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인도학술답사기 ‘대순진리회, 세계를 향한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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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대현 작성일2018.10.22 조회4,284회 댓글0건본문
글, 사진 연구위원 김대현
2009년 1월 4일 현지시각 새벽 2시, 인도의 새벽 공기가 내 온몸으로 스몄다. 오랜 비행 끝에 드디어 신들의 나라, 서가여래의 고향인 인도 땅을 밟게 되었다. 다소 잠이 덜 깬 내 의식 속에서 느껴지는 새벽의 인도는 포근한 흙의 느낌 그것이었다. 아시아 대륙의 남쪽, 세계에서 7번째 넓은 땅에 두 번째로 많은 인구, 태양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는 뜨거운 나라 인도와 첫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도와의 인연은 인도 방갈로르의 크라이스트 대학교(Christ university)에서 개최되는 ‘제 7회 국제 화이트헤드 학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종단 측 교무부장과 발표자인 이경원 교감(대진대학교 종교문화학부 교수)을 비롯해 모두 6명이 참석하게 된 이 학회는 주최 의장인 인도 크라이스트 대학교의 쿠란 카차빌리 박사의 정식초청으로 자리한 학회였다. 화이트헤드 학회는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기려 2년마다 각 나라를 돌며 열리는 국제적인 학회이다. 2009년 진리의 낙원 인도에서 열린 화이트헤드 학회에의 참여는 뭔가 특별한 기대를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공항에서 일행은 마중 나온 학회 관계자들의 정감 어린 환영인사를 받으며 자동차를 타고 행사기간 동안 묵을 숙소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인도의 거리가 스쳐갔다. 새벽의 가로등을 품고 잠을 자는 인도의 거리가 왠지 낯설지 않은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푸르름을 간직한 아름드리 나무들, 순박함이란 말이 어울릴 듯한 상점과 그 간판들, 골목골목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 알 수 없는 내 기억의 향수를 더듬게 했다. 우리 일행은 40분가량을 이동해서 숙소인 그랜드난다나 호텔에 도착하여 다음의 일정을 위해 단잠을 청했다.
그날, 마치 한국의 초여름 같은 인도의 겨울 아침을 맞았다. 이날은 학회 개회식 전날이라 방갈로르를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행 정보에 의하면 방갈로르는 다른 지역에 비해 둘러볼 만한 유적지 혹은 박물관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랄박식물원, 티푸술탄의 여름궁전 그리고 인도 최대의 정부청사건물인 비다나 소우다 이렇게 세 곳 정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방갈로르 시내에서 4km 정도 떨어진 랄박식물원에 들르게 되었는데, 이 식물원은 인도 최고의 국경일인 공화국창건일(1월 26일)과 민족해방기념일(8월 15일)에 맞추어 개화시기가 조절되어 있어 그 때가 되어야 볼거리가 좀 있다고 했다. 이곳은 깔끔하게 정돈된 식물원의 느낌보다 방치된 듯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꽃과 나무들의 모습에 오히려 정이 갔다. 식물원 가운데 넓고 큰 바위 언덕이 있어 그곳을 거닐면서 뭔가 오묘한 느낌에 마음은 취하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식물원에서 소박한 인도인들의 휴일 나들이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거리였다. 값비싼 옷을 입지도 않았고, 결코 풍족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었지만 소탈한 웃음이 좋았고 인도의 햇살 아래 함께한 그들 가족들의 모습이 좋았다. 식물원 관람을 마치고 나와 그곳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티푸술탄의 여름궁전으로 차를 돌렸다. 18세기 마이소르와 방갈로르의 지배자였던 티푸술탄의 여름 궁전은 석조 위주의 인도 건물과는 달리 티크목을 사용해 지은 건물이라고 하였다. 궁전이기는 하지만 단층 건물로 인도 건물 특유의 멋은 없었지만 내부의 그림과 장식만큼은 정교하게 꾸며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비다나 소우다는 1956년에 건설된 인도 최대의 정부청사건물이다. 인도의 순수 건축기법만을 조합해서 만든 만큼 인도의 건축술을 한눈에 들여다보기에 충분했다. 웅장하고 섬세한 건물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일행은 유적답사를 마무리하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숙소로 향했다. 사실 내게 있어 인도에 대한 인상은 유적지나 관광지보다 인도의 거리와 사람들 속에서 더 강하게 남았다. 차 안에서 본 도로의 모습은 치열한 그들의 삶을 반영하듯 과속과 무질서가 당연시되고 거리 여기저기 유유하게 활보하는 소들, 질박한 인도인들의 생활이 드러나는 집과 옷 그 모든 것들이 그려내는 인도의 빛깔은 삶의 순수였다. 그렇게 육신의 생존과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그들의 절실함이 거친 그들의 일상으로 그리고 종교와 신의 형태로 드러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단상과 함께 숙소로 복귀했고 일행은 다음날 있을 본격적인 학회 일정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일찍 일행은 학회가 열리는 크라이스트 대학교에 도착했다. 크라이스트 대학교는 방갈로르에서 명문에 속하는 대학이다. 싱그러운 교정의 가로수만큼이나 풋풋하고 생기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이 대학교와 인도의 희망을 보는 듯했다. 학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 뒤로 학교 본관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학회 참가자들인 외국인 교수들 다수가 눈에 띄었다. 그때 각국의 석학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론 긴장이 앞섰지만 그들을 통해 마주하는 세계의 무대는 오히려 설레는 모험이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찬 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회의 개회식이 펼쳐지고 각 나라의 학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개회식 축사를 낭독했다. 세계의 석학들이 모여서 나누는 지성의 대화가 인류의 정신적 지표가 되어 세계를 화합으로 이끌 것이라는 학회의 메시지는 내게 큰 공감을 주었다. 화이트헤드 학회는 그런 점에서 내게 의미심장했다. 화이트헤드 사상의 핵심은 유기체이론으로 그의 이론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존재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통합적인 의식으로써 자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화이트헤드의 사상은 대순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론으로 볼 수 있다.
마침 우리 종단 측에서는 이경원 교감이 ‘한국 신종교 대순진리회에 나타난 유기체 철학의 표현’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논문의 내용은 대순사상 가운데서 드러나는 유기체이론의 모습에 관한 것이었다. 대순사상의 폭은 그 한계를 찾을 수 없으므로 과연 이 논문을 통해 대순사상이 세계 석학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남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논문 발표 날, 우리 측 발표가 있기 전에 다른 몇 분의 학자들이 발표를 했고 곧이어 이경원 교감의 발표가 이어졌다. 모든 발표는 영어로 이루어졌으며, 파워포인트와 프로젝터를 통해 발표 내용이 소개되었다. 성실함과 긴장감이 함께 했던 발표가 끝나자 발표자와 다른 학자들 간의 토론도 전개되었다. 대순사상이 가진 고유한 개념에 대한 그들의 질문이 있었고 그 질문에 관한 답변이 어느 정도의 답은 될 수 있겠지만 수도라는 실질적인 부분의 틈은 메워질 수 없음을 발견했다. 또한 대순진리는 고정된 언어의 진리가 아닌 상제님의 살아있는 기운을 느낄 수 없다면 알 수 없는 사상임을 또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발표가 모두 끝나고 세미나실을 나서는데 한 외국 여성이 다가와서 놀라움과 관심어린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 여성은 독일 보쉬사의 아시아 지역 문화부장으로 학회에 참석했다가 대순사상을 접하고 프로젝터를 통해서 본 도장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한 소감과 더불어 한국에 오게 되면 꼭 도장을 둘러보고 대순진리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의사도 함께 밝혔다. 그 여성뿐만 아니라 학회장 곳곳에서 만난 여러 학자들은 대순진리회의 사상과 도장의 모습에 공통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밝혔다. 『대순진리회요람』 영어번역본을 전달받자 그들은 기쁜 웃음과 함께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요람 구절과 도장사진 속에서 전해지는 대순진리의 깊이에 경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학술답사를 통해서 느꼈던 점은 상제관 및 대순사상의 세계적 포덕에 대한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외에는 한국의 신종교에 대해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한 종교가 가진 문화적 가치에 대한 경이로움과 그 우수성에 대해 외국인들은 알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이 기회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께서 남겨주신 우리 대순진리회의 모든 빛깔과 모습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포덕의 본질적인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의 참가가 비록 그 규모나 활동 면에서 미약한 시작이긴 하지만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뻗어 하늘을 향해 비상하듯 이번의 학술답사를 통해 그 씨앗을 심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고무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국내에서 종단이 포덕사업을 하는 가운데 겪었던 힘든 부분과 그간의 시행착오를 반성하고 해외에서의 포덕을 통해 종단의 이미지를 쇄신한다면 그러한 여음이 밀려 국내에서의 종단 위상과 덕화도 더 크게 펼쳐갈 수 있으리라는 밝은 희망을 가져본다.
<대순회보> 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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