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논단기성종교와 대순진리회의 심론(心論) 비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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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05 조회4,926회 댓글0건본문
- 儒家·佛家·道家를 중심으로 -
글 연구위원 진정애
- 目 次 -
Ⅰ. 들어가는 말
Ⅱ. 기성종교의 심론
1. 유가의 인심도심론
2. 불가의 유심론
3. 도가의 허정심론
Ⅲ. 대순진리회의 심론
Ⅳ. 나오는 말
Ⅰ. 들어가는말
마음 즉 심(心)은 몸, 자연, 객관에 대해서 의식, 정신, 주관의 독자적인 세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일상 언어이든 전문용어이든 진심(眞心)과 양심(良心)은 어떠한 외적 계기에 의해 침해될 수 없고, 인간다움이 드러나며 그것을 수호할 수 있는 성역으로 간주된다. 또 심(心)은 기원상으로 사람과 동물이 함께 가지는 생리적 기관이었지만 언제부터 그것은 동물을 영원히 배제시키고 인간만의 특성으로 전유되었다.02 인간을 마음과 몸으로 이루어진 구성체라고 할 때 몸은 마음의 주재에 따르는 것이므로 결국 인간의 문제를 여는 열쇠는 마음이 가지고 있다. 수행의 대상으로서 마음, 깨달음의 실체로서의 마음,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마음, 인간의 교통가능성으로서의 마음, 도덕적 근거로서의 마음 등 마음은 어디에서나 거론되는 철학적 의미체로서03 동양사상에서는 중심이 되는 요소로서 발달해 왔다.
동양사상 가운데, 유가, 불가, 도가의 심론(心論)이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로서 대표된다. 이들 세 종교들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랜 세월 속에서 각각의 문화권 마다 서로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 동안에 기성종교들이 가장 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논의한 대상은 바로 인간의 본질적인 면 즉 마음이었다. 그 마음에 대한 논의는 같은 종교 안에서도 마음에 대한 의미가 학자들마다 학파마다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그 예로서 유가에서 맹자와 순자의 심의 의미가 다르고 주자와 육상산이 주장하는 심의 의미가 달랐다. 똑같은 심이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는 서로 다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성종교들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심론을 살펴본다면 각 종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성종교의 마음(心)에 대한 논의가 대순진리회에 이르러서는 이전보다 발전된 심(心)으로 집약하게 된다. 대순진리회의 심(心)은 기성종교의 심론을 수용하면서도 특별히 인격적인 신(神)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신과 인간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 예로 상제께서 행하신 9년간 천지공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늘과 땅은 상제님의 조화(造化)에 의해 직접 고쳐지게 되지만, 인간을 고치기 위해서는 신명을 가슴 속에 드나들게 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바로 인간이 신과 관련성이 있으며, 그 신명과 교류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마음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연구방법으로 기성종교는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심론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 신종교인 대순진리회에서는 기성종교의 심론을 수용하면서도 유신론적 특질 속에서 마음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기성종교의 심론(心論)
1. 유가의 인심도심론(人心道心論)
유가에서의 마음은 실제적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각자의 행위를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게 하는 작위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가에서의 마음은 항상 행위 지향적이다. 그러므로 구체적 인간관계의 현실 속에서 전개되는 삶의 문제에서 옳고 그른 것을 밝히는 일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 규범적 성격이 강하다.
유가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인심과 도심으로 구분하여 분석하고 있다.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개념이 처음 경전(經典)에서 등장하고 있는 곳은 『서경(書經)』 「대우모」편이다. 여기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隱微)하니,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본래 요(堯)가 순(舜)에게 선양하면서 명을 내린 이른바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라.(允執厥中)”고 한 것을, 순(舜)이 다시 우(禹)에게 선양하면서 이를 보다 소상하게 풀어서 전한 것이다.
인심도심에 대한 연원04으로 먼저 공자(B.C.552-479)는 마음을 “마음을 따라서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從心所欲不踰矩)”05라고 하여 단지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으로만 말하였다. 공자의 뒤를 이은 맹자(B.C.372-289)는 인심도심론에 대한 유사한 발상으로 대체소체(大體小體)를 설명한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람이 자기 몸에 대해서 사랑하는 바를 겸하니, 사랑하는 바를 겸하면 기르는 바를 겸한다. 한 자와 한 치의 살을 사랑하지 않음이 없다면, 한 자와 한 치의 살을 기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잘 기르고 잘못 기름을 상고하는 것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자기에게서 취할 뿐이다. 몸에는 귀천(貴賤)이 있으며 대소(大小)가 있으니,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해치지 말며, 천한 것을 가지고 귀한 것을 해치지 말아야 하니,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소인(小人)이 되고, 큰 것을 기르는 자는 대인(大人)이 되는 것이다.06
위의 글에서 맹자(孟子)는 사람의 몸에는 귀천(貴賤)이 있고 대소(大小)가 있으니, 잘 기르느냐 잘못 기르느냐에 따라 대인(大人)이 되기도 하고, 소인(小人)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맹자는 “대체(大體)를 따르는 사람은 대인(大人)이 되고, 그 소체(小體)를 따르는 사람은 소인(小人)이 된다”07고 하였다. 대체(大體)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마음을 뜻하고, 소체(小體)란 이목(耳目) 등의 외물(外物)에 가려진 마음을 뜻하므로 이것들은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후로 송대(宋代)에 이르러 인심도심론은 장재(1020-1077)의 『정몽』에 천리인욕(天理人欲)으로 구분하여 해석되어지고 있다.08 그러나 실질적으로 정이천(1033~1107)은 인욕(人欲)과 사욕(私欲)을 구분하여 인심도심이 위태롭고 미미한 원인이 사욕(私欲)에 있으므로, 사욕을 없애면 곧 천리에 밝아진다이고09 하여 수양론의 문제까지 언급한다. 주자(본명: 朱熹, 1130~1200)는 기본적으로 정이천의 입장에 동의하여 『중용』 서문에서 구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이론의 발전을 보게 된다.
심(心)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과 도심의 다름이 있다고 한 것은, 혹은 형기의 사(私)에서 나오고, 혹은 성명의 올바른 것에 바탕을 둠으로써 그 지각(知覺)되게 하는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은 위태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며, 혹은 미묘(微妙)하여 나타나기 어려울 뿐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해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또 이 성(性)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가장 우매한 사람이라 해도 도심(道心)이 없을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方寸(마음)의 사이에 섞여 있는데도 그것을 다스릴 바를 모르면, 위태로운 것이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이 더욱 은미해져서 천리(天理)의 공이 끝내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정밀하면 곧 두 가지의 사이를 살펴 섞이지 않게 하고, 한결같으면 곧 그 본심(本心)의 올바름을 지켜 잃지 않게 한다. 이에 종사(從事)하여 끊임이 없게 함으로써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일신(一身)을 주재하게 하고, 인심이 항상 명령을 듣게 하면, 위태로운 것이 편안하게 되고, 은미한 것이 드러나게 되어, 그 동(動)·정(靜)과 말하고 행하는 것이 스스로 과부족이 없게 될 것이다.10
주자는 마음의 허령지각을 근거로 해서 인심은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生)하고, 도심은 천지의 바름에 근원한다는 것이다. 인심은 위태하여 불안하고 도심은 은미해서 보기 어려운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인심의 과(過)·불급(不及)의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도심의 명령을 들어야 하며 인욕(人欲)의 사(私)를 이기기 위해서는 정일(精一)해서 도심의 정(正)을 지켜 이로부터 떠나지 말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심은 왜 형기(形氣)11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는가? 배고픔(飢)·배부름(飽)·추위(寒)·따뜻함(暖)과 같은 것들은 모두 내 몸의 혈기나 형체에서 생기므로 다른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사로운 것이라고 말한다.12
또한 도심은 왜 성명(性命)의 올바름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명의 바른 것은 리(理)에서 나오고 명의 부여받는 것은 기질에서 나오니, 요체는 모두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이다(命之正者出於理, 命之稟 者出於氣質, 要之皆天所賦予)”13라고 하는 데서 보이듯이 성명의 올바름은 순수한 리(理)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명(性命), 곧 성(性)과 천명은 모두 리(理)요, 만물에 예외없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다. 그래서 성명의 올바름에서 근원한 도심을 공명한 것이라고 한다. 주자는 인심과 도심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어 발휘하여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인심의 과·불급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인욕이다. 주자는 인욕을 없애기 위해 천리와 인욕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그러면 천리와 인욕은 어떻게 변별할 수 있는가?
“음식의 사이에 어떤 것이 천리(天理)가 되며 어떤 것이 인욕(人欲)이 됩니까?”라고 물으니, 주자가 “음식을 먹는 것은 천리요, 맛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인욕이다.”라고 대답하였다.14
사람은 누구나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성인이나 일반 사람이나 당연한 생존본능이다. 인욕(人欲)이 맛을 요구한다고 해서 불선(不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인욕(人欲)이 과불급(過不及)으로 흘러서 중절(中節)에 맞지 않으면 불선(不善)인 것이다. 주자는 천리와 인욕이 하나의 마음 안에 있지만 동시에 공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도심은 또한 주(主)가 되어 인심을 주도해 나가야만 한다. 위태롭고 불안한 인심이 도심을 위주로 해서 그 명을 듣게 되면 불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도심을 확충하여 인욕을 막기 위해서는 정찰(精察)과 정일(精一)로서 해야 만이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을 수 있다(存天理 人欲)’는 것이다.
2. 불가의 유심론(唯心論)
불교는 일반적으로 ‘보고 알고 깨닫는’데 바탕을 두고 있지,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지는 않다. 불경에 믿음(belief)이나 신심(faith)으로 번역되는 ‘다(Saddha)’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말이다.15 불교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바로 열반이다. 열반은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얻어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이 확신을 가지고 명상과 수행을 통한 노력으로 가능하다.
열반(Nirvna)의 경지란 인간 스스로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과 집착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되는 최고의 위치이다. 원래는 산스크리트어로서, 열반의 본뜻은 ‘바람이 멎은 상태’(Nir + vana) 혹은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를 뜻하며 타오르는 번뇌의 바람이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때 비로소 적정한 최상의 안락이 실현된다.
이런 최고의 경지인 열반에 들기 위해서 불교를 수행할 때, 우리는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 이 마음에 대한 논의는 원시불교16이래 부파불교17·대승불교18에 이르기까지 불교학 전반에 걸쳐 중요한 테마였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을 넘어 논의하여 변천 발전하였다.
불교의 심에 대한 논의를 시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원시불교 시대에서는 인간의 마음이란 모든 법의 근본이 된다고 하여 심위법본(心爲法本)을 설하고 있다. 제법(諸法)의 근본이 된다는 마음을 원시경전에서는 청정본성(淸淨本性)과 객진습성(客塵習性)19의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잡아함(雜阿含)』 卷47에 의하면 마음을 진흙 속에 묻힌 순금으로 비유하여 우리의 본성은 본래 청정한 것인데 객진번뇌(客塵煩惱)에 의해 잠시 오염되어 있을 뿐이어서 수도에 의해 모든 악(惡)을 끊어 없애면 청정한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20
부파불교에 이르러서는 심위법본설에 입각한 원시경전의 연기설을 바탕으로 보다 유심론(唯心論)적인 연기설을 성립하여 모든 법(法)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유심연기(由心緣起)21를 설하고 있다. 부파불교는 원시경전에 나타난 청정본성(淸淨本性)과 객진습성(客塵習性)의 심성양면관(心性兩面觀)을 수용하여 대중부에서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을 주장하여 마음의 본성은 청정한 것이나 잠시 객진번뇌(客塵煩惱)에 오염22되었을 뿐이라고 하고, 유부계통에서는 심성본정부정이면설(心性本淨不淨二面說)을 주장하여 본성의 청정심(淸淨心)보다는 현상의 부정심(不淨心)의 설명에 더 치중하고 있다.23 이러한 부파불교의 유심적 입장은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마침내 ‘만 가지 법이 오직 마음(萬法唯心)’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게 된다.
초기 대승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삼계(三界)가 허망하니 다만 이 한마음이 지은 것이다”24라고 하여 온갖 양상의 세계 존재가 ‘일심(一心)’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과 같은 뜻으로 마음을 현상세계의 근원이라고 하여 부파불교의 유심적 입장을 계승한다. 또한 『화엄경』에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 가지는 차별이 없다”(心佛衆生, 是三無差別)라고 하여, 부처와 중생의 양극적 세계도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중기의 중심사상은 크게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 유식사상(唯識思想)이라고 볼 수 있다. 여래장사상은 『여래장경』, 『승만경』 등에서 나오는 사상으로 원시불교이래 부파불교의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을 토대로 하여 성불(成佛)의 가능성을 중생심(衆生心) 안에서 구하며, 나아가 생사(生死) 등 일체염법(一切染法)의 근원을 여래장(如來藏)으로 보고 있다.25
한편 유식사상 계통에서는 『해심밀경』을 기초로 하여 현상계의 모든 법은 유정(有情)의 심식작용 특히 근본식인 제8식(第八識)의 전변(轉變)에 불과하다는 아뢰야연기설(阿賴耶緣起說)을 주장한다.
독자적 사상체계로서 각각 발전해 오던 여래장사상과 아뢰야연기설은 대승불교 중기의 후반에 이르러서는 ‘아뢰야식과 여래장의 동이문제(同異問題) 및 상호관계’와 ‘아뢰야식의 진망(眞妄)문제’ 등이 쟁점으로 되면서 두 사상의 통합이 시작된다. 이러한 배경아래에서 등장한 『능가경』에서는 마침내 여래장 사상과 아뢰야연기설이 종합된다. 『능가경』에서 교설내용은 경에서 명시하듯 ‘오법(五法)26·삼자성(三自性)27·팔식(八識)28·이무아설(二無我說)’29이다. 이중 오법과 삼자성은 현상계가 전개되고, 그 위에 주관적인 고집이 생기며, 또 역으로 본체계인 진여(眞如)30에 환원하는 것 등이 모두 심(心)에 있다고 강조한다. 즉 이 심(心)이 움직이는 모양에 따라 놓여 있는 것을 식(識)이라 하여 이 식(識)의 구체적인 팔식작용으로 인해 현상계가 전개되는데, 미혹한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으로부터 드러나는 현상계에 따라서 아집(我執)31과 법집(法執)32을 일으킨다고 한다. 나아가 아(我)와 법(法)은 가유(假有)로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이무아(二無我)를 체달하면 곧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세계인 진여계(眞如界)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능가경의 교설내용인 오법(五法)·삼자성(三自性)·팔식(八識)·이무아(二無我) 등은 모두 심(心)을 근본으로 한 본체현상 등의 만법(萬法)을 설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3. 도가의 허정심론(虛靜心論)
노자와 장자의 사상으로 성립된 도가사상은 후대 뚜렷한 계승자도 없으면서 동양인의 정신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도가사상은 당시 사회나 정치 및 문화적 상황과의 관련을 통해서 생겨났다. 노자와 장자가 생존하던 시기는 주나라의 사상과 문물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인의예법(仁義禮法)’이 사회의 규범으로 표방되었으나 국가적으로 정치질서의 혼미와 전쟁상태의 가열화만 계속되고, 각종 사회기풍은 문란과 타락으로 치달았던 시대였다. 도가는 이렇게 된 원인이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발생된 폐해로, 결국 그런 원인으로 인해서 주나라가 몰락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도가는 사실의 본질을 해치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알아내어 어떻게 인위조작의 경향을 소화시키고 자유자재하는 자연무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노자(BC 580-500)는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무위에 이른다.”33라고 말하여 ‘인위(人爲)’, ‘조작(造作)’, ‘유위(有爲)’를 부정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통하여 도달하는 경지의 의미로 무위를 말한다.
노자는 무위를 실현하는 관건은 수양을 통하여 성인의 덕을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노자는 수양공부로 ‘위학(爲學)’과 ‘위도(爲道)’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황으로 설명하고 있다. 『도덕경(道德經)』에 “위학(爲學) 즉 학문을 하는 자는 날마다 더하고 위도(爲道) 즉 도를 하는 자는 날마다 덜어 내어 무위에 이르니 무위하면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34라고 말하여 위도의 공부를 제시한다. 위도 공부는 경험의 세계에서 오는 지식과 욕망을 반성하고 부정하여 덕성의 회복을 목적으로 삼아 일체 외부의 지식을 줄이고 없애서 내면적인 정신의 초월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현묘한 거울의 때를 깨끗이 닦아내어 흠이 하나도 없게 할 수 있는가?”35 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깨끗이 닦아내어(滌除)’라는 것은 마음에 조작을 일으키고 어지럽게 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고, ‘현묘한 거울(賢覽)’은 우리 마음의 허정함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노자는 허정(虛靜)에 대해서 “허(虛)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하면 만물이 바야흐로 깨어날 때 나는 그 돌아감을 본다”36라고 말한다. ‘허(虛)’는 궁극적인 곳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고, ‘정(靜)’은 독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노자는 허정심의 경지를 회복해야 원래의 고요한 상태인 존재의 자연스러움을 드러내고, 조작과 구속이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위이다. 무가 드러나는 경지를 도가(道家)용어로 말하면 허(虛)와 정(靜)이다. 노자는 인간이 먼저 허정하고 자연의 본성으로 돌아간 뒤에, 만물이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관조할 수 있다고 한다.
장자(莊子, BC 369-286)는 노자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켰지만 노자와는 또 상당히 구별 된다. 노자가 말한 도는 비교적 객관적 의미를 부여하였다면, 장자의 도는 사람의 내재적 본성과 정신적 경지로 전환시켰다.37 인간의 정신적 경지인 도는 노자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이것은 도의 속성이며 동시에 인간의 본성이다. 장자는 심의 본성을 허정(虛靜)·염담(恬淡)·적막(寂寞)·무위(無爲)38라고 한다. 그런데 심은 외부 사물에 의해 이끌려 그 원래의 위치를 떠나고 마침내 외부 사물을 좇아 질주하여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그것의 본성을 함몰시키게 되는데, 이때의 심은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심이 스스로 원래의 위치에 존재하게 되어 물을 따라 옮기지 않으면 이때의 심은 바로 인체의 정신이 드러나는 곳으로서 인간의 영부(靈府)39·영대(靈臺)40가 된다.
장자의 주요한 공부는 사람들의 심을 어떻게 하면 심의 원래 위치와 원래의 본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에 있다. 장자는 심의 본성에 적응하는 공부로는 허(虛)·정(靜)·지(止)라고 한다. 허(虛)는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선입견이 없는 것이고, 정(靜)은 물욕과 감정에 의해 소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지(止)는 마음이 유혹을 받아 질주하지 않는 것이다.41 그는 공허[虛]할 수 있고 고요할[靜] 수 있으면 멈출[止] 수 있다고 하였다. 장자의 「천하(天下)」편에 “천지의 정신과 왕래하면서 만물을 얕보지 않고 시비를 가려서 탓하지 않고 세속과 더불어 처신해간다.(與天地精神往來 而不敖倪於萬物, 不譴是非, 以與世俗處)”는 구절은 실제 허정의 공부로 나타난 공허하고 고요한 정신의 경지에 대해서 묘사한 것이다. 허정(虛靜)한 심은 본래 모든 차별과 대립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으며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도달되는 정신의 경지를 말한다. 장자는 이러한 심의 경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옛날 진인은 잠을 잘 때 꿈을 꾸지 않고, 깨어 있어도 근심이 없으며, 식사에도 맛을 찾지 않고, 그 숨결은 깊고 깊었다. 그래서 진인의 호흡은 대지를 딛고 서서 발꿈치로부터 쉬어 나오나 보통 사람들의 호흡은 목구멍으로부터 나온다. …옛날 진인은 삶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모른다. 출생했다고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에도 항거하지 않으며, 선선히 가고 선선히 올 뿐이다. 그 비롯되는 바도 잊지 않고 그 끝나는 바도 추구하지 않는다. 삶을 받아서 기뻐하다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런 것을 일러 마음으로 도를 훼손시키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하늘의 명을 돕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이런 사람을 진인이라 한다.42
이러한 진인이 장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인간상이며, 또한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도를 체득한 인간은 지인(至人), 신인(神人), 성인(聖人), 천인(天人) 등으로 불리어지고, 그 마음은 무위자연의 심 즉, 허정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장자는 허정무위의 심이 일체의 시비와 선악 등 공리의 심(心)을 배제하고 유한적인 자아를 초월하여 무한적인 자아를 실현하며, 인지의 심이 체험하는 것보다 높은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천지와 화합하는 천락(天樂)이라는 것이다.43 이것은 형체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형체를 초월하여 최대한 주체의 능동성을 가지고 있으며, 천지에 미치게 하고 만물에 통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만물의 본원이 된다는 것이다.
Ⅲ. 대순진리회의 심론(心論)
대순진리회에서 인간의 존재는 신명계와 유기적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관계체이며 홀로 존재하는 단독자가 아니므로 천지신명과의 합일이 중요하다.
대순진리회에서 인간이 천지신명과 합일된 궁극적 가치실현이 되는 경지는 도통이다. 왜냐하면 합일이란 뜻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이 가장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고,44 대순진리회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이 도통이기 때문이다. 『전경』에 도통을 이루는 방법으로 수도를 강조하고 있다. 수도는 도통을 이루기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방법적 문제이다. 수도하는 사람이 각각 심신으로 바르게 닦으면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고,45 또한 유·불·선의 도통신명들이 모여 도를 통하게 한다. 그리고 인간이 도통신명에 의해서 도를 통하는 과정은 반드시 대두목을 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46 즉 대순진리회에서의 도통은 인간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마음을 닦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대두목을 매개로 하여 도통신명과의 연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신과 인간이 상합한 연후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47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천지대도인 양위상제님이 계시는 곳에 몸과 마음을 다 맡기면 천지신명을 통하여 도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천지신명과 합일을 통해서 도통할 수 있는 근거는 내재적인 중심에 마음이 있다. 대순진리회에서 주장하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 그것에 대해 전경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대순진리회에서 마음은 ‘천지의 중앙’, ‘심령신대(心靈神臺)’, ‘일신의 주재(身依於心)’로 나타난다. 먼저 대순사상에서 인간의 마음이 ‘천지의 중앙’이라고 하는 표현은 인간관의 한 부분인 본체론적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천지의 중앙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동서남북 사방과 몸이 마음에 의지한다.48
이 글에서 보면, 천지와 동서남북 그리고 인간의 몸은 모두 마음에 의지하고 있다. 이때 마음은 인간에게는 물론이며 천지와 동서남북과 같은 우주적인 영역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마음은 천지우주의 중심이며 나아가서 천지를 주관한다. 천지우주의 운행은 전체적인 하나의 원리로써 통할되는데, 이 원리는 일정한 법칙으로 우주심(宇宙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우주의 원리가 천지간의 모든 개개사물에 투영되어 잠재하고 있으므로 우주안의 모든 사물은 그대로 우주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소우주로서의 인간의 마음에도 우주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으므로 내 마음을 중심으로 하여 천지의 모든 일을 판단하고 이해함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순사상 안에서는 천지인 모든 운행이 마음에서 통제되고 있다 할 것이다.49
대순사상에서 심의 본체적인 면에서 두 번째로 언급할 것은 ‘심령신대(心靈神臺)’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말하기도 하고 수많은 신들을 상대할 수 있는 기관으로 신들이 머무는 집이며 신앙의 본전(本殿)이기도 하다. 또한 심령신대를 줄여서 ‘심령(心靈)’ 또는 ‘영대(靈臺)’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영대는 사해에 머무르고 있으니 본체를 얻고 조화를 얻고 밝음을 얻는다.50
영대는 원래 『시경(詩經)』 「대아편」에 나오는데, “영대 짓는 역사 일으키니 땅을 재고 푯말 세우니 백성들이 몰려와 일을 시작하여 며칠 되지 않아서 완성되었네.”51라고 한다. 맹자는 이 시에서 문왕이 백성들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영대라고 이름 한 것52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영대는 사방을 둘러보기 좋도록 흙·돌 등을 높이 쌓아 올린 대(臺)를 말하고 있다.
또한 莊子는 영대를 텅 비고 고요하여 외부사물들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心의 體라고 하였으며, 영대는 본래 의식의 중심으로써 능히 자기 자신의 결함과 제한성을 반성하여 이를 제거하는 반성적 자각 기능을 담지하고 있다고 한다.53
문왕이 지은 영대는 물리적인 의미의 집을 상징하고 장자가 말한 영대는 인간의 본원적 존재와 하나가 된 마음을 말하고 있다.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영대는 사해에 머무는 것으로 물리적인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이 본체가 되고 조화를 얻어 밝음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영대는 신과 교섭하는 장소로서 신의 영명한 속성을 마음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과의 교통이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심의 본체는 심령으로도 일컬어진다.
도주께서는 이러한 심령에 대해서 「포유문(布喩文)」54에 밝히고 있는데, 심령을 ‘무량지보(無量至寶)’라고 하셨고, 이것을 통하면 귀신과 더불어 수작을 할 수 있으며, 만물과 더불어 차례를 갖출 수 있다고 하셨다. 또한 심기를 바르게 하고, 의리를 세우고서 심령을 구하여 상제님의 뜻에 맡기기만 한다면 후천오만년 청화세계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은 또한 심령으로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구해야 하는 진정한 주체임을 환기시키고, 인간이 이러한 심령을 통함으로써 비로소 수많은 신들을 상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순사상에서 심의 본체적인 면의 심신(心身)에 대해서, ‘몸이 마음에 의지한다(身依於心)’55고 한 것처럼 마음은 일신을 주관한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 근원처가 되며, 모든 사고와 언어행동의 근원이 통제된다고 할 것이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기 때문에 몸의 기능인 말과 행실은 마음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닦고 몸으로 행하여 심신이 일치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마음의 판단에 의해 몸으로 선악의 행위를 발휘하므로 마음이 몸속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면서 몸으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주체행위는 모두 마음에서 이루어져 나오며 그 마음은 항상 신과의 교섭을 통해서 작용하므로 그 가치판단을 통해 올바른 성과를 달성하는 데 있다.56 “마음이란 귀신 즉 신들이 왕래하는 추기이며 문호이며 도로이다.”57 라고 하였듯이, 대순진리회에서 마음은 선신(善神)과 합일되었을 때는 선(善)한 행동이 나오고, 악신(惡神)과 합일되었을 때는 악한 행동이 나온다. 이 때 선(善)·악(惡)의 기미(機微)를 잘 살펴 오직 선(善)을 향한 의지를 발휘했을 때 비로소 선신과의 합일을 통한 지선(至善)을 실현할 수 있다.
‘선한 것은 스승으로 삼고 악한 것은 고쳐 쓴다(善者師之惡者改之)’고 하여 마음의 강한 주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내 마음의 추기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보다도 더 크다(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라고 하여 마음이 우주본체로서 자리 잡아 귀신을 주재할 수 있는 진정한 실체로 거듭나게 됨을 밝힌 것이라 하겠다.58
Ⅳ. 나오는 말
이상으로 기성종교의 심론과 대순진리회의 심론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먼저 유가의 인심도심론은 인간의 마음에 인욕과 천리를 대립시켜서 선악의 두 가지 원천으로 분석하였으며, 이에 따라 악을 억제하고 선을 실현하는 도덕적 가치를 지향하는데 목적이 있다 할 것이다. 불가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바로 열반이다. 열반은 석가를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얻어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이 확신을 가지고 명상과 수행을 통한 노력으로 가능하다. 최고의 경지인 열반에 들기 위해서 근본이 되는 마음은 “모든 법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유심론을 통해서 설하고 있다. 그리고 도가의 허정심은 인간이 차별과 대립을 초월하여 도달하는 정신적 경지이며, 무위를 실현하기 위해 드러나는 경지를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순진리회에서 인간은 천지신명과 합일하여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도통이다. 도통은 인간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마음을 닦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대두목을 매개로 하여 도통신명과의 연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도통은 신과 인간이 상합한 연후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중심에는 마음이 있으며, 그 마음은 항상 신과의 교섭을 통해서 작용하므로 그 가치판단을 통해 올바른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음을 보았다.
이렇듯 모든 종교는 인간의 마음을 중시하였으며, 그 마음의 작용에 따라서 발휘되는 궁극적 목적은 각 종교마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기성종교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진정한 주체가 되어 마음의 판단으로 의지가 작용함으로써 그 올바른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대순진리회의 심론은 기성종교가 주장하는 인간의 의지적 주체를 인정하면서도 신과의 연계성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다른 점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대순진리회의 심론이 기성종교의 심론과 차이가 나는 것은 대순진리회의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상제께서 인신으로 강세하여 천지공사라는 종교적 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구천상제는 천지공사를 통하여 천지를 뜯어고쳐서 상생의 도로 후천선경이라는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상제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신 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했으나 모두 관념에만 그쳐 버렸던 지상천국을 건설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상제께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탕을 둔 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상제께서 인간이 마음만 닦는다고 성격과 체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신명이 인간의 가슴속에 드나들게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성격과 체질이 바뀌어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대순진리회가 가지는 심론의 특질이다. 대순진리회의 심론은 동양의 문화권에서 이어져 온 기성종교의 전통을 받아들이면서도 유신론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종교문화로 자리매김되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많은 이 주제에 대해 보다 다각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
<대순회보>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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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본 논문은 필자의 졸고(진정애, 대순사상에서의 심론 연구, 대진대학교 석사논문, 2005)의 일부를 발췌하여 요약·수정한 것임.
02 신정근, 「戰國時代 ‘心’主題化의 序曲」, 『儒敎, 오늘과 내일』, 동아시아 유교문화국제학술회의, 2002, p.389
03 정세근, 「노자의 심론」, 동서철학연구 41집, 한국동서철학회, 2006. p.74
04 朱子는 「中庸章句」 서문에 人心道心說을 인용, 해설하면서 堯·舜·禹·湯·文·武·周公·孔子·孟子의 제성인들 간에 수수된 도통의 설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성리학의 핵심에로 도입한다.
05 ‘『論語』 「爲政」.
06 『孟子』 「告子章上」 孟子曰, 人之於身也, 兼所愛. 兼所愛, 則兼所養也. 無尺寸之膚不愛焉, 則無尺寸之膚不養也. 所以考其善不善者, 豈有他哉 於己取之而已矣. 體有貴賤, 有大小. 無以小害大, 無以賤害貴. 養其小者爲小人, 養其大者爲大人.
07 『孟子』 「告子章上」 孟子曰 從其大體爲大人 從其小體爲小人
08 『正蒙』 「誠明」 上達反天理 下達徇人欲者與
09 『二程全書』 「遺書伊川先生語」 人心私欲故危殆 道心天理故精微 滅私欲則天理明矣.
10 『中庸章句序』 (蓋嘗論之) 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則以其或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 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而所以爲知覺者不同. 是以 或危殆而不安 或微妙而難見耳。 然人莫不有是形 故 雖上智 不能無人心 亦莫不有是性 故 雖下愚 不能無道心。二者가 雜於方寸之間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 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一 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從事於斯,無少間斷,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而人心每聽命焉,則危者安、微者著,而動靜云爲自無過不及之差矣。
11 일정한 질량과 형태를 가지고 있는 사물, 혹은 사물의 일정한 질량과 형태 자체를 가리키는 말. 성리학에서 성명의 세계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 말은 육체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인간의 육체가 정신에 비해 감각할 수 있는 질량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2 『朱子語類』 卷62 「易3·綱領下」 如飢飽寒暖之類。 皆生於吾身血氣形體。 而人無與。 所謂私也。
13 『朱子語類』 卷4 「性理1」
14 『朱子語類』 卷13 問飮食之間。 孰爲天理。 孰危人欲。 曰飮食者天理。 要求美味人欲。
15 Walpola Rahula, 『What the Buddha Taught』, the gordon fraser gallery Ltd, 1959. p.8
16 붇다가 출현하면서부터 아소카왕(阿育王 : 재위 BC 268?∼BC 232?)시대까지로 초기불교라고도 한다. 대체로 붇다께서 포교를 위해 많은 곳을 다니시고 많은 사람들을 교화 시킨 때에서 부터 붇다의 입멸 후,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각 부파로 분리하게 될 때까지의 불교를 말한다. 원시불교의 중심 교리로는 연기설과 팔정도가 있다.
17 붇다 입멸 후 100년경에 원시불교가 분열을 거듭하여 20여 개의 교단(敎團)으로 갈라진 시대의 불교 총칭이다. 부파불교는 석가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해서 교리와 계율을 연구·정리하여 방대한 논서(論書)를 작성한 시대로 자연히 출가자와 승원(僧院)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불교의 성격을 띠어갔다. 따라서 출가를 전제로 하여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수행하고, 또 타인의 구제보다는 자기 수행의 완성을 우선 목표로 삼았다.
18 대승의 교리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종파(宗派)의 총칭으로 부파불교로부터 발전하였다. ‘대승’의 어원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까지 석가에게만 한정하던 보살(菩薩)이라는 개념을 넓혀 일체중생의 성불(成佛)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일체중생을 모두 보살로 보고, 자기만의 구제보다는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보살의 역할을 그 이상(理想)으로 삼고 광범위한 종교활동을 펴 나갔다.
19 본래 안에 있던 것이 아니라 밖에서 들어온 번뇌가 버릇이 되어버린 성질. 진(塵)은 ‘먼지, 속세’를 가리키는 말로 번뇌가 미세하고 수없이 많은 것을 말하고, 객(客)은 실체(實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지혜가 발현(發現)되면 사라져 없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20 『大正藏』2, 「雜阿含」 卷47, p.341
21 『大正藏』26, 「阿毘達磨發智論」 卷19, 諸法由心起 非不由心 若心起 時彼法耶 答心先起 後彼法.
22 『大正藏』49, 「異部宗輪論」, 心性本淨 客塵煩惱之所雜染 說謂不淨
23 『大正藏』49, 「阿毘達磨大毘姿沙論」 卷27, 謂或有執心性本淨 如分別論者 彼說心本性淸淨客塵煩惱所染汚故 相不淸淨
24 『大正藏』9, 「六十華嚴」卷25. 三界虛妄, 但是一心作
25 『大正藏』12, 「勝經」自性淸淨章 第13. 世尊 生死者依如來藏 以如來藏故 說本際不可知 世尊 有如來藏故說生死 ……是故 如來藏是依是持是建立
26 미혹함과 깨달음의 다섯 가지 본질. 곧 현상에 거짓으로 붙인 이름인 명(名), 현상의 차별적인 모습인 상(相), 헛된 생각인 분별(分別), 진여(眞如)에 맞는 지혜인 정지(正智), 만유(萬有)의 본체로 사실 그대로의 진리인 진여를 이른다.
27 유식설에서 일체의 모든 법을 그 성질상으로 보아 셋으로 나눈 것. ① 변계소집성 : 이리 저리 억측을 내어 집착하는 성. ② 의타기성 : 다른 인연에 의하여 생기는 만유(萬有). ③ 원성실성 : 현상의 본체. 곧 원만·성취·진실한 진여를 말함.
28 오관(五官)과 몸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8가지의 심적작용을 말한다. 즉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분별식(分別識)·장식(藏識) 등이다. 이 중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전5식(前五識)이며, 이 모두를 총괄하는 것이 의식이다. 의식은 제6식(第六識)이라고도 한다. 의식의 근간이 되는 것은 자아의식(제7식)이며 나타나지 않고 숨겨진 잠재의식인 제8식이 있다.
29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가 있다. 인무아란 자유자재한 아(我)를 아(我)라 하는 것이고, 법무아란 모든 법이 실체(實體)와 실용(實用)이 있다고 고집하는 것을 법아(法我)라 하고 지금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하는 뜻을 요해(了解)하여 자성(自性)이 실제로 없다는 데 도달하는 것이다.
30 불교에서 ‘진리’에 해당하는 말. 진여는 인간의 개념적 사유를 초월한 말이지만, 굳이 언어로 설명한다면 여실공(如實空)·여실불공(如實不空)이 된다. 즉 진여는 실재적·본질적인 것이 아닌 일체 사물의 속성을 떠난 것(여실공)이지만, 한편으로는 무한한 공덕을 내포하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여실불공)이다.
31 자기 중심의 좁은 생각이나 소견을 말하고 또한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를 말함.
32 객관적인 사물과 마음, 모든 법에 실로 체성(體性)이 있다고 집착하는 마음.
33 『老子』 「道德經」 48장,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34 『老子』 「道德經」 48장,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35 『老子』 「道德經」 10장, 滌除玄覽, 能無疵乎.
36 『老子』 「道德經」 16장,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37 몽배원, 『중국심성론』, 법인문화사, 1996. p.109
38 『莊子(外篇)』 「天道」 夫虛靜恬淡寂漠无爲者, 萬物之本也. 而道德之至, 故帝王聖人休焉.
39 『莊子(內篇)』 「德充符」 不可入於靈府.
40 『莊子(雜篇)』 「庚桑楚」 不可內於靈臺.
41 서복관 저, 유일한 옮김. 『중국인성론사』, 을유문화사, 1996. p.137
42 『莊子(內篇)』 「大宗師」 古之眞人, 其寢不夢, 其覺無憂, 其食不甘, 其息深深. 眞人之息以踵, 衆人之息以喉. … 古之眞人, 不知說生, 不知惡死, 其出不, 其入不距. 然而往, 然而來而已矣. 不忘其所始, 不求其所終, 受而喜之, 忘而復之, 是之謂不以心損道, 不以人助天. 是之謂眞人.
43 『莊子(外篇)』 「天道」 聖人之心靜乎! 天地之鑑也, 萬物之鏡也. 夫虛靜恬淡寂漠无爲者, 天地之本, 而道德之至 ……萬物之本也.……以虛靜推於天地, 通於萬物, 此之謂天樂.
44 윤재근, 「‘神人調化’에 나타난 神人關係 硏究」, 대순사상논총 제3집, 대순사상학술원, 1997. p.421
45 『典經』 교운 1장 33절 참조, 공우가 어느날 상제를 찾아 뵈옵고 도통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니라. 상제께서 이 청을 꾸짖고 가라사대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베풀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 편벽됨을 힐난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 하셨도다.
46 『典經』 교운 1장 41절,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주면 되려니와 도통 될 때에는 유·불·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라고 상제께서 말씀하셨도다.
47 『典經』 재생 43,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48 『典經』 교운 1장 66절, 天地之中央心也 故東西南北身依於心
49 金洪徹, 「大巡眞理의 實踐修行原理」, 대순논집, 1992. pp.138-139. 『典經』 공사 1절 33절 참조, … 상제께서 「마음으로 천문지리를 찾아보라」하시기에 공우가 머리를 숙여서 풍운조화를 생각하니라. 상제께서 별안간 공우를 돌아보시며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으니 다시 찾아라.」 이르시니 그는 놀라서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그릇되게 생각한 것을 뉘우치니라. 그는 다시 천문지리를 마음으로 찾다가 정읍에 이르니라. 이날 밤에 상제께서 눈비가 내리는 것을 내다 보시면서 공우에게 「너의 한 번 그릇된 생각으로써 천기가 한결 같지 못하다.」고 책망하셨도다.
50 『典經』 공사 3장 41절, 상제께서 무신년에 무내팔자 지기금지 원위대강(無奈八字至氣今至願爲大降)의 글을 지으시니 이러하도다. …… 運 靈臺四海泊 得體 得化 得明
51 『詩經』 「靈臺」, 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52 『孟子』 「梁惠王上」 民歡樂之 謂其臺曰靈臺
53 『莊子(內篇)』 「應帝王」 至人之用心若鏡, 不將不迎, 應而不藏, 故能勝物而不傷. 『莊子(外篇)』「天道」 水靜猶明, 而況精神! 聖人之心靜乎! 天地之鑑也, 萬物之鏡也.
54 『典經』 교운 2장 41절, 吾之所求有無量至寶至寶卽吾之心靈也心靈通則鬼神可與酬酢萬物可與俱序惟吾至寶之心靈無路可通汨沒無形之中一世虛過幸於此世有無量之大道正吾之心氣立吾之義理求吾之心靈任上宰之任意洋洋上帝在上浩浩道主奉命
55 『典經』 교운 1장 66절
56 이경원, 「大巡神觀과 神人調化의 理想」, 대순사상논총 제3집, p.517
57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或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58 이경원, 「대순사상의 심체론 연구」, 신종교연구 제6집, 한국신종교학회, pp.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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