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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정애 작성일2018.10.22 조회3,6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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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연구위원 진정애  

 

  2009년 2월 6일 아침은 안개가 자욱하게 꼈지만 입춘이 지나서 인지 날씨가 여느 때보다 따뜻했다. 8시에 인천공항에서 신종교 국제학술대회 참가자들과 만나 일본 도쿄로 향했다. 이번에 우리가 일본을 방문한 목적은 신종교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고, 일본의 신종교 교단을 몇 군데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도쿄 나리타공항에 내렸을 때 다른 나라에 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우리나라의 어느 한 도시에 온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다른 것이라면 방향을 표시하는 안내판에 일본어가 먼저 적혀있고 영어와 한글이 같이 적혀 있다는 것, 사람들 말소리가 일본어를 더 많이 쓴다는 것이다. 그 외에 건물, 사람들 모습 등이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공항에서 우리 일행은 전용버스를 타고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 일본의 신종교 ‘일련종(日蓮宗)’의 대본산인 이케가미[池上]에 있는 혼몬지[本門寺]로 향했다. 이경우 신종교학회 회장은 우리나라 신종교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준 대순진리회에 감사하다고 교무부장(선감 김욱)에게 대표로 감사패를 증정하였다. 우리 일행은 모두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각자 자신을 소개하며 4박 5일 동안의 우의를 다졌다.  

  드디어 목적지인 혼몬지에 도착하였다. 혼몬지는 1282년에 세워진 고찰로 일련종의 창시자인 니치렌[日蓮, 1222~1282]이 마지막 20일 동안 수행을 한 사무라이의 집인데, 니치렌 사후에 사무라이가 니치렌의 제자에게 기증해서 세워진 절이라고 한다. 비록 제2차 세계대전 때에 폭격을 맞고 몇 개의 중요시설이 파괴되기는 했지만 뿌리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종파의 총본산답게 일본 국보문화재와 설화가 널려 있는 곳이다. 이곳은 도심 속인데도 숲이 우거져 고색창연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연락이 되어 있어서인지 스님 두 분이 나오셔서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그분들은 해외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스님들로서 한국에도 자주 왕래한다고 하였다. 먼저 스님들은 석가모니와 그 앞에 니치렌을 모셔 놓은 본전과 니치렌을 모신 대당(大堂)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였다. 우리나라 일반사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앞에 다른 부처나 보살이 있는 것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또 하나는 석가모니를 모신 본전보다 니치렌을 모신 대당이 더 화려하고 큰 것이 이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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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이어 자리를 옮겨 작은 세미나실에서 스님들은 일련종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여기는 니치렌이 1282년 61세로 임종한 곳이라고 하였다.  

  니치렌은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12세 때 세이초사[淸澄寺]에 맡겨졌으며, 16세에 승려가 되었다. 이어서 15년간을 가마쿠라[鎌倉]·히에이산[比叡山] 등지에서 천태종의 수행을 하였다. 1253년 4월 어느 날 그는 떠오르는 해를 향해서 “남묘호렌게쿄”를 크게 외치고 『법화경』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법화의 바른 법을 세워서 사회의 불안을 제거함으로써 일본을 편안히 하겠다는 사명의식으로 생애를 살았다. 니치렌은 석가모니가 깨달은 우주의 진실을 요약한 것이 법화경 28품의 제목인 묘호렌게쿄라고 하였다. 그는 ‘남묘호렌게쿄’라는 글자만 독송해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믿음을 실천하면 누구나 자신의 생명에 있는 불성(佛性)을 인지하고 증명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일련종의 신도들은 항상 니치렌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면서 경전을 외우고, 정심하여 명상을 하며, 자세를 바르게 하여 부처님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하였다. 해외에 포교활동은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미국, 유럽, 남미에 활동하는데 일본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여서 해 주었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했을 때 차이점을 말해달라고 질문을 했더니, 일본 신종교는 불교에서 파생된 것이 대부분이고, 한국 신종교는 민족종교의 성격이 짙은 것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  

  답사를 마치고 일행은 우리나라 명동처럼 화려하고 사람들이 굉장히 붐비는 신주꾸[新宿]에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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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에서 이틀째 되는 날 우리는 신주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부야[涉谷區]역에 내려서 신종교 국제학술회의가 열리는 국학원대학으로 20분 정도 걸어서 갔다. 빽빽한 빌딩 숲이 들어선 도쿄시내를 가는 동안, 많은 자동차와 지하철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먼지 하나 없이 도로가 깨끗한 것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마치 우리 여주본부도장에서 아침의 상쾌하고도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일본의 제일 큰 도시에서 청정한 공기를 느낀다는 것에 놀라워 계속 주위를 둘러보며 탄성을 지었다.  

  국학원대학에 도착하여 보니 보통 신사(神社)01에서 보는 차림의 학생들이 줄을 지어 몇 십 명이 가고 있었다. 어떤 학생들인지 물어보니 이 학교자체가 일본의 많은 신사의 신도를 양성하여 ‘신관(神官)’을 배출하는 곳이라고 했다. 학술회의를 하는 곳은 도서관 건물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서관의 건물 외부는 유리로 되어 있어 채광이 잘 들게 되어 있고, 내부는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깨끗하였다. 그곳에서 학생들이 공부도 하고 도시락도 먹고, 편안하게 정담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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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에 많은 일본의 신종교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아시아 신종교 국제학술회의’ 막이 올랐고 일본의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선생의 환영사가 있었다. 이노우에 선생과 우리나라 신종교학회 회장인 이경우 선생의 기조강연으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10시부터 시작한 학술회의가 양국 간의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오후 6시 30분까지 서로서로 종교에 대한 의견을 팽팽하게 주고받았다. 이 회의에 우리 종단 측에서는 이경원 교감(대진대 종교문화학부 교수)이 ‘한국 근대 신종교의 철학적 제문제’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일본 학자들이 이경원 교감이 발표한 내용에 선천과 후천, 후천개벽사상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일본의 신종교들 가운데 대부분은 교주들이 나름대로 신의 계시라든가 영감을 얻어서 종교를 창시했으나 현실기복적인 성향이 짙어서 우리나라처럼 후천개벽사상과 같은 미래의 예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학술회의가 끝나고 리셉션을 가졌는데, 일본의 학자들은 대순진리회에 있어서 상제님께서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강림하여 우주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에 깊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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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우에 선생은 이경우 회장에게 “이제야 비로소 신종교 연구를 같이 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났다. 이번에만 그치지 말고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서 계속 학회를 이어나가자.”고 제안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리셉션을 뒤로 하고 다음날 있을 일정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3일째 되는 날 일찍 호텔을 나와서 도쿄에서 유명한 고쿄[皇居]와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를 돌아보았다. 고쿄는 원래 에도성이었는데, 메이지유신 이후부터는 천황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시간상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궁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야스쿠니신사로 향했다. 이곳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야스쿠니신사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군부를 이끌었던 ‘전범(戰犯)’들의 위패가 모여 있기 때문인데 문제가 되는 것은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안치된 것 때문이다. 이들의 위패가 안치된 것은 국가를 위해서 죽었다는 이유였다. 여기에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전쟁 때 죽은 개와 말을 위한 위령비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곳곳에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무기들이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동상과 기념비들이 즐비해서 신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전쟁박물관을 방불케한다. 이곳을 둘러보다 보니 징용에 끌려가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떠오르면서 속에서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약속시간이 되어 야스쿠니신사를 뒤로하고 도쿄시내에서 이노우에 선생 일행과 합류하여 일본의 신종교 답사지인 국제창가학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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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창가학회(SGI : Soka Gakkai International)에 도착하자 한국어 통역인과 안내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신앙하는 단체답게 그 규모면에서 웅장하였다. 이 종교는 일련정종의 신도회장이었던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가 종단을 나와서 1930년에 따로 세운 것이다. 국제창가학회는 ‘가치창조를 배우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각 개인이 인생의 가치를 창조하여 자신의 생명 근원으로부터 왕성한 독창성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후 그는 교육개혁운동의 범위를 넘어 불법(佛法)을 근본으로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혁명과 생활혁신, 그리고 보다 나은 사회건설을 지향하는 종교단체로 발전시켰다. 

  그 사상의 근본은 니치렌이 설교한 색심불이(色心不二)의 생명철학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 생명의 존엄이라는 입장에서 민중을 구제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웅대한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안내인은 그가 예술이야말로 국적, 인종 및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어 평화를 키울 수 있다는 신조로 민음(민주음악협회)을 세웠다고 했는데 전세계에 음악을 통한 문화교류로 국가 간 상호 이해와 친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190개 나라 및 지역에서 1,200만 명이 넘는 회원이 있다는 설명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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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는 묘지회(妙智會)를 방문했다. 부회장이란 분이 나오셔서 이 종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미야모토 미츠[宮本ミツ]에 의해 1950년에 창시된 신종교로 법화경을 중시하고, 도쿄에 본부가 있으며 신자수는 90만 정도라고 설명하였다. 재가교단으로 인격을 완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기본교리는 조상숭배, 인선(忍善), 참회, 감사라고 설명해 주었다. 

  몇 시간에 걸쳐서 묘지회의 교리 및 건물의 규모, 그 내부에 장식된 유리도 그냥 놓은 것이 아니라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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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되는 날,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과 후지산 주위에 있는 신사(神社), 일련정종(日蓮正宗) 총본산 다이세키사[大石寺]을 답사하기로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후지산(3,776m)은 일본 열도에서 가장 높고 여전히 살아 군림하는 활화산이다. 끊임없는 화산활동은 수 십만 년 전부터 시작하여 1707년에 활동이 정지되어, 현재의 아름답고 수려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일찍이 이곳은 신성한 산으로서 신앙심이 깊은 경건한 사람들이 며칠간의 고행을 하며 올라가는 곳이기도 하다.  

  도쿄를 벗어나서 2시간 20분만에 가와구치코[河口湖]에 도착했다. 가와구치코는 후지고코[富士五湖 : 후지산의 화산활동으로 생긴 5개의 호수] 가운데 하나로서 이 주변에 위락시설과 휴양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여기서 일본 대표 음식인 전통라면을 먹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카치카치야마[天上山]공원에 올랐다. 보통 카치카치야마 전망대에서 보면 후지산이 잘 보이는데, 이날은 후지산이 눈으로 덮여 있는데다가 날씨마저 흐려서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일 년에 몇 번밖에 후지산 정상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해 주었다. 우리는 공원을 구경하면서 후지산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산 전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모두 환호를 지르며 사진도 촬영하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카치카치야마에서 내려자 후지산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뉴스를 접하였다. 모두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마지막 방문지인 다이세키사[大石寺]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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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세키사[大石寺]는 후지산 밑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닛코상인[日興上人]이 니치렌의 유명(遺命)을 받아서 후지산 다이세키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곳에 도착하자 이경우 회장은 그제서야 내심 “일본에 오면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라면서 말을 꺼냈다. 사찰에 행사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대규모의 부지에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사찰내부는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을 둘러보다가 봉안당 앞에 이르니 저 멀리 후지산이 보였다. 후지산과 봉안당의 조화가 어우러져 봉안당이 더욱 웅장해 보였다. 우리 일행은 종무원으로 가서 스님을 접견하여 일련정종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일련정종(日蓮正宗)은 니치렌을 종조로 하며 직제자인 닛코상인[日興上人]을 파조(派祖)로 하는 불교의 종파로서, 부처님 가르침인 법은 ‘남묘호렌게쿄’라고 하였다. 이 종교는 한때 800만 신도를 자랑했는데 재가신도 모임인 창가학회가 승려들의 지시를 받지 않고 따로 나가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창가학회와 서로 마찰을 빚고 있지만 언제라도 창가학회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말을 남겼다. 수백 년 동안 같은 목적 아래서 종교를 신앙하다가 서로의 이익 때문에 종파가 나뉘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며 …… 

  이번 일본에서 열린 신종교 국제학술회의는 큰 규모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나라에 있는 신종교를 서로서로 알린 점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신종교 학자인 이노우에 선생이 보여준 호의는 앞으로 지속적인 학술회의에 희망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또한 몇 군데 방문한 일본 신종교 교단을 통해서 대순진리회의 미래지향적 후천개벽사상이 머지않아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밝게 펼쳐질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대순회보> 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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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일본에서 발생한 신도(神道)는 유교·불교 등 외래의 종교·사상과 대립하거나 또는 그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여 일본인들의 정신생활에 기반이 되어온 민족신앙을 말한다. 신도에서 중요한 요소는 ‘가미(kami)’이다. ‘가미’는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렵지만 ‘생물과 무생물에 있는 신성한 힘’ 즉 ‘신’을 말한다. 가미의 신은 창조신, 풍요신, 호국신 등으로 분류하는데, 그 신들의 수효가 약 800만이다. 이런 신령들을 모신 곳이 ‘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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