는 ‘장구잽이’는 2~6명 내외로 구성되어 상쇠의 지휘에 따라 가락을 연주하고 다양한 춤동작을 보여주면서 진놀이를 한다. 이들은 쇠잽이들처럼 독자적인 개인놀이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북수’는 1~4명 내외로 구성되어 북을 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다른 지방에 비해 영남지방의 풍물놀이에서 북수가 가장 발달되어 그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은 가락에 있어 징수처럼 기교적인 가락을 연주하지는 않지만 악기의 무게가 가벼워 활동적이고 다양한 춤동작을 보여준다. 소고는 보통 4~8명으로 ‘소고잽이’라 부른다. 이들도 가락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진법을 행하지만 가락보다는 주로 다양한 춤동작과 진풀이에 비중을 둔다.

  이와 같은 체계 속에서 풍물놀이는 상쇠를 중심으로 기수와 풍물악기를 든 ‘앞치배’ 그리고 소고와 잡색 등의 ‘뒷치배’가 함께 어우러진다. 앞치배가 주로 악기를 들고 선두에서 가락을 치면 이에 맞추어 뒷치배는 후미에서 춤과 노래로써 받쳐준다. 놀이가 무르익을 쯤에는 장구, 북, 소고 등의 잽이들이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저마다의 장기를 보여주며 그 흥을 더하게 된다.

  이렇듯 풍물놀이의 체계에서 알 수 있듯이 상쇠를 중심으로 공연자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그들의 마음을 모아 신명나는 한마당이 되게 한다. 각 구성원은 전체의 조화를 생각해서 상쇠의 지시에 따르며 상쇠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게끔 덕스럽게 이끌어 간다. 풍물놀이의 근본 취지이기도 한 화합은 이처럼 이끄는 이와 구성원 사이의 배려에 의한 체계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통의 지혜가 놀이문화로 승화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세시의 흐름과 함께한 풍물놀이

 

  풍물놀이는 열두 달 한 해의 흐름 속에서 그 기본 형태를 바탕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공연되었다. 아래의 세시 연행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풍물놀이는 정해진 한 해의 주기를 따라 순환하면서 정기적으로 공연되었다. 풍물놀이가 이렇게 세시의 주기에 따라 연행된 것은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이며 그에 따라 제의와 풍속이 주기적인 농경행사에 따라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풍물놀이는 현재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나 전쟁 등을 겪는 과정에서 많은 지역에서 자취를 감추고 ‘진주 삼천포풍물’, ‘호남우도 이리풍물’, ‘호남좌도 임실 필봉풍물’, ‘경기 안성풍물’ 등만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다.

  풍물놀이에 쓰이는 여러 악기들을 보면 각자가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음색이 경쾌한 것과 무거운 것,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 음의 높이가 높거나 낮은 등 서로가 달라 어울리기 어려울 듯 보인다. 하지만 악기를 다루는 이들이 체계와 질서 속에서 화합하려는 의지가 그것을 아름답게 조화시킨다. 풍물놀이의 리더는 포용하는 넓은 마음으로 구성원들을 이끌어 그들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 구성원들은 리더를 축으로 어울리는 가운데 자신감 있게 그들의 역할을 다해낸다. 이처럼 화합이라는 교훈으로 우리 풍물놀이는 세대 간의 벽을 넘어 지역의 구분 없이 전하는 정신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내적인 의미와 외적인 멋으로의 신명남이 우리 소리의 매력이며 힘인 것이다.

  이제 풍물놀이는 진풀이나 연극 등의 요소를 통해 표현 영역을 최대한 넓혀 세계를 향한 우리 문화로 발돋움하고 있다. ‘화합, 하나됨’의 기치 속에서 인종, 국가, 성별, 연령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게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의 문화 ‘풍물놀이’ 속에 있음을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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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ㆍ이정희, 『풍물놀이의 유아 교육적 가치에 대한 고찰』, 육아교육논총, 2005.

ㆍ윤명원, 『풍물놀이와 사물놀이의 음악적 차이』, 단국대학교, 2004.

ㆍ김현숙, 『농악의 이해와 지역적 특성』, 진도군립예술단.

ㆍ김원호, 『풍물굿 연구』, 학민사, 1999.

 

《대순회보》 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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