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길‘서전서문(書傳序文)’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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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목 작성일2018.01.09 조회4,774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이승목
Ⅰ. 머리말
Ⅱ. 본론
1. 『서전(書傳)』의 성립
(1)『서경(書經)』의 출현
(2)『서전(書傳)』의 성립
2. ‘서전서문(書傳序文)’에 나타난 요지(要旨)의 이해
(1)정일집중(精一執中)
(2)건중건극(建中建極)
3. ‘정일집중(精一執中)’과 ‘건중건극(建中建極)’의 실천
(1)정일집중(精一執中)
- 양심(良心)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2)건중건극(建中建極)
- 공명정대와 솔선수범에 의한 체계의 확립
(3)‘서전서문’은 주문(呪文)이 아닌 수행(修行)의 훈전(訓典)
Ⅲ. 맺음말
Ⅰ 머리말
상제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서전(書傳)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상장(大學上章)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관통한다.” 하셨느니라. 상제의 부친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끊임없이 읽었으므로 지혜가 밝아져서 마을 사람들의 화난을 덜어 준 일이 많았도다.(교법 2장 26절)
여러 성현들의 말씀 중 ‘대학상장(大學上章)’과 함께 상제님께서 중요시 하신 것이 바로 ‘서전서문(書傳序文)’이다. ‘서전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道)에 통(通)한다.’는 상제님의 말씀은 도통(道通)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수도인들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전서문’은 『서전(書傳)』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것으로, 『서전』 각 편의 요지가 집약되어 있는 글이다. 여기서 『서전』이란 송(宋)대 주희(朱熹)의 제자였던 채침(蔡沈)이 기존의 『서경(書經)』에다 주석(註釋)을 단 것이다. 그런데 『서전』 본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전서문’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먼저 『서전』이 어떤 경전(經典)인지 살펴본 후, 그 속에 담긴 사상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서전서문’의 요지(要旨)인 ‘건중건극(建中建極)’과 ‘정일집중(精一執中)’을 『서경』 본문을 참고하여 살펴보고, 이것이 우리의 수도 법방에 어떻게 녹아 들어와 있는지를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서전(書傳)』의 성립
(1) 『서경(書經)』의 출현
『서경(書經)』은 고대(古代)의 성왕(聖王) 요(堯)로부터 주대(周代)까지 여러 제왕들의 정치와 법도(法道)에 관한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한자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국가통치의 거울이 되어 온 중요한 서적이다. 또한 『시경(詩經)』과 함께 가장 일찍 경서(經書)로 정착된 문헌으로서, 여러 경서 중에서 가장 고전적인 문체로 쓰인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서경』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나 공자(孔子, 기원전 552~479)가 최초로 수집하여 정리 및 편집했을 것이라는 설(說)과,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전국시대쯤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설(說), 두 가지가 있다.
『서경』은 선진(先秦)때까지 전래되었지만, 진시황(秦始皇, 기원전 246~210)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진한(秦漢) 교체기의 전란(戰亂) 중에 대다수 분실되었다. 한대(漢代) 후기에 이르러 복생(伏生, ?~?)이란 사람이 사라진 『서경』을 다시 수집·정리하였는데, 이를 『금문상서(今文尙書)』라고 한다. 같은 시대에 또 하나의 ‘상서’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고문상서(古文尙書)』였다. 공왕(共王)이 궁을 확장하기 위해 공자(孔子)의 저택을 허물다가 벽 가운데에서 『춘추(春秋)』·『논어(論語)』·『효경(孝經)』 등과 함께 발견한 것으로, 모두 과두문자(文字; 중국 옛 글자의 하나로 글자 모양이 올챙이 같음)로 씌어 있었다. 『금문상서』는 33편에 이르며 학자·사관·관료·왕실 등에서 많이 읽혔고, 『고문상서』는 25편으로 주로 민간에서 널리 읽혀졌다. 그러나 약 3백여 년 후인 서진(西晉) 회제(懷帝)때에 흉노(匈奴)가 일으킨 큰 반란으로 이 두 종류의 ‘상서’는 거의 소멸되다시피 하였다. 동진(東晋)시대에 이르자 『금문상서』와 『고문상서』를 취합한 형태인 『위고문상서』 58편이 발견되었다. 바로 이 『위고문상서』가 현재에 전해지는 『서경』이다.
『서경』이 지니고 있는 의의(意義)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중국역사의 시조(始祖)’이다. 『서경』이 후세에 나온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와 같은 정사(正史)는 아니지만, 중국 고대사의 기록은 『서경』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근현대에 접어들면서, 중국 하남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 은허(殷墟)에서 갑골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들이 발견되어 『서경』의 기록들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관해 류승국(柳承國) 교수는 “…요순(堯舜)이 종래에 생각한 것과 같은 가상적 인물이 아니라 중국 상대(上代)에 실재한 역사적 인물로 추단(推斷)할 수 있다.… 그것은 최근 갑골문(甲骨文)에 근거하여 경전(經典)과 『사기(史記)』에 기록된 요순(堯舜)에 관한 사실을 어느 정도 밝힐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곧 고고학적 입장에서 정확한 연대는 말할 수는 없으나 요순(堯舜)은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으며, 당시 기록된 그 문화도 실존했다는 것이 갑골문을 통해 예단(豫斷)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서경』은 중국문학사에서 ‘산문(散文)의 시조’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서경』이 한문으로 쓰인 가장 오래된 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의 시가(詩歌)가 『시경(詩經)』을 바탕으로 하여 발전했던 것과 같다. 한(漢)대 뒤로 육조(六朝)시대에서는 형식의 아름다움에 치중하여 산문을 짓는 데 있어서도 꼭 대구(對句)를 따져 글을 쓰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당(唐)대에 이르러는 이에 대한 반동으로 한유(韓愈, 768~824), 유종원(柳宗元, 773~819)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고문운동이 일어나 글은 대구나 형식의 아름다움을 따지는 것보다도 자기의 뜻을 자유롭게 잘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이 주장한 고문이란 진(秦)나라 이전의 글들을 가리키며, 그 고문의 조종(祖宗)이라 칭한 것은 역시 『서경』이었다. 이처럼 『서경』은 ‘산문의 시조’로서 중국문학사에서 산문 발전의 밑받침이 되었던 것이다.
끝으로 『서경』은 정사(政事)의 표본이다. 『서경』은 곳곳에서 군주의 덕치(德治)를 강조한다. 그래서 본문 전반에 걸쳐 ‘명덕신벌(明德愼罰; 덕을 선양하고 형벌을 삼가 함)’과 ‘애민중민(愛民重民; 백성을 사랑하며 중하게 여김)’ 그리고 ‘왕도(王道)’의 정치사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덕신벌’은 군주 자신이 지켜야 할 계명(誡命)을 뜻하고, ‘애민중민’은 정치를 할 때 백성들을 근본으로 여기고 백성들의 삶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왕도정치(王道政治)’는 후대 유가의 이상적인 정치사상의 기초를 이루게 되며, 나라를 세우는 기본 이념으로 정착된다. 그래서 순자(荀子)는 이 책을 ‘정치의 기(紀; 규범)’라 했고, 공영달(孔穎達)은 ‘군주 사고(辭誥; 군주가 내린 명령이나 포고를 아우르는 말)의 법전’이라고 하였다.
『서경』이 이렇게 중요하게 인식되었지만 그 내용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어 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주해서(註解書)를 썼다. 복생의 제자들이 지은 『상서대전(尙書大傳)』을 시작으로, 『구양경』·『구양장구』·『대소하후장구』 등이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구(字句)의 주석엔 힘쓰지 않고 경(經)을 빌어 정치를 논하고, 거기에 터무니없는 예언적·신비적인 이론까지 보탠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에 이르러 공영달이 칙명(勅命)을 받들어 쓴 『상서정의(尙書正義)』가 출판되었다. 당시에는 가장 볼만한 주석서로서 많은 학자들에게 읽혔지만, 이것 역시 오역(誤譯)이 많다는 이유로 경문 자체의 진위 문제에 휩싸이고 만다.
그러던 중 송(宋)대 주자(朱子)의 학설을 이어받아 채침(蔡沈)이 쓴 『서집전(書集傳)』이 선을 보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때까지 나온 주석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 받았다. 『서집전(書集傳)』을 줄여서 『서전(書傳)』이라고도 하는데, 상제님께서 읽기를 권하신 ‘서전서문(書傳序文)’은 다름 아닌 채침이 지은 『서경』의 주석서 『서전』의 머리말인 것이다.
(2) 『서전(書傳)』의 성립
『서전(書傳)』은 그동안 전해져 오던 『서경(書經)』을 채침(蔡沈, 1176∼1230)이 새로이 주석(註釋)한 서적이다. 그는 중국 남송(南宋)의 성리학자로, 주희(朱熹)의 친구이자 수제자인 채원정(蔡元定)의 아들이며, 스승인 주희의 사위이다. 아버지 채원정은 천문학과 수학·풍수에 정통해, 채침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성장하여서는 주희에게서 수업을 받아 그의 사상을 계승해 나갔다. 또한 그는 마음[心]을 근본으로 하는 학문 연구에 매진하며 일생을 마쳤다.
그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대작은 10년의 연구 끝에 완성한 『서전』이었다. 이 책은 본래 주희가 집필했던 것이었으나 미처 완성하지 못해 제자인 채침에게 위촉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채침은,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의 각 편은 주희의 교정을 거친 것이고, 그 이외 다른 편은 이전 학자들의 설(說)을 모아 절충하여 해석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편찬 과정에서 스승인 주희의 사상을 담으려고 노력하였는데, 그 결과 『서전』은 송(宋)대 이후 난해한 『서경』을 이해하는 데 가장 명쾌한 주석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채침의 『서전』이 나온 이후 많은 주석서들이 도태되고 학자들은 오직 채침의 주석서만을 숭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원나라 인종(仁宗)시절에 관리들의 공인서책으로도 지정되어 읽혀졌고, 과거법(科擧法)이 제정될 때에는 이 『서전』이 시험의 교본(敎本)이 되었다. 그 뒤에도 청(淸)말에 이르는 6백여 년간 『서전』은 대표적인 주석서로 읽혀 왔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인식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서전』에 나타나는 여러 성인(聖人)의 치도(治道)를 덕치(德治)구현의 표본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 책에 나타난 사상, 제도 등이 사회 전반에 걸쳐 반영되기도 하였는데, 부모의 삼년상(喪)이라든지,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도덕윤리 같은 것이 모두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2. ‘서전서문(書傳序文)’에 나타난 요지(要旨)의 이해
채침은 『서전(書傳)』의 ‘서문(序文)’을 쓰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취지를 설명하고, 특히 각 편의 의의(意義)를 집약시켜서 여기 ‘서문’에다 함축된 요지(要旨)로 표현해 놓았다. 그 요지란 성인(聖人)의 심법(心法)인 ‘정일집중(精一執中)’과 ‘건중건극(建中建極)’을 일컫는다. ‘서문’에 따르면, “정일집중은 요(堯)·순(舜)·우(禹)가 주고받은 심법이요, 건중건극은 상나라 탕(湯)왕과 주나라 무(武)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라 한다.
다음은 채침이 지은 『서전』의 ‘서문’이다.
慶元己未冬先生文公令沈作書集傳明年先生歿 又十年始克成編總若干萬言嗚呼書豈易言哉 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皆載此書而淺見薄識豈足以盡發蘊奧 且生於數千載之下而慾講明於數千載之前亦已難矣. 然二帝三王之治本於道二帝三王之道本於心得其心則道與治固可得而言矣 何者精一執中堯舜禹相授之心法也建中建極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 曰德曰仁曰敬曰誠言雖殊而理則一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 至於言天則嚴其心之所自出言民則謹其心之所由施禮樂敎化心之發也 典章文物心之著也家齊國治而天下平心之推也心之德其盛矣乎 二帝三王存此心者也夏桀商紂亡此心者也太甲成王困而存此心者也 存則治亡則亂治亂之分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 後世人主有志於二帝三王之治不可不求其道 有志於二帝三王之道不可不求其心求心之要舍是書何以哉 沈自受讀以來 沈潛其義參考衆說融會貫通折敢折衷 微辭奧旨多述舊聞二典禹謨先生蓋嘗是正手澤尙新鳴呼惜哉 集傳本先生所命故凡引用師說不復識別 四代之書分爲六卷文以時異治以道同 聖人之心見於書猶化工之妙著於物非精深不能識也 是傳也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雖未必能造其微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因是訓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 嘉定己巳三月旣望武夷蔡沈序
경원(慶元) 기미(1199)년 겨울. 선생 문공(朱子를 가리킴)께서 나(채침)로 하여금 『서집전』을 짓게 하시고 그 이듬해에 돌아가셨다. 그 후 10년이 지나 이렇게 편찬하니 그 분량이 약 일만 자에 이른다. 아아! 『서경』을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으랴. 두 황제(堯舜)와 세 왕(禹·湯·武)의 천하를 다스리던 경륜이 이 책에 실려 있으니, 나같이 식견이 짧고 지식이 얕은 사람이 어찌 그 심오한 진리를 다 캐낼 수 있으리오. 더구나 천년 뒤에 나서 천년 전(前)의 일을 강구하니,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도다. 그러나 두 황제와 세 왕의 정치는 도(道)에 근본하고 그들의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둔 것이니, 그 마음만 바로 터득한다면 그 도(道)와 정치(政治)를 말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정일(精一)과 집중(執中)은 요·순·우가 주고받은 심법(心法)이요, 건중(建中)과 건극(建極)은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니, 덕(德)과 인(仁)과 경(敬)과 성(誠)이 비록 그 말은 다르나 진리는 하나이며, 그 모두가 이 마음의 오묘한 원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곧 그 마음이 유래한 곳(하늘)을 스스로 경건히 밝히려는 것이요, 백성을 말함에 있어서는 곧 그 마음이 베풀어지는 바를 삼가는 것이니, 예악(禮樂)으로 교화함은 그 마음의 드러남이다. 문물과 제도는 마음의 나타남이요,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으로써 천하를 바르게 함은 곧 그 마음을 미루어 확장한 것이니, 실로 마음의 덕이 성대(盛大)하다 할 수 있으리라.
두 황제와 세 왕은 이 마음을 간직한 이요, 하의 걸(桀)왕과 상의 주(紂)왕은 이 마음을 잃은 이요, 태갑(太甲)과 성왕(成王)은 겨우 이 마음을 지킨 이이니, 간직하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어지러워지는 것으로서, 치란(治亂)의 나뉨이 이 마음을 간직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후세의 임금으로서 두 황제와 세 왕과 같은 다스림에 뜻을 둔다면 그 도를 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 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그 마음을 터득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마음을 구하는 요체로서 이 책(書經)을 버리고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침이 이 글을 읽은 후로 그 심오한 뜻을 헤아리고 여러 설을 참고하여 저절로 이해되고 관통되는 대로 감히 절충하고자 애썼으나 은밀한 말씀과 심오한 뜻은 그 전날 선생께 듣던 바를 많이 이끌어 썼고, 더구나 이전(二典)과 우모(禹謨)는 선생께서 일찍이 바로 하여 그 손때가 새로우니 아! 슬프고 애달프다. 집전은 원래 선생께서 명하신 것이다. 따라서 두루 선생의 설을 인용하였으나 별도로 표시하지는 않았고, 4대의 서를 나누어 열 권으로 하였으니, 글은 때에 따라 다르다 해도 다스림은 같아, 성인의 마음이 글에 나타남이 마치 조화의 묘가 만물에 나타나는 듯하여, 정심(精深)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이 전(傳)이 요·순·우·탕·문·무·주공의 마음 속 세세한 움직임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분들에 대한 글을 이 전으로 새겨 읽으면 가리키는 바의 뜻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 기사(1209년) 3월 열엿새(16일)날 무이 채침(武夷蔡沈)이 머리말을 쓴다.
(1) 정일집중(精一執中)
‘서문(序文)’의 요지(要旨)로 나타나고 있는 ‘정일집중(精一執中)’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내린 훈시인 ‘윤집궐중(允執厥中)’에서 유래되었다. 이 요지에 대해 주희(朱熹)는, ‘정(精)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인심(人心)인지 도심(道心)인지 자세하게 성찰하는 노력이요, 일(一)은 올바른 도심을 오롯이 지켜내는 노력’이라고 하였다. 달리 말하면, ‘정(精)’은 사람들이 평소 어떤 일을 지각하고 또 처사할 때 자신의 마음이 과연 도덕적인지 아니면 감각적인지 그 낌새를 주의 깊게 살필 것을, ‘일(一)’은 이러한 내면 성찰 속에서 도덕심을 굳게 지켜 그로써 감각적인 마음을 올바르게 지도해 나갈 것을 요구하는 공부 방법론이다.
그리고 집중(執中; 중을 잡는다)은 정사(政事)의 처리를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중(中)’이란 정사처리 시에 지켜야 할 중도(中道)인 ‘중용(中庸)’을 뜻하는 것으로, 어떤 경우이건 또는 누구에게든 가장 알맞고 가장 적절한 도리(道理=理致)를 바르게 지켜 언제나 변함없이 일상에서 구현함을 가리킨다. 결국 ‘정일집중’이란 잡되지 않고 오직 하나인 순수한 마음(心)과 중(中)의 도(道)를 지키는 심법(心法)을 말한 것이다.
이 심법에 대한 좀더 쉬운 이해를 위해 조선시대 유학자 허목(許穆, 1595∼1682)은 이를 도해(圖解)화 시킨 바 있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인간성의 회복과 사회기강의 정립, 정도(政道)의 확립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다시 이것은 덕(德)·치(治)·정(政)·업(業)을 강령(綱領)으로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철학으로 특징지어진다. 특히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제자백가에 관한 서적과 사서오경(四書五經) 등 여러 가지 옛 경서(經書)를 섭렵하면서도 채침의 『서전』을 가장 중요시하였다. 그것은 『서전』이 인간세상의 강상(綱常) 윤리를 우주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그만의 왕도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허목은 이 서적을 토대로 특수한 도해법을 만들어 심법(心法)을 설명하였으니, ‘심학도(心學圖)’와 ‘요순우전수심법도(堯舜禹傳授心法圖)’가 그것이다.
이 ‘심학도’를 살펴보면, 허목은 인간의 선천적 마음상태를 욕심이 없고 텅 비어 신령스러우며 모든 이치를 갖춰 맑은 것으로 보았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때 변함없이 깨끗하고 곧게 유지되면 자연히 바른 판단에 따라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소한 일에도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사(萬事)와 상통(相通)하는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깨끗한 공적(公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이를 심학(心學)의 대요(大要)라고 하였다.
특히 ‘요순우전수심법도’는 채침의 ‘서전서문(書傳序文)’에 나타나고 있는 ‘정일집중(精一執中)’을 도식화한 것으로, 인간이 천리(天理)에 부합될 수 있도록 선천적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수양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인간이 이를 지키게 되면 모두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정치가 바로 서면서 곧 이상적인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 ‘요순우전수심법도(堯舜禹傳授心法圖)’를 요약하면, 사람은 누구나 도(道)를 지키려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그 마음이 없을 수 없다. 다만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을 이겨내기 어려워 인심(人心)은 위태로워지고 도심(道心)은 은미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바른 마음을 지키는 데 정성을 다하고 일심(一心)으로 노력해야 하는데, 이것이 곧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이다. 순 임금은 우 임금이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집중(執中; 중을 잡음)’ 이전에 힘써야 할 공부로 ‘사람의 마음은 도를 지키려 해도 이기적이어서 자칫하면 도에 어긋나게 되므로 위태롭고[人心惟危], 도를 지키려는 마음은 사람의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희미해지기 쉽다[道心惟微], 그래서 정신을 모으고 통일하여야만 도를 따를 수 있다[惟精惟一]’는 것을 부연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심(道心; 본연의 양심)으로 하여금 항상 몸의 주인이 되게 하여 인심(人心)이 도심의 명령을 따르게 하면, 위태로운 인심은 안정되고 은미(隱微)한 도심은 뚜렷이 드러나 분명해져 행동거지에 저절로 과불급(過不及)의 차질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요(堯)·순(舜)·우(禹)가 전해 준 심법(心法)인 ‘정일집중(精一執中)’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리고 군주가 ‘정일집중’이 전제(前提)된다면, 정사(政事) 처리에 있어서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바른 예법이 세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허목은 ‘요순우전수심법도’의 심법을 바탕으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회복함으로써 올바른 덕치(德治)가 가능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서는 군주의 책무가 막중함을 군왕 스스로 각득(覺得)하여 ‘성인(聖人)의 도(道)’인 ‘정일집중’과 ‘건중건극’을 시행해야 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2) 건중건극(建中建極)
‘정일집중(精一執中)’과 함께 ‘서문(序文)’의 요지(要旨)로 나타나는 것이 ‘건중건극(建中建極)’이다. ‘건중건극’은 『서전(書傳)』 「주서(周書)」‘홍범(洪範)’ 제 오(五)주 ‘임금이 중정(中正)의 도(道)로 표준을 세운다.(皇建其有極)’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홍범’은 『서전』 전체를 관통하는 정치 원리의 핵심을 담은 것으로, 그 내용이 아홉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홍범구주(洪範九疇;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대법)’라고도 한다. 『한지(漢志)』에 따르면, 우(禹)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이 큰 거북이의 등에 낙서(洛書)를 내려 주었는데, 거기에는 오행(五行)의 원리와 구주(九疇)의 대경(大經)이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홍범구주’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은 오(五)주 황극(皇極)이다. 황(皇)은 임금[君]이고, 극(極)은 북극(北極)의 극과 같은데 ‘지극지의(至極之義)’·‘표준지명(標準之名)’을 뜻한다. 따라서 건극(建極)은 극이 중앙에 세워져[中立] 사방이 그 올바름[正]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임금된 사람의 한 몸은 만(萬)가지 교화(敎化)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말하고 행동하는 바가 모름지기 크게 중도(中道)에 맞아야 되고 치우치지 않는 지극히 바른 표준(標準)을 세워 천하의 모범(模範)이 되어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부부·형제의 경우도 일체의 언동(言動)과 일에 당연함을 다하는 것이라 한다. 결국 임금이 몸소 수신(修身)의 지극(至極)함에 도달하여 만민(萬民)의 표준이 됨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서전』 ‘홍범’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五皇極 皇建其有極. 時五福 用敷錫厥庶民. 惟時厥庶民 于汝極 錫汝保極. … 無偏無陂 遵王之義. 無有作好 遵王之道. 無有作惡 遵王之路 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 無反無側 王道正直 會其有極 歸其有極. 曰皇極之敷言 是彛是訓 于帝其訓. 凡厥庶民 極之敷言 是訓是行. 以近天子之光 曰天子作民父母 以爲天下王.
다섯 번째는 임금의 법칙을 세우는 것인데, 다섯 가지의 복을 모아 백성들에게 베풀면 백성들은 당신의 법칙을 따르게 될 것이며, 당신과 함께 이 법칙을 지켜나가려 할 것입니다. … 백성들은 치우치거나 그릇됨이 없이 임금이 정하고 인도하는 법을 따라야 하며, 자신만이 좋아하는 일에만 치우치지 말고 임금이 정한 도리를 받들고 지켜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싫어한다고 하여 멀리하지 말고 임금이 이끌어 주는 길을 따라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임금 역시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거나 사사로운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돕거나 두둔하지 말아야 비로소 임금의 길은 평탄해지고 또한 평온해질 것입니다. 언행에 일관성이 있고 치우치거나 그릇됨이 없어야만 임금의 길이 바르고 곧을 것입니다. 임금이 제후와 신민(臣民)들을 모으고 거느리는 데는 법칙이 있어야 하며, 제후들과 신민들이 임금을 의지하고 받드는 데도 법칙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임금의 법칙에 관해 두루 올린 말을 널리 펴서 상도(常道)를 잃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다 따를 것이며, 하늘까지도 이에 호응할 것입니다. 비록 백성의 말이라도 법에 맞으면 거기에 따르고 그것을 실행하십시오. 그리하면 천자의 빛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임금이 덕(德)으로 다스려 백성들로 하여금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면, 자연 백성들은 임금의 법을 존중하여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임금이 신하와 백성을 거느리고 다스리는 데도 법칙이 있어야 하고, 신하와 백성이 임금을 따르고 받드는 데도 법칙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곧 임금은 임금답게 직분(職分)을 다하여 올바른 길로 백성을 다스리고 인도하여야 하며, 신하와 백성들 역시 본연의 직분을 다함으로써 사사로이 좋고 나쁨에 좌우되지 말고 올바른 길을 따른다면, 이를 바른 ‘건중건극’이 실현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건중건극’이란 중용(中庸)의 도(道)를 잘 지켜서 인륜의 규범을 세우고 법칙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채침은 어쩌다 한번 ‘건중건극’을 실천했다고 해서 이상적인 덕치(德治)가 이루어졌다고 보지는 않았다. 한 마리의 제비가 날아온다고 해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듯이,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올바른 도심(道心)을 굳게 지켜내고[精一], 그 가운데 마음의 중도(中道)를 꾸준히 지켜나가야[執中] 한다고 한다. 즉 ‘정일집중(精一執中)’이 전제(前提)되어야만 ‘건중건극’이 꾸준히 계속해서 바르게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다.
3. ‘정일집중(精一執中)’과 ‘건중건극(建中建極)’의 실천
『서경(書經)』의 전체적인 내용을 함축시켜 놓은 ‘서전서문(書傳序文)’의 내용은, ‘정일집중(精一執中)’과 ‘건중건극(建中建極)’으로 표현되는 ‘성인(聖人)의 심법(心法)’이 천하를 다스리는 대경대법(大經大法)임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서전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道)에 통(通)한다’라는 상제님 말씀은 무슨 뜻일까?
도통(道通)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도를 해야 함이 당연하다. 따라서 상제님의 말씀대로라면 ‘서전서문’의 요지(要旨), 즉 ‘정일집중’과 ‘건중건극’이 수도생활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 수도를 하기 위해서는 수도 법방이 있어야 하는데, 상제님의 진리를 받들어 50년 공부종필(工夫終畢)의 법(法)으로써 수도 법방을 짜 놓으신 분은 도주님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수도 법방에 따라 수도를 하고 또한 도통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도 법방에 ‘정일집중’과 ‘건중건극’의 가르침이 이미 녹아들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 ‘정일집중(精一執中)’ - 양심(良心)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편에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내린 ‘윤집궐중(允執厥中)’이나 허목의 ‘요순우전수심법도(堯舜禹傳授心法圖)’를 토대로 해서 ‘정일집중’을 살펴보면, 사람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선(善)하나 도(道)를 지키려는 마음[道心]이 약하고 사심(私心)에 젖어 들기 쉬워 자칫하면 도에 어긋나게 되므로 위태롭고 희미해지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요(堯)·순(舜)·우(禹) 같은 성인(聖人)조차도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늘 사심을 경계하고 오직 한 마음으로 본연의 양심(良心)인 도심(道心)으로 귀일코자 했던 것이다.
성인들도 이러할진대, 도통(道通)을 수도의 최고목적으로 삼고 있는 수도인들에게 양심의 중요성과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바로 『대순진리회 요람』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마음을 속이지 말라.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主)이니 사람의 모든 언어(言語)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 두 가지가 있다. 양심(良心)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私心)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發動)하는 욕심(慾心)이다. 원래(元來) 인성(人性)의 본질(本質)은 양심(良心)인데 사심(私心)에 사로잡혀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을 감행(敢行)하게 됨이니 사심(私心)을 버리고 양심(良心)인 천성(天性)을 되찾기에 전념(專念)하라.
곧 양심은 수도에 있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심성(心性)이며, 인간의 마음이 사심의 지배를 받기 쉽기에 양심을 되찾는 수도에 진심갈력(盡心竭力)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자신의 마음이 사심(私心)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겸손한 자세로 수도에 임해야 한다. 물론 상제님께서 “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교법 2장 6절)고 하신 말씀을 미루어 볼 때, 양심(良心)을 지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가올 후천을 생각해 볼 때, 어렵고 힘들더라도 더욱 이를 실천코자 각골정려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 ‘건중건극(建中建極)’ - 공명정대와 솔선수범에 의한 체계의 확립
『서경(書經)』 ‘홍범(洪範)’에서 살펴보았듯이 ‘건중건극’은 임금이 모든 일에 가장 알맞고 적절한 표준(標準)을 세움, 즉 치우치거나 편벽됨이 없는 공명정대함으로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임금이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 백성들은 이에 감화(感化)되어 임금이 제시한 표준을 더불어 보존코자 한다는 것이다.
포덕(布德)사업에 있어서도 각자 그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수도인 모두는 ‘건중건극’에서 말하는 임금의 위치, 즉 여러 사람을 통솔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때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편벽되지 않으면서 공평한 기준을 세우고 항상 먼저 모범을 보인다면, 자신을 따라 오는 후각도 저절로 바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앞의 ‘정일집중’에서 살펴본 양심(良心)을 유지하기 위한 일이 수도인 내부에서 벌어지는 노력이었다면, 이 ‘건중건극’의 표준을 세우는 일은 수도인 외부로 표출되는 노력이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건중건극’은 도주님께서 짜 놓으신 수도법방 중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체계의 확립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체계의 확립은 무엇보다 서로 간의 신뢰(信賴)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 ‘건중건극’의 두 가지 요소인 ‘공명정대함’과 ‘솔선수범의 자세’야 말로 상하간의 신뢰형성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도전님의 말씀을 살펴보더라도,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사정(私情)에 치우쳐 편애를 한다면, 서로 간의 불신(不信)을 불러일으켜 중상모략(中傷謀略)으로 서로를 헐뜯게 되고 결국 그 체계는 와해(瓦解)되고 만다. 국가를 세우기는 힘들지만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말은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통솔하는 자리에서 자신은 솔선수범하지 않고 언행(言行)만 내세워 아랫사람에게 강요만 한다면, 도리어 배신당하게 된다.
이와 같이 ‘건중건극’의 가르침, 즉 공명정대와 솔선수범에 의한 체계 확립은 수도인들이 후천 선경을 건설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하고도 가장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3) ‘서전서문’은 주문(呪文)이 아닌 수행(修行)의 훈전(訓典)
‘서전서문’을 이해함에 있어 끝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상제님께서 ‘서전서문’을 많이 읽기를 권하셨지만, 이것은 ‘서전서문’을 주문과 같이 반복하여 계속 읽어라는 뜻은 아니다. 『典經』에 “… 상제의 부친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끊임없이 읽었으므로 지혜가 밝아져서 마을 사람들의 화난을 덜어 준 일이 많았도다”(교법 2장 26절)라는 말씀을 미루어 볼 때, ‘서전서문’을 많이 읽음의 결과는 곧 지혜가 밝아진다는 것이며 이것의 의미는 뒤의 문맥과 연관시켜 볼 때, 사리(事理)나 이치(理致)에 밝아짐을 뜻하기에 “서전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道)에 통(通)하고 …”라는 말씀을 곡해(曲解)하여 반복 암송하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정일집중’과 ‘건중건극’이 주는 가르침을 깨달아 이를 수행의 훈전(訓典)으로 삼아 실천 수도해 나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임이 타당하리라고 본다.
Ⅲ. 맺음말
『서경(書經)』은 천명(天命)에 의해 왕위에 오른 임금이 하늘의 질서에 따라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키고 관직을 두어 덕(德)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임명하며, 군주와 신하가 서로 합심하여 이상적인 정치, 즉 덕치(德治)를 실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문(序文)’에서는 그 덕치의 실현에 관한 요지인 ‘성인(聖人)의 심법(心法)’을 말하고 있는데, 그 심법은 잡되지 않아 오직 하나인 순수한 마음(心)과 중(中)의 도(道)를 일컫는 것이다. 이는 요(堯)·순(舜)·우(禹)가 서로 전한 심법(心法)인 ‘정일집중(精一執中)’과 중용(中庸)으로써 인륜(人倫)의 규범을 세웠던 탕(湯)ㆍ문왕(文王)ㆍ무왕(武王)의 ‘건중건극(建中建極)’으로 표현되어졌다. 상제님께서는 “옛적에 신성(神聖)이 입극(立極)하여 성·웅(聖雄)이 겸비해야 정치와 교화를 통제 관장(統制管掌)하였으되 중고 이래로 성과 웅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마침내 여러 가지로 분파되어 진법(眞法)을 보지 못하게 되었느니라. 이제 원시반본(原始返本)이 되어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교법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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