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길불지형체(佛之形體)에 대한 일고찰<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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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병무 작성일2018.10.16 조회4,669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류병무
목차 Ⅰ. 머리말 Ⅱ. 불교 사찰(寺刹) Ⅲ. 불지형체와 대순진리회 Ⅳ. 맺음말 |
Ⅲ. 불지형체와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포덕교화기본원리』에는 대순진리회의 교리가 유교나 불교와 하등의 관계없는 해원상생지리(解冤相生之理)인 우주 자연의 법리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언뜻 보면 유불선과 대순진리회와의 연관성을 부정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통하여 유불선의 정수를 뽑아서 쓰셨으므로 유불선이 천지공사의 과정에서 하나의 역할을 한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러한 유불선의 정수를 뽑아서 썼다고 해서 대순진리회의 교리가 유불선의 교리적인 재해석이나 유불선에 기반한 사상이 아닌 우주 자연의 법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순진리회에서 불지형체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유불선과 대순진리회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유불선과 대순진리회의 관계
<전교의 일부>
釋後有孔孔後耶 一會一敎各門筵
按 釋迦如來距今二千九百五十年(癸亥年計)癸丑生 孔子距今二千四百
七十四年庚戌生 耶蘇距今一千九百二十三年辛酉生
석가 후 공자가, 공자 후 예수가 있었고 하나의 회에 하나의 교파(종교)가 자리 잡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석가여래는 지금으로부터 2,950년 전(계해년 계산) 계축생이었다. 공자는 지금으로부터01 2,474년 전 경술생이었다. 예수는 지금으로부터 1,923년 전 신유생이었다.
季統敎亦無肇聖 惟有述聖繼啓來
按 季統者黃帝卽位後 三千七十八年以後之季統也 距今一千五百年前六
朝及新羅之時
佛道中興 其後五百年距今略一千年前大宋之時濂洛諸賢一時傳道 其後五百年以後
羅馬法王以耶蘇敎爲西洋之盟主
佛梁儒宋耶羅馬 一敎一昌應會回 (교운 2장 26절)
계통의 교(가르침) 또한 조성(肇聖)02은 없고 단지 술성(述聖)03만이 이어서 가르쳐 왔다.
자세히 살펴보면 계통은 황제 즉위한지 3,078년 후이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육조시대(남북조시대)에서 신라 때 불교가 중흥하였다. 그 후 500년이 지나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에는 대송시대로서 염락의 여러 현인들이 한때 도를 전했다. 그로부터 500년 후 라마(로마) 법왕(교황)이 야소교(예수교)로서 서양의 맹주가 되었다. 불교는 양나라, 유교는 송나라(대송), 야소교는 로마시대에 하나의 종교가 한 번씩 창성했는데, 이것은 회(會)에 응한 것이다.
위의 내용은 도주님께서 1923(계해)년에 발표하신 전교 중 일부이다. 전교에는 역법에 기초하여 우주의 변화원리를 설명한 내용이 있다. 1원(元)은 4,617년으로 3통(統)으로 이루어져 있고, 1통은 1,539년이다. 또한 1통은 3회(會)로 이루어져 있고 1회는 513년이 된다. 맹자가 500년마다 반드시 왕자나 흥자가 나온다고 말하고 있는데04 이 주기는 1회의 주기와 거의 일치한다.
전교에서는 초통 초회에는 소호 금천씨, 전욱 고양씨, 제곡 고신씨, 제요 도당씨, 제순 유우씨, 제우 하우씨와 같은 성인들이 세세토록 나왔다고 한다.05 초통에서 계속 내려와 초통 중회에서 계회까지는 성인이 계속 계승되지 않았고, 계승되어도 단지 한 번뿐이었다.06 따라서 하나의 회마다 한 분의 성인이 응했으니 초통 중회의 탕왕과 초통 계회의 문왕이 바로 그러한 분들이다.07 중통 이후로는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서 성인이 도를 행하지 못하고 단지 그 가르침만을 전하였는데,08 중통의 회마다 나와서 가르침을 주신 분이 석가모니, 공자, 예수이시다.
이것으로 보아 석가모니·공자·예수의 가르침은 1원(元)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회마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석가모니·공자·예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형성된 종교 역시 하나의 회마다 중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경』 속에서 유불선과 대순진리회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제님께서 남기신 문헌인 현무경(玄武經)이며, 다음은 그 내용 중의 일부이다.
受天地之虛無仙之胞胎
受天地之寂滅佛之養生
受天地之以詔儒之浴帶
冠旺
兜率 虛無寂滅以詔 (교운 1장 66절)
포(胞), 태(胎), 양(養), 생(生), 욕(浴), 대(帶), 관(冠), 왕(旺), 쇠(衰), 병(病), 사(死), 장(葬)은 천지의 용으로써 모든 만물의 생겨남과 사라짐을 규정하는 원리다.09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 죽는 과정도 여기에 속한다. 현무경의 내용은 선도·불도·유도를 이러한 발전 단계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단계를 인간에 비유하여 설명하면, ‘포(胞)’는 세포단계의 생식세포로 음양의 교합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를 말한다. 이끼와 같은 포자식물의 경우는 무성적인 생식세포(홀씨라고도 한다)가 다른 것과 합체하는 일 없이 단독으로 발아하여 새 개체가 되는데 이것을 포자(胞子)라 하며 이를 통하여 포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태(胎)’는 육체의 시작인 뱃속의 아이[태아(胎兒)]를 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음양의 교합으로 인하여 발생하며, 비로소 새로운 생명의 태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양(養)’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을 말한다. ‘생(生)’은 출산을 통하여 이 세상에 나오는 것으로 비로소 자신이 살아갈 명을 가지게 되므로 생명(生命)이라고 한다. ‘욕(浴)’은 어린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으므로 부모의 손에 의해 자라는 것을 말한다. 즉 부모의 손에 의하여 자신의 더러움을 씻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대(帶)’는 옷 위로 가슴이나 허리에 둘러매는 끈의 총칭으로 띠라고도 한다. 대를 차는 나이는 사람이 성장하여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보며 주로 성혼할 수 있는 15∼16세이다. 옛날에는 남녀가 전부 15세에 달해야 비로소 혼약이 성립되었던 것이,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조혼(早婚)이 성행하여 심지어 남자가 11~12세에 이르면 혼약을 하고 관례를 행하기도 하였다. ‘관(冠)’은 머리에 쓰는 모자류를 말하며 신분제도와 더불어 발달하였다. 따라서 관은 일정한 나이가 되어 비로소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왕(旺)’은 가장 왕성할 때를 의미한다. 배운 바를 통하여 관직에 나아가 경험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때이다. ‘쇠(衰)’는 달도 차면 기울 듯이 인생의 활동기를 거쳐 점차 기력이 쇠하는 시기다. ‘병(病)’은 기력이 쇠함으로써 병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사(死)’는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말하며 ‘장(葬)’은 죽어서 장사지내는 것을 뜻한다.
포태는 무에서 유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없던 인간이 새로이 만들어지는 태아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무극과 태극의 원리가 바탕이 되며 조화의 단계가 되므로 선지조화(仙之造化)다. 양생은 태아가 자라서 각각의 형체인 완전한 몸체를 갖추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육체의 형성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형성의 기초가 되므로 불지형체(佛之形體)이다. 욕대는 태어나서 부모의 보살핌과 교육으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갖추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배워나가므로 유지범절(儒之凡節)이다. 그 다음 과정으로서 관왕(冠旺)은 완전한 인격을 갖춘 성인이 관직에 나아가 자신의 능력을 왕성하게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허무[선도], 적멸[불도], 이조[유도]를 도솔(兜率)10하는 관왕의 도가 나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관왕의 도인 상제님의 진리는 선불유와 단절된 것이 아니고 이미 그 속에 선불유가 내포되어 있으며, 그 단계적 과정을 거쳐 현실적으로 성숙된 새로운 차원의 모습을 지향하는 것이다.11 그 새로움이란 선불유가 바탕이 되고는 있지만 이미 선불유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사상이 상제님에 의해 태동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선도·불도·유도·서도가 후천 문명의 기초가 되며 관왕의 도가 허무적멸이조(虛無寂滅以詔)를 이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관왕의 도 태동 이전에는 선불유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해오면서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발휘되는 과정에서 큰 시비가 일어났고 결국 종교적 갈등으로 치닫게 되자, 인세에 강세하신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통하여 다시 문화의 정수를 합하여 쓰시게 된다. 그러므로 유불선의 도법을 합하여 쓰는 천지공사의 과정에서 불도는 형체적인 부분이, 선도는 조화적인 부분이, 유도는 범절적인 부분이 쓰였으며 상제님·도주님·도전님에 의하여 대순진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유불선의 정수는 새롭게 대순진리 안에 담기게 되었다고 본다. 도주님께서는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吾道者今不聞古不聞之道也)라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12라 하셨다. 이 말씀은 상제님·도주님·도전님에 의해 전해진 관왕의 도인 대순진리가 후천문명의 토대로 쓰인 기존의 유불선의 범주를 넘어선 새로운 사상이라는 것이다.
2. 불지형체로서 사찰의 쓰임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의 사찰에서 행하신 공사와 공부의 의미)
상제님께서는 천지공사를 행하시기 전에 인심과 속정을 살피시고자 3년간 주유의 길을 떠나셨다. 전국 각지로 두루 유력하시면서 민정을 살피시고 돌아오신 상제님께서는 신축년(1901년) 오월 중순부터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 가셔서 49일간 불음불식의 공부를 하셨다. 이때 처음 공부를 하신 장소가 대원사라는 사찰이었다. 물론 상제님께서 사찰에서 하신 공부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는 어렵지만, 민정을 살피신 것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기원 전후로 간다라 지방13으로 전파되며 이곳에서 서양의 대표문명인 그리스 문명과 만나게 된다. 헤라클레스와 같은 그리스 신상을 닮은 불상들이 처음으로 등장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 다음 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전래됐는데 이 과정에서 불교는 중앙아시아 문명, 특히 조로아스터교와 교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중국으로 전해져 중국문명과 또 한 번의 교류가 일어난다. 따라서 삼국에 전파된 불교는 이미 세계의 4대 문명이 모두 융합된 엄청난 문화복합체였던 것이다.14 한국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 6월 진(秦)나라의 순도(順道)와 아도(阿道)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들어와 초문사(肖門寺)·이불란사(伊弗蘭寺) 등을 창건하고 설법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삼국의 불교는 중앙집권국가의 특성상 왕권 강화용으로 사용되어 ‘왕즉불(王卽佛)’사상이 나오기도 했으며, 왕실과 귀족들만이 불교문화를 누릴 수 있었다. 통일신라 때 원효대사와 같은 고승들의 노력으로 불교가 민중에게도 알려지게 되면서 점차 대중화되기에 이른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는 사찰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민중과 깊은 교류를 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공부(工夫), 인연, 이판사판, 찰나, 이심전심, 아비규환, 야단법석, 아수라장, 면목, 방편, 삼매, 업보 등 많은 용어가 불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으로도 우리 일상에 불교문화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말미암아 유교가 성행하고 불교는 억압을 받게 된다. 탄압으로 힘이 약해진 불교는 자구책으로 민간의 신앙을 받아들여 민중과 함께하고자 했다.15 이러한 과정에서 지배계층과는 다르게 일반 민중들에게는 유교보다 불교가 더 가까이 존재하였다고 보인다. 사찰은 불교의 우주관을 통해 현실에서 불교의 이상 세계를 구현한 곳이었다. 민중은 그곳에서 생활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염원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불교 사찰에는 민중의 바람이 신앙의 형태로 담기게 되었다.16 이처럼 민중의 바람은 불교문화라는 테두리 안에 고스란히 담기어 있었고, 민정을 살피신 상제님께서는 그들의 바람을 담고 있는 불교 사찰을 통하여 이를 수용하고자 대원사에서 천지대도를 여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상제님께서 민중들의 바람을 살피셨다는 것은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신 후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후천 해원에 대한 애원을 들어주신 것17과 원시의 모든 신성·불·보살들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상제님께서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하셨다는 말씀18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즉, 대원사에서 천지대도를 여신 것은 민중들이 간절히 원하는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한 염원을 대순진리 안에 담기 위한 불지형체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찰에서 행하여진 대표적인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의 공부와 공사를 살펴봄으로써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불지형체가 대순진리회의 형성에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유추해 보고자 한다. 물론, 불교사찰에서의 공부와 공사가 불지형체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찰이 단지 장소적인 역할, 또는 사찰의 이름이 천지공사에 쓰였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부와 공사가 사찰에서 행하여진 것은 단순한 장소적인 의미이든 그것이 가진 이름의 쓰임이든 간에, 사찰에 담긴 불교문화의 정수가 천지공사를 통하여 대순진리에 담기는 데 하나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 상제님과 연관된 사찰
(1) 금산사(金山寺)19
금산사는 상제님께서 원시의 모든 신성·불·보살들의 호소와 청원으로 인세에 강세하신 후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삼십 년 동안 임하여 머무셨던 미륵금불이 있는 절이다. 따라서 금산사는 상제님의 강세20와 상제님의 존재21 및 상제님 강세 후 펼쳐질 세상의 모습22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금산사는 대순진리회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종통을 암시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23
(2) 대원사(大院寺)24
대원사는 상제님께서 신축년(1901년) 오월 중순부터 49일간 불음불식의 공부를 하시고 오룡허풍의 천지대도를 여신 곳이다.25 또한 상제님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하신 곳이다.26 대원사는 진묵대사와 관련된 절로 유명한데 상제님의 공부 기간 동안 금곡 대사가 시좌하였고 그 결과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것은 우리 도가 무병장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27
(3) 개암사(開岩寺)
부안 변산에 있는 개암사는 상제님께서 무신년(1908년) 7월에 신 원일을 이끄시고 가셔서 개벽공사를 보신 곳이다.28 개벽공사를 통하여 개벽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지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해를 끼칠 뿐이니 믿고 기다릴 것을 말씀하셨다. 즉, 개벽이 언제 오느냐 보다는 개벽에 대한 믿음과 수도를 통해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송광사(松廣寺)29
송광사는 전라북도 완주의 종남산 아래에 있는 절이다. 종남산(終南山)이란 ‘남쪽(여름 세상)의 기운이 마치는 곳에 있다’는 의미로 보이며, 이곳 송광사에서 불법을 빙자하고 혹세무민하는 중들의 무례를 꾸짖은 것은 수도인들의 수도 자세에 대한 경종이 아닌가 생각한다.30
2) 도주님과 연관된 사찰
(1) 대원사(大院寺)
상제님께서 천지대도를 여신 곳과 관련된 대원사는 도주님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곳에서 도주님께서는 100일간 머무시면서, 상제님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하시고 아직 응기하여 있는 것을 풀어 나가는 도수를 보신다. 백일 도수를 마치신 날은 신유년(1921년) 칠월 칠석날이다.31 도주님께서 보신 대원사에서의 도수를 통해 사찰에서의 공사와 공부가 신명적이며 기운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적천사(磧川寺)32
적천사는 경북 청도읍 원리 화악산 중척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도주님께서 계해년(1923년) 구월에 청도 유천(淸道楡川)의 박 동락(朴東洛)의 집에서 단 도수를 행하시고 나서 시월부터 다음해 이월 중순까지 도수에 의한 공부를 하신 곳이다. 도주님께서는 적천사 도솔암에 있는 칠성각 뒤에 돌단을 높이 쌓고 이십사방위을 정하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고 공부시간은 저녁 일곱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섯시로 정하고 일분 일초도 어김없이 넉달 동안 계속하셨는데 낮에는 공부 행하실 때 쓰실 글을 많이 쓰셨다. 이때의 공부를 단도수라고 하셨으며 배 문걸·이 우형·박 민곤이 시종을 하였다.33
(3) 마하사(摩訶寺)34
도주님께서는 기축년(1949년) 겨울에 부산 동래 마하사에서 49일간 공부를 하셨다. 이곳은 법당의 불상이 머리를 숙인 곳이며,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도주님께서 풀어나가신 곳이다.35
(4) 해인사(海印寺)36
도주님께서 갑오년(1954년) 가을에 공부하셨던 해인사는 경상남도 합천의 가야산 기슭에 있다.37 해인사에 다녀오신 도주님께서 종도들에게 해인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해인은 어떤 물체가 아니며 자기 장중에 있다고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잘 믿으면 해인을 가져다 주리라.”38라고 하셨다. 이런 것을 볼 때 해인은 물건이 아닌 상제님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열심히 수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5) 동학사(東鶴寺)39
도주님께서는 병신년(1956년)에 충남 계룡산에 있는 동학사 염화실(拈花室)에서 이렛동안 공부를 마치셨다. 이곳에서의 공부는 신명 해원을 위주한 것이었다. 동학사 경내에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을 기리는 동계사(東鷄寺)와 고려의 충신 삼은40을 기리는 삼은각(三隱閣), 그리고 조선의 6대 왕인 단종(端宗)의 숙모전(肅慕殿)과 생육신·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동묘·서묘가 있었다.41 현재는 동학사라는 사찰과 초혼각지가 나뉘어져 있지만 당시에는 불교 사찰과 유교의 초혼각지가 공존하던 곳이었다. 이곳은 삼대 충의지사의 얼이 서려 있는 곳으로 충효열이 무너진 선천을 진단하시고, 이를 다시 세우고자 했던 상제님의 뜻에 부합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도주님과 연관된 사찰로는 지리산 쌍계사42(교운 2장 60절 참조), 양산 영취산 통도사, 보은 속리산 법주사 등이 있다.
3) 도전님과 연관된 사찰
(1) 수리사(修理寺)43
도전님께서 태극도에서 이궁하셔서 대순진리회를 창건하시기 전인 1968년에 49일간 머무시면서 공부하신 곳이 수리사다. 수리산(修理山) 수리사는 경기도 안양과 군포시에 위치해 있는데, 수리산은 본래 견불산(見佛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도전님 공부 시에 청운스님이 정성껏 받들었다.
(2) 개태사(開泰寺)
계룡산 남쪽 말미의 충남 논산군 연산면(連山面) 천호리(天護里) 천호산에 있는 개태사는 한 때 도광사(道光寺)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미륵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 사찰로 도전님께서 다녀가신 곳이다. 이 절은 936년(고려 태조 19)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천명이 먹을 분량의 밥을 한꺼번에 지을 수 있는 커다란 무쇠 솥으로 만들어진 철확(鐵鑊)이 있으며 우주궁에는 관성제군이 모셔져 있다. 또한 나반존자가 13개의 방석 위에 모셔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3) 동학사(東鶴寺)
도주님께서 공부하신 동학사는 도전님께서도 여러 임원들을 데리고 여러 번 들리신 곳이다. 여기서 도전님께서는 충의열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수도인의 핵심정신이 여기에 있다.”, “수도인들의 정신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밖에 도주님께서 들르셨던 사찰을 도전님께서도 방문하셨다. 또한 대구 동화사, 충남 갑사, 충남 신원사, 논산 관촉사 등이 도전님께서 다녀가신 사찰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상제님께서 인세에 강세하신 후 30년간 임하신 곳이 금산사 미륵금불이며 천지대도를 여시고 신명을 심판하신 곳이 대원사다. 또 개암사에서는 개벽공사를 보기도 하셨으며 송광사에서는 수도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경계하도록 하신 곳이다. 상제님의 뒤를 이으신 도주님께서도 마하사, 대원사, 동학사, 쌍계사, 해인사 등에서 공부 및 여러 도수를 보셨다. 또한 도전님께서도 개태사, 동학사, 동화사, 금산사, 갑사, 신원사, 관촉사 등을 둘러보셨으며 수리사에서 공부를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대원사에서 천지대도를 여시기 위해 49일간 공부를 하셨고, 도주님께서는 태극도 형성 초기에 마하사에서 49일간 공부를 하셨으며, 도전님께서는 태극도에서 이궁하셔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하기 전에 수리사에서 49일간 공부를 하셨다.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도주님께서 유법(遺法)을 세우셨고 도전님께서 유훈(遺訓)으로 대순진리를 전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대순진리회다. 따라서 대순진리회의 형성 과정에서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의 공부 및 여러 공사가 불교의 사찰에서 행하여졌다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닐 것이다.
3. 불지형체와 대순진리회
『전경』에는 ‘불지형체 선지조화 유지범절(佛之形體仙之造化儒之凡節)’44이라고 하여 불도의 형체적인 부분이 쓰였음을 말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의 형성에 불지형체로서의 역할을 한 불교의 영향으로 대순진리회는 표면적으로 많은 부분이 불교의 형체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장 입구에 있는 일주문, 종각, 북각, 청계탑이 그러하고 단청의 모습이나 신성·불·보살들이 도장 곳곳에 모셔져 있는 것도 그러하다. 또한, 금강산토성수련도장에 미륵불이 조성되어 있는 것과 가장 신성시되는 영대에 서가여래가 봉안되어 있어서 진법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외관상의 유사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순진리회가 미륵을 신앙하는 불교 종파 중의 하나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순진리회의 형성에 불교의 형체적인 부분이 쓰였다고 해서, 대순진리회가 불교를 모방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은 유불선과 대순진리회와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았다.
불지형체는 불교가 단지 대순진리회의 외형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대순진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불지양생처럼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음 운합주(運合呪)45 내용을 통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 儒彿仙一合之情(유불선일합지정) … 仙佛儒諸修道者修道一合之情(선불유제수도자수도일합지정) 諸道度諸精氣茁茁歸合太一(제도도제정기촬촬귀합태일) 聖哲茁茁歸茁茁歸合太一(성철촬촬귀촬촬귀합태일) ….”(… 유불선은 하나로 합한 정화이다. … 선불유의 모든 수도자는 수도로써 하나로 합한 정화이다. 모든 도의 법도와 모든 정기는 싹이 나서 크게 하나로 귀합된다. 성철이 싹을 틔워 자라나서 크게 하나로 귀합된다. …) 상제님의 뒤를 이으신 도주님께서 밝혀 놓으신 운합주는 모든 운(運)을 합(合)하는 주문이다. 정(精)이란 벼가[米] 가장 푸를 때[靑]를 말하므로 가장 왕성한 기운을 가질 때이다. 따라서 유불선의 가장 왕성한 정수를 합하신 것이며, 유불선을 행하는 제 수도자들이 하나의 수도로 합해져서 모든 법도와 정기가 하나로 귀합하듯이 대순진리회로 귀합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쫓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46고 말씀하셨다. 즉 동학신자들이 꿈꾸는 이상세계가 상제님의 천지공사로 인하여 대순진리회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학신자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이상세계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학 신자들은 후천, 불교 신자는 미륵이 출현한 용화세계, 예수 신자는 예수가 재림한 지상천국을 말한다.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길 “동학 신자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고, 불교 신자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예수 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47고 하심으로써 상제님께서 베푸신 대순진리에 의해 이러한 인간들의 소망이 실현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찰에는 불교의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기에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께서 사찰에서의 공부를 통하여 누구나 원하는 이상세계를 대순진리에 담는 공사와 공부를 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찰에 담긴 우주관과 민중의 바람이 대순진리 안에 선지조화와 유지범절처럼 불지형체로서 담기게 되었다고 필자는 보았다.
물론 불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空)사상을 대표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으로,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해서 고정된 실체가 없는 형체 본질의 무상성(無常性)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불교에서 형체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상제님께서 어떤 의미에서 ‘불지형체’와 ‘양생’에 관하여 말씀하셨는지 정확한 의미를 알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불교의 형체적인 부분을 언급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필자의 견해와 함께 소개해 보겠다.
첫째, 불지형체에서 형체를 형지체(形之體)로 보는 경우다.48 이 경우는 불교의 핵심을 형체의 진리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형체란 형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의 본체를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불교의 깨달음이 일체의 형상적 집착에서 벗어나 생멸(生滅)이 없는 진여(眞如)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형체를 ‘형상의 본체’의 준말인 형지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불지형체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 오히려 불교의 핵심을 꿰뚫어 보신 것으로 보는 경우다. 즉 상제님 제세 시에 만연하던 『반야경』 및 『금강경』 위주의 공(空)사상 일변도로 불교를 이해하는 방식과 달리, 불타가 말씀하신 사성제(四聖蹄)에 기반하여 공을 연기(緣起)가 아닌 ‘결여(缺如)’로 보는 입장에서 만물의 궁극적인 실체까지 인정하는 소승의 제 부파 및 여래장사상49, 더 나아가 이후의 불성(佛性)사상까지 포괄한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 불지형체를 불지양생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서 세상에 나오는 양생의 과정처럼, 불교의 형체적인 부분이 대순진리회의 형성과정에 쓰이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육체는 끊임없이 변함으로 영원한 형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변한다고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상제님께서 불의 형체적인 부분을 도의 양생의 과정에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견해에서 논리를 전개하여 불교의 형체적인 부분으로서의 사찰에 담긴 불교의 우주관이, 상제님과 도주님 그리고 도전님의 공사와 공부를 통하여 대순진리회의 형성 과정에 쓰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참동학과 같은 민중들의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도 대순진리 안에 담기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
Ⅴ. 맺음말
본문에서 불교의 우주관을 통하여 사찰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사찰의 구조에는 불교의 우주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 세상에 세워진 사찰은 불교의 이상 세계를 담고 있으며 이것은 사찰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세속과 분리된 하나의 부처님의 세계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불교의 전파 과정에서 사찰은 민중과의 교류를 통하여 민중들이 원하는 이상을 하나둘씩 담기 시작했고 결국 불교의 사찰은 불교만의 이상을 넘어 일반 대중들의 이상이 녹아 있는 곳이 되었다.
불지형체에 대한 고찰에 앞서 유불선과 대순진리회의 관계에 대하여 전교50와 현무경을 통하여 살펴 보았다. 도주님께서 1923년에 반포하신 전교에 의하면 석가모니·공자·예수의 가르침이 우주의 흐름 속에서 각 회마다 역할을 하였으며, 그 가르침이 종교를 통하여 각 나라의 문화를 이룩하여 회(會)마다 중흥하였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또한 현무경51에는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이라는 만물의 생성변화 원리 속에서 유불선과 대순진리회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선천의 선도·불도·유도·서도가 각 민족의 문화의 바탕이 되었으나 자신들의 가르침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큰 시비를 불러일으킴으로 인해 많은 종교적 갈등을 일으켰다. 원시의 모든 신성·불·보살들의 청원과 호소로 1871년 인세에 강세하신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문화의 시비를 거두시는 공사를 통하여 민족들의 제각기 문화의 정수를 걷어 후천에 이룩할 문명의 기초로 정하신 것이다. 상제님에 의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관왕의 도는 선천의 선불유를 뛰어 넘는 새로운 사상이라는 데에 그 의미가 자못 크다 하겠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천지공사를 통하여 만고(萬古)의 원을 풀고 인간들이 원하는 이상 세계를 건설하시고자 하신 상제님께서는 세속과 민정을 살피는 과정에서 민중들이 원하는 바를 몸소 듣고 체험하셨다. 따라서 천지공사의 과정에서 민중들의 이상이 담긴 불교의 사찰에서의 공부와 공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람들의 바람은 불교문화를 통하여 상제님의 천지공사 속에 반영되어 대순진리 안에 녹아들게 된다.
상제님의 뒤를 이으신 도주님과 도전님께서도 불교 사찰에서 공부하셨다.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의 불교 사찰에서 행하신 공부와 공사의 내용을 통하여 불교가 대순진리회 형성과정에서 불지형체로서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추론해 보았다. 그리고 불지형체가 단순한 외관상의 형태가 아닌 대순진리라는 사상의 형성에 양생의 과정으로 포괄적으로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불지형체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들이 꿈꾸는 이상세계인 참동학이 대순진리의 사상에 담김으로써 대순진리회를 통하여 인간의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것을 필자는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대순회보> 145호
참고 문헌
·『전경』
·『대순지침』
·『대순회보』
·『대순진리회요람』
·『대순진리회 포덕교화기본원리』
·이경원, 『한국 신종교와 대순사상』, 문사철, 2011.
·김승동, 『불교·인도 사상사전』, 부산대학교 출판부, 2001.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8.
·불교문화연구원, 『한국불교문화사전』, 운주사, 2009.
·조계종 출판사 편집부, 『불교상식』, 조계종 출판사, 2001.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불교문화』, 조계종 출판사, 2005.
·불교방송 편성제작국, 『알기 쉬운 불교』, BBS 불교방송, 2001.
·대안 스님, 『알기 쉬운 불교강좌(上)』, 혜성 출판사, 2004.
·석지현·윤창화·일지, 『왕초보, 불교박사 되다』, 민족사, 2002.
·김정빈, 『만화로 보는 불교 이야기1, 불교란 무엇인가』, 책이 있는 마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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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전교를 발표하신 1923년(계해년 계산)을 말한다.
02 어떤 사상을 창시한 시원의 성인을 이른다.
03 조성(肇聖)의 가르침을 기술하여 후세에 전하는 성인을 이른다.
04 孟子所謂五百年必有王者興者此也
05 傳囂頊嚳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
06 初統之中降中季 聖不承承但一時
07 禹後有湯後文 一會一聖應會期
08 中統由來世漸降 聖不道行但敎傳
09 天地之用 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而已 (제생 43절)
10 모두 품어 거느리다.
11 이경원 저, 『한국 신종교와 대순사상』, 문사철, 2011. p.394 참조.
12 교운 2장 18절.
13 현재 아프가니스탄 지역.
14 최준식(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네이버 캐스트 「위대한 문화유산, 동양문화 사상의 근원 불교」(발행일 2011. 01. 27) 참조.
15 앞서 살펴 본 삼성각의 경우, 조선시대의 민간 토속 신앙이 불교 사찰에 유입된 사례이다.
16 불교의 미륵에 대안 신앙은 하나의 좋은 예이다.
17 행록 2장 15절 참조.
18 교운 1장 9절 참조.
19 『대순회보』 4호, 25호, 26호, 69호 참조.
20 교운 1장 19절 참조.
21 행록 2장 16절.
22 예시 14절.
23 예시 15절, 행록 5장 29절, 『대순지침』, p.49.
24 『대순회보』 18호, 44호, 68호, 88호 참조.
25 행록 2장 12절 참조.
26 교운 2장 21절.
27 행록 2장 13절 참조.
28 공사 2장 27절 참조.
29 『대순회보』 23호 참조.
30 교운 2장 47절 참조.
31 교운 2장 21절 참조.
32 『대순회보』 55호 참조.
33 교운 2장 28절 참조.
34 『대순회보』 61호, 112호 참조.
35 교운 2장 47, 48절 참조.
36 『대순회보』 20호, 108호 참조.
37 교운 2장 54, 55절 참조.
38 교운 1장 62절.
39 『대순회보』 21호 참조.
40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목은 이색.
41 교운 2장 57절 참조.
42 『대순회보』 111호 참조.
43 『대순회보』 63호 참조.
44 공사 3장 39절.
45 교운 2장 42절.
46 권지 1장 11절.
47 예시 79절.
48 이경원 저, 『한국 신종교와 대순사상』, 문사철, 2011. pp.382∼383 참조.
49 중생은 본래부터 여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상.
50 교운 2장 26절.
51 교운 1장 6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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