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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논단대순사상(大巡思想)의 인간론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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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현철 작성일2018.10.05 조회4,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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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위원 주현철

    

Ⅰ. 서론


  인류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관한 다양하고 수많은 이론이 나왔지만, 아직도 인간 이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날까지 인간이 사고능력을 상실하지 않는 한,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미 및 천ㆍ지ㆍ인(天地人) 삼계(三界)에서의 인간의 위상에 관한 의문과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세상에 많은 종교와 사상의 난립으로 인해 인간을 현혹하고 인간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데 있다. 우주만물을 주재(主宰)하시는 절대자의 정체, 인간과 절대자 사이의 상관관계, 인간이 절대자로부터 받은 은혜의 사실들을 정확히 인식할 수만 있다면, 인간 이해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관한 사실적 접근과 당위적 접근 방식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사실적 접근이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인간 특징에 관한 사실적 측면, 즉 인간의 탄생과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에 대한 접근이다. 반면 당위적 접근이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인간이 올바로 가져야 할 마음상태와 행동양식 및 지향해야 할 목표에 대한 접근이다.

  본 논문에서는 사실적 접근 방식으로 대순사상에서 제기하는 인간에 대한 관점으로서 인간의 탄생과정과 인간의 구성요소, 당위적 접근 방식으로 대순사상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으로서 도덕적 인간 신앙적 인간 이상적 인간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그런데 대순사상적 관점에서의 인간 이해를 위해서 사실적 접근과 당위적 접근을 별개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은 그 이해의 폭을 좁힐 따름이다. 대순사상의 인간론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사실적 접근에 의해 밝혀진 사실들을 당위적 접근에 연관시켜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본 논문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인간론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 이해에 대한 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인간에 대한 관점


 대순사상에는 인간의 창조나 기원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인간의 탄생 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밝혀주고 있다. 인간은 탄생 이전부터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 신비로운 과정과 무한한 은혜 속에 태어난다. 『전경』에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육십 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내되 그렇게 공을 들여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같이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01라고 하였다. 인간의 출생은 부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만 부모 이전의 근원적인 사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손을 내기 위해 60년간 공력(功力)을 쌓은 선령신의 은혜와 최종적으로 하늘의 결정으로 탄생한다. 결국 인간은 상제님의 진리 속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적 필연적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마음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은 몸의 주체로서 인간의 모든 언어 행동을 주관하며, 신(神)이 드나드는 통로가 된다. 『전경』은 “마음이란 귀신에게 있어 추기요 문호요 도로이다. 추기를 열고 닫으며 문호를 들락날락하며 도로를 오고 가고 하는 것은 신이다.”02라고 하여, 신은 인간의 마음속을 드나드는 존재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러한 신은 대체로 원신(元神)03과 기능신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원신은 인간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을 존재케 하는 근원이다. 『전경』에 “천지에 신명이 가득 차 있으니 비록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나니라.”04고 하였듯이, 신은 천지만물 하나하나에 깃들여 있으면서 천지만물의 존재가치를 부여한다. 다시 말해서 천지만물은 신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인간에게 신이 깃들여 있다는 것은 삶(생명)을, 인간에게서 신이 떠났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신을 원신(元神)이라 한다.

  또한 인간에게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주어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신이 존재한다. 『전경』에 “사람마다 그 닦은 바의 기국에 따라 그 사람의 임무를 감당할 신명의 호위를 받느니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고 자기 일에 해태한 마음을 품으면 나의 신명이 그에게 옮겨가느니라.”05고 하였듯이, 원신과 더불어 각자의 기국(器局)에 따라 응(應)하는 기능신이 인간의 마음속을 드나들고 있다.

   


Ⅲ. 대순사상이 추구하는 인간상  


1. 도덕적 인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를 떠나서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며, 인간의 존재와 가치도 사회를 배제하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수칙(守則)」의 첫 번째 항목은 ‘국법을 준수하며 사회도덕을 준행하여 국리민복에 기여하여야 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어느 사회나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리기 위해 규범을 세우고, 그에 따라 선(善)과 악(惡), 정의(正義)와 불의(不義)를 구분하고 있다. 모든 사회는 다양한 규범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양심(良心)이나 상식 등에 비추어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덕적 규범이 있고, 강제적 특성을 지닌 법이 있을 수 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이 도덕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강제나 규제보다도 자각에 의한 실천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사회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 각자의 양심(心)에 기초한 자발적인 인식이 싹터야 한다. 양심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려는 일체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으며, 남을 배려하고 남과 화합하고 질서를 유지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법보다 도덕이 우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법은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규범으로서 범죄를 예방하고 그 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근본적으로 선(善)하게 만들 수는 없다. 도덕은 강제력을 갖는 법과 달리 각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규범이기 때문에, 인간을 어느 정도 선(善)하게 만들 수 있다.

  대순사상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도덕적 덕목으로서 충 효 열(忠孝)을 중시하고 있다. 『전경』에 “세무충 세무효 세무열 시고천하개병(世無忠 世無孝 世無 是故天下皆病)”06이라고 한 것처럼, 세상이 온통 병에 걸려 타락한 것은 법이 없거나 약해서가 아니라 강제성이 없는 도덕적 요소인 충ㆍ효ㆍ열의 부재(在)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래서 이 장(章)에서는 충ㆍ효ㆍ열이 갖는 중요성과 그 특성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1) 충(忠)


  충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충을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의 합성어로서 속마음 중정(中正)한 마음 본래의 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충이란 중심을 잡고 있는 마음, 곧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진실한 마음을 의미한다.
공자는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데 예()로써 하며,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충성으로 해야 한다.”07고 하였다. 여기서 충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충이 임금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일반화된 것은 순자(荀子)에 이르러 고정되기 시작했다.08 이렇게 볼 때 충의 의미는 인간 본래의 마음, 또는 임금에 대한 충성심으로 나타난다. 
  유교에서는 주로 충을 군주(임금)에 대한 충성의 의미였지만, 현대에서의 충은 개인에 불과한 군주보다는 국가 또는 민중전체에 대한 충성을 의미한다. 대순사상에서는 국가와 민중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인 충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에 충성한 사람들에 대해서 사후(死後)에도 그 넋을 고귀하게 기리는 한편, 후대(後代)의 사람들에게 큰 교훈으로 삼도록 하고 있다. 
  손병희(1861~1922)는 동학(東學) 천도교(天道敎)의 지도자이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사업가였다. 손병희는 큰 업적에도 불구하고 천도교와 함께 그의 평가는 크게 엇갈려 친일성을 문제 삼는 예가 있다. 그러나 손병희는 충과 의(義)를 아는 사람으로서 임금을 임금답게 만들고, 세상의 모든 백성들을 평화롭게 하고 큰 날개를 떨쳐 세상을 한층 새롭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중국 전국시대 4군자(君子)인 맹상군 평원군 춘신군 신릉군의 명성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상제님께서는 평가하셨다.09 또 “손병희가 영웅이라. 장차 난리를 꾸미리니 그 일을 말함이나 그가 선진주(先眞主)라 박절하게 성돌 밑에서 턱을 괴고 앉아서 거의(擧義)하므로 성사치 못하리라”10고 예시(豫示)하기도 하셨다.

  현대에 이르러 손병희는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삼계(三界)를 주재(主宰)하시는 상제님보다 인간사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알 수는 없다. 상제님께서 그를 높이 평가하신 데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손병희라는 한 인간에 대한 절대자의 안목이 있으셨을 것으로 사려된다. 비록 손병희가 도모했던 일들이 실패했더라도 역사에 길이 남을 큰일을 했고, 그에게 인간으로서 과오(過誤)가 있었더라도 공(功)이 과(過)를 덮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11 
  상제님께서는 이 이외에도 남을 잘 되게 하려는 일심(一心)에 변함이 없었던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전명숙(봉준, 1855~1895)과 불굴의 의지로 항일애국운동을 했던 최익현(1833~1906)과 민영환(1861~1905) 등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칭송하고 그들의 넋을 위로했다.

  
(2) 효(孝)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孝道)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효라 한다. 즉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예()로써 하며, 돌아 가셨을 때 장사지내고 제사지내는 것을 예로써 하는 것을 의미한다.12 효란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경애하는 마음가짐으로 조상의 제사를 태만하게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지금의 효라는 것은 봉양(奉養)하는 줄만 아나 개나 말도 다 음식을 줘서 기름이 있으니, 공경(恭敬)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느냐?”13고 했다. 이 말은 효도란 물질적인 봉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다. 물질적인 봉양만 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개나 말과 같은 짐승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심이야말로 효행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사람의 신체와 머리터럭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이것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효도의 시작이며, 몸을 세워 도(道)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드날리어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은 효도의 마침이니라. 대체 효도란 부모를 섬기는 데에서 시작하여 다음으로는 임금을 섬기고 끝으로는 제 몸을 세워야 되는 것이다.”14라고 하였다. 
  효도란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일인데, 자기 몸은 모두 부모에게서 생긴 가지이다. 한 몸의 사체(四體)는 물론 터럭이나 피부까지도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부모가 온전히 해서 낳아주었으니 나도 마땅히 온전히 해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식이 된 자는 자신의 몸을 아끼고 소중히 여겨서 조금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 한 것이다. 다음으로 능히 자신의 몸을 세워서 그 도(道)를 행하며, 자신의 이름을 빛내고 자기 부모의 이름까지도 빛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마침이다. 그러기 때문에 효도라는 것은 자신의 부모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면 이것이 효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임금을 섬기면 충신이 되는 것이요, 이 충성과 효도를 다 잘하면 마침내는 자신의 몸을 세워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효도하고서 어질지 않은 사람이 없고, 효도하고서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효도하고서 예의가 없고 지혜가 없고 신용이 없는 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임금을 섬긴다면 충성이 될 것이요, 이 마음으로 형을 섬기면 우애로운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이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린다면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이요, 어린이를 돌본다면 인자한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 가지 효도하는 마음이 서게 되면 만 가지 착한 마음이 여기에 따라 저절로 생겨서 처음에는 자신의 몸을 보전하는 길이 된다고 말할 수 있고, 다음으로는 자신의 몸을 세우는 길이 된다고 할 것이다. 
  또 효도란 하늘의 떳떳한 것과 땅의 떳떳한 것을 인간이 본받는 것이다.15 인간은 하늘의 성품을 받아서 자애(慈愛)로운 마음을 갖게 되고, 땅의 성품을 받아서 공순(恭順)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 자애와 공순이 바로 효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효도란 하늘과 땅의 정당하고 떳떳한 데에 근본을 둔 것으로서 이것을 인간이 취해서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대순사상에서도 효(孝)를 중시하고 있다. 상제님께서 장 익모의 집에 가셨을 때, 그가 자신의 어린 아들을 지극히 귀여워하는 것을 목격하시고 그에게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도의로서 부모를 잘 공양하라.”16고 말씀하셨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면서 부모에게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부모에 대한 공경(恭敬)이나 물질적인 봉양(奉養)은 고사하고 부모를 학대(虐待)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노인학대의 사례를 보면, 폭행 흉기사용 감금 등 신체적인 학대에서부터 비난 폭언 협박 등 언어로 위협하는 심리적인 학대에 이르기까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다. 
  부모가 늙고 몸이 불편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학대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행위이다.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배반(背反)하는 사람은 가정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이끌어 갈 수 없으며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도 없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고 그에게 많은 투자를 하더라도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식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다. 가정에서 그 자식이 부모의 불효를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잘못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식들이 올바르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몸소 효를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대순사상은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상기시켜, 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3) 열()


  열은 엄하고 사나운 기상이나 곧은 절개를 의미한다. 충과 효도 열이 없으면, 그 도리를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열은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자신이 뜻한 일을 이루기 위한 불굴의 의지이다. 열로써 충을 다하면 충신(忠臣)과 열사(士)가 되고, 열로써 효를 다하면 효자(孝子)가 되고, 열로써 수도(修道)에 전념하면 도심(道心)이 깊은 진정한 수도자(修道者)가 되는 것이다. 
  열녀(女)란 기상이 강하고 절개가 곧은 여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열녀는 순수하고 자발적인 의미를 상실한, 이를테면 자기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회제도권 하에서 강요된 열녀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상부하여 순절하는 청춘과부를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악독한 귀신이 무고히 인명을 살해하였도다’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그 글은 이러하였도다. 忠孝 國之大綱然 國亡於忠 家亡於孝 身亡於.”17

   충ㆍ효ㆍ열이란 국가의 큰 기틀이 되는 것으로, 상제님께서 천하를 대순(大巡)하시고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해 “世無忠 世無孝 世無 是故天下皆病”18, 즉 세상에는 충 효 열이 없으며, 이것으로 인해 천하가 모두 병에 걸렸다고 진단하셨다. 상제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충 효 열이란 상생과 인간평등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폐습으로 평등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충 효 열은 오직 권력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 백성들에게 무분별하게 강요함으로써, 개인과 가정과 국가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남존여비(男尊卑)의 관습을 무너뜨리고, 남녀평등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사를 처결하셨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열녀불갱이부(女不二夫)’라 하여, 열녀는 두 번 남편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이전의 폐습적인 열녀관을 부인하고 새로운 열녀관을 주창하셨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편을 잃고 순절하는 청춘과부를 가리켜 ‘악독한 귀신이 무고히 인명을 살해하였다’19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살아 있는 남편에 대해서 정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남편이 죽은 후에 지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거나 죽을 때까지 개가치 않는 행위는 옳치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죽어서 열녀가 되거나 청춘과부가 수절하여 공방에서 쓸쓸히 늙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 폐단을 고쳐 개가케 하는 공사를 보셨던 것이다.20 열녀는 있으나 열부(夫)는 없고 남자는 재혼할 수 있으나 여자는 재혼할 수 없는 불평등한 제도를 뜯어 고쳐 남녀평등에 입각한 여성해원공사를 하신 것이다. 

 
2. 신앙적 인간


  앞서 언급한 법이나 도덕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은 상제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진리 말씀이다. 도덕은 인간관계만을 규정하지만 진리 말씀은 초월자이신 상제님과의 관계로까지 승화되어 절대선(絶對善)을 추구하기 때문에, 도덕보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선(善)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상제님에 대한 신앙심이 수도인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행위로 이루진다는 관점에서 볼 때,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도덕보다 상제님의 진리 말씀이 더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범죄는 인간의 탐욕과 감정에 의해서 유발되며, 도덕은 그러한 탐욕을 경계하고 감정을 조절케 해준다. 진리 말씀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도통(道通) 또는 인존(人尊)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이를 위해 탐욕과 극한 감정을 근절케 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인도한다. 
  대순사상은 신앙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덕목으로 성 경 신(誠敬信)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성 경 신이 성실, 경건, 신뢰의 의미로 사회생활에 필요한 도덕적 덕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순사상은 ‘성(誠) 경(敬) 신(信)의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의 요체(要諦)를 삼는다’21고 하였다. 요체란 ‘중요한 진리’라는 의미로 대순진리를 수도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만 하는 신앙적 자세를 말한다. 그래서 이 장(章)에서는 성 경 신을 도덕적 관점보다는 신앙적인 관점에 중심을 두고 그 특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성(誠)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성은 주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성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성’과 ‘진실’ 등이다. 곧 하늘이 부여해 준 인간 본래의 참된 마음을 일컫는다. 『중용』에 “성실 그 자체는 하늘의 도(道)요, 성실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다.”22라고 하여, 천도(天道)의 본질을 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자는 “성이라는 것은 진실되어 망령됨(眞實無妄)이 없는 것을 이르는 것이니 하늘의 이치[天理]가 본디 그러한 것이요, 성실해지려고 하는 것은 능히 진실하고 망령됨이 없지 아니 하므로 그 진실하고 망령됨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니, 사람의 일이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23라고 하였다. 
  『전경』에 나오는 일화 속에서 정성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이선경의 아내는 49일 동안 매일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떡을 쪄서 정성을 드리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불평을 하게 되자 아무리 불을 때도 떡이 익지 않게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24 이것은 정성스러운 마음이 없으면, 그 일을 이룰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둘째, 성은 우주만물의 존재 근거이자 본질이다. 대순사상에서는 “성이 아니면 만물도 존재하지 못한다.”25라고 하였다. 『중용』에서도 “성은 만물의 끝과 시작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만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실한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 성실한 것은 스스로 자기를 이룰 뿐만 아니라 만물을 이루는 것이다.”26라고 하여, 성을 우주만물의 존재 근거이자 본질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성은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모든 사물 속에 내재하는 일관성 있는 본질이기 때문에, 성이 아니면 이 세상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이 우주계에는 항상 이 우주를 유지하고 운행하는 보편적인 원리가 있어 자연을 질서 있게 운행해 간다. 그 원리가 하늘의 이치[天理] 곧 성인 것이다. 하늘의 이치가 인간을 비롯한 만물에 두루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성은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천지자연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어김없이 성실하게 수행한다. 만일 성이 없으면,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4계절의 운행이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낙엽이 지는 것, 해와 달이 번갈아 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자연의 세계는 성실하기 때문에 언제나 질서를 유지하고 차질 없이 잘 운행해 나가는 것이다. 우주만물의 존재근거인 성이 없다면, 우주의 질서가 파괴되어 우주전체에 혼란이 초래될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의 질서도 문란해질 것이다. 
  셋째, 성은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같은 정성으로 상제님을 받드는 일을 말한다.27 이 정성(精誠)은 늘 끊임이 없이 조밀(調密)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컫는다.28 『중용』에서도 “그러므로 지극한 정성은 쉬는 것이 없는 것이다.29”라고 하였고, 이에 대해 주자는 “이미 헛되고 거짓이 없으면 스스로 간단(間斷)이 없는 것”30이라고 해석하였다. “『전경』에 ‘성(誠)을 지극히 하라’ 하셨으니 성(誠)의 소귀(所貴)함을 깨달아 봉행(奉行)하여야 한다.”31고 하였는데, 성으로써 받들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상제님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은 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인간은 기질(氣質)이 혼탁해져 하늘이 부여한 성(誠, 즉 本性)을 잃었기 때문에, 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도(修道)가 필요하다. 수도를 통해 사심을 버리면 참된 것만이 드러나 양심, 즉 성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성이 인간에게 신앙적 규범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2) 경(敬)


  경은 성을 기초로 성립되기 때문에, 경은 성과의 관련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성이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여 인간의 도리를 다하려는 마음의 자세라면, 경은 이를 실천하려는 몸의 자세를 일컫는다. 『대순지침』에 경이란 모든 일이 내심의 소정(所定)에 따라 몸으로 표현되는 법이라고 했듯이32, 경은 인간의 본성인 양심(良心)에서 비롯된 일체의 행동을 가리킨다. 마음은 몸의 주체로서, 모든 몸의 기능을 주관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행동 기능을 주관하는 것은 마음이고 마음의 현상을 나타내는 것은 몸이다.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라고 했듯이33, 인간의 마음과 언행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써, 언행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이 바르면 언행도 바르고 언행이 바르면 마음이 바를 수밖에 없다. 
  경과 성의 관계를 토대로 경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기로 하자. 경은 예()와의 관련 속에서 그 특성이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대순진리회요람』에 경이란 심신(心身)의 움직임을 받아 일신상(一身上) 예의(禮儀)에 알맞게 행해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34 경은 마음과 몸의 조화로써 이루어지며, 반드시 예에 입각한 몸의 자세이어야 한다. 
  『대순지침』에서는 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예란 인간이 일생동안 움직일 때나 정지해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정도에 넘는 일이 없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 줌으로써 인간의 도리를 갖추는 일이라고 말한다.35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려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싹트는 것이다. 예의 근본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예를 갖출 수 없고, 예가 갖추어지지 않고서 경을 실천할 수 없으며, 경의 실천 없이 인간의 도리인 성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성은 경의 근본이며, 경은 성을 실천하려는 몸의 자세이고, 예는 경을 몸으로 실천하는 방법으로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경의 올바른 실천은 첫째, 상제님께 예를 갖추는 것이다. 『대순지침』에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먹는 대로 행동하게 되는데, 옳은 일도 마음에 두지 않으면 바로 행하지 못한다(有其心 則有之 無其心 則無之).”36고 하였다. 수도인들은 상제님에 대하여 영원히 모시는 정신을 마음에 정성껏 간직하여 잊지 않고, 또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일심(一心)으로 지성봉축(至誠奉祝)해야 경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경은 일상생활에서 예를 갖추어 처신 처세하는 것이다. 예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윤리적 행위에 있어 알맞은 절도(節度)나 기준(基準)을 말한다. 『대순지침』은 사회생활에서 예로써 경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37 예가 바로 서지 않으면 풍속도 갖추어지지 않으며, 부자 형제의 윤리도 정립되지 않는다. 스승을 섬기고 학문에 힘쓰는 일도 예가 아니면 바른 수업(受業)이 될 수 없고, 군률(軍律)을 세우고 관직에 있어서 법을 행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 윗사람은 매사에 예를 갖추어 공정을 기하고 아랫사람은 직책을 예법에 합당하게 해야 한다. 또 조상을 받들고 신명 앞에 치성을 드리는 일에도 정성의 예를 갖추어야 하므로 사념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예로써 경을 실천하는 일은 모든 사회생활에 적용되어, 인간과 사회를 조화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케 해준다.    


(3) 신(信)


  신은 인간의 인격을 결정하는 척도이다. 신(信)은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의 합성어로서, 인간이 말을 진실하게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말과 행동의 일치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타인에게 믿음을 줌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신뢰받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신앙(信仰)이란 종교를 믿는 것이고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인 신념을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신앙은 종교적 신념이며 종교적 신념체계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신의 존재를 확신할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수반되는 의식과 행사에 참여하고 교단의 규율에 복종하고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신앙은 신의 존재가 객관적 사실임을 확신하면 무조건 믿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일반적인 지식이나 인식을 갖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신앙이 비종교적인 확신인 지각적(知覺的) 믿음 과학적 믿음 철학적 믿음 등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기준은 신(神)에 대한 절대적 객관성을 갖추었다는 데 있다. 이렇게 무조건성과 절대적 객관성이 신앙의 본질인 것이다. 
  상제님께서 “대인의 말은 구천에 이르나니 또 나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잘 믿으라.”38고 하셨듯이, 만일 상제님의 진리에 하나라도 의심을 품고 진리에 반(反)하는 행동을 한다면 신앙인으로서의 생명이 다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 명시된 신에 대한 정의는 이론적인 차원을 넘어 신앙의 방법과 실천 자세를 말해주고 있다. “한마음을 정(定)한 바엔 이익(利益)과 손해(損害)와 사(邪)와 정(正)과 편벽(偏辟)과 의지(依支)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變)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差異)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하나를 둘이라 않고 셋을 셋이라 않고 저것을 이것이라 않고 앞을 뒤라 안하며 만고(萬古)를 통(通)하되 사시(四時)와 주야(晝夜)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 하고 만겁(萬劫)을 경과(經過)하되 강하(江河)와 산악(山岳)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하고 기약(期約)이 있어 이르는 것과 같이하고 한도(限度)가 있어 정(定)한 것과 같이 하여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精誠)하고 또 정성(精誠)하여 기대(企待)한 바 목적(目的)에 도달(到達)케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39


  이 내용은 믿음에는 그 원칙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단 상제님의 대순(大巡)하신 진리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면, 그 마음에 흔들림이나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상제님을 신앙함에 있어 어떤 이해타산이나 의심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어서는 안 되며, 어떤 압력이나 협박이 가해져도 죽음을 각오하고 그 진리를 지키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마음은 만고에 사계절과 밤낮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 변해서는 안 되며,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산과 강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듯이 견고하고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신앙에는 불변(不變)과 부동(動)의 원칙이 있다.

  또 상제님을 신앙함에 있어 막연하고 무계획적인 믿음은 자칫 자포자기의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신앙은 기약이 있어 이르고 한도가 있어 정한 것과 같이, 자신의 역량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 후, 그 목표가 이루어지면 더 높은 목표를 세워 하나씩 단계적으로 정성을 다하여 이루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신앙에 있어 기약과 한도의 원칙이다.40 이러한 원칙들을 지켜 상제님을 신앙하는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3. 이상적 인간


  인간은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상(想, Ideal)이란 여러 가지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 이상은 인간의 지성(知性)과 감성(感性) 또는 정서(情緖)에 완전한 만족을 주는 것이거나, 인간 사물 성질 상태 등이 발전한 궁극적인 최고의 형태를 말하기도 하고, 인간의 지적(知的) 도덕적(道德的) 미적(美的) 사회적(社會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며, 혹은 관념에 있어서 일체의 현실적 결함이나 부족함을 채워 바람직한 조건을 모두 완전히 갖춘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이상은 현실적 · 실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나 현실을 토대로 실현 가능한 어떤 것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상은 행동의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며, 현실을 이끌어갈 힘을 가지고 있고 현실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41

  이러한 의미에서 이상은 전연 비현실적인 공상(空想)과는 그 성질을 달리한다. 이상은 인간에게 있어서 현실적 행위의 목적이 되며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가능근거(可能根據)이기도 하다. 즉 이런 이상은 어떤 초월적 특성을 지니면서도 부단히 현실 속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따라서 끊임없는 노력의 목표이면서도 무한한 피안(彼岸)에 있고 동시에 현실적 행위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42

  대순진리를 신앙하는 수도인은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현실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상은 도통군자인데, 이는 신인조화(神人調化)의 결과로 나타난 신인간(新人間)을 일컫는다. 그러면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신인조화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인간과 신의 관계


  신과 인간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기성종교에서는 신이나 인간을 별개로 취급하거나 또 어느 한 곳에만 치우침으로써, 신과 인간의 분리를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기성종교의 신과 인간의 단절과는 달리, 대순사상에서 신은 최고신(最高神)인 상제님의 사역하(使役下)에 있는 존재로서 인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인간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되기 때문에43, 신은 인간존재의 또 다른 존재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신은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은 신과 교류가 가능한 존재로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과 인간은 음양적(陰陽的) 관계에 있다. 음양은 우주만물 중 서로 상대적인 위치나 상태 또는 성질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이 양(陽)이고 땅이 음(陰)이고, 해가 양이고 달이 음이듯이, 신은 음이고 인간은 양이 된다.44 본래 음양은 상호 상승과 하강, 생성과 감쇄의 관계 속에서 모든 삼라만상의 변화의 출발과 마침이 되며, 인간 생의 근원과 터전이 된다. 인간은 양의 의미를 갖고 신과 음양관계로 존재하여 음의 세계인 신명계를 느껴 통해야 진정한 큰 어짐과 큰 의리를 가질 수 있다.45 모든 일은 시발하는 곳을 관찰해야 하며 음과 양에 있어 만사는 음에서 일어나 양으로 밝아진다(萬事起於陰 以布陽).46 결국 이 음양이 합해진 후에 변화의 도(道)가 있게 되는데47, 이러한 음양론은 차후에 전개될 신인조화에 대한 해석의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신과 인간은 음양의 관계로서 음양사상의 특성인 공재적(共在的) 대대적 (對待的)인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신과 인간은 공재적인 관계에 있다. 신과 인간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공존하고 있다. ‘신은 인간이 먹는 대로 흠향(歆饗)한다’48는 것은, 신이 인간과 존재방식은 다르지만 삶의 양식(樣式)은 유사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육체를 가진 가시적(可視的)인 존재인데 비하여 신은 육체를 갖지 않은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존재로서, 신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 신과 인간은 대대적인 관계에 있다. ‘대대(對待)’라는 용어는 본래 음과 양을 구조적으로 표현한 말로써, ‘대립(對立)하면서 서로 끌어당긴다’, ‘상대가 존재함에 의하여 비로소 자기가 존재한다’, ‘상호 대립하면서 상호 의존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49 『전경』에 “신은 사람이 없으면 후에 의탁할 곳이 없고 사람은 신이 없다면 앞에서 인도해 의지할 곳이 없어진다… 신명은 사람을 기다리고 사람은 신명을 기다린다.”50라고 하였다. 신과 인간은 둘 중에 하나가 없다면 어느 쪽도 존재할 수 없으며, 우주의 이치에도 맞지 않고 그 존재의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양자는 상대가 존재함에 의하여 비로소 자기가 존재하는 관계, 상호 대립적이면서도 상호 의존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2) 신인조화의 의미와 원리


  신인조화는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다. 조화(調化)란 조화(調和)와 조화(造化)의 의미를 포괄하는 신조어(新造語)다.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조화(調和)란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이고, 조화(造化)는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 또는 그런 이치에 따라 만들어진 우주만물’, 또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하게 된 일’ 등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신인조화는 신과 인간이 화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가치란 궁극적으로는 천 지 인 삼계(三界)에서 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실현된 세계가 곧 후천선경(後天仙境)의 세계이다. 
  신인조화의 원리에 대해서 『전경』은 “천지의 일은 모두 이 음양가운데 이루어짐이 있고 만물의 이치도 모두 이 음양가운데 이루어진다. 천지는 음양으로써 변화를 이루고 신과 인간도 음양으로써 조화(造化)를 이룬다. 신과 인간이 화합해서 모든 일을 이루고 신과 인간이 합쳐져 모든 공을 이룬다. 신명은 인간을 세우고 인간은 신명을 세운다. 음양이 서로 합쳐지고 신인이 서로 통한 후에 천도(天道)가 이루어지고 지도(地道)가 이루어진다. 신사(神事)가 성공하고 인사(人事)가 성공한다. 인사가 성공하고 신사가 성공한다.”51고 하였다. 
  이 내용은 신과 인간이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화합을 할 때 만사가 이루어지며, 음양이 합쳐지는 것처럼 신과 인간이 서로 통해야 신사와 인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신과 인간의 조화를 음양의 원리에 맞춰 신인조화를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신인조화의 실현방법 


  신인조화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자력적인 방법과 타력적인 방법이 있다. 자력적인 방법은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한 수도이다. 일의 크고 작음을 구별하지 않고 천지의 귀와 신이 살피고 있으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라 해도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52 또 마음의 발로에 사심을 버리고 예법에 합당케 해야 하며,53 참된 성품을 살펴서 허망한 일을 하지 않는 지성(至誠)에 이르면 신(神)과 같아진다고 하였다.54 이것은 인간이 본성을 회복하고 그 본성에 따라 움직일 때, 거짓이 없고 사심이 없는 상태인 무자기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대순사상은 무자기를 근본으로 한 올바른 수도로 신인조화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 즉 도통군자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무자기(無自欺)를 근본(根本)으로 하여 인간(人間) 본래(本來)의 청정(淸淨)한 본질(本質)로 환원(還元)토록 수심연성(修心性)하고 세기연질(洗氣質)하여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境地)를 정각(正覺)하고 일단(一旦) 활연(豁然) 관통(貫通)하면 삼계(三界)를 투명(透明)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通)이며 도통(道通)인 것이다.” 55


  무자기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남을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마음상태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양심(良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는데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며, 사심은 물질적인 욕심에 의하여 발동되는 마음이다. 본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이지만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게 된다. 인간이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56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무자기를 바탕으로 정신을 개벽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개벽을 위한 실천수행 원리로 수심연성(修心性) 세기연질(洗氣質) 면이수지(勉而修之) 성지우성(誠之又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57

  수심연성에서 수심(修心: 마음을 닦음)이란 자신의 때 묻고 흐트러지고 잘못된 마음을 바로 잡아 상극(相克)의 묵은 기운을 빼내고 상생(相生)의 새 기운을 채우는 것을 의미하며, 연성(性: 성품을 연마함)은 상생의 기운으로써 인간 본래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본성에 귀일(歸一)하고자 수련하는 것을 말한다. 세기연질이란 선천의 상극지리(相克之理)에 지배되어 있는 묵은 기운을 빼내어 원황정기(元皇正氣)가 내 몸에 합해질 수 있도록 상생의 도로써 인간 본래의 맑고 깨끗한 본성에 이르도록 자기 자신의 기질(氣質)을 단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면이수지란 종지인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의 대순진리를 체인체득(體認體得)하기 위하여 힘써 닦는 것을 말한다. 성지우성이란 면이수지하기 위해 정성에 또 정성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지성(至誠)을 다하여 수련을 쌓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다.58 따라서 무자기를 근본으로 수도에 전념하는 것이 신인조화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실천방법이라 할 수 있다. 
  타력적 방법은 자력적 방법을 전제로 한다. 인존의 실현을 위해서는 자발적인 수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여기엔 상제님과 신명의 관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경』에 “사람마다 그 닦은 바와 기국에 따라 그 사람의 임무를 감당할 신명의 호위를 받느니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고 자기 일에 해태한 마음을 품으면 나의 신명이 그에게 옮겨 가느니라.”59고 하였다. 신명은 한 사람에게만 상주(常住)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국(器局)에 따라 옮겨 가는 전이적(轉移的)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여 수도에 소홀하다면 신명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신명은 상제님의 명(命)을 충실히 수행하는 매개자(媒介者)로서 인간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상제님께서는 “나는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고 사람에게도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 속에 드나들게 하여 다 고쳐 쓰리라.”60고 말씀하시어, 성실하게 수도에 전념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신인조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상제님께서는 우주만물의 주재자(主宰者)로서 천계(天界)와 지계(地界)의 상극적 원인이나 요소를 개조(改造)하고 신명을 통해 인간도 개조할 능력을 지니셨다. 그래서 약하고 병들고 천하고 어리석은 자일지라도 인간을 구별하지 않고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 쓰셨다.61

    


Ⅳ. 결론


  지금까지 상제님과 신과의 관련 속에 있는 인간의 탄생과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대순사상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도덕적 인간 · 신앙적 인간 · 이상적 인간으로 분류하여, 인간론에 대한 특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도덕적 인간의 덕목으로서 충 효 열(忠孝)과 신앙적 인간의 덕목으로서 성 경 신(誠敬信)의 실천은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상인 신인조화된 신인간(新人間), 즉 도통군자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적 신앙적 덕목의 실천을 위해서는 반드시 무자기(無自欺)가 그 근본이 되어야 한다. 
  무자기는 곧 양심(良心)의 발로(發露)이다. 양심이란 하늘이 인간에게 본래 부여한 마음으로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라고 하며, 이러한 마음을 잊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이 일심(一心)이다. 곧 일심이란 양심으로 일관하는 마음이며, 이러한 마음으로 상제님의 진리를 믿고 상제님을 지성(至誠)으로 봉축하면 누구나 도통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 인간에게 이러한 복록(福祿)을 베풀어주시고자 하지만 일심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이를 한탄하시면서,62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한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든지 한 마음을 갖지 못한 것을 한할 것이로다. 안 되리라는 생각을 품지 말라.”63고 말씀하셨다.  
  인간이 일심을 가지면 사회적이건 신앙적인 목표이건 어떤 일이나 불가능한 것은 없다. 상제님께서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64,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주리라.”65고 말씀하셨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하듯이,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인간의 모든 일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일심으로 대순진리를 수도하면,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존의 실현과 더불어 지상낙원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대순회보> 126호


[참 고 문 헌]

『전경』
『대순지침』
『대순진리회요람』
『대순회보』제58호
『中庸』
『語』
『孝經』
瀷, 『星湖僿說』
谷治, 『易の話』(동경: 강담사, ’72)
朴彭鍊, 「精神開闢의 實踐原理論」, 『大巡集』(대순진리회출판부, 1992)

正東 外, 『儒學原論』(서울: 成均館大出版部, 1993)
基東, 「孔子思想의 基本構造」, 『大東文化硏究』第22輯(서울: 成均館大 大東文化硏究院, 1988)
이석호, 『인간의 이해』(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1)
이항녕, 「信의 現代的 意義」, 『대순사상논총』제11집(포천: 대순사상학술원, 2001년 2월), pp.36~37 참조
정대진, 「神人調化의 解」, 『대순사상논총』제3집(포천: 대순사상학술원, 1997년 12월)

최영진, 『역학사상의 철학적 탐구』(서울: 성균관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9) 
學園社 編, 『哲學大事典』(서울: 학원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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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교법 2장 36절.
02 행록 3장 44절.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03 ① 도교에서 원신(元神)은 일반적으로 으뜸이 되는 신명을 의미하지만, 인간에게 내재(內在)하여 생명을, 사물에 내재하여 기능을 유지시켜 주는 신(神)을 뜻하기도 한다.
② 예시 3절의 원신(元神)과는 다른 개념이다.
04 교법 3장 2절.

05 교법 2장 17절.
06 행록 5장 38절.

07 論語』 「八佾」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08 基東, 「孔子思想의 基本構造」, 『大東文化硏究』 第22輯(서울: 成均館大 大東文化硏究院, 1988), p.24 참조.
09  예시 59절 참조.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孟平春信倍名聲 先生大羽振一新”
10  예시 60절.
11 『대순회보』제 58호, 14~15면 참조.

12 『語』 「爲政」 참조.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13 앞의 책, 같은 곳.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14 『孝經』「經一章」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夫孝 始於事親 中於事君 終於立身”

15  앞의 책, 「傳之三章」
“子曰 夫孝 天之經 地之義 民之行”
16 교법 1장 41절.

17 교법 1장 46절.

18 행록 5장 38절.
19 교법 1장 46절 참조.
20 공사 2장 17절 참조.

21 『대순진리회요람』, p.9 참조.
22 『中庸』, 20章.
“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 誠者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辯之 篤行之”
23 앞의 책, 같은 곳, 朱子註.
“誠者眞實無妄之謂 天理之本然也 誠之者未能眞實之無妄也 而欲其眞實無妄之謂 人事之當然也”
24 행록 1장 29절 참조.
25 『대순지침』, p.51.
26 『中庸』, 25章.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 誠者非自誠己而已也 所以成物也“
27 『대순지침』, pp.51~52 참조.
28 『대순진리회요람』, p.16 참조.
29 『中庸』, 26章, “故至誠無息”
30 앞의 책, 같은 곳, 朱子註, “旣無虛假 自無間斷” 
31 『대순지침』, p.51.
32 『대순지침』, p.52 참조.

33 교법 1장 11절 참조.
34 『대순진리회요람』, p.16 참조.
35 『대순지침』, p.68 참조.
36 『대순지침』, p.52.
37 『대순지침』, pp.68~69 참조
38 교법 2장 2절
39 『대순진리회요람』, p.17.

40 이항녕, 「信의 現代的 意義」, 『대순사상논총』제11집(포천: 대순사상학술원, 2001년 2월), pp.36~37 참조
41 學園社 編,『哲學大事典』

42 이석호, 『인간의 이해』 (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1),
pp. 226 ~ 227.
43 교법 1장 50절 참조.
44 교운 2장 42절, 「陰陽經」 참조.
45 교운 2장 42절, 제생 43절 참조.
46 제생 43절 참조.
47 제생 43절.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48 교법 1장 49절 참조.
49 谷治, 『易の話』(동경: 강담사, ’72), pp.150~151(최영진, 『역학사상의 철학적 탐구』, 성대 박사학위논문, 1989, 7쪽 재인용) 참조.
50 교운 2장 42절, 「陰陽經」.
“神無人後無托而所依人無神前無導而所依...神明竢人人竢神明”

51 교운 2장 42절
“天地之事皆是陰陽中有成萬物之理...天地以陰陽成變化神人以陰陽成造化...皆是陰陽中有...神人和而萬事成神人合而百工成神明竢人人竢神明陰陽相合神人相通然後天道成而地道成神事成而人事成人事成而神事成...”

52 『대순지침』, p.28 참조.
53 『대순지침』, p.75 참조.
54 『대순지침』, p.39 참조.

55 『대순진리회요람』, p.9.
56 『대순진리회요람』, p.18~19 참조.
57 朴彭鍊, 「精神開闢의 實踐原理論」, 『大巡集』(대순진리회출판부, 1992), pp.119~131 참조.
58 권지 2장 32절 참조.(서울: 학원사, 1976), p.881.
59 교법 2장 17절.
60 교법 3장 1절.
61 교법 3장 4절 참조.

62 교법 2장 4절 참조.
63 교법 2장 5절.
64 교법 2장 7절.
65 교법 2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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