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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제4회 국제학술대회 참관기(參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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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0.21 조회3,7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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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종교연구포럼 

제4회 국제학술대회 참관기(參觀記) 

 

글 연구위원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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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장마가 끝난 뒤, 전국적으로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20일부터 8월 22일까지 일본 오카야마현[岡山縣] 아사쿠치시[淺口市]에서 한일종교연구포럼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종단에서는 필자를 포함하여 3명이 분과별 토론자와 사회자로 참석하였는데, 일본의 많은 지역들은 섭씨 40도까지 올라가는 그야말로 폭염의 연속이었다. 한일종교연구포럼은 올해로 네 번째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포럼의 연혁을 살펴보면 1993년 서울대학교에서 제1회 한일종교연구자 교류심포지엄으로 출발하여 한 해는 한국에서 한 해는 일본에서 개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지난 1997년 심포지엄을 대진대학교에서 개최한 바가 있다. 

  1999년에는 한일종교연구포럼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종교학·역사학·민속학 등 한일 연구자 간에 다양한 학문적 교류를 지속해 왔으며 내년 2008년부터는 중국의 연구자들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종교문화학회’로 발돋움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이번 포럼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서울대·고려대·동서대 등 한국 측 연구자(교수·연구원·대학원생·통역) 58명이 참가했고, 도쿄대·리츠메이칸대·다이쇼대·텐리대 등 일본 측 연구자와 교단관계자 64명이 참가한 큰 규모의 학술대회였다. 일본 측은 여러 종단에 소속된 교학연구자들이 참여하여 한국 측보다는 참가자들의 계층이 다양하였다.  

  8월 19일 저녁 6시 2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저녁 8시 경에 오카야마공항에 도착하였다. 이 포럼을 초창기부터 지원해 오고 있는 일본의 신종교인 금광교(金光敎)의 행사 진행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숙소가 있는 구라시키시[倉敷市]까지 40분을 이동하여 지어진지 오래되어 보이는 여관에 여장을 풀었는데, 방은 다다미로 되어 있고 층마다 조그만 욕탕이 하나씩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 문화를 좀 더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느낌이었다. 

  8월 20일 아침 8시, 학술대회 장소인 아사쿠치시에 있는 금광공민관(金光公民館)으로 이동했다. 아사쿠치시는 금광교의 본부가 있는 오카야마현의 작은 도시로 교단과 지역 주민 간에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었고, 이번 학회도 아사쿠치시와 금광교의 적극적인 후원 덕택에 이루어진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금광교의 행사 진행원들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인 금광공민관에서 학회준비를 분주히 하고 있었다. 모두 5개 분과로 나뉘어 오전 9시 30부터 저녁 6시까지 ‘동아시아 종교연구의 새로운 전망’이라는 공동테마로 진행되었으며 각 분과별 주제는 다음과 같다. A분과는 ‘민속사회와 종교’, B분과는 ‘포스트 콜로니얼리즘과 종교’, C분과는 ‘현대사회의 병리와 종교’, 일반분과1은 ‘종교일반’, 일반분과2는 ‘중국과 한국’ 등의 주제로 한국과 일본 및 중국의 종교연구에 대한 다양한 토론들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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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사말을 하는 일본 측 대표 시마조노 스스무 교수                                               2 기조강연 중인 한국 측 강돈구 교수  

 

  한국 측 기조 강연을 맡은 강돈구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동아시아의 신화·종교·민족 정체성’이란 주제로 한·중·일 삼국에서 신화와 종교가 각 민족의 정체성 형성과 확립에 어떻게 기여하였고, 각국에서 제시된 신화의 내용이 각국의 고대사 이해와 관련해서 어떻게 상충되는지 설명하였다. 그리고 상대방 국가의 종교현상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습득할 것, 한·중·일의 종교문화를 비교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문화 차이를 좁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등을 당면 과제로 제시하였다. 

  일본 측 기조 강연을 맡은 카츠라지마 노부히로 교수(리츠메이칸대학)는 지금까지 포럼의 흐름은 종교의 보편적 가치를 의식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근대를 통한 경험의 교류라는 부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21세기의 보편적 가치의 구축을 위해서 동아시아 인문학은 그 역할을 다해야 하며, 그 중에서 ‘동아시아 종교문화학회’가 그러한 역할의 많은 부분을 담당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하였다.  

  8월 21일 아침 6시가 조금 못 된 시간. 일정에 잡혀 있지 않은 쿠라시키시에 있는 ‘신사(神社)’01에 가려고 숙소를 나섰다. 일본인의 일상생활과 뗄 수 없는 것이 신사이므로, 신사를 가보지 않고 일본을 알 수 없기에, 아침 먹기 전까지 1시간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우리의 숙소가 있는 이곳 쿠라시키는 에도[江戶]시대(1603~1868)에 막부(幕府)의 직할 영지로 꽤 번성한 지방이었다. 그 때문인지 쿠라시키 미관(美觀)지구는 그 당시를 재현한 인공 수로(水路)와 버드나무, 에도시대 때의 고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상가건물들이 즐비한 경관이 아름다운 구역이다. 미관지구를 지나자마자 일본 만화영화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돌로 만든 신사 입구인 도리이[鳥居]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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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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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치신사 입구의 도리이[鳥居]           2 아치신사의 배전(拜殿)           3 아치신사의 신전(神殿) 

 

  2002년도 일본 문화청 조사에 의하면 일본 내의 신사 수는 81,304개소로 등록되어 있으며, 등록하지 않은 작은 규모의 신사를 합하면 약 14만여 개소에 이른다고 한다.02 종교로는 신도(神道)나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데, 2개 이상의 종교를 믿는 사람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 된다. 그러니까 전통 종교인 신도나 불교는 일본인에게 있어서 종교 이전의 종교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어느 신학자가 “일본인들은 아침에 절에 갔다가 저녁에는 신사에 참배하러 간다. 거기다가 기독교의 교회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신도나 불교를 바탕으로 여러 종교가 서로 교리를 달리하면서도 공존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지적한 말이다. 일본인 특유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 혹은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인 특유의 정신문화를 지적하여 표현한 ‘국화(온화함, 평화)’와 ‘칼(차가움, 전쟁)’이라는 것도 이러한 이중적인 종교심성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으리라. 

  우리가 본 신사는 ‘아치[阿智]’를 모시는 아치신사(阿智神社)였다. 안내문에는 일본 최초의 통일 왕국인 야마토(大和: 4세기경~593년)시대에 조선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도래인(渡來人)이라고 아치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아치란 인물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했다. 『일본서기』를 살펴보면, 하다 씨족의 시조가 되는 궁월군(弓月君)이 403년[오오진(應神) 14년]에 120개 현의 사람들을 이끌고 백제로부터 야마토에 도착하였으며, 409년(오오진 20년)에는 야마토 아야[倭漢] 씨족의 시조가 되는 아지사주(阿知使主)와 그의 아들 도가사주(都加使主)가 17개 현의 사람들을 이끌고 왔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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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전(拜殿) 내부의 거울            2 입시 합격을 기원하는 기원물들           3 신성한 장소임을 표시하는 시메나와 

 

  『일본서기』에 ‘아지사주(阿知使主)’라고 나오는 인물이 바로 백제 왕족으로 일본에 건너간 ‘아치’이다. 이처럼 일본의 신사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인물들이 신(神)으로 모셔진 곳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그런데 신사의 이름이나 모셔놓은 신들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일본화 시키거나 중국화 시켜서 한국에서 도래(渡來)한 사실을 은폐한 것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 사람들 중 신사에 운동 삼아 올라오는 노인들이 드문드문 있고, 신직(神職: 신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경내에서 몇 가지 특이한 것은 노끈에다가 오리 모양으로 생긴 흰 종이를 매달아 놓았는데, 신사 경내의 몇 군데와 신사 입구에도 걸려 있었다. 우리나라의 금줄과 비슷한 이것을 일본 신도(神道)에서는 시메나와[注連繩]라고 하여 신성한 장소를 표시하는 줄이라고 한다. 또 배전 내부에 신(神)을 모셔놓은 것이 아니라 거울을 모셔놓고 있었다. 일본 천황의 황위를 상징하는 3가지 보물이 신경(神鏡)·신검(神劍)·신옥(神玉)인데, 그런 이유로 신사에는 거울이나 칼, 구슬, 방울 등을 신이 깃드는 물건인 신체(神體) 혹은 신물(神物)이라고 여겨서 모셔놓는다고 한다.  

  신사의 기념품점에서는 한국의 부적에 해당하는 액(厄)을 물리치는 ‘오후다[御札]’를 팔고 있었다. 주로 가내안전, 교통안전, 치병,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글귀들이 적혀 있는데, 일본인들은 그때그때 자신에게 필요한 오후다를 사서 그것을 몸에 지니거나 자동차에 걸어두거나 집안의 신단에 놓아두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치신사에는 오후다의 종류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신사를 내려와 숙소로 향했다. 아침 식사 후 다시 아사쿠치시 금광공민관으로 향했다.  

  대회 둘째 날 오전, 각 분과별로 전날 발표한 내용에 대해 패널들과 자유로운 토론 시간이 주어졌다. C분과에서 주목할 만한 주제는 ‘컬트(cult)’03문제였다. 일본 내에서 1995년에 발생한 옴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살포사건이 컬트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컬트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범주를 설정하기 어렵지만 이번에 발표한 일본 학자의 내용을 보면, 종교 교단의 포교방법이나 자금조달 전략에서의 비정상적 행위, 교단 내부의 신자의 통제, 외부 사회로 적대적 행동을 취하는 것 등에 해당하는 기성종교와 신종교의 교단을 컬트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길거리나 집에서 선교나 포교 활동을 하는 것, 대학교 내에서의 비정상적인 포교 활동, 과도한 헌금 등도 일본 내의 컬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컬트 문제는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종교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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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날 C분과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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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광교 본부의 신전(神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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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광교의 신전(神殿) 내부      2 교학연구소      3 교조 금광대신의 묘소 

 

  점심 때 우리 일행 몇몇 사람은 밥을 빨리 먹고 금광교 본부를 방문하게 되었다. 금광교는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에 ‘가와태 분지로[川水 文治郞]’04이 창교하여 약 15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신종교이다. 신도수는 약 20만이 넘으며 금광교 국제센터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교단이다. 본부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엄숙하면서도 깔끔한 일본식의 느낌이 들었다. 

  또한 본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교학연구소(敎學硏究所)가 별도로 자리 잡고 있었다. 1950년대 중반에 설립된 연구소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고풍스러운 2층 건물이었고, 이곳에는 교무총장을 중심으로 18명의 연구원들이 교조·교단사·교리 등 세 부문으로 연구 방향을 나누어 매년 한 차례의 『금광교학(金光敎學)』이란 학술지를 발행하고 있었다.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을 별도로 운영하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두 13개의 학교를 운영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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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관계상 우리 일행들은 다시 금광공민관으로 돌아와 폐회식에 참석하였다. 폐회식 후에 ‘동아시아종교문화학회’ 발기인 대회를 가졌는데, 동아시아 종교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일본 도쿄대학의 시마조노 스스무[島 進] 교수가 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오후에는 아사쿠치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행사의 하나로 오카야마 출신의 여류 소설가인 ‘오가와 요오코[小川 洋子]’05씨를 초청하여 시마조노 교수와 대담을 가졌다.  

  이 대담에서는 ‘기원과 표현’이란 주제로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오가와씨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數式)』과 그녀가 성장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은 『안네의 일기』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의 연속성 문제를 다루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죽음이란 삶과 정반대의 의미로 비춰지지만 늘 함께 존재하는 연속적인 개념이란 것이다. 자신이 왜 여기에 살아 있느냐는 대답 없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계속해서 묻는 것, 그것은 괴롭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며 이 행위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시마조노 교수는 ‘수용소 문학’06을 통해 현대인의 잃어버린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반추(反芻)할 수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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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즈미교의 기비가쿠(吉備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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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태종의 천태성명(天台聲明)      2 금광교의 기비가쿠(吉備樂)     3 진언종의 어영가(御詠歌) 화찬(和讚) 

 

  이어서 힐링 콘서트(healing concert)인 ‘치유와 기원의 연주회’가 열렸다. 금광교·쿠로즈미교[黑住敎]·진언종(眞言宗)·천태종(天台宗)의 네 종단에서 일본 전통 음악인 기비가쿠[吉備樂]와 역사무용 및 한국 불교에서 범패의 형식과 비슷한 불교 음악을 공연하였다. 콘서트의 마지막에는 소프라노 가수인 후지와라 카오리가 ‘Peace"라는 노래를 선창으로 참석자들이 다 같이 합창하면서 공연이 끝났다. 공연 후 금광교 소속의 큰 회관에 저녁 만찬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차려진 음식들에서 저녁 식사 준비로 금광교에서 많은 정성을 기울인 게 느껴졌다. 

  8월 22일 오전에는 오카야마현 내에 위치한 ‘한센병’07 요양시설인 오쿠 광명원(邑久光明園)으로 답사 일정이 짜여져 있었다. 이곳은 1910년(明治 43년)에 설립되었는데,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의 한센병 환자 격리수용지였던 소록도(1916년에 설립)보다 몇 년 빨리 지어졌다. 여기는 오쿠 지역의 나가시마[長島]라는 섬에 위치해 있는데, 필자는 소록도에 가본 적이 없지만 일본에서 소록도를 방문한 듯하였다. 한센병과 여기 광명원의 역사에 대한 오쿠 광명원 원장의 설명을 듣고 난 뒤, 결핵균보다 약한 나균을 치료하는 의술이 발달되지 않아 한평생을 죄인처럼 살다가 더러운 몸이라고 낙인찍혀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한센 환자들의 비참한 역사에 우리 일행들은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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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쿠 광명원 관리동      2 요양소 내의 납골당     3 천리교 포교소 내부 

 

  요양소 내에서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장례를 치르는 문제 때문에 환자들은 살아 있을 때 의무적으로 하나의 종교를 가져야 했기에 6개 교단(입정교성회·정토진종·진언종·천리교·금광교·기독교)의 교당들이 세워져 있어 마치 일본의 종교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요양소를 둘러보면서 감금실이나 실험실은 시간관계상 둘러보진 못했다. 

  기독교 교회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그곳으로 가던 중,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돌로 만든 기념비에 새겨놓은 ‘달의 사막, 귤꽃 피는 언덕’이란 글귀가 눈에 띄었다. 환자들이 귤꽃이 피는 시기에 이 언덕에 서서 한밤중에 달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바다는 끝없는 사막의 모래알처럼 비춰졌으리라……. 섬에서 나갈 수 없었던 한센 환자들의 심중을 글귀 한 줄로 담아낸 듯 했다. 지금은 평균 연령이 79세 이상의 노인들 약 200명 정도가 요양소 내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재일교포도 17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군데군데 빈집도 보이고 스피커에서 전해오는 조용한 전자음악 소리가 이 섬을 더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1989년(昭和 63년)에 요양소가 있는 나가시마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되었다고 한다. 이날 한국에서 발행한 모 일간신문을 보니 오는 9월 22일에 ‘소외된 땅’ 소록도에 소록대교가 임시 개통된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약 100년 만에 소록도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비록 일본보다 20여 년이 늦었지만, 소록대교에는 우리 사회의 편견 극복과 화합과 사랑을 상징하는 다리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소록도 주민(약 650여 명)들의 염원이 담겨있었고, 모든 한센병 환자들의 해원(解)의 가교(架橋)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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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련종 계열의 입정교성회 내부      2 ‘달의 사막 귤꽃 피는 언덕’의 석조물        3 환자 거주 건물 

   

  오후에는 오카야마현 비젠시[備前市]에 있는 시즈타니[閑谷]학교를 답사하였다. 이곳은 1666년경 이 지역의 영주(領主)가 하급관리와 서민들을 위해 만든 유학교육 기관으로, 서민들의 교육기관으로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학교라고 한다. 이 지방은 비젠야키 도자기로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지역이라 건물의 기와와 벽돌은 전부 붉은 색 계통의 비젠야키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때문에 학교 안 강당 건물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며, 부속 건물로는 공자 사당과 시즈타니신사가 별도로 지어져 있었다. 

  이날 저녁, 오카야마 시내에 있는 숙소에서 일정의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는 일본 측 몇 사람과 한국 측 몇 사람이 모여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하는 궁금증과 신선함을 얘기하느라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특히 이번 포럼에 ‘기원(祈願)’이란 주제로 미술작품을 전시한 하나시로 이쿠코[花城 郁子]씨와 대화에서, 오키나와에서 성장하고 오키나와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형성하게 된 과정이 인상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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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즈타니학교 강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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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즈타니학교 정문 지붕의 치미       2 시즈타니학교 정문      3 시즈타니[閑谷]학교 

 

  8월 23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일본에 유학중인 한국 측 연구원들과 대학원생 일부는 미리 숙소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금광교의 운영진들과 오카야마 공항으로 향했다. 내년에 한국에서 좀 더 발전적인 학술대회를 기대하면서 서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4박 5일 동안 이 포럼을 위해 눈에 드러나지 않게 많은 준비를 해준 한국과 일본의 운영진들과 금광교의 행사 진행요원들에게 이 글을 통해 정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대순회보>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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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대규모 복합건물에서부터 눈에 잘 띄지 않는 길가의 소규모 기도소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신사는 다음 3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① 혼덴[本殿 또는 신덴(神殿)] : 신령을 모시는 곳으로 보통 신관(神官)만이 들어갈 수 있다. ② 헤이덴[幣殿 또는 노리토덴(祝詞殿)] : 신관에 의해 종교의식이 행해지고 기도를 올리는 곳인데, 이를 통해 가미[神]를 부르고 다시 되돌려보낸다. ③ 하이덴[拜殿] : 경배하고 기도하는 곳이다. 신사를 ‘신궁’, ‘궁’, ‘대사’라고도 부른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 

02 박규태, 『일본의 신사(神社)』, 살림, 2005, p.21.(신사에 관한 내용은 이 책을 참고하였다.)  

03 컬트란 종교상의 예배나 제사, 혹은 사람·물건·사상에 대한 숭배나 숭배자의 무리를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파생하여 전통적 조직의 교단에 대하여 조직성이 희박한 특수한(유사종교, 사교) 집단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 용어는 문화에서 널리 쓰이며 특히 영화계에서 컬트 영화는 종교적인 신성성, 사회적 윤리나 규범, 금기를 깨뜨리는 반체제적인 내용으로 소수 관객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영화를 말한다.  

04 금광교의 교조로 1814년 오카야마현 아사쿠치시 금광교 본부 부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금광교에선 교조를 금광대신(金光大神)으로 부르고 있으며 1859년 11월 15일 신[天地金乃神]의 요청을 받아들여 금광교를 창교하여 고난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게 된다. 교조인 금광대신은 신과 인간의 중개자의 위치에 있으며 인간의 문제점을 신에게 기원하는 ‘도리츠키[取次]’라는 종교적 행위를 중시하였고, 현재의 교주는 금광대신의 직계 자손 중에 발탁된 인물로, 도리츠키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금광교 안내서인 『빛의 길잡이』 참고)  

05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1962년 오카야마 시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 문예과를 졸업한 뒤, 『상처 입은 호랑나비』로 1988년 가이엔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며 일본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상식과 비상식, 순수와 타락, 창조와 파괴, 현실과 비현실의 극단을 오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며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그녀는 1991년 『임신 캘린더』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2003년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제1회 서점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일본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녀의 작품은 이미 프랑스를 비롯해 해외 8개국에서 출간되어 『약지의 표본』이 1999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가장 훌륭한 소설 20에 선정되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에서는 "일본 문학계에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호평한 바 있다.(교보북센터 책 소개 참고)  

06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세운 유대인 학살 수용소를 배경으로 인간의 다양한 내면(광기 ·잔인함·위대함·숭고함)을 그려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문학 작품들을 말한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의 『나이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게르테스의 『알 수 없는 운명』,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등이 있다. 또한 스탈린 시절의 소련 강제노동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솔제니친의 자전적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독재권력 하의 인권문제와 체제 저항정신을 묘사하였고, 최근에 미국의 테러범 수용시설인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를 배경으로 인권유린을 다룬 무라트 쿠르나츠의 『내 인생의 5년』 등도 수용소 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07 나균(癩菌)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 과거 나병(癩病)이라고도 하였으나 한센병(Hansen"s disease)이라고 부른다. 1871년 노르웨이의 의사 A.G.H.한센이 나환자의 나결절의 조직에서 세균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여, 1874년 ‘Bacillus leprae’라 명명함으로써 유래하였다. 말초신경과 피부에 주로 침범하고, 치료가 불가능했던 시대에는 문둥병 또는 천형병(天刑病)이라 하였다.(두산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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