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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길제주수련도장 연수의 상징적 의미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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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목 작성일2018.10.19 조회4,8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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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이승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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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제주수련도장 건립과 연수의 시작
  Ⅲ. 가장 작은 도(道), 가장 큰 도(島)
     1. 도(道), 세 가지 선물
     2. 도(島), 포한(抱恨)의 자취
  Ⅳ. 물[水]과 불[火] 그리고 해원(解冤)·선경세상
     (仙境世上)으로의 행보
     1. 물[水]의 행보
     2. 불[火]의 행보
     3. 해원(解冤)과 선경세상(仙境世上)으로의 행보
     4. 연수 행보가 갖는 상징적 의미
  Ⅴ. 나오는 말

 

  

Ⅰ. 들어가는 말

 

  한라산(漢拏山)과 제주도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한라산이 제주도요,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예부터 영주산(瀛洲山)이라 하여 봉래산(蓬萊山) · 방장산(方丈山)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신성시되어 왔다. 한라산은 ‘산이 하늘 높이 솟아서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는(以雲漢可拏引也)’01 높은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그 자체에 이미 신성함이 배어 있다. 무엇보다 한라산은 그리스 신화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1만8,000여 신들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며, 특히 서양의 창세기(創世記)를 능가하는 우주의 창성(創成), 인간의 창조, 천지(天地)의 분리 등 신(神)들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것의 원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천지개벽신화(天地開闢神話)가 깃든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에게 마음속의 신(神)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한라산을 품고 있는 제주도는 가장 작은 도(道)이자, 가장 큰 도(島)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상으로 볼 때 제주도는 한 도(道)에 지나지 않지만, 육지와는 뚜렷이 다른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갖고 있다. 그것은 섬이라는 격리되고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 적응해온 삶의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아는 열쇠는 어쩌면 한라산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우리 국토의 의미로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로, 제주의 한라산은 북쪽의 백두산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상징성을 담고 있지 않은가. 제주는 그런 곳이다. 가슴속에 좁은 땅이 아닌 큰 우주를 담고 살아가는 곳이 제주도 한라산이요, 한라산이 제주인 것이다.
  이러한 곳에 기사(1989)년 6월 24일 도전님께서는 제주수련도장(濟州修鍊道場)을 개관하시고, 9월 7일에는 120명의 도인을 1개 반으로 하여 5박 6일 일정으로 수강(受講)과 견학(見學)이 어우러진 연수(硏修)를 시행하셨다. 도전님께서는 제주가 갖는 천지자연의 상징성을 통해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법리인 해원상생(解冤相生)·보은상생(報恩相生) 양대 진리(兩大眞理)를 수도인들이 생활윤리로 받들어 실천하도록 하신 것이다. 무엇보다 단순한 하나의 자연현상이라도 우주의 원리와 법칙 그리고 대순진리의 연원(淵源)인 종통(宗統)을 바르게 인식해야 함을 알려주려 하신 것이 그 연수에 담긴 의의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제 우리는 제주수련도장 연수의 상징적인 면들을 구전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뜻하지 않은 종단 분규로 인하여 기묘(1999)년에 연수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수의 상징성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긴 하나, 그 상징이 갖는 의미와 만수도인의 염원이 담긴 의미는 많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기사(1989)년 연수 시작 이래로 교화 기록이나 학문적 이론체계를 다진 논저(論著)가 단 한 권도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본고는 연수 기간 짜여진 5박 6일의 행보를 통해 제주수련도장 연수의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제주수련도장 건립과 연수의 시작

 

  대순진리회에서 도장(道場)이란 “도장은 늘 정결(淨潔)하고 신성(神聖)한 곳입니다. 양위 상제님을 봉안하고 천지신명(天地神明)이 가득한 신성한 성지(聖地)입니다”02라는 도전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양위상제님과 천지신명이 항상 머무시는 곳으로서 성역(聖域)을 일컫는다. 이러한 도장 역사는 도전님께서 상제님의 대순하신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숭신하여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 구제창생 지상천국 건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유(1969)년에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서울 광진구(옛 성동구) 중곡동에 중앙본부도장을 창건하시면서 비롯되었다.
  특히 도전님께서 도(道)의 전반적인 기구를 개편하시며, 포덕·교화·수도의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으로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을 연차적 계획으로 추진하신 데 따라 도세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다. 도전님께서는 연차적 계획으로 여주본부도장을 포함하여 전국에 5대 도장을 건립하셨다. 그 첫 시작이 기유(1969)년 4월 서울시 성동구(현 광진구) 중곡동에 중곡도장을 건립하는 것이었고, 병인(1986)년 12월에는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가야리에 여주본부도장(驪州本部道場)을 준공하셨다. 당시는 여주수도장으로 명명하였으나 계유(1993)년에 본부를 중곡도장에서 여주수도장으로 옮겨옴에 따라 여주본부도장이 되었다. 이후 기사(1989)년 7월 제주도 노형동(老衡洞) 제주수련도장(濟州修鍊道場), 임신(1992)년 7월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포천수도장, 병자(1996)년 2월 강원도 고성군에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준공이 이뤄졌다.
  또한 도장이 여러 곳에 자리하면서, 도통을 이루기 위한 수도인들의 수도 공부도 구체화되었다. 진법 공부인 시학·시법공부와 도인들의 교화 육성 및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를 깨닫기 위한 수강(受講)과 연수(硏修)가 그것이다. 진법 공부인 시학 · 시법공부는 1991년 여주본부도장에서 시행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도인의 생명보다 소중한 진법공부이다. 아울러 도전님께서는 도인들의 교화 육성을 위하여 수강과 연수를 실행하셨다. 병인(1986)년 10월 25일 여주본부도장에서 시작된 수강, 기사(1989)년 9월 7일부터 제주수련도장에서 120명의 도인을 한 반으로 한 5박 6일 간의 연수, 을해(1995)년부터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 5박 6일간 시행된 연수가 그것이다.
  그런데 5곳의 도장 건립과 시학·시법공부·수강·연수가 실행되는 과정에서, 제주수련도장은 여타 도장의 건립 배경과 연수 취지가 남다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도(道)이자 가장 큰 도(島)이며, 화산섬이라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에 도장이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 “제주도는 이 나라의 관문이요 세계인이 모여드는 곳이니 이로부터 덕화선양이 활성화될 것이며 도세가 더욱 발전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제주수련도장에 120명의 도인을 1개 반으로 하여 5박 6일 일정으로 연수(硏修)를 시킬 계획입니다. 연수가 즉 수련(修鍊)입니다. 그래서 수련도장(修鍊道場)이라 했습니다. 오전은 수강(受講)하고 오후에는 견학(見學)을 하도록 할 계획입니다”03라고 하시며, 제주수련도장 개관 취지와 연수의 계획을 명료하게 밝혀주셨다. 제주가 갖는 그 위치와 형상부터 이미 도(道)를 말하고 있고 산수(山水) 어느 곳에도 도의 이치가 담기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천지자연을 통해 우주의 만유가 유형, 무형으로 화성(化成)됨이 상제님의 덕화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주는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갖고 있어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 즉 세계포덕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이다.

  

※ 제주수련도장 연수 견학지
첫째 날: 한림공원 → 산방산(용머리해안) → 천제연폭포 → 천지연폭포 →
            정방폭포
둘째 날: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 만장굴 → 성산일출봉 → 산굼부리
셋째 날: 항몽유적지 → 목석원 → 삼성혈 → 용두암
넷째 날: 도깨비도로 → 영실(한라산)

  

  초기 제주수련도장 연수는 1개 반을 120명으로 구성하여 매주 금요일 비행기로 출발하여 수요일 배편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으나 1990년 3월부터는 왕복 비행기로 변경되었다. 대상은 차선감 이하 평도인까지 순차적으로 실시되었는데, 오전은 수강을 하고 오후에는 견학을 하는 일정이다. 수강은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종통(宗統)계승을 믿고 그 속에서 전하여 온 진리와 진법을 성(誠)·경(敬)·신(信)을 다하여 지키고 닦아야 함을 깨닫는 강론(講論)이다. 견학은 그저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며 관광하는 일반인들에게 주어진 관람의 목적이 아니라, 자연 그 너머에 이제까지는 희미했던 크나큰 도의 근원인 종통과 연원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떠한 성인이라도 경문(經文)을 통한 문자만으로는 완전한 깨달음(覺)을 얻을 수 없고 자연을 벗삼아 견문을 넓힘으로써 우주의 크나큰 원리와 이치에 대한 자각(自覺)을 얻을 수 있었듯이, 제주수련도장 연수는 제주만이 갖는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참된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Ⅲ. 가장 작은 도(道), 가장 큰 도(島)

 

  1. 도(道), 세 가지 선물


  제주도는 행정 구역상 8개 도(道) 가운데 가장 작은 도(道)다. 더욱이 한라산을 지붕 삼아 펼쳐져 있는 제주도를 일컬어 ‘삼다(三多)’, ‘삼무(三無)’, ‘삼보(三寶)’의 섬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제주의 자연환경은 화산과 기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三多)’라 했다. 바람과 돌은 제주만이 갖는 독특한 자연환경에 기인한 것이지만, 여자가 많다는 것은 섬이라는 격리되고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 적응해온 삶의 결과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제주의 남자들이 생사를 오가는 뱃일에 의존해 삶을 영위했기 때문에 여자가 수적으로 많았던 데서 연유한다. 그러나 제주의 생활환경이 각박하여 여자들도 남자와 함께 일터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데서 붙여진 측면이 더 크다. 삶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으며 바다와 함께 울고 웃었던 해녀는 여성들이 바다로 나가서 일하는 여다(女多)의 섬 제주를 표상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제주는 삼무의 섬으로도 통한다. ‘삼무(三無)’란 도적이 없고 거지가 없고 대문이 없다고 하여 나온 말이다. 제주인들은 평소 근면 절약하고 상부상조하는 삶을 이루어 집의 대문도 필요 없었다. 집주인이 일터로 나갈 때 사람이 없다는 표시로 집 입구에 긴 나무를 걸쳐두면 되었다. 이 나무가 제주의 ‘정낭’04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주만이 갖는 ‘삼보(三寶)’는 민속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자연·민속·토착산업을 일컫기도 하고, 식용작물·수산·관광의 세 자원을 말하기도 하나, 크게 바다·언어·관광자원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이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특수성이 한몫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듯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오밀조밀한 자연경관이 빚어낸 세 가지 선물은 무엇보다 우리 도(道)의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라산 신(神)이 여신(女神)이라는 점과 제주에서 여성이 주류(主流)를 이루는 것은 상제님께서 “후천의 도통군자에는 여자가 많으리라”(예시 45절)고 하셨듯이, 앞으로의 세상은 여성의 기세가 크게 향상됨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후천에는 또 천하가 한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없고 마음대로 왕래하고 하늘이 낮아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뜻대로 되며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하고 세상에 수·화·풍(水火風)의 삼재가 없어져서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으로 화하리라”(예시 81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의(衣)·식(食)·주(住)의 걱정이 없고 세상 사람들 모두 한집안 식구가 되어서 도둑·거지·대문이 필요 없는 후천세계의 모습 그대로 세 가지 선물에 담겨 있는 것이다.

  

  2. 도(島), 포한(抱恨)의 자취


  우리나라의 최남단에 위치한 가장 큰 도(島). 섬 속의 섬이라는 말이 있듯 제주도는 80개의 크고 작은 도서(島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반도 남단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화산섬이다. 이러한 제주도를 사람들은 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그리워한다. ‘유토피아의 시·공간을 옮겨 놓은 섬’, ‘하늘이 선물한 섬’, ‘누구나 가 보고 싶고, 살아 보고 싶은 그리움의 섬’이 제주도라고. 그러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면 눈물과 한숨 없이는 가까이할 수 없는 한(恨) 많은 땅이 제주도다.
  그 한의 역사는 뭍에서 격리된 절해고도라는 여건으로 중죄인들의 섬이었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중죄인이라고 하면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사실 이곳 제주에 온 중죄인들은 잔인무도한 범죄자가 아니라 대부분 사회 비판의식이 강한 정치범들이었다.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이곳까지 밀려온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영조(英祖, 1694~1776) 33년인 1757년 “유배객들이 제주목에 집중되어 있어 그들을 제주 삼읍(三邑)에 분배했지만, 유배객들이 계속 늘어나자 제주 사람들이 매우 곤혹스러워합니다”라는 상소문의 기록에서 나타나듯 뭍에서 유배를 와서 한 맺힌 세월을 보낸 이들로 인해 제주인들의 한도 적지 않게 쌓여만 갔다는 것이다.05
  또 하나,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부패한 수많은 벼슬아치들이 제주부의 아전과 결탁하여 자신의 승진을 위해 지나친 특산물 진상(進上)을 주민들에게 부과해 제주인들의 삶을 핍박하게 만들었던 점이다. 설상가상 끊임없는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까지 빈번해지자 그들의 선택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등지고 기회만 되면 뭍으로 나가는 것이 자신과 후세를 위한 최선이라 여겼다. 이에 인조는 1629년, 도민들이 육지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 조치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이후 출륙금지령이 풀린 1850년까지, 200년 이상 제주인들은 고통과 질곡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조정과 제주부의 횡포가 극심해지면서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른 제주인들은 끝내 한 맺힌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종 13(1862)년 9∼1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06
  폐단이 잇따르는 것은 이뿐만 아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그들의 세계대전 발판을 위한 강제징용과 징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들의 마구잡이식 징용과 징병에 안 끌려간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제주인들의 삶은 피폐함 그 자체였다. 그저 인간다운 삶의 존엄을 빼앗긴 채 죽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해방을 맞이하지만, 제주인들의 포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고한 인명피해가 2만 5000명∼3만 명에 이른 1948년에 발생한 4·3사건이 그것이다. 대다수 희생자 유해들은 신원 확인이 안 된 채 장례는커녕 반세기가 넘도록 그 원혼(冤魂)이 구천을 떠돌고 있어 유족들로선 평생 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남은 유족들은 어려서부터 폭도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일쑤였고, 연좌제의 사슬에 묶여 뭍으로의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사실상 뭍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채 부모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후세들의 가슴엔 돌덩이처럼 무거운 원과 한이 점철되었다.
  이렇듯 제주의 원과 한은 선천(先天) 상극지리(相克之理)가 인간지사(人間之事)를 지배하였으므로 원한이 세상에 쌓이고 따라서 삼계(三界)가 서로 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災禍)가 끊임없이 발생한 것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상도(常道)를 잃은 천지도수를 정리하시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 지상천국을 건설하시기 위하여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보셨다. 그런 제주에 도전님께서는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종지(宗旨)로 삼고 도주님께서 창도하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1989년 제주수련도장을 건립하셨다. 이후 상제님께서 “이제 해원시대를 맞이하였으니 사람도 명색이 없던 사람이 기세를 얻고 땅도 버림을 받던 땅에 기운이 돌아오리라”(교법 1장 67절)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제주는 그동안 서린 원과 한이 풀림으로써 세계인들로부터 각광을 받는 신천지(新天地)로 탈바꿈해 하늘이 선물한 도(島)로 입지를 굳혀 나갔다. 더구나 제주수련도장 연수는 『전경』 예시 81절에서 알 수 있듯, 도인들이 제주 사람들의 피와 땀, 한이 서린 제주 곳곳의 지역을 돌며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와 도화낙원(道化樂園)이 도래함을 알림으로써 신과 인간에게 쌓인 원과 한을 풀어주기 위해 연수의 행보를 내딛는 것이라 하겠다.

 


Ⅳ. 물[水]과 불[火] 그리고 해원(解冤) · 선경세상(仙境世上)으로의 행보

 

  1. 물[水]의 행보


  제주를 말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3대 폭포인 천제연(天帝淵)·천지연(天地淵)·정방(正房) 폭포이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생태자원을 갖춘 휴양도시 서귀포에 밀집되어 있는 3대 폭포를 통해서 상제님·도주님·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연원(淵源)의 진리를 찾아볼 수 있다.
  천제연폭포는 삼단폭포로 이루어진 곳으로, 제1폭포에서 떨어져 높이 21m(비의 양이 줄면 23m)의 못을 이루고, 이 물은 다시 제2폭포, 제3폭포를 거쳐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상제님을 모시는 칠선녀(七仙女)가 한밤중이면 구름다리를 타고 옥피리 불며 내려와 맑은 물에 미역 감고 노닐다 올라간다고 하여 천제연, 곧 ‘상제님의 못’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상제님의 연못’이라는 뜻의 천제연은 말 그대로 상제님을 상징하기도 하면서 3단으로 이루어진 폭포 자체가 연원(淵源)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하나를 잡으면 셋이 포함되고, 셋이 모이면 하나로 돌아간다(執一含三 會三歸一).’ 즉, ‘1’이 하나를 뜻하지만 동시에 사물의 전체이자, 만물의 본체인 삼태극[三太極: 천(天) 지(地) 인(人)]을 뜻하는 『천부경』 3의 숫자관처럼 우리의 연원이 그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는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교운 1장 41절)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삼천(三遷)의 이치로 종통이 계승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원의 이치가 담긴 천제연은 상제님께서 거하시는 공간을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천제연폭포 내에 지어진 천제교(天帝橋), 천제루(天帝樓), 오복천(五福泉), 선임교(仙任橋) 등 조형물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천지연폭포는 ‘하늘과 땅이 만나서 이룬 연못’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드는 물줄기에 폭포 아래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은 소(沼)가 형성되어 있다. 그 덕에 물이 귀한 제주지만 이곳의 폭포는 여느 제주 폭포와는 달리 물줄기가 줄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천지연에는 강(江)이 형성되어, 그 물줄기가 바다로 이어지고 있다. 강 이름도 천지강(天地江)이라 하는데, 강줄기는 600m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강줄기는 매표소에서 폭포까지 새 을(乙) 자 형상을 하고 있다. ‘을’은 도(道)를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는 ‘을’이 ‘일(一)’과 음이 유사하여 통용되어 왔는데 서예에서 일을 ‘~’ 라고 써서 그 모양이 ‘을’과 유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일’이 만물의 본원인 ‘도(道)’를 의미한다고 보았으므로, ‘일’과 통용되는 ‘을’ 역시 ‘도’를 상징하는 글자로 여겨졌다. 그래서 이 을은 도(道)와 상통하며 우주와 만물에 깃든 힘찬 생명력과 ‘조 씨로서 을미생’이신 도주님을 상징하는 글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상제님의 친필인 ‘봉(鳳)’ 자이다. ‘봉’ 자 또한 ‘을’과 상통하여 ‘조을(鳥乙)→조을(趙乙)’로써 도주님을 상징하니 상제님께서 종통계승자가 도주님임을 알려주시는 것과 동시에 ‘도(道=乙)’의 주인임을 밝혀주시고 계신다.07 또한 이러한 의미가 담긴 ‘을’ 형상의 길이 다다르는 곳은 천(天)과 지(地)가 만나는 곳, 바로 천지연(天地淵)이다.
  정방폭포는 높이 23m, 너비 8m, 깊이 5m의 웅대한 규모의 물줄기가 곧장 바다로 쏟아지는 폭포로,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다. 여름철 서귀포 앞바다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듯 절경을 이룬다 하여 정방하폭(正房夏暴)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예부터 폭포 부근에는 서불과차(徐市過此: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 혹은 서불과지(徐市過之) 글씨가 있다고 전해온다. 진시황(秦始皇)이 방사(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은 사람)인 서불을 보내어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마침 그가 제주 정방에 이르러 탄식하여 자신이 왔다 갔음을 바위에 새겼다는 것이다.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서불이 서쪽으로 돌아갔던 포구’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 폭포의 물줄기가 곧장 바다로 쏟아져 만난다는 것에서 도통진경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바다는 도의 이치를 담고 있으며 조화를 일으키는 전기의 원천이므로 이치와 조화의 근원을 이룬다.08 교운 2장 42절 ‘운합주’에 “해인조화는 뜻대로 짓고 만드는 정이다(海印造化如意做作之精)”라고 한 것과 ‘옥추통’에 “해인의 조화는 그 끝이 없으며, 산이 없어지고 바다도 물러나고 들판이 이동하며 구릉이 무너진다(海印造化無窮無極 無山退海移野崩陵)”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방폭포의 폭포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도통진경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도통의 경지인 해인(海印)에 대해서 상제님께서는 “나를 잘 믿으면 해인을 가져다 주리라”(교운 1장 62절) 하셨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방폭포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연원의 진리에 입각하여 도전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법방에 따라 바르게 수도하면 해인을 얻는다’는 것이다. 도주님께서 해인이 물체가 아니며 장중에 있다고 하신 것도 연원에 입각하여 일심(一心)으로 수도하면 도통과 도통진경의 세상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2. 불[火]의 행보


  한라산과 제주도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라산이 제주도요,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백록담을 정점으로 한 주봉과 제주 곳곳에 퍼져 있는 360여 개의 기생화산, 즉 오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름이란 소형 화산(火山)의 제주 방언이다. 그 가운데 솥[鼎] 모양의 분화구를 가진 성산 일출봉과 솥 위에 얹은 시루[甑] 형상을 닮은 산굼부리는 한라산과 함께 도(島)의 큰 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맥은 대순진리의 근원을 연원이라 하고 연원의 진리가 전승되는 연원의 맥을 종통이라 하듯, 상제님으로부터 이으신 도주님의 계시 종통계승, 도주님으로부터 이으신 도전님의 유명 종통계승의 진리를 세 오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굼부리는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 없이 열기의 폭발로 암석을 날려 구멍만이 남게 된 분화구다. 이런 분화구를 마르(maar)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화산이다. ‘굼부리’는 ‘산에 생긴 구멍(굼)’을 가리키는 제주 말에서 나왔다. 산굼부리의 분화구에는 백록담과 달리 물이 고이지 않아 다양한 온대성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분화구 아래의 뜨거운 가스층이 지표면을 데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달구어진 솥 안의 물에서 증기가 발생하여, 그 증기가 시루 바닥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올라와 시루 안의 음식이 쪄지게끔 하는 원리를 담은 ‘시루[甑]’와 흡사하다. 시루는 상제님의 존호이신 증산(甑山)을 상징한다 하겠다.
  성산일출봉은 산 형세가 성(城)과 같다 하여 산명을 성산(城山)이라 했고, 이 산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것이 제주 일경(一景)이라서 예부터 일출봉이라 하였다. 더욱이 산 정상에는 99개의 크고 작은 동물상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설에 따르면 일출봉에 100마리의 서로 다른 지상의 동물들이 모이면, 천상으로 승천(昇天)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점점 그 소문이 방방곡곡에 퍼지면서, 그 개체수도 늘어만 갔다. 그런데 100마리 중 하나가 부족한 99마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남은 동물들은 이제나저제나 1마리만 더 오기를 학수고대하다, 모두 성산을 감싼 채 바위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성산의 옛 이름은 원래 숲이 무성하고 울창하다고 하여 청산(淸山)이라 하였고, 정상 분화구가 거대한 물을 담는 솥과 닮았다 하여 ‘솥산[鼎山]’이라 했다. 솥산이란 것은 솥의 이치를 담은 도주님의 존호이신 정산(鼎山)과 일치함을 나타내어 그 상징적 의미는 크다 하겠다. 특히 성산의 정상을 보면, 양은 내려오고 소는 산으로 올라가는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이는 중곡동 벽화에 있는 곡양하교(谷羊下郊), 야우등산(野牛登山)과 같은 것이다. 계곡에 있는 양은 들로 내려오고, 들에 있는 소는 산으로 오른다는 뜻이다. 곡양하교는 양띠이신 상제님과 도주님께서 소는 들에 있으니[우성재야(牛性在野)] 도전님을 찾아 내려오신다는 뜻이고, 야우등산은 도전님께서 양산이신 상제님과 도주님의 유지와 유법을 받들어 대도를 현창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해안가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의 전체 모습은 뱀 머리의 형상에 오메가(Ω) 형태로 성산 전체를 감싼 몸통과 머리 바로 옆의 용꼬리 형상인데,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일은 사두용미니라”(교운 1장 5절)에서처럼 사두용미의 형상을 띠고 있다. 사두용미의 의미는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를 뜻한다. 이는 우리 도(道)의 교운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려는 것이라 하겠다.
  한라산은 예부터 영주산(瀛洲山)이라 하여 방장산[方丈山: 지리산(智異山)], 봉래산[蓬萊山: 금강산(金剛山)]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으로 신성시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제주 선인들은 경외의 대상이요 감히 넘볼 수 없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 결과 그곳에서 1만8,000이나 되는 신들이 태어나 민중들을 보살펴왔고, 또한 ‘당오백사오백(堂五百寺五百)’이라는 말이 있듯 수많은 사찰과 신당이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한라산의 신성함은 이름 그 자체에서 시작된다. 곧 한라산의 자전적 의미에 ‘한(漢)’은 ‘천하(天河)’ 혹은 ‘은하(銀河)’를 뜻하고 ‘나(拏)’는 ‘손을 들어 잡는다(以雲漢可拏引也)’는 뜻이므로,09 결국 ‘손을 들어 은하수(銀河水)를 잡을 수 있는 높은 산’이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이 갖는 자전적 의미인 ‘은하수’로 인해 한라산은 우주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산으로도 비춰진다. 그것은 한라산이 은하수를 측면에서 보면 볼록렌즈처럼 가운데가 부풀어 있고 위에서 보면 마치 태풍의 눈을 중심으로 구름 소용돌이 형태를 띠며, 한라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360개의 오름이 은하계의 별[星] 무리가 은하수를 중심으로 은하의 군집을 이룬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은하수와 별의 무리는 우리에게 낯선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용어는 아닐 것이다. 칠월칠석(七月七夕)날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야 하는데, 다리가 없어서 만날 수 없는 사연을 알고 까막까치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두 연인을 만나게 했다는 견우직녀의 신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은하수를 용(龍)의 옛말인 미르가 변한 미리와 천(川)의 내를 합쳐 우리말인 ‘미리내’라 불렀는데, 이는 ‘용이 잠자고 있는 강’이라는 뜻이라 한다. 더욱이 대순진리회를 영도(領導)해 오신 박한경(朴漢慶) 도전님의 함자(銜字)에 우주의 은하수가 담긴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성·불·보살들의 청원과 하소연으로 진멸지경에 빠진 천지를 광구하시려고 강세하신 상제님께서는 9년간의 천지공사를 통하여 후천선경을 건설하실 천지도수를 물샐틈없이 짜놓으시고 화천하셨다.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계시로 종통을 계승하시어 50년 공부로 수도의 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삼계의 진법(眞法)을 설정하셨으며, 도전님께서는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시어 진법에 맞게 도정을 운영하시고,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을 통하여 상제님의 뜻을 세상에 구현할 초석을 마련하셨다. 이것은 여러 세대를 걸쳐 완성되어야 하는 일이므로 종통이 연속적으로 계승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의 연원은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 창도주이신 도주님, 영도자이신 도전님이시다. 연원이 곧 종통이고 이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것이므로 더 이상의 종통계승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이러한 연원의 맥과 종통의 암시하는 바를 제주수련도장 연수 코스의 화(火)의 행보에 해당하는 산굼부리, 성산일출봉, 한라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대순회보> 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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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사묘조(祠廟條)」 참조.
02 《대순회보》 35호, 「도전님 훈시」.
03 도전님 훈시(1989. 7. 26)
04 정낭이 놓여 있는 것에 따라 집주인의 생활 반경을 알 수 있다. 정낭 3개가 정주목에 다 걸쳐 있으면 주인이 먼 곳에 출타 중이라는 표시이며, 다 내려 있으면 주인이 집 안에 있다는 징표다. 또 정낭이 2개는 걸쳐지고 1개가 내려지면 주인이 조금 먼 곳에, 1개가 걸쳐지고 2개가 내려 있으면 가까운 곳에 볼일 보러 갔다는 표시이다.
05 이영권, 『다시 쓰는 제주사』, (서울: 휴머니스트, 2005), pp.174-183 참조.
06 앞의 책, pp.262∼283 참조.
07 《대순회보》 168호, 「전경 다시 읽기 - 을미년(乙未年) 三」 참조.
08 교운 2장 55절 참조.
09 강정호, 『한라산』 (서울: 돌베개, 2003), p.14. / 원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사묘조(祠廟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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