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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논단상제님의 해원(解)사상으로 본 중국문학 속 여성이미지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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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마리아 작성일2018.04.11 조회3,8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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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종교문화 연구소 박마리아

    

 

 

우쯔허(吳之和)가 말했다. “내가 이곳에서 부녀자들이 전족하는 것에 대한 이야길 들었지. 처음 전족을 할 때, 그 고통이 말할 수 없어 발을 감싸 쥐며 비명소리를 내지른다 하더군. 심지어 피부가 썩고 선혈이 흐르고 말이네, 이러니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고 음식을 넘기기도 고통스러우며, 전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질병들에 시달린다 하더군. 난 이전에 전족을 할 때 아이가 나쁜 점이 있어 그 부모들이 자식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니 이런 방법으로 자식들을 가르치려 하는 줄 알았다네. 그런데 누가 알았겠나, 전족을 하는 이유가 얼토당토않게 ‘미’를 위해서라는 걸 말일세. 게다가 사람들이 말하길 전족을 하지 않으면 여자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큰 코를 베어 작게 만들고, 불거져 나온 이마를 깎아 평평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사람을 불구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뭐겠나. 양 발을 불구로 만들어 걸음걸이조차 힘들게 하는 것을 두고 아름다움이라 한다니! 시즈(西子), 왕치앙(王) 같은 절세가인들이 그들이 살던 시대에 발을 반으로 깎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네, 이런 것을 볼 때 아름다워지기 위해 전족을 한다는 것이 한낱 허무맹랑한 조작설이 아니고 뭐겠나?”

      

   윗 글은 중국 청나라 때의 소설가 리루쩐(李汝珍, 1763-1830)이 쓴 『경화연(鏡花緣)』의 한 대목인데 소설 속의 한 서생(書生)이 전족의 피폐에 대해 강력한 부정적 시각을 표현하고 있다. 마치 여성들을 대변한 듯한 이 역설은 후세인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으며 리루쩐(李汝珍)을 여성해방의 선각자로 인식시키는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화연(鏡花緣)』은 당시에 수재(秀才)에 합격했던 탕아오(唐熬)가 해상무역을 하는 그의 처남 린즈양(林之洋)을 따라 다니며 많은 나라를 돌아보면서 신기한 경험을 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를 보는 듯한 이 소설은 작가가 상상해 낸 군자국(君子國), 소인국(小人國), 대인국(大人國) 등 30여 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과 주인공의 체험들을 그렸는데 그 중 특히 중국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부분은 바로 작가가 전족으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들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폭로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리루쩐(李汝珍)은 상술한 바와 같이 일부 지식인들의 전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소설 속에 반영함은 물론 탕아오(唐熬)가 여아국(女兒國)에서 일어난 ‘전족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겪는 무참한 고통을 직접 겪게 함으로써 전족이 사회에 끼치는 폐해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탕아오(唐熬)는 그의 처남 린즈양(林之洋)과 함께 여러 나라를 돌아보던 중 마침내 여아국(女兒國)에 이르게 되는데, 여아국(女兒國)은 여성이 남성 같은 복장을 하고 주로 밖에 나가 일을 보며, 남성이 여성처럼 전족과 화장을 하고 사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또한 그는 그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이라면 당연히 겪게 되는 전족의 고통을 강요받게 됨으로써 평소 여성들의 비참한 운명을 다시 한번 가슴에 각인하게 되는 계기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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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족의 기원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대(五代) 말이나 송(宋) 초에 시작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즉 오대(五代) 이전에 발굴된 남녀의 신발로 보건대 오대(五代) 이전까지는 남녀의 신발형태가 동일한 형태였는데, 그 후 오대 남당(五代南唐)의 후주(後主)였던 리이(李煜)가 여색을 좋아하던 중, 그의 빈비에게 전족을 하게 하여 성적인 흥취를 돋움으로써 전족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족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설로는 『여아경(女兒經)』을 통한 것으로서 여성들이 집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여성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설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중국 내에서도 학자들이 의견을 달리하지만 어떻든 이렇게 시작된 전족은 왕족과 귀족으로부터 시작되어 서민사회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여 평민사회에 일반화된 후 20세기 민국(民國)초기까지 여성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전족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전족이라는 것은 남녀가 불평등한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의 여성억압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당시 제2의 성으로서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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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족을 부끄럽게 여기고 소족을 애호하는 사회적 풍토에 따라 여아들은 4~5세, 혹은 늦어도 7~8세가 되면 전족을 시작해야 했는데 전족의 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먼저 발바닥 부분을 뜨거운 물에 담가 피부를 부드럽게 한 후,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발가락을 발바닥 아래로 접어 넣었다. 그런 연후 긴 천을 이용하여 발을 감아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여아(女兒)적의 발 크기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이런 이유로 민간에서는 ‘전족 한 쌍에 눈물 한 동이’라는 속어가 유행하였으며 직접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탈피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한숨 섞인 한마디로 전족이 주는 참형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다. 이런 연고로 중국의 작가 임어당(林堂, 1895~1976)은 그의 글 『전족』에서 “전족은 부녀를 속박하고 압제하는 상징”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시기적으로 전족의 뿌리가 아직 일반적 사회의 풍토로 자리 잡고 있는데다, 많은 작가들이 전족한 여성들을 작품 속에 묘사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심지어 전족을 ‘미’적 상징물로 찬양하는 일이 빈번한 시기에 리루쩐(李汝珍)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족의 폐해를 고발하고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은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고대사회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 붕괴 후 민국(民國)이라는 새로운 사회가 도래됨으로써 그 지옥의 불과도 같았던 전족의 고통은 사그라들었지만 민국(民國) 이후에도 여성이 갖는 근본적인 피지배자의 모습은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의 현대문학 속에서 그 짙은 그림자를 발견해 낼 수가 있다. 중국의 현대문학은 5·4운동(1919년)이라는 민주운동의 바람과 함께 탄생함으로써 이 시기의 문학 속에는 당시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남·녀 지식인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작품 속의 여성의 모습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일괄해 낸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하층여성이라는 묶음으로 소설에 나타나는 여성의 형상들을 통합해 본다면 입센이 『인형의 집』을 통해 제시했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성의 상징인 노라의 모습이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국 현대소설(1919~1949)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 중에는 개가를 허용 받는 등 사회적 자유를 누리지만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적 체제 속에서 경제적으로 설 곳이 없는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현대작가로 이름이 높은 라오셔(老舍,1899~1966)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하층여성들은 그러한 여성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그의 작품 중 한국에도 많은 번역의 판본이 있는 『로토샹쯔(祥子)』의 경우를 살펴보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샤오푸즈(小福子)라는 여성이 경제적 이유로 부친의 손을 통해 군인에게 팔려 갔다가 그 남성에게 버림을 받은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창녀가 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후 소설의 주인공인 샹쯔(祥子)가 착한 심성의 소유자인 샤오푸즈(小福子)에게 평소 호감을 갖고 있다가 아내의 난산으로 돌연 상처하게 됨으로써 샤오푸즈(小福子)는 샹쯔(祥子)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 하지만 샹쯔(祥子)의 상황이 허락지 않자 결국 자살로써 생을 포기하고 만다. 라오셔(老舍)의 또 다른 작품 중에 『초승달(月牙)』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어머니와 딸이 함께 창녀로 전락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당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여성들이 몸을 팔며 비참한 생을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들은 무수히 많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대문호 루쉰(迅)은 이렇게 말했다. “노라가 떠난 이후로 어떻게 되었나?… 다른 사람들은 이미 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즉 한 영국 사람이 희극 한 편을 썼는데 그가 말하길 ‘한 신식여성이 가정을 나가 결국 갈 곳이 없어 기생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노라를 위한다면 금전,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한다면 경제적인 자립이 중요하다.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돈을 위해 팔릴 수는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는 큰 약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아(飢餓)라 하겠다.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고 다른 사람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권이 가장 중요하다.”

      

   이 시기에는 현대 이전과는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자유는 부여되었으나 남녀가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생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없었던 많은 여성들의 문제를 반영하기 위하여 현대문학의 작가들은 작품 속에 하층여성들의 모순되고 비참한 모습을 그려 냄으로써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루쉰(迅) 또한 이러한 운동의 선두주자로서 당시 사회적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현대의 시기를 넘어 당대(當代, 1949년 이후부터)로 접어들면서 중국은 대변혁기를 맞게 된다. 즉 신중국 수립 이후 중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큰 전환점을 갖게 되는데, 특히 양성문제에 있어 새 정국은 남녀평등을 내세우며 사회의 큰 변혁을 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정부는 매우 강한 대응책으로써 매춘문제를 해결하려 애썼으며 여성에게 남성과 거의 동등한 사회진출과 사회적 권리 등을 보장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문학 작품 속에는 여성이 사회와 정부의 도움으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상황을 많이 반영해 내고 있다. 

    이후 개혁개방이라는 정치적 물결 속에 중국은 또 한번의 대 변혁기를 맞게 된다. 등샤오핑(鄧小平)이 정권을 잡은 이후 그는 ‘흑백묘론(黑白猫論)’,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주의(主義)를 주장하기에 앞서 경제건설에 주력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론]는 정치적 이념으로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게 되는데 1978년부터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은 그의 이념을 실현시킨 중추적 방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중국은 전적으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으며, 계획경제의 낙후된 경제체제를 탈피하여 시장경제 체제의 전환으로 경제건설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후 중국 사회의 양상은 이전과 크게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였으며, 이러한 개방주의의 물결 속에 여성의 인권문제 또한 한층 더 개선되게 된다. 

    중국의 문학 또한 이러한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듯 여성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있어 더욱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성향의 여성을 많이 그려내고 있으며 여성의 자아실현에 대한 부분을 진지하게 탐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80년대의 문학작품을 살펴보면 여성이 스스로의 자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진행했던 짙은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90년대 이후 소위 ‘미녀작가’라 불리는 젊은 여성작가들은 하나의 작가 군을 형성할 정도로 자신들만의 개성 있는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며 새로운 시대의 다양한 여성의 모습들을 창조해 내고 있다. 

    이들이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여성형상들을 보면 대체로 자신의 삶에 매우 능동적이며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삶에 대한 주체로서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때로 주체의식이 너무 지나쳐 초자아를 외치며 오히려 비극적인 삶의 형태로 스스로를 망쳐 가는 경우도 있는데 일련의 여성학자들은 이러한 부분들조차 여성이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삶을 긍정적으로 개척하든 부정적인 부분으로 자신을 몰아가든 이 시대의 여성들은 이제 제2의 성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탈피하고 있으며, 많은 사회적 제약과 억압으로 인한 억울함과 고통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찾아가고 있다. 그 한 예로서 2008년 1월 7일자의 『新世紀週刊』에 발표된 ‘2007년 국민 행복 지수 조사’에 따르면 남녀 성별에 기준한 행복지수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였으며, 이 조사에서는 주로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2007년에 열린 ‘중한여성이 합심하여 살기 좋은 미래를 건설하자’는 세미나에서 전국부련부녀발전부(全國婦聯婦女發展部) 부장을 맡고 있는 추이위(崔郁) 여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중국의 여성 노동력이 중국 GDP에 공헌한 비율이 40%를 넘어선다고 말하였다. 

    이에 관하여 한국의 경우를 보면 최근 한국의 여성들은 남성보다 생활 속에서 느끼는 행복도가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한국갤럽 조사연구소에서 최근 발표한 성별행복도에 관련된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여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견해가 46%, 남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견해가 30.4%로 조사되어 여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견해가 후자에 비해 16.5%나 더 많았다. 또한 통계청이 ‘200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로 밝힌 바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0%를 넘어섰다고 하였다. 

    이렇게 볼 때 양국 모두 여성이 누리는 사회적 혜택이 양호하며 그 인권을 존중받고 있음은 물론 사회참여도 또한 매우 높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즉 사회참여가 남성의 전유물이 되고 여성이 사회참여에서 제외되거나 소외된다는 것은 곧 사회 성원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현대사회의 흐름에서 여성의 사회참여란 필수불가결하며 남녀의 평등과 화합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이 상제님의 해원공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전경』의 공사 편을 보면 상제님께서 남녀평등의 공사에 매우 힘을 기울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의 『전경』 구절을 예로 들어보면 상제님의 해원공사에 남녀의 평등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상제께서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고 박공우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때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나는데 두 노파가 상제의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기에 상제께서 길을 비켜 외면하셨도다. (공사 1장 32절)

    

   머슴이었던 지남식에게도 항상 존대말을 하시며 양반과 상놈의 경계를 없애시고 언제나 인간평등의 이치를 강조하셨던 상제님께서는 선천에서 상극의 한 씨앗이 되었던 건곤의 불합리한 이치를 바로 잡으셨으며, 선천의 옳지 못한 폐단을 개정하시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불평등한 인간관계로써 발생하는 인간과 인간 간의 척을 없앰으로써 ‘좋은 시대’의 도래를 촉구하셨던 상제님의 물샐 틈 없는 도수의 안배는 후천의 음양도수를 새로이 조정하심으로써 더욱 구체화된다. 즉 상제님께서는 어느 날 종도들에게 오주를 수련케 하신 후 후천의 음양도수를 조정하시는 공사를 보셨는데, 종도들이 상제님이 명하신 대로 나눠 주신 종이 위에 원하는 대로 점을 찍어 올리자, 다른 종도들이 여러 개의 점을 찍은데 비해 단지 한 점만을 찍은 문공신의 경우를 가장 흡족해 하시며 정음정양의 원리로써 후천의 음양도수를 조정하셨다. 상제님께서 제시하셨던 후천의 음양원리는 교법 부분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후천의 원리에서 남존여비의 폐단을 확연히 소멸시키시고 음양의 새로운 기틀을 세우심이 강조되어 있다.

      

   후천에는 그 닦은 바에 따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리니 이것으로써 옛부터 내려오는 남존 여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 (교법 1장 68절)

      

   이 외에도 상제님께서는 어느 날 박공우로 하여금 후천 五만년의 첫 공사 내용을 깊이 생각하여 말하게 하신 후, 과부의 개가를 허용함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억압받아 온 부녀자들을 해원하여 주는 공사를 보셨다.

    또 다른 『전경』 내용을 살펴보면 상제께서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는 글을 써서 불사르시는 한편 백남신의 친족인 백용안(白龍眼)이 관부로부터 술도매의 경영권을 얻는 바람에 용두치 김주보의 주막이 폐지되기에 이르렀을 때 그의 아내가 울분을 토로함을 들으시고 가엾게 여기시어 여장군(女將軍)이라고 쓴 종이를 불사르시고 백용안(白龍眼)이 주점을 그만두게 되도록 만드셨다. 이러한 부분들을 살펴볼 때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인간을 살리는 상제님의 공사 내용 중에 여성해원이 매우 중요한 내용임을 알 수 있으며 상제님께서 이 문제에 얼마나 주력하셨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문학은 곧 사회와 인간의 삶을 대변하는 인학(人學)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문학 속의 여성의 삶을 통해 중국 사회의 흐름과 여성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전경』 내용을 통해 볼 때 이러한 여성의 역사가 나타내는 여성의 해원이 곧 상제님의 공사와 직결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상제님께서 후천의 음양도수를 조정하셨던 부분과 후천 五만년 공사에서 여성의 인권도 남성의 인권만큼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 내용은 이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부분은 한국 이외의 나라에도 그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본고에서는 중국문학과 상제님의 해원공사를 연결지어 생각해 봄으로써 여성의 해원이 단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한국 외의 다른 나라도 포함된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중국이라는 개념은 단지 ‘한국 외의 나라’의 한 예일 뿐이며 상제님의 공사는 세계만방에 걸쳐 두루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그 외의 많은 나라 사람들은 상제님이 세상의 도수를 정리하신 부분이나 상제님의 후천 공사에 대한 내용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그들이 상제님의 사상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순의 사상이 세계에 많이 알려져야 할 것이며, 그 일을 위해 우리 모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대순이 세계로 뻗어나갈 그날을 기대하며 세계의 모든 이들이 상제님의 사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그날을 고대해 본다.

    <대순회보> 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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