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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캐나다, UBC 학술세미나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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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주 작성일2018.11.17 조회3,4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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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이광주

 

  교무부에서는 7월 4일부터 9일까지 4박 6일간의 일정으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州)의 밴쿠버를 방문하였다. 밴쿠버에는 캐나다에서 토론토대학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대학인 브리티시컬럼비아주립대학(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이하 UBC)이 있다. 이 대학 아시아센터의 돈베이커(Don Baker) 교수가 ‘현대 한국의 전통적 믿음과 가치’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여기에 초청을 받은 대진대학교의 이경원 교수와 교무부장 이하 연구위원 2명이 참석하게 된 것이다. 돈베이커 교수는 지난날 종단 업무와 관계된 일로 여주본부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7월 4일, 교무부 일행은 인천에서 이륙하는 대한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드넓은 태평양을 건너 밴쿠버까지 도달하는 데는 10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기내 탑승 시간이 긴 만큼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승무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와 훌륭한 기내식, 그리고 좌석마다 구비된 편의시설 덕분에 장시간의 비행이 그렇게 길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일행은 현지 시각으로 7월 4일 12시 40분에 캐나다의 서쪽 관문인 밴쿠버에 도착하였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땅이 넓은 캐나다는 모두 6개의 시간대로 나뉘는데 가장 서쪽인 태평양 표준시간대에 해당하는 밴쿠버 지역은 우리나라와 -16시간의 시차(서머타임 적용 시)가 있다. 다민족 국가인 캐나다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州)는 영국계가 많은 편이어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공항에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밴쿠버의 7~8월은 강수량이 가장 적고 낮 최고 기온은 20도 안팎이어서 연중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시기였다. 
  밴쿠버에 오니 여름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상쾌한 날씨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 지역은 공기가 맑아서 가시거리가 상당히 멀었는데 여기서 가장 먼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저 멀리 바라보이는 산봉우리 위의 만년설이었다. 캐나다의 로키산맥을 비롯한 산악지대는 한여름에도 서늘한 편이어서 겨울에 내렸던 눈들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한여름에 보이는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은 이곳이 대한민국이 아닌 타국임을 실감케 해주었다.
  공항에는 돈베이커 교수가 마중을 나와 우리 일행을 반기며 브리티시컬럼비아주립대학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었다.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50분 정도 달려 밴쿠버 서쪽 끝에 위치한 UBC에 도착하였다. 입구에서 숙소까지 찾아가는 데도 다소 시간이 걸릴 정도로 대학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이 대학은 학생 수가 약 3만 5천 명이나 되며, 122만 평에 달하는 넓은 캠퍼스에는 공원이나 해변, 정원, 아트 갤러리가 곳곳에 있었다. 또한 UBC 인류학 박물관이나 니토베 기념 정원 등 밴쿠버의 대표적인 볼거리들도 있어 지역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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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BC 내의 신학대학 기숙사에 짐을 푼 일행은 잠깐 휴식을 취한 뒤에 대학 내에 있는 인류학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이 박물관에는 전 세계에서 모은 민속 공예품과 생활 도구를 비롯해 캐나다의 토속신앙과 민속예술에 관한 작품들이 무려 1만 4천여 점이나 전시되어 있었다. 토속신앙과 민속 예술에 관한한 캐나다에서 가장 우수한 박물관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토템폴(Totem Pole)01이다. 박물관 입구부터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토템폴들은 캐나다 전역에서 출토된 원주민들의 작품으로 엄청나게 큰 토템폴에서 손바닥만 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토템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남부 지역 원주민인 하이다족의 탄생 신화를 묘사한 ‘까마귀와 최초의 인간들’이다. 이 작품은 영리한 까마귀가 조개껍데기 속에서 탄생을 기다리는 인류를 끄집어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토템폴들은 북미인디언들이 특정 동물이나 식물을 신성시 하고 자신들의 부족과 특수한 관계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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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시차 적응을 못해 밤잠을 설친 터라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침 식사 후 우리 일행은 9시부터 시작되는 학술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가 열리는 UBC 내의 아시아센터를 찾아갔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시아센터는 입구에 유학(儒學)의 진수인 오상(五常)을 다양한 크기의 비석에 조성해 놓아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돈베이커 교수 주재 하에 ‘현대 한국의 전통적 믿음과 가치’라는 주제로 국내외의 학자 일곱 분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돈베이커 교수가 사회를 맡고 각 주제별 발표 후에 질의응답을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세미나의 주제가 한국철학에 관한 것인 만큼 참석자들 중에는 한국 학자나 유학생들이 많았고 캐나다인 중에서도 한국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첫 번째로 아리조나(Arizona)주립대학의 박보리 교수가 ‘현대 한국불교 성지의 재형성’이란 주제로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박교수는 고대부터 불교 성지(聖地)가 존재해 왔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갓바위ㆍ봉정암ㆍ보리암 등 영험이 있다고 알려진 곳에 불자들이 몰리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상황임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성지들은 민간신앙과 불교가 습합된 것이어서 정통 불교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많은 불자들에게 신앙심을 고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계에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두 번째로는 대진대학교의 이경원 교수가 한국의 신종교로서 ‘대순사상의 전통적 믿음과 가치’라는 주제에 대해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이교수는 대순사상은 구천상제(九天上帝)이신 강증산 성사(聖師)께서 구한말에 이 땅에 강세하셔서 펼쳐놓은 진리를 신봉하는 한국의 신종교사상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대순사상은 기성 종교인 유불선 삼교를 단순히 합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모두 거느리는 삼교관왕의 도(道)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또한 해원상생(解相生)의 진리이며 종교적 실천을 통해 그 이념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참석자들은 유불선과 대비되는 관왕(冠旺)의 법으로서 대순사상의 심오한 철학에 숨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도장과 학교, 병원 등의 슬라이드 화면을 통해 대순사상의 현실적 실천성에 놀라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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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는 서강대학교의 김성례 교수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무속적 기복신앙의 도덕성’이란 주제로 발표하였다. 여기서 김교수는 무속의 기복신앙이 단지 물질적 차원에서 부와 건강을 얻기 위한 행위만이 아닌 신령과 사람, 조상과 자손, 무당과 고객 사이에 이뤄지는 정성과 보답의 호혜적 품앗이 관계라고 소개하였다.  

  점심 식사 후 네 번째 발표자로 나선 서강대학의 박창원 교수는 ‘한국 장례식의 전통과 변형’이란 주제에 대해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그는 한국 장례식의 변형으로 90년대까지 주로 집에서 이뤄지던 장례식장은 2000년대 들어 병원으로 급격히 대체되었고, 매장 중심의 장례문화도 화장 중심으로 바뀌었으며 수목장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장례식의 전통이란 측면에서 가족묘나 가족 납골당, 가족 수목장처럼 가족 중심의 장례문화는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하였다.
  다음에는 원불교 교무로 캐나다 교당을 맡고 있는 김은종 박사가 ‘한국 전통사상과 원불교’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김박사는 원불교의 기원과 교리, 조직체계 및 수양방법 등에 대해 소개한 뒤, 그 속에 한국 전통사상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하였다. 특기할 만한 점은 원불교가 외적으로는 불교사상을 표방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유교적인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점과 의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기독교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여섯 번째로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의 이화 박사가 ‘한국 풍수신앙, 그 경험의 자리’라는 주제에 대해 발표하였다. 여기서 이박사는 고려시대부터 전개되어 온 한국 풍수신앙의 역사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풍수신앙의 양태와 인간의 욕망을 소개하였다. 이러한 풍수신앙은 오늘날에도 도시계획이나 생태복원, 주거단지조성은 물론 개개인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가치를 지닌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UBC의 돈베이커 교수가 ‘현대 한국의 유교적 가치’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그는 한국 전통사회를 지배했던 유교적 이념이나 가치, 문화들이 많이 퇴색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 존속한다고 하였다. 유교의 유기체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관점들은 현대인들이 화합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할 때 유용성을 지니게 될 것이란 점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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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마지막 주제발표와 토론을 마치니 오전 9시에 시작했던 세미나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끝났다. 태평양 너머의 이국땅에서 한국철학이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학자들이 모여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모두에게 유익한 경험이었다. 특히 이번 세미나에서 한국 신종교로서 대순사상이 지닌 고유한 가치가 드러남에 따라, 참석한 학자들이 대순진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인식의 전환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자리였다. 세미나를 마친 후 참석한 사람들은 밴쿠버 시내로 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학술적인 담론과 함께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담소를 나누었다. 이날 밤에는 중요한 행사를 마무리해서 그런지 비교적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이틀간 밴쿠버 일대의 종교문화답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조식 후 가이드를 기다렸는데 우리가 묵고 있는 기숙사를 찾지 못해 다른 곳으로 갔다가 오는 바람에 출발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체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밴쿠버 섬으로 가는 페리(Ferry)를 타기 위해 서둘러 페리터미널로 향했다.
  캐나다는 우리나라의 100배나 되는 광활한 영토에 3천 4백만 정도의 인구가 따뜻한 남부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데 도심의 도로들은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밴쿠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니 나무와 잔디로 어우러진 단층 주택들이 늘어서 있고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조깅과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들이 즐비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여름에도 날씨가 무덥지 않고 겨울에는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사람이 살기에 정말 좋은 도시였다. 
  다행히 밴쿠버와 밴쿠버 섬을 오가는 페리가 성수기(7~8월) 때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어서 10시발 페리에 승선할 수 있었다. 수백 대의 차량이 페리에 승선하기 위해 줄지어선 모습도 진풍경이었고 페리 내부에 각종 편의시설과 상점까지 갖추고 있어 놀라웠다. 밴쿠버에서 밴쿠버 섬까지는 약 1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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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쿠버 섬은 조지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캐나다 본토와 마주 보고 길게 늘어선 섬으로 남한의 3분의 1정도 크기이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우리의 목적지인 빅토리아(Victoria)는 밴쿠버 섬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 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국 문화의 색채가 짙은 곳이다. 캐나다는 19세기 중반까지 미국과의 영토 분할이 확실치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미국 세력이 캐나다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막기 위해 빅토리아에 뿌리를 내린 영국계 사람들이 정치적 노력을 펼쳤고, 그 결과 브리티시컬럼비아 주(州)의 최남단인 빅토리아를 주도(州都)로 삼게 된 것이다.
  밴쿠버 섬에 도착한 일행은 곧바로 빅토리아의 중심지인 이너 하버(Inner Harbour)로 향했다. 이 항구는 주의사당을 비롯해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몰려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주의사당이었다. 1897년에 완공된 주의사당은 밴쿠버 섬의 역사를 그린 거대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어 무척 화려하고 고풍스런 건물이었다. 주의사당 광장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상과 참전기념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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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전기념비는 1ㆍ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때 참전했다 숨진 병사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여기서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한국전 당시 캐나다가 자국 군대의 85%에 해당하는 2만 8천여 명의 병사를 파병했다는 것이다. 한국전 발발 당시 연합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내부에 참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다. 그래서 UN군은 파병 대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는데 캐나다 총리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참전을 호소하여 캐나다 정규군과 민병대가 한국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UN연합국은 자국민들을 설득해 신속한 파병을 결정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한국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951년 UN연합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다가 중공군의 남하로 한강 이남으로 후퇴했을 때,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한강을 경계로 휴전협정을 맺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한 캐나다 제2대대는 연합군의 서울 춘천 간의 주보급로였던 가평 진지에서 중공군의 포화를 3일간 버티며 적의 공세를 차단하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연합군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중공군의 공세를 물리침에 따라 현재의 휴전선이 마련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숨겨진 일화를 통해 캐나다가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가슴 뭉클해지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의사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캐나다 전체에서 손꼽히는 로열 브리티시컬럼비아 박물관이 있었다. 총 3개의 층에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와 밴쿠버 섬의 자연사와 문화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전시관은 2층 자연사박물관으로, 지역 자연사를 그대로 재현하여 입체모형으로 전시해 놓았다. 3층 전시관은 원주민들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20세기 초 빅토리아의 모습을 세트로 재현해 놓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밴쿠버로 돌아가는 4시 페리를 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박물관을 나섰다.

  7월 7일에는 밴쿠버 리치먼드(Richmond) 지역에 아시아 사원(寺院)들이 밀집된 곳이 있어서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출발해서 가는 동안 모처럼 밴쿠버에 비가 내려 평상시 이곳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밴쿠버는 겨울철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대신 강수량이 많아 일주일에 4~5일은 비가 오는데 그냥 맞고 다닐만 하다고 한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밴쿠버 시내와 프레이저 강을 지나 리치먼드 국도로 달렸고 얼마 후 맞은편에 일렬로 늘어선 사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교사원, 이슬람사원, 힌두교사원 등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사원들이 길을 따라 줄지어 선 모습이 특이했다. 우리는 맨 끝에 있는 사찰부터 방문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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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이 처음 들른 곳은 대만에 본사를 둔 정토종 계열의 영암산사(靈巖山寺)였다. 대만에서 영암산사를 창건한 묘련(妙蓮)스님은 대만은 물론 전 세계를 불국토로 만들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1984년부터 단독으로 불사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하나 둘 생겨 마침내 거대하고 장엄한 영암산사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나라의 독지가들이 대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암산사를 짓도록 도왔는데 이곳 리치몬드 분교도 그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는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 사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슬람 세력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눠져 있는데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4대 정통 칼리프(계승자) 알리와 역대 칼리프왕조의 칼리프로 보았다. 이에 반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계자만을 종교지도자로 인정하며 수니파에 대항하였다. 이처럼 서로 분파되어 대립각을 세웠던 이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나란히 포교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대만의 4대 종단 중의 하나인 법고산(法鼓山)이었다. 초대 주지인 성엄(聖嚴)스님은 중국의 승가를 부활시키려면 교육이 필요하다는 신념 하에 1969년에 일본 릿쇼대학원에 진학하여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 중국불교사상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승려가 되었다. 이후 임제종의 법맥을 이은 성엄스님은 18년 전 대만 타이베이현에 법고산재단을 창설한 후 불교 교육을 진작하고 비구와 비구니들을 위한 엄격한 교육 전통을 부활시켰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강도 높은 선(禪) 수행을 지도하며 세계평화와 청소년 발전, 사회복지 등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법고산은 현재 대만 내에 약 20여 개의 소속 사원과 대학, 명상센터 등을 가진 종단으로 성장하였고, 이곳 밴쿠버 사원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분원을 마련하여 대만불교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었다.

  법고산 옆으로 티베트불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이 있었다. 내부를 둘러보니 규모면에서나 신도들의 수에 있어서 티베트불교가 다른 종단들보다 우세해 보였다. 특히 서양인들이 불상 앞에서 티베트어로 된 경전을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이곳 캐나다에도 티베트불교가 많이 알려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힌두교에도 다양한 종파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파를 가리지 않고 힌두교인이면 누구나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한다. 티베트불교 사원에 비해 한산한 편이었던 힌두교 사원에는 다양한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이것으로 리치먼드에서의 종교탐방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밴쿠버의 발상지가 있는 개스타운(Gastown)에 잠깐 들리기로 하였다. 개스타운은 현대적인 밴쿠버에서 고풍스런 유럽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개스타운이란 지명은 금을 찾아 캐나다로 왔다가 1867년에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해 술집과 여관을 열었던 영국인 존 데이턴의 별명 ‘개쉬(Gassy: 수다스러운) 잭’02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서 5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개스타운의 또 다른 명물인 증기시계가 있었다. 높이 5m, 무게 2톤에 달하는 이 증기시계는 증기로 움직이는 세계 최초의 시계이며, 증기를 내기 위한 동력을 주변 건물에서 얻고 있었다. 원래는 15분마다 증기를 내뿜으며 음악을 연주하게끔 설계되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작동하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이렇게 밴쿠버 시내를 잠시 둘러본 후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그날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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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8일 마지막 날 아침. 기숙사에서 아침 식사를 가볍게 하고 짐을 꾸린 후 오후 2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밴쿠버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떠나는 날도 우리가 왔을 때처럼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고, 멀리서 바라보이는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 학술세미나를 통해 한국의 기성종교와 신종교, 장례문화 등 한국의 전통적 사상과 가치들이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순사상이 지닌 고유한 특질과 실천성을 드러냄으로써 여러 학자들에게 대순진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캐나다 리치먼드 지역의 사원(寺院)들을 둘러보면서 우리 종단도 빠른 시일 내에 전 세계에 천하포덕(天下布德)을 위한 전초 기지를 마련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대순회보> 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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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토템폴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나무기둥에 토템의 상(像)이나 문양을 새겨 놓은 것이다. 대개 문 앞에 세워 놓은 토템폴은 문자가 없던 인디언 가족들의 전설이나 역사를 말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현재 토템폴은  박물관이나 공원, 특정 마을 등에서 주로 접할 수 있다.

02 1960년대 후반에 개스타운을 새롭게 정비하는 과정에서 개쉬 잭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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