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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동아인문논단(東亞人文論壇) 참관 및 중국 도관(道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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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대현 작성일2018.11.19 조회4,3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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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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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고의 명문 북경대학에서 한·중·일의 지성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동아인문논단(東亞人文論壇) 학술대회’에 참관했다. 북경대학교 종교문화연구원 및 일본문화연구소가 주최하고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및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이 협찬한 이 학술대회에서는 ‘동아시아 도교와 양생’이라는 흥미 있는 주제가 다루어졌다. 8월 23일~24일의 일정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 우리 종단 측에서는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박상규 소장과 직원, 교무부장 겸 대순사상학술원장 김 욱 선감과 연구위원,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학과장 박용철 교감 등이 참여했다. 그 가운데 대순종교문화연구소의 차선근 선감과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부교수인 박재현 정리는 발표자로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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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회 참석자들 단체사진

 

  북경대종교문화연구원 명예원장 류우열 교수, 동경대 명예교수 하치야 쿠니오 교수, 전 명지대 황선명 교수 등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3명의 교수들은 공통적으로 육체에 대한 집착에 의한 양생(養生)에 대한 이해를 지적하며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진리에 일치하도록 하는 노장(老莊) 본래의 양생 개념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를 제시했다. 특히 사천대 도교와종교문화연구소 소장인 개건민 교수는 ‘대순의 제생의세(濟生醫世) 사상과 도교의 즉신의세(卽身醫世) 사상’이라는 주제로 현대 종교학의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대순의 ‘제생의세’ 사상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제생의세’ 사상이 갖고 있는 사회 치유방법,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관계에 대한 착안점은 아주 중요한 현실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대순종교문화연구소의 차선근 선감은 ‘중국 초기 민간도교와 대순진리회의 종교윤리 비교연구-승부(承負)와 척(慼)을 중심으로-’ 발표에서 중국 초기 민간도교에서 나타난 승부(承負: 조상의 허물로 인해 후손이 재앙을 받는 것)와 대순진리회에 나타난 척(慼: 상대가 나에게 갖는 원한)을 비교했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부교수로 있는 박재현 정리는 ‘현대 서양의학의 양생관 및 새로운 양생관의 필요성’ 이라는 발표에 서양 의학을 전공한 의사의 입장에서 서구 의학에서도 새로운 양생관과 패러다임이 재구성되어야 함을 설명하면서 동양 사상과의 연결을 시도하여 두 논문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발표가 끝난 뒤 텅 준 북경대 일어과 교수의 중국과 일본의 향(香) 문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향에 대한 시연이 있었다. 중국이 중의학 이론의 강세로 인해 향을 약용양생(藥用養生)의 범위에 포함시켜 기를 풀어주어 향을 발산하거나 양기를 넣어주고 염증을 없애는 향 문화를 형성했다면 일본은 오락요소, 문학요소를 향 문화에 이입했다고 한다. 중국의 약 향은 우선적으로 신체의 양생을 중요시하고 그와 동시에 정신적 조절을 중요시하는 반면, 일본의 배합 향은 우선적으로 정신적 쾌락을 중요시하고 그와 동시에 간접적으로 양생효과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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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 시연 모습


 ‘동아시아 도교와 양생’이라는 주제 하에 발표된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한 가지 느낀 점은 종교적 이상과 삶의 이상은 사상적 근본을 통한 그 의미의 성찰로부터 성숙해 나간다는 점이다. 보통의 인간은 흔히 자신의 욕망과 그 이상을 결합한다. 육체의 유한성 속에서 불사(不死)의 몸을 욕망하며 한계를 가진 육체가 초월적인 힘을 갖기를 욕망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적 이상과 삶의 이상이 왜곡되기 쉽다. 도교가 민중 가운데 쉽게 확산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려운 성찰의 노력 대신 바로 민중의 욕망을 대변하고 그것을 문화적 코드와 이미지로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 학회의 주제발표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되었던 노장사상으로의 회귀라는 도교의 문제의식은 잊었던 사상의 근본에 대한 자각이었던 것이다.

  학회를 마친 뒤 일행은 도관(道觀) 답사를 위해 고속철도를 타고 남경으로 출발했다. 끝없이 펼쳐진 농토, 지평선이 펼쳐진 차창 밖 풍경 가운데 땅을 돌보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편으로 뿌옇게 흐려진 하늘을 보며 산업화의 몸살을 겪는 중국의 모습과 그 내부에 숨겨진 삶을 향해 팽창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직시할 수 있었다.    
  남경(南京)은 서울 면적의 10배, 810만 명의 인구가 모인 곳이다. 삼국시대인 229년에 오(吳)나라의 손권이 건업(建業 : 남경의 옛 이름)이라고 개칭하여 이곳에 도읍을 정한 뒤부터 강남(양쯔강의 남쪽지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318년 동진(東晉)의 원제(元帝)가 도읍한 뒤, 계속해서 송(宋)·제(齊)·양(梁)·진(晉)의 4대에 걸쳐 남왕조의 국도가 되어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이후 진(晉)이 수(隋)나라에게 멸망하면서 도읍지도 파괴되었으며 명나라 도읍지가 되면서 남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1853년부터 12년간 태평천국군이 점령하여 전란으로 황폐해지기도 했다. 1842년에는 아편전쟁 후의 난징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기도 하여 중국인에게는 치욕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남경에 도착한 일행은 첫 답사지인 모산(茅山)의 도관으로 향했다. 모산은 해발 330m로 상청파(上淸派)의 중심지이다. 흔히 도교의 삼산부록파(三山符籙派)라고 하면, 용호산(龙虎山)의 정일파(正一派), 모산의 상청파, 각조산(阁皂山)의 영보파(靈寶派)를 말한다. 상청파는 『상청경(上淸經)』을 기본경전으로 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중국 최초의 여성도사인 진(晉)나라 위화존(魏華存, 252~334)이 개조이다. 육수정(陸修靜, 406~477)대에 이르면 의례, 복식, 경전이 제정됨으로써 상청파의 교학이 완성된다. 이를 바탕으로 제9대 종사 도홍경(陶弘景, 456~536)이 상청파를 크게 대성시켰다. 특히 도홍경은 모산에서 수도를 했기 때문에 그의 학파는 모산파로 알려졌고, 그로부터 상청파라고하면 흔히 모산파를 일컫는 것으로 되었다.
  모산 입구에서 산 정상까지는 도보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모산 도관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차량을 배려해주어 전체 주요 장소를 수월하게 답사할 수 있었다. 산 중턱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노자 상이 있고 산 정상에는 상점과 도교 사원들이 즐비했다. 정상에 위치한 도관에 한 도사가 경면주사로 부적을 그리고 있었는데 모산은 부적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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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면주사로 부적을 그리는 모습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모산 내에는 현재 9개의 도관이 있으며 계속 공사 중에 있고 현대적 감각에 맞는 시설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각 도관은 각각 그 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정상에서 내려와 도착한 다른 도관은 현재 공사 중에 있으며 양생과 관련된 기능을 담당한다. 즉 도교의 양생을 대중적으로 전하기 위한 교육, 체험 및 캠프 등을 중점적으로 하는 곳이다. 
  모산의 도관은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으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일제의 침략을 겪게 되면서 현재는 구소만복궁(九霄萬福宮)과 천부만녕궁(天符萬寧宮) 2개만 남아 있다. 도관의 한 관계자는 모산이 태평천국의 난 때 큰 전쟁터가 되다시피 해 도사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1937년 당시 도사가 140여 명이 있었으나 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전부 해산되었다고 했다. 이후 문화대혁명 때 도사추방령이 있어 모산에 거주한 14명의 도사들이 하산했다가 1979년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 모산에는 젊은 인재에 대한 도교 교육에 총력을 기울여 300여 명 정도의 도사가 양성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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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갑자를 관장하는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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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산 정상에서 본 풍경 


  정상에서 모산 전체를 바라보니 속세를 운무(雲霧) 아래에 둔 무릉도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속에도 민중의 소박하고도 거친 욕망이 숨 쉬고 있었다. 도관 안에는 60갑자 신명이 있어 60명의 신들이 해당 간지의 사람들의 수명과 복록을 담당하는데 민중은 이 신들에 의지해 채우기 힘든 현실을 위안 받고 있었다.
  다음 우리 일행이 방문한 곳은 중국 강소성 남부에 있는 무석시(无锡市)이다. 인구는 637만명 정도. 이곳은 중국에서 3번째로 큰 담수호인 태호(太湖) 변에 있는 관광도시이다. 원래 무석시는 중국 제일의 주석 산지였는데, 춘추전국시대 주석이 사치품과 명검 제작에 모두 쓰여 고갈되어 버리자 주석이 없다는 뜻의 ‘무석(無錫)’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작은 상하이’로 불리는 오늘날에는 태호에 많은 폐수가 흘러들어가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무석시에는 19개의 도관이 있으며 우리 일행이 방문할 삼산도원(三山道院)은 태호 가운데 떠있는 섬에 있는 도원이다.
  이곳은 태호 가운데 떠 있는 섬에 지은 도관이다. 배로 가다보니 많은 인파들이 승선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배에 올라 섬을 향해 가면서 호수에 있는 무릉도원의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다. 폐수로 인해 호수에서 나오는 악취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복을 빌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을 치열한 삶의 욕구가 이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곳 도관의 테마는 ‘양생’이라고 한다. 내단 수련도 하지만 도인(導引)술을 같이 병행한다고 한다. 도인술에 총 18단계가 있는데 직접 시연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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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호 도관의 원경과 근경

 
  모산과 태호 도관 답사를 마치고 일행은 숙소에서 여독을 풀고 다음날 소주(蘇州)로 향했다. 소주는 중국 강소성 남동부 태호 동쪽에 있는 호반도시로 천만 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소주의 첫 답사지는 성황묘였다. 성황묘는 성(城)을 보호하며 성 안에 있는 백성을 지켜주는 성황신을 모신 곳으로 새해가 되면 수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와 새해의 번영과 건강을 기원한다. 특히 제일 먼저 향을 올리기 위해 며칠을 기다린다는 말에 복을 빌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도관은 다른 곳과 달리 일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책임자의 말에 의하면 원래 신을 모시는 곳에서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도관을 찾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향을 피우는데 이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도관을 찾아 염원을 담는 진정한 마음가짐은 자신의 참다운 본성을 회복하고 자신보다 남을 위할 수 있는 마음을 되찾기 위해 향을 피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정말 옳고도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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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황묘의 향 올리는 곳과 내부


 이날 일정의 다음 코스는 강빈공원(江濱公園)으로 이곳은 소주 지역의 민간신앙과 도교의 만남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설명에 따르면 도교에서는 원래 내세라는 개념이 없지만 그 지역의 문화적 관습과 의식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습합된 것이라고 했다. 일행 중 한 연구자는 이곳이 민중의 모든 염원을 다 모아 놓은 만능도관이라고 했다. 그렇듯 민간신앙과 만난 도교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삶의 욕망을 담아 그 이상과 민중을 이어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곳 도관에는 도교 음악이 유명하다고 한다. 원래부터 도교에 음악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도사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연주를 하면서 도교 의식 속에 음악이라는 요소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기 있는 도사들은 최소한 한 개의 악기 정도는 다룰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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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빈공원 건물


  학회와 도관답사를 모두 마치고 상해에 도착했다. 상해의 멋진 야경은 그 소문만큼이나 큰 인상을 남겼다. 강 건너에는 높은 고층빌딩들 위로 상해를 대표하는 468m 높이의 방송수신탑인 동방명주(東方明珠)가 우뚝 서 있었다. 이 모두가 어우러진 상해의 야경은 말 그대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상해 야경의 화려함이 마치 모순처럼 보일 수 있지만 국가적 이념을 초월한 가장 현실적이며 보편적인 인류사의 원동력이 인간 내면의 욕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오히려 당연함으로 다가왔다.
  상해 야경 속에서 학회일정과 도관답사의 풍경을 되짚어 보며 나는 학회 주제발표의 내용과 도교 문화의 색채 그리고 상해 야경의 모습 사이의 묘한 연관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와 사회 이념 속에 그 모습은 포장되어 있지만 진정 내부에 살아 꿈틀대는 것은 삶으로부터 펼쳐지는 인간 실존의 욕망인 것이다. 학회의 주제발표에서 영원한 삶을 욕망하는 신비적 양생을 비판하고 양생의 진정한 의미를 노장사상의 인문주의적 의미 속에서 찾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을 포착한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종교와 이념은 결국 욕망을 절제한 인간 스스로의 성숙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그러한 성찰이 없다면 종교와 이념은 진리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간의 욕망과 결합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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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명주가 보이는 상해 야경

 
  도관의 신비로운 풍경과 상해 야경의 화려함이 겹쳐지며 나는 시대적 조건에 따라 그 드러나는 형태가 달라지는 인간의 욕망을 또다시 생각해본다. 원시의 종교적 마술과 산업화된 현대문명 속에서 인간 스스로가 진정한 내면의 진리를 찾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종교도 현대문명도 인간의 욕망과 영합하여 그 본래의 취지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진정한 양생이란 육체의 영속을 위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 속에 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진리의 삶을 사는 가운데 그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충만함 속에 있다는 것을 이번 답사 속에서 깊이 느끼게 되었다. 또한 신비와 화려함 속에 가려진 인간의 욕망을 보게 되었고 그것은 삶과 수행의 참된 길을 찾게 하는 눈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상해의 야경으로 끝맺는 이번 답사는 그래서 더욱 큰 인상으로 남았다.   

<대순회보> 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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