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대만에서 열린 세계신흥종교 국제학술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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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상미 작성일2018.10.22 조회4,485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신상미
우리가 다녀온 대만은 “아름다운 섬”이라 불리면서도 한편으론 17세기부터 네덜란드, 청나라, 일본 등의 식민 통치를 받은 아픔이 많은 나라로 알려졌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독립된 후 대만은 민주화되었다. 그러다 2차대전 이후 중국이 공산화되자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피신하여 대만의 행정, 입법, 사법부 3권을 장악한 이후 대만과 중국과의 갈등이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이다. 1886년에 대만이 중국의 1개의 성이 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엄연히 대만과 중국은 각각의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 한민족이지만 각각의 나라로 분리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과 민주주의인 우리 남한관계와도 비슷한 상황이라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대만은 다민족 지역으로 한족, 몽골족, 회족, 묘족, 고산족 등의 민족이 살고 있다. 그 중 중국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이 97% 이상이다. 광활한 대륙인 중국 여러 지방에서 이주해온 한족의 영향으로 대만의 음식과 문화는 중국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대만을 방문하였을 때 마치 여름인 중국에 온 것만 같았다. 단지 다른 면이 있다면 겨울이 없는 열대지역이라는 것과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5대 종교(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불교, 도교) 외에는 일체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나라이지만 대만은 다르다. 5대 종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여러 민간신앙을 믿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신으로 전쟁과 재물 신인 관운장, 바다의 여신인 마조, 토지신인 토지공이 있다. 이번 답사 때에 집에 신의 위패를 모시고 향을 피우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2009년에 대만을 방문01한 이후 우리가 이번에 대만을 방문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국 신종교학회의 회원으로 타이베이 진리대학에서 열리는 ‘2011세계신흥종교 국제학술회’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대순진리회, 원불교, 통일교, 영생교(승리제단), 예수교회, 바하이교, 모르몬교 등 각각의 신흥종교를 대표하는 학자들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번 학회는 3일 동안 동ㆍ서양에서의 각 신흥종교에 대한 이해와 사회에 끼친 영향 및 전망에 대한 내용으로 세션(분과) 13개로 이뤄졌다. 첫날 오전에 개회식 후 한국 신종교학회의 회원들은 대만의 신종교인 ‘일관도(一貫道)’를 참관하였기에 2개의 세션은 참석하지 못하였다. 학회 2일째 되는 날은 점심, 저녁으로 각각 4개의 세션으로 나뉘었기에 2개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통일 시대가 열린 신종교’를 주제로 이뤄진 세션 7과 ‘한국의 신종교 운동’을 주제로 이뤄진 세션 11에 참석하였다. 대순진리회를 대표하여 대진대학교 교수인 이경원 교수와 고남식 교수가 ‘사상과 경전으로 본 한국 신종교의 특징’이란 제목으로 공동 발표를 하였다. 주로 대순진리회에 대한 내용으로 발표하여 대순진리회의 기본 교리와 사상을 알리는 중요한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4개의 세션이 이뤄지는 바람에 전 세계에서 온 학자들이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되지 않았던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한편, 통일교는 1958년 외국선교가 시작된 이후 2004년 193개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교세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었으므로 이미 서양 종교학자들이 연구할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통일교가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에서 발표된 논문도 있었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세계에 자신의 종교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선교 활동과 함께 사상을 전함에 있어서 종교학자들 간의 연구와 교류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첫날 개회식 후 참관한 곳은 대만에서 대표적인 도교 계통의 신종교인 ‘일관도(一貫道)’이다. 이곳은 19세기 말에 중국에서 노중일이 창시하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자 종교로서 탄압을 심하게 받아 대만으로 본거지를 옮겼다고 한다. 법당에 가기 위한 길도 남녀 따로 나뉘어 있었으며 철저한 채식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음식을 콩이나 야채로 만들었으나 진짜 고기인 것처럼 여기며 먹을 수 있게 만든 음식이 있어 재미있었고, 작은 것에서부터 신도들을 배려하는 종단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융합하여 일관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일관도는 10년 전 미국 LA 정부에서 통계한 결과에 의하면 세계 80여 개에 있는 신도 수를 모두 합해 2천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여러 종교를 융합하여 일관하겠다는 의지로 세계 80여 곳을 다니며 포교 활동을 한 그들의 열정과 노력만큼은 대단하였다.
3일간의 학회가 끝나고 진리대학 측의 안내로 대만의 종교문화를 둘러보았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간간이 보이는 한국 음식점 간판과 한국 연예인 사진을 보며 한류 열풍을 실감하였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대만의 4대 불교사찰02에 속하는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구제하여 세상을 제도하고자 1966년에 설립된 곳으로 창시자인 증엄(證嚴) 스님을 ‘살아 있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이라 표현하였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시작하여 자선, 의료, 교육 및 문화 등 4개 분야를 바탕으로 30명의 회원에서 현재 40개 국가에 4백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더불어 5개 병원, 종합대학, 방송국 등 산하시설 직원 수만 2천여 명의 조직을 갖춘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로 성장하였다.
어떤 힘으로 이렇게 크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으로 묘소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의 절을 찾게 되면서 불법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로 생명의 근원과 인간 행복의 문제에 대해 사유하다가 26세에 출가를 한 스님은 자비와 함께 실천을 중요시 했다. 특히 임신한 어린 소녀가 출혈 중인데도 의료비와 보증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병원에서 되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돈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라는 금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증엄 스님은 교리와 사상을 말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돈을 마련하고 구제해 왔던 것이다.
파란 상의에 흰 바지를 입은 자원 봉사자의 인도로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현장을 직접 방문하였다. 이곳에서는 쓰레기를 분리한 후 버려진 생수병의 부피를 줄여 공장에 보내고 있었다. 그다음 폴리스터 섬유로 재활용하여 담요 24만 4천여 장을 제작한 후 이재민을 돕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의 벼룩시장을 연상케 하는 곳에서는 옷이나 가방을 재난지역에 전달하고 나머지는 일반에 판매해 구호자금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증엄 스님이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며 크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은 증엄 스님의 말 속에서 조금 알 수 있었다.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普天之下, 沒有我不愛的人), “천하에 내가 믿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普天之下, 沒有我不信任的人),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를” (普天之下, 沒有我不原諒的人). 자원봉사 부분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인 우리에게 있어서 ‘자제공덕회’의 정신과 실천의 이념은 새롭게 다가왔다.
또 다른 종교문화 답사지를 향해 서둘러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제4도시 타이난현으로 향하였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마두(麻豆)마을로 향하여 2시간 남짓 차 창밖으로 보이는 야자수를 구경하는 동안 주먹만한 크기의 연두색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였다. 입구에 열매의 모양과 비슷한 조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특산품 같았다. 콩과 식물인 운실(雲實)의 종자를 일컫는 마두는 맵고 따뜻하며 독성(毒性)이 있는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폭죽을 터트리며 우리를 정말 반갑게 맞이하였다. 열대과일과 음료를 준비하고 그 지역에서 전해 오는 민속춤과 도교사원인 삼원궁(三元宮), 인간문화재인 사원을 장식하는 도예가 등 주변을 소개하고자 정말 더운 날 땀 흘리며 노력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40명 정도의 참관자들에게 하나씩 마두 열매 모양의 인형과 종교학회 상패, 마두에 위치한 진리대학 분교학생들이 봉사활동으로 만든 탈, 대만의 지도에서 마두의 위치를 표시한 휴대 전화기 고리 등 우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놓았다. 타이난 사람들이 온화하고 인정미가 넘친다는 말을 들었으나 이렇게 직접 대하고 보니 정말 마음이 훈훈하였다. 많은 선물 때문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물건에 담긴 정성과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자신들의 종교와 지역에 대한 의미를 선물에 담았기 때문이다.
거의 하루를 관람한 후 서둘러 간 곳은 제2의 도시인 가오슝이었다. 화려한 야시장이 있는 이곳은 늦은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해운대 해변에 더위를 식히러 나온 모습처럼.
다음 날 아침에 간 곳은 50년도 안 된 단기간에 대교단이 된 국제불광회(國際佛光會)가 있는 불광산(佛光山)이다. 제2의 도시 가오슝에 위치한 불광산은 높이 36m의 대불상을 비롯해 1만 5천 개의 관음보살을 안치한 만대비전(萬大秘殿) 등 산 전체가 사원과 불교박물관, 불타기념관, 불교대학, 집회장 등으로 꾸며진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불교문화 단지이다. 그래서 ‘불광산사’라고도 한다. 이곳은 여승이 많은 곳이며 우리를 안내하는 여승을 따라 대웅보전, 박물관, 도서관, 정토동굴, 기념관을 참관하였다. 국제불광회의 창시자 성운대사 또한 중국 남경에서 불도수행을 하다가 1949년에 대만으로 건너와 1967년에 설립하였다. 이곳에서는 문화를 통한 불법의 홍포,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 자선을 통한 사회복지, 수행을 통한 불법수호를 4대 종지로 하고 있다. 사찰 안에 세계 28개국에 송출하는 불교 위성 TV, 일간지, 미술관, 도서관을 갖추고 있었다. 방부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도서관에는 세계 각 나라 언어로 된 불교의 경전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렇게 큰 공간은 아니었지만 종교별로 분류하여 꽂힌 책들은 정갈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특히 교육에 힘쓰고 있는 불광산사는 승가교육을 위해 불광대학, 미국 LA 서래대학, 중ㆍ고등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불광산사 내에는 승가대, 국제대학을 두어 신도교육부분에서 단기출가, 자원봉사자 강습회 등의 일반인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는 일반 교육을 받으러 온 흰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불교의 진리와 사상을 알리고자 교육에 힘쓰는 열정이 대단한 곳이었다.
다음은 우리 한국신종교학회 회원들만의 일정으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과 가까운 타이베이로 향하였다. 3시쯤 도착하여 정일도교단심홍도회의 회장인 이유곤 도사의 친절한 안내로 타이베이에서 유명한 도교사원인 보안궁(保安宮), 행천궁(行天宮), 자우궁(慈祐宮)을 관람하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보안궁은 의학의 신인 보생대제(保生大帝)를 모셨으며, 행천궁은 전쟁의 신인 관운장, 자우궁은 바다의 여신인 마조를 모셨고 그 외 층마다 여러 신을 모셨는데 이러한 모습을 대만의 도교사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주로 불교 또는 유교와 융합되어 있는데 이는 도교를 탄압한 정치적 영향이 컸으리라 본다. 태풍 탓에 비가 많이 오는 와중에도 신도는 끊이지 않았다.
이번 만남으로 이유곤 도사가 2007년 종단을 방문하여 우리 종단과 지속적인 학술적 교류 및 상호방문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 주어 우리 종단과 관계가 더욱 깊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대만 방문은 진정한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각자 믿는 종교에 대한 깊은 연구와 더불어 타 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대순회보> 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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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2009년 불광대학교 종교학과 류궈웨이(劉國威)교수의 초청을 받아 ‘종교의례와 치병’이라는 공동 주제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였다. 『대순회보』 84호 참고.
02 법고산사(法鼓山寺), 불광산사(佛光山寺), 자제(慈濟)공덕회, 중대산사(中臺山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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