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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산동대학교 국제학술대회 참여 및 학술답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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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의성 작성일2018.11.20 조회3,2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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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25 방면 평도인 김의성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 전공 박사수료)

  

  필자는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에 편입해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과정으로 한국철학을 전공하면서 대순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일반 대학교에서 대순사상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학교에서 진행하는 BK21사업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연구하는 학생으로서 생각지 못한 좋은 기회들을 갖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과정생들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BK21사업단은 국가의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로 전국 대학의 동양철학과와 경쟁하여 따낸 사업이다. 사업의 일환으로 다른 나라 대학교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는데 중국과는 북경대학교, 산동대학교 등과 교류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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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대학교 국제학술대회 회의장 전경

  

  필자는 올해 5월에 북경대학교에 가서 연구논문을 발표하며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이번 10월에는 산동대학교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산동대학교에 국제학술대회 참여는 학술답사도 하루 있는 단기연수의 3박 4일간 일정이었지만 대학원생의 입장으로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여서 단순히 연수의 느낌은 아니었다. 게다가 발표의 내용이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대순사상이기 때문에 상제님의 사상을 사람들에게 발표한다는 무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정성스럽게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 영어 발표문을 만들어서 몇 번이고 연습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산동대학교에서 주체한 국제학술대회는 “생태미학과 생태비평적 공간(Space for Ecoaesthetics and Ecocriticism)”이라는 주제로 10월 25일과 26일 양일간 개최되었다. 학술대회에는 국제미학학회, 중국 산동대학 문예미학연구센터, 그리고 한국 성균관대학교 BK21PLUS 사업단에서 참여하였다. 중국을 비롯해서 미국, 독일과 한국에서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2일간 총 47개 정도의 논문이 발표되는 작지 않은 규모의 학술대회였다. Curtis Carter, Chia-ju Chang, 曾繁仁, 程相占 교수 등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였는데 우리 사업단에서는 신정근 교수와 정석도 박사를 비롯해서 박사과정 학생인 필자, 김준승, 박문식의 발표를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신정근 교수는 축사를 비롯해서 중국철학과 생태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고 정석도 박사는 도가의 생태미학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필자는 한국의 신종교에서 궁극적 실재의 다면성과 생태철학이라는 주제를 대순사상을 중심으로 발표하였다. 대순사상에서 다면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궁극적 실재의 개념들이 인존(人尊)과 관련하여 의미 있다는 것을 밝히고 나아가 생태철학적 관점으로 해석되는 측면까지 다루고자 한 논문이었다. 김준승과 박문식은 각각 생태환경에 대한 경각심의 문제를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의 양지(良知)개념으로 접근하는 논문과, 신유학의 감발(感發)과 흥기(興起)의 개념을 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연결시켜 긍정성을 모색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대학원생들의 발표는 오후에 섹션을 구분하여 진행되었는데 우리와 함께 참여한 산동대학교 학생 및 타 대학 학자들의 연구도 함께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 영어를 공통어로 발표와 의사소통을 하고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내 전공분야가 아닌 미학과 생태철학과 관련된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국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전공분야가 다소 다르다 보니 서로의 내용에 대해서 공감과 소통은 다소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종교사상의 연구에 대해서 제한적인 중국의 상황에서 대순사상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국제학술대회에서 대순사상을 발표할 수 있었다는 것과 앞으로 더 많은 교류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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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대회 회의장 발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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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 연수는 학술대회의 참여뿐만 아니라, 중국의 고대문화 발원지 중의 한곳인 산둥성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도 함께 진행되었다. 유적지 답사는 하루 동안 밀도 높은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산동대학교와는 차로 2시간정도 떨어져 있는 치박시에서 주로 답사가 진행됐다. 처음 간 곳은 춘추전국시대 전국 7웅(七雄) 중 하나인 제(齊)나라의 직하학궁(稷下學宮) 유적지로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 많은 학자들이 교류한 기관으로서 의미 있는 곳이었다. 제나라에서는 위왕(威王)과 선왕(宣王) 때부터 양왕(襄王) 때에 걸쳐서(B.C.4세기~B.C.3세기), 수백 명에 이르는 제자(諸子)가 모여들어 서로 논진을 폈기 때문에 그 당시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들이 토론하던 곳이 직문 옆의 학궁(學宮)이었으므로 직하지학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01 대표적으로 맹자(孟子, B.C.372~B.C.289)와 묵자(墨子, B.C.479~B.C.381), 순자(荀子, B.C.298~B.C.238)가 거쳐 갔던 직하학궁은 정치적인 일들을 배제하고 학문연구에만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자의 선발은 신분을 따지지 않았으며 능력에 따라 초빙되어 제나라에서는 수많은 인재를 보유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고 작은 비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가 갔을 때 조그만 향로와 음식이 비석 앞에 놓여 있어 그들을 그리워하던 누군가가 왔다 갔음을 짐작케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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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한성우를 표현한 제나라 거리모습


  박물관들도 살펴보았다. 제국역사박물관(齊國歷史博物館)에서는 B.C. 2000년 전의 은상(殷商)시대부터 진한(秦漢)시대까지 유적을 전시해 놓았는데 특히 제나라 시대의 모습을 잘 재현해 놓았다. 『전국책(戰國策)』02에서 제나라 사람이 많음을 비유하여 표현한 “휘한성우(揮汗成雨)”(땀을 털면 비가 되었다)의 내용이나 제나라의 명장 전단(田單, ?~?)이 소꼬리에 불을 붙여 돌진하게 하는 화우진(火牛陣)으로 연나라(燕國) 군대를 막았던 일화들을 재현해 놓았다. 동주순마관(東周殉馬館)에서는 제나라시대의 말들이 무더기로 묻힌 유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발굴되서 관람가능한 곳만 해도 100마리가 넘는 말들이 묻혀 있었는데 그곳은 전체 규모의 8분의 1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중국대륙의 느낌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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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우진을 표현한 연나라와의 전쟁


  고차박물관(古車博物館)에서는 중국고대 때부터 마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실제 크기로 마차를 재현해 놓은 모습들은 그 당시 흙먼지를 날리며 마을을 운행하던 시끌벅적한 모습들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공자(孔子)가 순(舜)임금의 음악을 듣고 3개월간 고기 맛을 잊었다는 장소였다. 이곳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로 유명한 곳이다. 조용한 시골마을로 들어선 우리는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 “공자문소처(公子聞韶處)”라는 글귀의 벽돌 음각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주위의 담벼락마다 적힌 『논어』의 구절들이었다. 공자의 살아있는 체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했지만 글귀들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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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는 관중(管仲, ? ~B.C.645)의 묘와 강태공(姜太公, B.C. 1156~B.C. 1017)의 묘가 있는 사당까지 둘러보았다. 특히 의관총(衣冠家)03으로 되어 있는 강태공의 묘에는 여러 성씨의 비문들이 늘어서 있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있는 비문에는 우리나라의 진주강씨 후손들이 새겨 넣은 한글 문장이 또렷하게 보였다. 거기에는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 싶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선조를 찾아 올라오다 보니 강태공까지 가게 된 셈이다. 그러나 진주강씨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는 “丘氏訪祖認宗碑”라고 해서 구씨가 세워놓은 비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려씨가 “呂氏光祖之碑”라고 써놓은 비석이 있었고 거기에는 려씨의 본성이 강씨라고 적혀있었다. 중화고씨 또한 강씨가 중화고성의 시조라고 하여 비석을 세워놓았고, 중화구씨 또한 태시조가 강태공이라고 하고 있다. 최씨도 “崔氏先祖之碑”라고 적은 비석에 중화최씨의 태시조가 강태공이라고 써놓았고, 운씨도 “連氏先祖之碑”라고 써놓은 비석에 중화운씨의 원류를 강씨에서 찾고 있다. 이렇게 7개의 비문을 쭉 보고 있자니 새삼 강씨성으로 오신 상제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성으로는 풍(風)성이 먼저 있었으나 전하여 오지 못하고 다만 풍채(風采)·풍신(風身)·풍골(風骨) 등으로 몸의 생김새의 칭호만으로 남아올 뿐이오. 그 다음은 강(姜)성이 나왔으니 곧 성의 원시가 되느니라. 그러므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반본이 되므로 강(姜)성이 일을 맡게 되었나니라.”04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들려주셨던 옛 인물 중에 강태공이 있었다고 하니05 개인적으로는 강태공이라는 인물과 상제님께서 강씨성으로 오시게 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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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산동대학교에서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의 발표는 학생으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순사상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매번 상제님의 덕화라고 하는, 자주 써서 약간은 형식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그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수도를 하면서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했고 상제님의 진리가 좀 더 보편적으로 연구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부가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의 해원을 풀려는 공부’라는 상제님의 본뜻에 맞는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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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학교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대순진리회를 대표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덕화를 선양시킬 수도 실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항상 조심스럽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질문하고 반문해 본다. 나도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바르게 행하고 있는가? 더 잘할 수는 없는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상제님의 본뜻을 받드는 일인가? 고민하고 반성하다 보면 아마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지고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수도인들은 상제님의 진리를 알리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분들의 힘이 모아져서 더 많은 일들이 이룩되기를 기원해 본다.

 <대순회보>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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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02 중국 전한 시대의 유향(劉向)이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75~B.C. 222)의 수많은 제후국 전략가들의 정치, 군사, 외교 등 책략을 모아 집록한 자료를 『전국책(戰國策)』이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03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옷과 갓만으로 만든 무덤.
04 행록 4장 17절.
05 교운 1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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