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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중국 소주대학교 국제학술대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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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재호 작성일2018.10.22 조회3,5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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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연구위원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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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같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는 것을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 한다. 이 말은 원수지간인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전쟁에서 오나라 왕 부차(夫差, 기원전 496~기원전 473 재위)와 월나라 왕 구천(句踐)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관한 고사성어이다. 이 전쟁에서 오나라 부차는 월나라 구천이 보낸 미인 서시(西施)에게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고 결국 망하게 된다.  

  이 두 고사성어에 등장한 오나라와 월나라는 한일(韓日) 관계만큼이나 오랜 앙숙(怏宿) 관계에 있었던 모양이다. 오나라는 오늘날 강소성의 성도(省都)인 소주(蘇州, 쑤저우)에 속하고, 월나라는 절강성의 성도인 항주(杭州, 항저우)에 속하는 대도시들이다. 중국 강남[양쯔강 남쪽]에 속하는 소주와 항주는 이렇듯 수천 년이 지났어도, 중국이 아닌 한국의 일상 언어에 지금도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와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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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대학교 홍루회의 센터>  

 

  남송(南宋, 1127-1279) 초기의 관리이자 소주(蘇州) 출신의 시인인 범성대(范成大, 1126~1193)가 쓴 『오군지(吳郡志)』에는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이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애향심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겠지만, 이런 표현을 쓸 정도라면 중국 내에서도 이 지역을 자연경관이 빼어난 낙원처럼 느꼈으리라.  

  소주시는 양자강 삼각주의 평원에 위치한 운하의 도시이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운하가 많고 지대가 낮아서 과거에는 물난리도 많았으므로 오월동주라는 말이 생긴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소주시는 물과 정원의 도시로 유명하다.  

  이곳에 위치한 소주대학교에서는 지난 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세계화 시대의 자본 비판’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2008년 한 해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사건이었다. 이번 학회는 작년에 발생한 이 세계적인 이슈와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국가와 국가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자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점점 더 확연해지고 있다. 이에 자본이 중국 및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와 자본의 논리와 사회 각 영역의 운행 규칙 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를 주제로, 중국, 미국, 프랑스 3개국의 공동 주관으로 한국과 영국이 참가하는 학회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1970년대 후반에 중국은 경제 부문에 있어서는 개혁·개방의 체제를 선언하면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빈부격차, 부의 세습, 기회의 불평등과 같은 폐단들을 최소화한 시장경제체제를 구현하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이번 학회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첫째 날은 미국 클레어몬트대학교 과정사상연구소의 존 캅 교수의 기조 강연으로 시작했다. 그는 「자본」이란 논문에서 “중국이 세계경제의 흐름을 추종하기보다는 건전한 지역 경제, 즉 중국경제와 중국 지방경제를 살려야 한다. 시장 경제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되고, 맑시즘도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경제 성장과 사회 목적이 병행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개별 발표 시간에는 조용한 분위기에 진행되었지만 질의응답시간이 되자, 마치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듯 중국학자들과 미국학자들 간의 공방이 뜨거웠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중국학자들은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경제대국 미국을 성토하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반해 미국학자들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투자한 중국의 자본을 언급하면서 중국도 이번 금융위기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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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날 마지막 발표는 이경원 교감(대진대학교 종교문화학부 교수), 박마리아 선감(대순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필자(교무부 연구위원)의 공동 연구로 진행된 “한국의 자본 비판과 대순진리회의 자본관”이라는 논문이었다. 이 글은 한국 자본주의의 흐름을 기술하고, 종교적인 입장에서 종교 자산들이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는가를 우리 종단을 모델로 삼아 제시한 글이었다.   

  첫날의 발표가 모두 끝나자, 중국인들이 손님들을 환대하는 저녁 만찬도 학회의 분위기 못지않게 뜨거웠다. 산업화가 많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주의 중국인들이 손님을 대접하는 전통 풍습은 아직까지 후하게 남아있음을 느꼈다. 또한 소주대학교는 우리 종단 산하 대진대학교 중국 캠퍼스가 있는 학교라서 그런지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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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날은 전날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이번 학회의 전체적인 총평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국 측 학자들은 자본비판의 분위기가 소주대학교에서 열린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며 이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자본의 바람직한 운용 방향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소장학자들의 참여가 큰 활력을 주었다고 하였다. 남개(南開)대학교 왕남시(王南是) 교수는 1980년대에 자본 비판의 흐름이 있었는데, 30여 년 만에 새롭게 자본 비판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감회가 새롭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 말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1980년대에는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입장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한 흐름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체제나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자본 이론에 대한 반성과 비판으로 관점이 이동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미국의 마이클 페럴맨(Michael Perelman) 교수는 “중국에서는 위기(危機)가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말 그대로 위기(위험한 시기)이다. 기성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젊은 세대가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교수는 “임평(任平, 소주대학교 부총장) 교수는 이 학회가 자본만 비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 비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발표하였는데,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맑스는 모든 것에 대해 올바른 비판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그러므로 이번 학회는 상당히 뜻깊은 모임이다.”라고 하였다. 영국의 헤겔철학 권위자인 신 세이어스(Sean Sayers) 교수는 “자본이란 경제 분야의 문제이지만 우리는 사상적으로 이런 문제를 토론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자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둘째 날 모든 발표를 마친 후 전체적인 의견들을 정리해보면, 자본이란 하나의 집단이나 국가를 초월하여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래야만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점에 모두 공감하였다. 어쩌면 이것은 개인의 양심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건전한 윤리의식의 부재에 의해 결국 자본의 왜곡된 집행과 자본주의의 폐단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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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막식 후 저녁 만찬에서는 이틀 동안의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하면서 참석한 해외 학자들 간의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미국 포스트모던발전연구원의 제이 맥다니엘(Jay McDaniel) 박사는 하루 전날 선물한 영어번역본 『대순진리회요람』을 읽고는 ‘척’의 개념에 대해 질문하였고, 미국 과정사상연구소의 클리포드 캅(Clifford W. Cobb) 박사는 하느님이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논문 발표 시간보다 오히려 개인적인 대화 시간이 대순사상에 대해 얘기하기가 더 자연스러웠다.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이날 일정은 소주에서 유명한 정원인 ‘졸정원(拙政園)’과 사찰 ‘한산사(寒山寺)’를 답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소주시는 위도상 제주도보다 훨씬 아래에 위치해 있지만 겨울 추위는 매서웠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소주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동오(東吳)호텔이었는데, 이방인들에겐 난방이 약해서 추웠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모인 외국 학자들의 표정이 다들 초췌해 보인다.   

  소주시는 예로부터 “사주지부(絲綢之府 :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魚米之鄕 : 물고기와 쌀의 도시, 소주의 소(蘇) 자에는 물고기 어(魚)와 벼 화(禾)가 들어있다]”, “원림지도(園林之都 : 정원의 도시)” 등으로 불리어 왔다. 비단을 생산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양자강 하류라 물고기와 쌀이 풍부했으며, 송대(宋代, 960~1279)에 이곳에 정원(원림)이 형성되어 원대(元代, 1279~1368), 명대(明代, 1368~1644)에 걸쳐 이름난 정원들이 만들어졌다. 13세기에 이 도시를 방문한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서 소주의 화려함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첫 답사지는 중국 강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인 졸정원(拙政園)이었다. 명대(明代) 관리였던 왕헌신(王獻臣)이 중앙에서 낙향하여 사찰이었던 이곳을 개인 정원으로 만든 것이다. 졸(拙) 자는 졸렬하다, 옹졸하다는 뜻으로 평소 직언을 잘했던 왕헌신 자신을 지방으로 좌천시킨 중앙 집권층을 빗대어 지은 이름이다. 중국 왕실 정원의 전형(典型)이 청대(淸代)에 만들어진 북경의 이화원(和園)이라면 중국 개인 정원의 전형은 소주의 졸정원이라고 한다. 왕헌신이 죽고 난 뒤, 그의 아들이 도박으로 하룻밤에 졸정원을 날려버렸다는 일화가 있으며,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월의 졸정원은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황량한 느낌이 드는데, 겨울은 졸정원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계절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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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답사지는 한산사(寒山寺). 소주를 대표하는 사찰로 남북조 시대의 남조 양(梁)나라(502~558)때 세워진 절로, 당대(唐代) 초기의 선승(禪僧)이자 시승(詩僧)인 한산(寒山)과 습득(拾得) 두 스님이 이 절에 거처한 이후로 한산사라 하였다. 한산사는 당대(唐代) 시인인 장계가 지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시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楓橋夜泊> 밤에 풍교에 배를 대다   

 

月落烏啼霜滿天 달 지고 까마귀 우는데 하늘에 서리는 가득하고 

江楓漁火對愁眠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이 시름에 잠 못 이루게 하네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가 나그네 배에 들린다  

 

  장계(張繼, 생몰년대 미상, 742년~779년경 활동함)가 과거 시험을 두 번이나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풍교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한산사에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를 듣고 그때의 감회를 적은 시가 바로 이 시이다. 풍교는 소주 서쪽 교외의 한산사 부근 풍강(楓江)에 있는 돌다리 이름이다. 소주의 운하 위에는 400개가 넘는 다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풍교를 꼽는다. 이 다리는 중국 당나라 시인인 장계가 지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한시의 배경이 되면서 소주의 명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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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한산사는 우리나라에까지 유명해져서 조선시대의 시인들은 저녁 종소리나 경치 좋은 사찰을 보면 장계의 시구를 연상하는 시를 짓곤 하였다. 조선 세종 때에 최수(崔脩)라는 문인은 여주 신륵사의 종소리를 듣고서 “만약 (중국의) 장계가 여길 지나갔더라면 한산만이 홀로 이름을 얻지 않았으리.”라고 하였다. 한산사의 종소리는 한시뿐만 아니라 우리의 판소리에도 자주 등장한다. ‘춘향가’에서는 “선원사(禪院寺) 쇠북소리 풍편에 탕탕 울려 객선에 떨어져 한산사(寒山寺)도 지척인 듯”으로, ‘심청가’의 범피중류 사설에서는 “고소성(姑蘇城: 소주의 옛 이름)의 배를 매니, 한산사(寒山寺) 쇠북소리는 객선(客船)에 댕댕 들리는구나.”라고 표현되어 있다. 또 봉산탈춤의 먹중(젊은 중) 춤 대사에 나오는 ‘한산사 쇠북소리 객선이 둥둥’도 바로 이 ‘풍교야박’에서 따온 대사들이다.  

  이렇듯 이름난 곳도 눈에 보이는 것만 봐서는 큰 감흥이 없다. 하지만 과거 그곳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향기가 지금껏 남아 있으니 아름다운 것이다. 매서운 겨울 날씨 덕분에 학회 참석자들은 소주의 아름다움을 채 감상하지도 못하고, 한산사 부근의 채식 전문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3박 4일간의 짧은 일정을 모두 마치고 각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번 학회는 세계 경제를 걱정하는 시간이었지만 결국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는 자리가 되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미국의 중미포스트모던발전연구원의 왕치하(王治河) 박사는 우리 종단과의 학문적인 교류를 희망했다. 이러한 제안을 들으면서 지금 우리 종단의 과제 중의 하나는 대순사상을 어떻게 해외에 알리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번 학회가 그 시작이었다면 앞으로 더 큰 흐름들이 형성되리라 기대하면서 우리 일행들은 소주를 떠났다.  

<대순회보> 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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