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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2016년 ‘세계신종교학회’의 스텝으로 참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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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병무 작성일2019.03.19 조회4,5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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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某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는 재인(在人)함을 느끼다

 

 

연구위원 류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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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진리회를 소개하고 있는 데이비드 김의 강연장 모습

 

 

들어가며
  ‘세계신종교학회’를 대진대학교에서 연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의 이경원 교수를 통해서였다. 이번 세계신종교학술대회는 세계신종교연구소(CESNUR), 세계신종교학회(ISSNR), 한국신종교학회(KANR)가 공동주최하고 대진대학교 산하의 대순사상학술원과 대순종학과가 행사를 주관하기로 하였다. 이 학술대회는 정기적인 국제학술회의로서 1997년부터 유럽 및 서양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100∼200명 정도의 종교학자들이 참여하여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해오고 있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무국은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세계신종교연구소이다. 이 세계신종교학회는 신종교학계는 물론 종교학계에서도 잘 알려진 국제대회다. 대회 기간 각국의 종교학자가 모여 세계 신종교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며, 개최지의 신종교문화답사를 한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변화가 극심한 신종교의 현대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신종교에 대한 새로운 연구성과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2011년에 대만에서 열린 이후 두 번째로 한국이 선정되어, 올해에 세계 대회를 유치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 규모의 종교관계 정기 학술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그러한 역사적인 개최를 대진대학교가 맡게 된 것이다. 물론 아무런 연고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세계신종교학회를 열기까지
  2010년 세계신종교 국제학술대회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렸다. 이 소식을 접한 대순진리회 교무부장 김욱 선감과 당시 신종교학회의 총무이사였던 이경원 교수가 대순사상을 신종교의 학문 분야로 발표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때부터 종단 대순진리회와 세계신종교학회와의 연결 고리가 형성되었다. 또 이경원 교수는 세계신종교학회의 생생한 분위기를 한국신종교학회의 학회지를 통해 소개함으로써 세계신종교학회와 한국신종교학회의 인연을 이어주었다. 동양의 신종교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은 2011년 국제학술대회를 대만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만에서 처음으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만은 유불선 삼교가 통합된 신종교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자국에서 미치고 있으며, 탄탄한 신종교 연구의 인적 토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만에서 치른 세계신종교학회의 무난한 성공 후에도 한국신종교학회의 꾸준한 세계신종교학회 참석은, 한국에서 2016년 세계신종교학회의 개최라는 큰 성과를 가져왔다. 한국의 개최 결정 후에도 이러한 큰 행사를 어디에서 준비할지에 대한 의견이 서로 갈렸다. 일부에서는 한국 종교학의 메카인 서울대에서 진행하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경원 교수의 설득과 대진대학교에서의 개최에 대한 자신감의 피력은 최종 행사지를 대진대학교로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세계신종교학회의 스텝으로 참여하며
  이경원 교수를 통해 전해 들은 세계신종교학회의 개최 소식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한번도 그러한 국제행사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실감 나게 다가오기보다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행사를 석 달 정도 남겨 두고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스텝이 결성되었다. 행사 진행을 위해 업무별로 구분하여 각 팀을 담당할 팀장을 정하였다. 필자가 맡은 분야는 시설관리팀이었다. 그 외에도 행정, 홍보 및 촬영, 소품 및 장식, 숙식, 학술행사 관리 및 일정진행, 총괄관리, 자료집 등의 팀이 구성되었다. 먼저 각 분야를 담당할 팀장을 정하고, 팀별 인원을 배정하였다. 팀별로 행사를 담당할 업무를 분담하여 업무의 혼선을 막고자 하였다.
  처음 모임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각 팀의 업무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결정 사항이 있으면 회의를 통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시설관리팀의 업무는 행사장과 호텔(여자기숙사를 행사 동안 편의상 호텔로 명명했다), 그리고 만찬을 위한 시설을 점검하고 꾸미는 일이었다. 먼저 행사가 진행될 장소를 돌면서 필요한 업무를 파악하였다. 행사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시설 및 가구 배치를 고려하여 필요 물품과 품목을 정하였다. 행사를 위해 와이파이 점검과 구비, 각 발표장의 테이블 배치, 휴식을 위한 공간의 확보, 안내대 및 다과 테이블 배치, 발표장의 에어컨 상태 점검 및 에어컨 바람막이 설치 등을 살폈다. 아울러 숙식을 담당하는 학우를 도와주는 업무까지 함께 담당하였다. 준비는 조금씩 진행되어 갔지만, 생각보다 진척 정도가 더뎠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학술대회 참석을 신청한 명단이 계속해서 변동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인원이 나와야 그에 따라 준비할 것들이 확정되는데, 정확한 인원이 나오지 않으니 막연하게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스텝의 옷을 도안하고 고르는 작업도 각자의 의견이 달라서 몇 번이고 샘플을 골라 입어 보고 결정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주어진 시간이 많다 보니 천천히 진행되어도 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팀별로 여유 있게 진행되었다.
  한번은 스텝 회의를 하다가 학술행사 이외에 퍼포먼스를 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세계신종교학회의 홈페이지에는 대부분 주관하는 장소의 사진이 첨부되는데, 이번에는 대진대학교의 사진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부채춤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따라서 한국을 알리는 차원에서 전통적인 부채춤을 선보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제시된 것이다. 많은 스텝은 그 의견에 찬성했고, 추가로 대순종학과 학생들의 춤도 함께 보여주자는 의견이 모였다. 그 다음은 부채춤을 학생들이 할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에게 부탁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학생들의 공연으로는 장소가 협소하고 오히려 전통적인 미를 살리기 어려우니, 부채춤은 전문가가 하고 현대적인 한류의 모습은 학생들이 공연하기로 하였다. 이제 부채춤의 공연자를 섭외하는 문제가 대두하였다. 다행히 대진대학교에 전통무용과가 있었고, 그곳에 전통무용으로 저명한 교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경원 교수가 정중하게 대회의 취지와 설명을 담은 메일을 보냈지만 상대방의 응답이 없었다. 스텝회의 도중 그 교수님에게 무용을 배우고 있는 학우가 있었고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서 부탁드리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행사 진행 한 달여를 앞두고
  점차 일정이 다가올수록 준비는 급하게 진행되었다. 행사를 보조할 대학생 스텝 선별이 급했으며, 그 학생들에게 어떤 혜택을 줄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많은 의견 끝에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만들어 주기로 하였다. 많은 대학생 신청자 중에서 공연할 수 있는 학우들을 중심으로 선별하였고, 그들은 행사 준비를 하는 틈틈이 공연 연습도 해야 했다. 일정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모든 것이 매우 급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학자들과 참여할 학자들이 결정되었다. 인원의 확정과 함께 자료집을 만들기 위한 발표자들의 프로필과 간단한 초록 원고들의 수집에 들어갔다. 동양과 다르게 서양의 학자들은 따로 자료집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하는 시도로 인해 몇몇 학자에게는 설명이 필요하기도 했다. 세계신종교학회에 사용할 문구와 로고가 결정됨에 따라 현수막의 제작도 진행되었고, 함께 여러 관계자에게 알릴 초대장도 만들어야 했다. 행사를 준비해가면서도 학우들에게 항상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이었다. 언어라는 것이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칫 모든 것을 영어로 진행하는 세계신종교학회에서 소통의 부족으로 인해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하여 몇몇 스텝은 하루하루 일정 시간을 모아 회화 연습도 병행하였다.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가 있었다. 먼저 식당의 문제였다. 대진대학교에 들어와 있는 업체가 있었지만, 그동안 음식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아서 선뜩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다른 외부업체가 들어온다면 식사 장소를 어디로 배정할지도 고민이었다. 결국, 대진대학교의 업체와 먼저 만나서 세계신종교학회의 진행을 알리고 그 행사에 맞는 격식 있는 음식을 차려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최종결정은 시식해 본 연후에 하기로 했다. 행사를 2주 남겨 놓고 시식을 해보니, 전반적인 평이 엇갈렸으며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결국, 고민은 장소의 문제였다. 할 수 없이 기존의 업체와 계약을 하되, 시식에서 드러난 문제를 적극적으로 피드백하여 반영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세 번의 만찬 중에서 한 번은 다른 업체를 선정하여 채식뷔페로 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숙식이었다. 방학 중 여자기숙사를 호텔로 꾸미기로 하였지만, 아직 방학 전이라 여학생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사전에 직접 준비할 수 없었고, 단지 필요한 물품만 파악하여 준비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또 학생들이 나가는 시점과 행사가 진행되는 일자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문제도 있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촬영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학우가 마음만 앞서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교수와 상의 후 교무부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종단의 협조로 교무부원이 영상 촬영과 사진 촬영을 도와주기로 하였다.

 

 

행사 진행 일주일 전
  행사가 다가올수록 학교 측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서 처리하다 보니, 스텝들이 느끼는 시간의 압박과 학교의 직원들이 느끼는 시간의 압박 정도는 확연히 달랐다.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그동안 무엇을 했나 싶을 정도로 아직 처리되지 않은 일들이 산재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러한 큰 국제행사를 대순종학과 혼자 치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마저도 들었다. 하지만 수도를 해오면서 느낀 것은 결국 될 일은 덕화(德化)로 되며, 인간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지극정성을 들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행사를 1주일 정도 남기고 ‘시법공부’가 나왔다. 걱정은 되었지만, 기운을 받아서 더 잘하자는 마음으로 여주본부도장으로 향했다.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나오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일 정도 남아 있었다.
  이제 시간이 없는 관계로 매일 각 팀장이 모여서 이경원 교수와 바로바로 일을 처리해 나갔다. 시간이 화살보다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회 참가 인원은 나왔지만, 여주본부도장의 교무부원들과 다른 학자분들의 참석 여부를 계속 점검해야 했다. 호텔의 방 배정이 중요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호사다마인가, 학교는 갑자기 총장이 새롭게 임명되어 행사의 진행에 마음을 쏟아줄 여력이 없어 보였다. 무엇인가 일률적으로 학교 일이라 생각하고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호텔의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7월 5일로 행사가 시작되는데 6월 말에 학생들이 나가고 나서 아직 청소가 안 된 상태였고, 방의 내부 문제를 점검할 시간조차 부족해 보였다. 학교 측에 재촉하여 청소를 7월 3일까지 마쳐 달라고 당부하고, 호텔 내부의 점검에 들어갔다. 전구가 나간 곳, 가구가 파손된 곳, 잔잔하게 손 볼 것이 많아 보였다. 한숨이 나왔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학교 측에서 청소하는 동안 호텔 내부에 들어갈 비품들이 속속들이 도착했고, 빠진 물품은 없는지 일일이 다시 점검했다.
  행사진행팀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고전무용과 교수님의 소개로 제자 한 분이 공연에 응해주셨다. 장소와 인원의 문제로 부채춤 대신에 ‘산조부채춤’으로 변경되었으며, 대학원 스텝 두 명이 함께 공연하기로 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행사진행팀은 계속해서 ‘산조부채춤’과 현대 댄스의 퍼포먼스를 연습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다과를 위한 준비를 해 왔지만, 커피 선정 문제, 커피컵의 크기와 제품 선택 문제, 다과류의 선별과 주문 문제 등 아직 처리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인터넷과 주변의 상점들을 중심으로 일일이 점검하고 업체를 선정했다. 이제는 하나하나 바로 선택해서 결정해야만 했다. 그나마 급속도로 하나하나 정리되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뒤늦게 발표장의 테이블과 안내대의 책상에 보를 덮자는 의견이 나왔고, 학교 측에 급하게 문의하여 빌리고, 부족한 부분은 외부업체에 알아보았다. 발표장마다 컴퓨터를 점검하고 프로그램을 새롭게 깔아 미리미리 점검해 보았다. 무선인터넷을 위한 와이파이기가 도착하면서 예기치 못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의 강의실에 설치된 인터넷과 무선공유기의 호환문제가 발생하였고, 심지어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곳도 있었다. 급하게 학교 측에 문의하여 보았고, 결국 학교의 전산팀이 투입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가장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팀은 소품팀이었다. 그동안 직접 디자인한 것을 중심으로 업체와 상의하면서 최종 시안을 작성해 나갔다. 주문한 현수막도 하나하나 도착했고, 소품들도 도착했다. 또 스텝들 옷도 도착해서 이제는 옷을 입고 일을 진행했다. 대학원생들은 옷에 대한 찬사가 나왔다. 생각보다 색깔이 예쁘게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학부생들의 옷은 색깔이 잘못 나와서 찜질방의 옷 같다는 불평이 나왔다. 할 수 없이 업체에 항의하여 대학원생들과 같은 색으로 하기로 하고 급하게 주문을 맡겼다. 계속해서 이곳저곳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소품팀에 의뢰했다. 이제는 명단이 확정됨에 따라 발표자와 행사 참가자의 이름표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도착한 에코백에 자료집과 안내장, 작은 소품인 필기구와 3단 우산, 사탕 등을 넣어서 준비했다. 그러다보니 계속해도 할 일은 줄어들지를 않았다.

 

 

행사 진행 2일 전(7월 3일)
  이제는 강의실의 책상들을 다시 배치해야 했다. 행사가 대진교육관 2층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2층 전체를 다시 세팅해야 했다. 발표장 5곳을 중심으로 발표테이블을 만들고 자리를 다시 배치했고, 휴게실로 사용하기로 한 강의실은 책상을 모두 비워 두어야 외부업체에서 가구가 들어올 수 있었다. 대학생 스텝들을 동원하여 4층에서 2층과 1층으로 필요한 가구를 옮기고 남는 것은 빈 강의실을 지정하여 모아두었다. 오전 내내 발표장들의 가구 배치를 마치고 다과에 쓰일 테이블도 옮겼다. 가구를 배치하고 교수회관 2층으로 가서 식사하면서, 만찬장으로 꾸밀 배치도를 다시 구상해 보았다. 식사하고 오니 행정팀에서 급하게 찾았다. 2층에 행사를 위해 배치한 책상이, 아직 수업이 편성되어 있어서 문제가 된 것이다. 행사가 2일 남았는데도 강의실이 대여되다 보니 배치된 책상들이 다시 옮겨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할 수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책상만을 다시 옮겨와서 채워 주었다. 업무의 조율이 원활하지 않아서 두 번 일 하게 된 것이다. 오후 3시부터 행사진행팀의 미팅을 하고 5시부터 공연 연습을 했다. 어찌 보면 마지막 율동을 맞추어 보는 시간이었다. 저녁 후에 남자 대학생들은 다시 모여서 수업이 끝난 2층의 가구를 재배치하였고, 여자 대학생들은 호텔의 업무를 돕기 위해 갔다. 바쁜 시간에 거의 반나절을 책상을 옮기느라고 헛되게 소비된 탓에 일정은 더욱 밀려 있었다. 학교 측에 문의하여 호텔의 청소상태를 물어보니, 7층부터 4층까지는 청소가 되었고 내일까지 청소가 끝난다는 것이다. 가구 배치를 마친 남자 대학생을 데리고 함께 호텔의 상태를 점검하러 갔다. 각층의 방들을 돌면서 하나하나 가구의 상태와 불량 여부, 그 밖에 수리가 필요한 항목을 점검하였다. 어느덧 시간은 12시를 훨씬 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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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진대학교에서의 행사를 진행한 스텝들

 

 

행사 진행 1일 전(7월 4일)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오늘은 오후 4시에 최종 예행연습을 통해서 마지막 점검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4시 이전에 모든 팀은 자신의 업무를 어느 정도 마감해야 했다. 필자는 시설관리팀이므로 다시 대진교육관 1층과 2층, 만찬장인 교수회관 2층 식당, 그리고 호텔 등의 시설을 돌아보며 수정할 상황이 있는지 점검하기로 하였다. 오전은 발표가 이루어지는 대진교육관을 중심으로 돌아보면서 책상 등의 가구를 점검, 배치하고 안내대와 책 판매대로 사용할 포밍 테이블을 옮겼다. 그리고 교수회관 식당을 점검하기 위하여 갔다. 아뿔싸! 만찬장의 무대로 사용하기로 구상한 곳에 뷔페 음식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놀라서 점장을 불렀는데, 기존의 점장이 총장이 취임하는 날짜로 바뀌었단다. 그것도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전에 상의한 음식 테이블의 배치가 임의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급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음식 테이블을 재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식당에서 음식 테이블을 재배치한 후, 교수회관 2층 식당에서 무대 배치를 한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식탁 사이에 놓여 있는 화분들을 한쪽으로 정리하면서 무대 공간을 확보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필자는 식당에서 뷔페 테이블을 별도로 가지고 와서 음식을 배치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식당 측에서는 기존의 식탁을 가지고 음식 테이블을 세팅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좌석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이경원 교수와 상의한 후, 할 수 없이 조교를 통해 교수회관 3층의 테이블과 의자를 빌려서 2층에서 쓸 수 있는지를 자산관리팀에 물어서 승낙을 받았다. 그 대신 직원이 방학 중이라 퇴근하여 다음 날 오전에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일단 테이블을 옮길 자리만 확보한 후 행사장의 좌석 배치를 마쳤다.
  그동안 교수회관 2층은 방송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업체에서 앰프 시설을 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을 사용하기 위한 스크린이 없었다. 기존에 있는 스크린의 크기로는 많은 사람이 시청할 수 없었다. 외부업체나 학교 측에 문의해 보아도 더 큰 스크린은 없었다. 그렇다고 프레젠테이션의 설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경원 교수가 아이디어를 냈다. 창가에 환영 현수막을 걸기로 되어있었는데 그 현수막 밑에 하얀 천을 크게 붙여서 스크린으로 사용하자고 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현수막을 제작하는 업자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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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찬장에서 대회의 환영사를 하고 있는 세계신종교연구소 소장

 


  4시에 이경원 교수와 각 행사 담당의 팀장들이 업무를 보고하고 현재의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이경원 교수는 그동안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학술대회 자료집이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또한, 행사를 준비해 오면서 계속되던 한 가지 걱정은 언어의 소통에 대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종단의 지원으로 교무부와 방면에서 인력을 지원해 주어서 ‘리셉션팀’이 급하게 결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리셉션팀에서 외국인의 안내와 언어 소통에 대한 부분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필자는 박용철 교수, 이경원 교수와 다시 한 번 행사장 전체를 돌아보면서 각 행사장의 가구 배치, 현수막 및 안내표지판의 위치, 행사진행팀의 다과 테이블 위치, 커피와 다과 종류의 진행 상황, 학술대회 자료집과 리플릿의 확인, 호텔의 진행 상황 등을 최종 점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텝들은 모두 대강당에 모여서 무용학과 조교와 함께하는 두 대학원 학우의 산조부채춤과 대학생들의 신나는 댄스 공연을 감상했다. 하나하나의 동작에서 그동안의 노력을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먼저 진행된 산조부채춤은 세 명의 조용한 동작 하나하나가 한국 전통의 미를 표현하는 듯했다. 정식적인 한복을 입지 않고 한 공연이었음에도 스텝들의 박수를 받아내기에는 충분했다. 이어서 대학생들이 틈틈이 익힌 댄스 실력을 뽐냈다. 안무가 전체적으로 잘 맞았지만 한 학우의 표정이 너무나 일그러져 있었다. 실력을 떠나서 웃는 얼굴이 중요한데 그렇지 못했다. 나머지 스텝들도 똑같이 그 부분을 지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학우가 어젯밤에 열심히 연습하다가 발목을 삐끗했다는 것이다. 아픈 발목을 이끌고 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리허설은 잘 마쳤다.
  하지만 아직 호텔이 남아 있었다. 청소를 어제 마쳤기 때문에 오늘부터 각 방을 호텔처럼 꾸며야 했다. 조교를 포함한 몇 명은 와이파이 공유기를 설치하였다. 일일이 공유기의 범위를 파악하여 3∼4개 방에 하나씩 설치하였다. 이제 그동안 구매한 물품들을 각 방에 배치했다. 자그마한 상자에 치약, 칫솔, 양치 컵, 샴푸와 린스, 각티슈와 일반 화장지, 간단한 과자와 사탕을 담고, 물 컵과 생수도 채우고, 욕실화도 넣고, 옷장에는 옷걸이를 채웠다. 하지만 청소를 마치고 나서도 지하 1층으로 들어오는 출입구에는 환기가 잘 안 돼서인지 매캐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담당 학우와 서로 상의를 하고 고민을 하다가 방향제를 사러 갔다. 많은 방향제를 일일이 냄새 맡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선택했다. 또 옷장마다 방향제를 넣을 수가 없으므로 섬유유연제를 티슈에 묻혀 넣어두기로 했다. 급한 대로 처리는 했지만,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많은 학우가 참여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었다. 서둘러서 뒷정리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담당자를 찾았다. 급히 내려가 보니 세계신종교학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대만 학자 네 명이 도착한 것이었다. 많은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택시를 타고 여자기숙사동에 어찌 도착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 침구류가 도착하지 않아서 방을 내어드릴 수는 없었다. 급한 대로 교수회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했다. 해외 자동로밍을 안 해서 와이파이도 안 되고 핸드폰 배터리도 방전되어 있었다. 뒷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10분만 늦게 왔어도 굉장히 난처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상제님의 덕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 진행 첫째 날(7월 5일)
  행사일은 폭우와 함께 시작되었다. 밤새 많은 비가 내렸고 아침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이경원 교수는 서울역으로 외국인 학자들을 모시러 갔기 때문에 각 팀은 자신의 업무에 박차를 가했다. 서울역으로 가는 사정도 만만치가 않았나 보다. 동부간선도로가 물에 잠겨 교통이 통제되는 바람에 급하게 지하철을 타고 가서 시간 안에 도착했다고 한다. 학교에 남은 팀들은 이 날짜에 맞추어 속속들이 도착한 물품들을 정리하기에 바빴다. 외부업체에 주문한 가구도 오전에 도착하였다. 호텔도 오전에 침구류가 도착했다. 필자는 외부업체 사람들에게 가구 배치를 지정해 주고, 학생들을 데리고 호텔에 가서 침구류를 정리했다. 오늘 외국인 학자들이 오후 4시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어서 그전에 각 방의 정리가 끝나야 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속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니 땀이 마를 새가 없었다. 학생들도 3일 동안 강행군을 한 탓인지 힘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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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강당에서의 전체 모임 발표

 

 

  어느 정도 호텔을 도와주다가, 남학생들을 데리고 교수회관 2층 식당에 갔다. 교수회관 2층 천장에 “Welcome”이 써진 띠지를 붙이기 위해서였다. 교수회관 2층 식당 밖의 화분과 테이블의 배치도 바꾸었다. 3층에서 테이블을 내리는 작업은 담당자가 4시에나 올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대진교육관에서 호텔로 에코백을 나누어 줄 테이블과 안내판들을 트럭에 싣고 호텔에 갔다. 안내판들을 미리 지정된 장소에 옮기고 다시 모든 학생은 호텔에 투입되었다. 필자는 다시 대진교육관으로 가서 외부업체에서 온 소파와 로비의자, 테이블과 의자들의 배치를 점검했다. 그리고 오늘 있을 저녁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교수회관 2층으로 갔다. 모든 스텝이 호텔에 갔기 때문에 박용철 교수와 학술원에 근무하는 조교의 도움을 받았다. 영상 상영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설치하기 위해서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연결하였다. 비가 오는 날씨여서 밖이 환하지도 않은데 현수막과 같은 재질의 흰 천이다 보니 영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해답이 제시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단지 조금 어두워져서 보이기만 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외국 학자분들이 도착할 시간인 4시가 되었다. 필자를 제외한 모든 스텝은 외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호텔에 갔다. 에코백을 나누어 주고, 배정된 방을 안내해야 했다. 호텔 키가 일반 호텔의 키와 달라서, 문을 열기가 무척 힘들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모든 스텝은 각 층에서 문을 여는 것을 도와주어야 했다. 호텔에서 손님을 맞이할 때쯤 학교 총무부 직원이 와서 3층 문을 열어 주었다. 자신도 빨리 가야 하니 테이블을 빨리 빼라는 것이었다. 혼자밖에 없으므로 일단 3층 입구에 테이블과 의자를 옮기고 시간이 되는 남자 대학생들을 불렀다. 같이 테이블을 날라 좌석 배치를 하고 나니 거의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겨우 만찬장의 준비를 마치고 음식이 차려졌다. 호텔에서 짐을 푼 외국인 학자들은 만찬장으로 왔다. 그동안 준비해 왔던 것들을 이제 하나씩 선보이는 시간이 된 것이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뷔페 음식도 일반 사람들과 채식주의자로 구분하여 안내하였다. 호텔에서 한차례 격전을 치른 학우들이 속속들이 와서 도와주었다. 드디어 이경원 교수의 사회로 세계신종교연구소(CESNUR) 소장인 마씨모 인트로비네(Massimo Introvigne), 세계신종교학회(ISSNR) 회장인 알리사우스킨 밀다(Alisauskiene Milda), 한국신종교학회(KANR)의 회장인 김종서 교수의 소개와 간단한 환영사가 있었다. 그리고 대진대학교 이면재 총장을 대신하여 배규한 부총장이 환영사를 하였다. 배규한 부총장은 한스큉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종교의 평화 없이는 세계의 평화도 없다. 또 종교 간 대화 없이는 종교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고 하며, 5박 6일간의 행사일정을 통해 세계의 종교문제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많은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내일의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본 행사를 후원한 대순사상학술원 원장인 김욱 선감의 환영사가 있었다. 김욱 선감은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며,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인연도 지금 이 인연이므로,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가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잠시 만찬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국의 라이스 와인인 막걸리를 신기한 듯 마시는 분도 있었다. 만찬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조하던 스텝들도 이제는 잠시 여유가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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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과 발표를 하고 있는 세계신종교 연구소 소장(마씨모 인트로비네)과 세계신종교학회 회장(알리사우스킨 밀다)

 


  어느 정도의 만찬이 있고 난 뒤, 김종서 교수는 한국 신종교의 신앙의 대상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주변이 어두워져서일까, 화질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선명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폭우와 함께 정신없이 흘러간 세계신종교학회 국제학술대회의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호텔과 연회장에서의 폭풍과 같은 행사가 지나간 후 스텝들은 다시 모였다. 잠시 하루의 행사를 피드백하고 다음 준비를 하기위해서였다. 다들 행사 준비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서였을까, 호텔을 담당하는 학우와 행사를 진행하는 학우의 작은 감정 대립이 있었다. 모든 학우가 급하게 호텔에 투입되다 보니, 내일 진행될 행사 진행팀의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학우들을 독려하며 내일 행사 준비를 해야 했다. 일단 행사장 주변의 가구 배치를 다시 확인하고, 청소도 점검했다. 그리고 다과 준비를 위해 과일을 씻어서 하나하나 닦고 그릇에 담았다. 3일 동안 강행군으로 달려온 탓인가 많은 스텝이 지쳐 보였다. 내일 행사 진행을 위해 올려보내고 4명 정도 남아서 내일 행사 진행을 위한 준비를 했다. 결국, 행사진행팀 팀장과 필자만 남아 뒷정리를 하고 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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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진행 둘째 날(7월 6일)
  며칠의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다른 스텝들을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식당으로 외국인 안내를 위해 갔다. 아침 식사가 7시 30분부터 9시까지였는데 외국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드리기 위해서였다. 식당에서는 따로 커피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커피를 찾는 외국인이 많아서, 급하게 점장에게 커피를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는지를 물어 조처를 했다. 짧은 영어지만 웃으면서 맛있게 식사하시라는 말에, 많은 외국인이 “Thank you”로 답해 주었다. 어제와 달리 한결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행사는 오전에 대강당에서 ‘세계화 시대의 종교운동: 한국, 아시아 그리고 세계’라는 주제로 세계신종교학회 국제학술대회의 개회식 및 전체 모임발표가 있었다. 이번 세계신종교학회에 는 약 20개국에서 123명의 종교학자가 참여하여 2박 3일간 총 70편의 논문이 18개의 분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발표 논문을 보면, 대주제에 해당하는 ‘세계화’를 필두로 한국, 대만, 중국, 베트남, 일본 등 동 아시아의 신종교, 특히 한국의 신종교들에 대한 글이 많았다. 대만의 일관도와 천제교, 중국의 파룬공, 베트남의 카오다이교, 일본의 천리교가 발표되었고, 한국에서는 통일교와 대순진리회가 발표되었다. 대순진리회는 한 분과로 지정되어 발표되었으며, 대순사상에 대한 주제로는 이경원 교수, 고남식 교수와 교무부 연구위원인 박영수 보정(주소연 선무 공동 발표), 박인규 교감, 김태수 선사, 그리고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최원혁 교정의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외국학자로는 ‘데이비드 김’이 대순진리회에 대해 발표하였으며, ‘돈 베이커 교수’도 대순사상을 일부 소개하였다.
  행사진행팀 중 각 세션을 담당하는 스텝을 제외한 나머지 스텝들은 다음 일정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아침부터 리셉션팀을 중심으로 학회의 등록, 안내, 이름표 발부 등을 처리했다. 분과가 마치고 나면 간단한 커피 브레이크(중간 휴식) 타임이 있었다. 갑자기 정해진 시간보다 먼저 끝나서 다과를 급하게 내려보내기는 했지만, 다행히 큰 지장 없이 지나갔다. 그동안 준비한 다과들이 생각보다 많이 소진되어 업체에 부족한 부분을 다시 신청했다.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다과 위치로 인하여 다소 비좁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발표가 시작될 때 대학생 스텝들과 다과의 위치를 조정하고 로비의자 등 가구의 배치도 조정했다. 대진대학교 행사의 모든 점심은 도시락으로 준비했다. 도시락을 배포하기 위해 남는 학우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도시락을 배포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외국인들에게 도장에서 입을 한복의 치수를 파악해야 했다. 여주본부도장에서 한복 체험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후의 분과 발표가 끝난 후 다과 타임을 보내고 남는 학생들을 데리고 남자 기숙사 식당에 있는 ‘카페테리아 그라지에’로 행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채식뷔페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를 행사에 맞게 조정해야 했다. 테이블과 의자 배치를 마치고 음식이 진열되고 나니, 행사장에서 오신 분들이 왔다. 즐거운 식사와 담소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쳐있는데도 웃으면서 손님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스텝들의 모습이 보였다. 2시간 여의 만찬이 끝나고 다시 남겨진 것은 스텝들이었다. 내일의 준비를 위한 팀들을 제외한 학우들이 남아 다시 테이블과 의자를 원래의 위치로 조정하였다. 그리고는 숙소에 누워 가장 달콤한 잠을 잤다.

 

 

행사 진행 셋째 날(7월 7일)
  오늘의 하루도 식당에서 시작하였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공연이었다. 오전 전체 발표 후 잠시의 커피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다음, 학생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먼저 무용과 조교와 대학원 학부생 둘로 이루어진 산조부채춤이 시작되었다. 전통의 미를 살린 공연으로, 공연자의 손끝 하나의 움직임에 숨이 멎을 듯한 전율이 흘렀다. 한국무용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5분 30초 가량의 공연이 끝난 후 10명의 대학원 학생들의 K-pop 댄스공연이 시작되었다. 신나는 노래에 맞추어 어깨가 저절로 움직였다. 특히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올 때는 관람하던 사람들도 함께 호응했다. 현장에서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큰 박수 소리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학생들이 땀 흘린 고생이 보람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공연자 중의 한 명은 후일담으로 공연 때 사용했던 산조부채와, 무용연습복(치마)을 그동안 교우하던 외국인 학자에게 각각 선물로 드렸더니 그분들이 매우 감동하였다고 전했다. 점심 후 오후 분과 발표, 그리고 저녁 만찬. 이제는 스텝들이 한결 여유 있게 보인다. 외국인 학자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저녁 만찬의 사회는 세계신종교학회(ISSNR) 회장인 알리사우스킨 밀다(Alisauskiene Milda)가 진행하였다. 여성학자이면서도 시원시원한 진행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김욱 교무부장과 대진대학교 교수들의 소개와 간단한 환영사가 있었다. 행사 도중 밀다는 대학원생들과 학부생으로 이루어진 스텝들을 모두 일어나게 해서, 스텝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청중들의 박수로 대신했다. 학자들도 대진대학교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운지 연못가에 놓인 파라솔에 앉아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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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조부채춤의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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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생 스텝들의 댄스 공연 모습

 

 

행사 진행 넷째 날(7월 8일)
  오늘은 대진대학교에서의 마지막 행사일이었다. 오전에 대강당에서 전체 모임발표를 하고 전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꿈만 같았던 3박 4일이 언제 지나갔나 싶었다. 점심 후 체크아웃을 돕기 위해 전 스텝은 호텔에 모였다. 필자는 외부업체가 가구를 회수할 수 있도록 수량을 확인시켜 주고 호텔로 갔다. 벌써 많은 분이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있었다. 짐 싣는 것을 도와주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많은 학자와 교류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텝으로 전반적인 상황을 이끌어가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의 친절에 고마워하는 분들도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버스에 올라, 짧은 기간이지만 만나서 반가웠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기간 한국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인사를 했다. 버스에서 큰 박수가 쏟아지는데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 떠나는 버스에 일행들은 하트를 그려 보냈다. 이렇게 대진대학교에서 세계신종교학회 스텝으로 진행은 공식적인 행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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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진대학교에서의 세계신종교학회를 마치고 나서

 

 

행사 진행을 마친 뒤
  떠난 뒷자리의 일이 더 많았다. 호텔에 가서 업체에서 빌린 침구류와 수건을 회수하여 수량을 파악한 후 반납했다. 어느 정도의 일이 진행됐을 때 남자 대학생들을 데리고 안내표지판과 교수회관의 식탁과 의자를 옮기고 빌린 테이블과 의자를 다시 원상복귀시켰다. 마지막으로 대진교육관으로 와서 강의실의 책상과 의자 등의 가구를 원래대로 배치했다.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격려하며 다 함께 정리하고 대진교육관 1층 대강당에 모였다. 이경원 교수는 수고한 모든 스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잊지 못할 선물을 준비해 주었다. 세계신종교학회의 스텝으로 참여한 것에 대한 증서였다. 증서에는 세계신종교연구소(CESNUR) 소장인 마씨모 인트로비네(Massimo Introvigne), 세계신종교학회(ISSNR) 회장인 알리사우스킨 밀다(Alisauskiene Milda), 한국신종교학회(KANR)의 회장인 김종서 교수, 그리고 행사를 진행한 이경원 교수의 친필 서명이 담겨 있었다. 필자는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꿈을 펼칠 때 이 증서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값진 추억은 돈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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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행사를 준비한 시간은 길었지만, 정작 행사는 화살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물론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이 행사가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의 규모가 한 학과가 담당하기에는 너무 큰 행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종단에서의 아낌없는 지원과 교무부 직원들의 참여, 그리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열과 성의를 다해 준 스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큰 공로자는 방면에서 사업을 하면서 성금을 모신 도인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어리게만 보았던 도인 자녀들의 순수함과 가능성을 보았으며, 이것은 결국 대순진리회의 수도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행사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덕화를 베풀어주신 상제님께 감사드린다. “모사(某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라는 구절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행사였다. 행사를 진행하는 내내 덕화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필자만 느낀 것은 아니다. 모든 스텝도 자신들이 이루어 낸 성과를 상제님의 덕화로 돌리고 있었다. 행사 전에 있었던 갑작스러운 총장의 취임, 식당 점장의 교체, 행사 당일까지 내린 폭우 등이 행사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이래도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들게 했다. 화복(禍福)이라고 했던가? 발표가 시작되는 날부터 날씨는 행사를 치르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리고 많은 폭우는 호텔 앞에 비어 있던 연못에 물을 가득 채워 외국인의 눈에 더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한 외국인은 이 아름다운 정경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하였다. 이것은 상제님께서 주신 가장 아름다운 신의 한 수였다.
  행사 이후에 많은 외국인 학자들은 행사 후기를 메일로 보내왔다. 필자의 부족한 필력으로 많은 스텝의 정성과 노력을 미흡하게 표현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학자들이 보낸 내용을 담으면서 세계신종교학회의 행사를 진행한 스텝으로 참여한 소감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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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이 교수에게...
일전에 최고의 세스나 국제회의를 주관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대진대학교를 포함하여 대순진리회, 그리고 한국신종교학회
모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기 바랍니다.
내년에 개최되는 회의에서는 이 교수가 만든 높은 수준에 맞추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교수가 각국의 학자들을
고무시켜나가면 아마 다른 사람들도 잘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마시모 인트로빈 보냄.

 

 

이 교수에게
이번에 훌륭한 학술회의와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한 데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정말 완벽했습니다!
조직운영과 답사 프로그램, 음식 등 모든 것들이 아주 좋았습니다.
나는 정말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메일 주소를 몰라서 그러는데,
이 이메일을 데이빗 김박사와 우리 버스를 안내한 사람들,
그리고 이 학술대회를 조직하는데 포함된 다른 사람들에게
꼭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완벽한 여행을 마치고 이제 스웨덴에 돌아왔습니다.
- 리슬렛(세스나 중심 멤버 스웨덴 여성학자) 보냄.

 

 

이 교수에게
이번에 지식적으로 풍부하게 그리고 문화적으로 아주 생동감 있는
학술회의를 만들어주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번에 여러사람을 만나고 많은 생동감 있는 활동들을
완벽하게 즐겼습니다.
특히 나는 이번에 한국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다음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과 베트남을 비교하는
연구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말했던 적이 있는 2018년에 개최되는
한국 베트남 국제학술회의에서 나는 이 주제를 발표하고자 합니다.
나는 이 계획을 이미 제이슨 그린버그에게 말해왔으며,
데이빗 김도 초청하고, 또한 이 교수도 여기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학회발표논문 초록은 2017년까지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다시 이메일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제이슨 그린버그는 대진대학교에 대해 아주 강한 열의를 보였으며,
이곳에서 그의 학업을 계속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나의 아주 훌륭한 학생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의 언어능력의 탁월함은 종교학 연구와 잘 결합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아시아 종교단체에서 일한 경험은 아주 드문 자산입니다.
그는 내가 아주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며칠간은 이 교수가 학술대회 운영 이후 휴식을 잘 취하고
잘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 닌 티엔홍(미국 칼폴리대학 베트남계 여교수) 보냄.

 

 

  아래는 이태리 세스나 본부 사무실에 근무하는 간사 피에르루기의 이메일이다.

 

 


이 교수에게..
많은 사람이 저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번 학술대회가 아주 훌륭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학술대회 행사 때 이 교수님이 조직 운영한 것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이 교수님의 고생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며,
개인적으로는 내년도 세스나 회의에서 뵙기를 희망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피에르루기 보냄.

 

 

  그 외에 마시모 박사는 이번 학술대회 총정리와 감상을 긴 글로 써서 이경원 교수에게 이메일로 보내면서, 대진대학교 관계자들에게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글을 세스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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