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제4회 동아시아 도문화 국제학술대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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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상미 작성일2018.11.17 조회4,295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신상미
2013년 8월 24~25일에 중국 북경대학에서 동아시아 도문화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학자들을 비롯하여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교수도 참석하여 더욱 뜻깊게 동아시아의 ‘도(道)’ 사상에 대한 학술교류가 이루어졌다.
학회 전날(23일) 우리 일행은 대진대 박용철 교수, 서울대 윤용복 교수,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일권, 조현범, 김수연 교수, 덕성여대 이봉호 교수와 함께 북경에 도착하였다. 숙소에 도착하여 김훈(북경대 종교문화연구원 부원장) 교수의 안내로 미리 도착한 외국 학자들과 함께 저녁 만찬을 가졌다.
다음 날(24일) 김훈 교수의 사회로 개막식을 하고 내빈 및 회의 대표 소개로 학회가 이루어졌다. 왕쩌이[王哲一, 중국도교협회 비서장], 하치야 쿠니오[蜂屋邦夫, 도쿄대 명예교수], 정재서(이화여대) 교수의 축사가 끝나고 “도문화 속의 양생 사상(養生思想)”이라는 주제로 논문 발표가 시작되었다.
주제 강연을 발표한 리초빈[李朝斌, 북경대] 교수를 비롯하여 좐스촹[詹石窗, 사천대] 교수, 쩡카이[鄭開, 북경대] 교수 등 양일간에 총 15명의 학자가 발표하였다.
우리 측에서는 박상규 보정(대순종교문화연구소 소장)이 “대순진리회의 양생”이란 주제로 발표하였다. 논문형식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서 학회지에는 싣지 않고 PPT로 대순진리회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수행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양생이란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양생과 관련된 수행법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소개가 시작되었다. 수행의 훈전과 수도의 요체를 비롯한 대순진리회의 수행법은 내단(內丹)에 해당되며 단전을 연마할 때 사용되는 것은 주문이라 설명하고 주문과 기도 모시는 시간, 방법, 치성과 공부에 관한 설명으로 마무리하였다.
도교 문학의 전문가인 정재서 교수는 도교의 형성과 샤머니즘에 대해 발표하였다. 그는 샤머니즘의 원리적인 측면으로 불(火)의 통어(統御)와 주술(呪術)적 비상(飛翔), 해원(解冤), 삼수분화(三數分化) 등의 취지와 관련하여 도교와의 상관성을 고찰하였고, 방법적인 측면의 경우 승교(昇蹻),01 청동 거울인 동경(銅鏡), 부적(符籍) 등의 사례를 통해 도술과의 유동관계를 설명하였다. 그 결과 도교의 발생론적 기반을 무술(巫術)에서 샤머니즘으로 범위를 좁힘으로써 도교의 발생 지역도 이에 따라 샤머니즘이 성행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추정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우쇼쥐[吳受琚,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 연구원은 “도교문화 속의 음식 양생”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도교 양생학은 일반 민중의 보편적인 식생활을 기본으로 하여 오미(五味)를 조화롭게 하고 음식을 다스려 사람의 몸을 이롭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데 음식 중에 물, 술, 약차, 죽, 채소 등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마치 웰빙 음식을 설명하는 듯했다. 차(茶), 주(酒), 식(食)을 포함하는 당대 도교의 음식문화는 중국 도교사의 중요한 부분이며 중국 전통문화에서도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여 설명하였다.
리웬구어[李遠國, 사천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뇌법(雷法) 중의 양생”이라는 주제로 도교 법술인 뇌법의 정의와 수련에 대해 발표하였다. 뇌법은 내단 공부의 기초로서, 부록(符簶), 주술(咒術), 지결(指訣), 우보(禹步), 기법(氣法), 변신(變神)과 융합하여 이루어졌으며 인세를 구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수련 방법으로는 변신두모법(變神斗姆法), 일월교회법(日月交會法), 금광천정내련법(金光天丁內煉法), 오뢰조두법(五雷朝斗法), 십자천경법(十字天經法) 등을 설명하였다.
김일권(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조선후기 관성교(關聖敎)의 경신(敬信) 수행론”에 대해 발표하였다. 성리학의 조선 사회에 비성리학적인 관성교가 어떻게 전개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여섯 가지로 설명했으며, 관성교의 주된 수행론의 방향은 대중의 경(敬)과 신(信)을 위주로 하는 신행적 실천론에 있다고 보고 구체적 신행 방법으로는 제군의 화상(畵像)을 직접 예배하고, 선악과보의 공과격(功過格) 권선서들을 독경 신행하며, 적공적선(積功積善)의 가치 아래 삼제군의 표상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는 종교적 신행을 독려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나카야마 카오루[中山郁, 국학원대학] 준교수는 수험도(修驗道)의 산악수행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일본 신도의 핵심인 신사신도(神社神道)에 대해 먼저 설명하였다. 신사신도의 성직자는 자신의 불로장생과 건강의 증진 및 초자연적인 종교적 능력의 획득을 도모하는 지향이 거의 없고 자기 자신을 정화하는 재계(齋戒)를 하여 청정한 신에 봉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도교적인 양생 자체가 종교적 실천이라 의식되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수험도는 산악을 신령(神靈)·조령(祖靈) 등이 사는 영지로서 숭배한, 일본 옛날부터의 산악신앙이 샤머니즘, 도교, 밀교 등의 영향에 의해 12세기 말에 하나의 종교형태로 형성되었다. 수행을 통해 초자연적인 역능(力能)을 다스리고, 그 힘으로 기도와 치병 활동을 해서 중생의 구제를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불로장생을 바란다거나 선인(仙人)에 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신사신도와 같으나 초자연적인 힘과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책자에는 없으나 나눠준 유인물에 수행의 한 방법으로 절벽에 몸의 절반을 밖으로 내밀고 양쪽 다리를 타인이 잡아서 수행하는 모습이 있었다. 발표자는 이러한 수행은 몸을 통해 마음에 제의하는 ‘혼의 양생’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하여 색다른 양생법을 설명하였다.
이번 학회는 양생에 관한 주제로 각 나라 종교의 수행 목적과 방법에 대해 알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던 것 같다. 수행의 목적과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살아가면서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기를 원하는 인간의 욕구가 내면에 깔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학회가 끝나고 우리 일행은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25~28일에 항주(杭州)와 상해(上海)로 도교사원 탐방에 나섰다. 2시간 넘게 비행기로 이동하여 항주에서 제일 먼저 들린 도교사원은 ‘포박도원(抱朴道院)’이다. 이곳은 절강성(浙江省) 항주시(杭州市) 서호(西湖) 북쪽 대안의 걸령(葛嶺)에 있는 것으로 진(晉)나라 때의 도사 갈홍(葛洪)을 기리기 위해 당나라 때 건립되었다. 처음의 명칭은 ‘갈선사(葛仙祠)’였으나 원나라 때 전란으로 모두 훼손된 것을 명나라 때 복구한 뒤 ‘마노산거(瑪瑙山居)’로 개칭하였다. 청나라 때 다시 여러 차례 복구 및 증축 공사를 거쳐 갈홍의 호인 포박자(抱朴子)를 따서 ‘포박도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갈홍은 연단술(煉丹術)과 의학을 연구하여 신선이 되는 방법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던 인물로 서호의 민간에는 그에 관한 설화가 많다. 포박도원 입구에서 조금 오르다 보면 갈홍이 수행했던 곳을 볼 수 있는데, 그곳을 바라보자니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나뭇잎 소리와 산새 소리에 더욱 신비롭게 느껴져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주요 건축물은 갈선전(葛仙殿)·홍매각(紅梅閣)·포박려(抱朴廬)·반한당(半閑堂) 등이 있다. 정전(正殿)인 갈선전은 지붕의 처마가 두 겹이고, 경사 진 목조 건물로 갈홍을 비롯하여 여동빈(呂洞賓)과 자항진인(慈航眞人)의 신상이 모셔져 있었다. 산문 양쪽으로 끝없이 노란색 담장이 산세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마치 한 마리의 용을 연상케 하였다. 이름 또한 용장(龍牆: 용의 담장)이라고 한다.
일행은 모두 홍매각 2층 접견실에서 사원의 주지와 60년간 도교협회 회장과 주지를 했던 분을 만나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곳에 갈홍의 수행처가 있으므로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포박도원 주지의 안내로 옥황산(玉皇山) 복성관(福星觀)에 잠시 들렀다. 옥황산은 원래 용산이었고 그 후에 ‘육왕산’, 복성관을 만들어 옥황상제를 공양한 이후로는 ‘옥황산’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각 신전의 기둥을 보면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어떤 곳은 발톱이 5개이고, 어떤 곳은 4개였다. 발톱이 5개인 용은 승천을 할 수 있고, 4개인 경우는 아직 승천할 수 없는 용을 뜻하는 것으로 높은 신이 모셔진 곳에 용 발톱이 5개 있는 것이라 하였다. 과연 옥황상제를 모신 영소보전(靈霄寶殿)에는 용의 발톱이 5개, 복록재신을 모신 재신전(財神殿)에는 용의 발톱이 4개였다.
다음 날인 27일에 들린 동백관(桐栢觀)은 재건축을 하고 있었다. 젊은 도사의 안내로 동백관을 들러 잠시 설명을 들은 후 서둘러 오학관(嗚鶴觀)으로 향하였다. 오학관은 동백관과 달리 오래된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곳의 주지를 통해 도교 남종 수행의 필요성과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을 닦아 수행하는 성명쌍수(性命雙修)를 기본으로 하므로 몸이 건강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수련법을 익히는데, 이 수련법을 익힌 사람은 평균 120세를 넘고, 그중에 제일 연장자가 160세였다고 하였다. 영상으로 잠시 보여준 수련법은 마치 춤을 추는 듯하였다. 일행 중에 정기신(精氣神)이 열리는 때를 물었는데, 알려 줄 수 없다고 하며 알기 위해서는 스승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경전의 비결을 알아야 하며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도교 남종의 수행법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항주에서 마지막으로 천태산(天台山) 기슭에 있는 국청사(國淸寺)에 들렀다. 이곳은 수(隋)나라 고조(高祖) 때인 598년에 창건된 이래 여러 차례의 성쇠를 겪었다. 면적은 1만 9,600㎡이며, 4개의 전(殿)과 5개의 루(樓), 2개의 정(亭), 1개의 실(室)에 모두 600여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淸)나라 옹정제(雍正帝) 때인 1734년에 주요 건축물이 복구되었고, 그 이후에도 증축되었다. 사찰 뒤로 우뚝 솟은 5개의 산봉우리와 앞쪽에 흐르는 계곡이 웅장한 건축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사찰 앞에 국청사탑이 있다는데 미처 보질 못하고 주지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왼쪽에는 수령 1,300년이 넘은 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천태종 5대조가 손수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고승(高僧)을 많이 배출한 사찰로도 유명하며, 또 천태종(天台宗)이 성립된 곳으로서 804년 일본 승려 사이초[最澄]가 이 사찰에서 유학하고 『법화경(法華經)』 345권을 얻어 귀국한 뒤 일본 천태종을 열었다. 이 때문에 일본 천태종은 국청사를 ‘조정(祖庭)’이라 부른다고 한다. 고려 때 의천(義天)대사가 바로 이곳에서 법을 구하고 귀국하여 천태종을 전래하였으므로 한국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인 만큼 세월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항주에서 출발하여 5시간 동안 버스에 몸을 맡긴 채 도착한 곳은 중국 양자강(揚子江) 하구에 있는 중국 최대 도시인 상해였다. 상해의 멋진 야경을 감상한 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다음날(28일) 귀국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들릴 도교사원인 성황묘(城隍廟)로 향하였다. 성황묘는 상하이 구도시의 오래된 도교 사원으로 명나라 때 만들어졌으며 최근 2006년에 복원되었다. 황포구(黄浦區) 남부 예원 맞은편에 위치하며, 원래는 금산신사라는 절이었는데, 1403년 명조 영락제 연간에 성황사로 개명되었다. 그래서 성황신이 아닌 금산신이 앞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신은 곳곳에 많이 있으나 모셔지는 경우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였다. 대부분 그 지역 유명 인사나 마을을 위해 공헌한 사람을 성황신으로 모시는데 상해의 성황신은 진유백(秦裕伯)을 모시고 있다.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기의 유명인사인 진유백은 당시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벼슬을 버리고 작은 마을이었던 상해로 내려와 살았다. 그러나 명나라 때 주원장(朱元璋)의 간곡한 부탁으로 거절 못 하고 다시 정치에 나섰으며, 진유백이 죽자 주원장이 그를 상해의 ‘성황신’으로 봉하였다고 한다. 명절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에서 향을 피우며 소원을 빈다고 하는데, 평소에도 나이와 성별 구분 없이 정성스레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하루에 10만 명 정도의 신도들이 오는데, 많을 때는 19만 명 정도가 왔다고 한다.
이렇게 총 4곳의 도교사원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중국의 도교가 점점 발달하고는 있지만 종교의 순수한 목적보다는 영리적인 목적으로 발달하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국은 원래 불교, 도교, 이슬람교, 크리스트교, 조로아스터교 등의 종교를 믿었으나 1949년 사회주의 정권 성립 이후 종교 활동이 크게 억제되었고 1966년 문화대혁명 때는 사찰과 사원이 크게 훼손되었다. 국청사의 경우는 정부에서 스님들을 강제로 결혼시켜 농민으로 전락시키는 등 종교적 탄압이 심하였다고 한다. 1978년 개방 이후 전통적인 풍속과 종교가 서서히 회복되어 지금은 여기저기서 사원과 사찰을 복원 또는 새로 짓고 있다.
성황묘도 그렇고 대부분의 도교사원 주지들은 여러 개의 사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성황묘에서는 문화대혁명 전에 종교 활동이 어려워지자 귀금속을 팔았는데, 많은 신도들이 좋은 운을 준다고 믿고 귀금속을 사는 덕분에 장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1994년 개관이 된 이후에는 귀금속을 팔지 않고, 도사들의 인재양성과 자선사업에 노력하며 도교 발전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자 노력한다고 하였다.
이번 도교사원 탐방을 통해 복원되거나 새로 짓고 있는 사원들을 볼 수 있었는데, 외형의 발전도 좋지만 무엇보다 젊은 인재를 양성하고 전통과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자 노력한다면 도교가 급속히 발전하리라 본다.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원이라 할지라도 내세울 만한 역사가 없고 전통이 없다면 일반 예술 전시관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학회는 불로장생을 목적으로 하는 도교의 다양한 양생법과 각 나라의 수행 목적 및 방법을 알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또 답사를 통해서 문헌상으로 볼 수 없었던 도교의 수행 방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거기다 도교 사원 주지로부터 현재 중국 도교의 상황 설명을 듣고 도교라는 종교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개인적으로 불로장생을 목적으로 양생법을 익혀 신선이 되고자 하는 중국 도교와 도통을 목적으로 수행하여 도통군자가 되려 하는 대순진리회의 유사점에 대해 더욱 연구하고 싶어졌다. 이에 앞서 대순진리회 발전을 위해 학교 교육과 교리 연구에 적극적으로 지지하셨던 도전님의 뜻에 따라 교리 연구를 활발히 하여 대순진리회를 알리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자주 마련되었으면 한다.
<대순회보>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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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인이 용이나 호랑이 등 동물적 조력자를 구사하여 승천하는 법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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