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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활동말레이시아 종교문화 국제학술세미나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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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수 작성일2018.11.17 조회3,4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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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김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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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에 말레이시아 남방학원 총장의 초청으로 2011 종교문화 국제학술세미나에 다녀왔다. 남방학원 및 대만 원지대학, 말레이시아 일관도(一貫道) 총회가 공동 주관으로 아시아에서 열린 제 종교 및 문화의 특색을 학술적으로 소개하고 토론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번 학회는 대만, 중국 및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화교 학자들이 참석하였고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문화공동체 속에서 끈끈한 형제애와 연대감을 공유하는 분위기였다. 문명과 문화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는 아시아 국제학회의 새로운 조류를 체험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우리를 향한 그들의 우호적인 태도에서 나는, 상제님의 ‘순망즉치한(脣亡則齒寒)’01이라는 말씀처럼 중국의 부흥과 더불어 화교문화권뿐만 아니라 한국 및 우리 도(道)의 정신문명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점차 늘어나겠다는 전망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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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회 전날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싱가포르국립대학에서 중문과 교수들로부터 안내를 받은 후, 학회 참석 학자들과 함께 남양이공대학으로 이동하여 간담회와 만찬을 가지면서 종교, 문화, 지역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 싱가포르를 뒤로하고 조호르 해를 건너 학회 개최지인 조호르바루(Johorbahru)02시로 이동했다. 

  학회 개최지인 말레이시아의 남방학원은 중국 화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대학인데, 재학생 중에 유일하게 한 명의 한국인 여학생이 있었다. 중학교 때 이민 온 그녀는 뜻밖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우리 일행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남방학원 총장은 말레이시아 전통의상인 바틱크를 입고 식당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소탈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학회는 양일간에 걸쳐 17명의 학자들이 발표했는데, 우리 측에서는 대진대학교의 이경원 교수가 “한국 삼교(三敎) 전통 및 신종교의 문화적 특색”이란 주제를 대순사상에 입각해서 발표하였다. 다른 발표자 중에서 대만의 유명한 도교전문가인 이풍무 교수, 종운영 교수 및 공자(孔子)의 75대손이기도 한 중국 화동대학의 공상화 교수 등은 특히 대순진리회의 사상과 실천수행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교수의 발표 요지는 대순사상의 가치가 불지형체(佛之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유지범절(儒之凡節)이라는 전통사상의 이념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해원상생의 법리를 실천함으로써 유불선 삼교의 총합을 넘어선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제시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질의 토론 시간에 한 질문자는 ‘삼교 총합으로서 대순사상을 이야기할 때 한국 신종교의 바탕이 되는 4대 종교 중 하나인 기독교 전통은 왜 거론이 안 되었는가⋅’에 관한 질의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이교수는 한국의 기독교는 조선 말에 이벽(李檗, 1754~1786) 등에 의해 연구되어 자생적으로 유교적 세계관이나 무속의 칠성(七星)사상 등과 결합된 한국 기독교라는 형태를 띠었으므로 그러한 맥락 또한 이미 본 이론에 내포되어 있다고 답했다. 

  종운영 교수는 근대 일관도의 발전과 그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19세기 말에 활성화되어 오랜 박해를 거쳐 대만에서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과정과 전민독경운동, 가정에서의 채식위주생활, 상장의례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현재 대만에서의 사회적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종교수는 실천운동에 관심이 있는 만큼, 대순진리회의 도장과 3대사업에 관한 내용을 듣고 매우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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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 후손인 공상화 교수는 공자가 어떤 성인(聖人)이었는가와 공자묘에서의 제사 문제를 발표했는데, 『전경』을 선물로 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면서 상제님 말씀의 표현과 깊이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는 공자님의 위상을 한층 더 높아지게 하였다. 

  진중화 대만 외국어대학 교수도 우리와 계속된 교류를 희망하였는데, 말레이시아 입헌 체제 하에서의 정교(政敎) 관계를 잘 설명해 주었고, 정문천 라만대학 교수는 회교(回敎)란 용어가 회족의 종교라는 국지적인 함의가 있으므로 이슬람교라고 써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이 국교화된 이후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기는 하지만 이슬람과 타 종교와의 관계는 마치 칼 위에 야자수가 꽂혀 있는 것과 같다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면서 소수 종교의 불리한 입지를 잘 대변했다. 유아영 대만 원지대학 교수는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개념으로 문명충돌과 종교의 이중성을 종교민족주의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다루면서 종교가 평화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지만 전쟁의 칼로도 쓰일 수 있음을 질타했다. 소경화 말레이시아 대학 교수는 일관도 유가사상(儒家思想) 연구를 통해 유교를 존중하는 것이 일관도 신앙의 핵심이라고 보았고 유가사상의 생활화로 독경대회, 15세 때의 성년의식, 3대를 잇는 효(孝)의 개념을 강조한 삼대동당도화가정(三代同堂道化家庭) 표현 등을 예로 들었다. 

  일관도(一貫道)는 유불선, 기독교, 회교 등을 융합하여 일관한다는 뜻으로 달마를 초조로 해서 17대 금공조사(金公/天命祖師)인 백양초조(1845~1925), 18대 궁장조사(師尊)인 장천연[天然古佛], 19대 중화성모 손혜명(孫慧明)으로 이어 내려오는 맥을 세워서 명명상제라고 일컫는 미륵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종교이다. 대승경전에 의거해서 석가불 3000년 후에 오신다는 미륵불을 우주의 최고 주재자로 모시는 점이 눈에 띈다. 법을 깨달았다고 인정되는 법사(法師)를 통해 심령을 전수받는 입문의례를 거쳐 각 가정에서 정좌(靜坐)와 청구재계(淸垢齋戒)03 등의 일상수련과 하루 세 번의 예불(禮佛)을 행한다. 제공활불, 남해고불(관세음보살)뿐만 아니라 유교, 도교의 제성제불을 공경하여 『금강경』, 『도덕경』, 『대학』, 『중용』 등의 진리 공부를 하는데, 종지(宗旨)를 보면 경천지(敬天地), 예신명(禮神明), 애국충사(愛國忠事), 돈품숭례(敦品崇禮), 회복본성지자연(恢復本性之自然), 계발(啓發), 양지양능지지선(良知良能之至善), 기세계위대동(冀世界爲大同) 등 유교적 이상이 많이 들어 있다. 

  학회 다음 날 말레이시아 일관도 10주년 행사 및 본부에서 행하는 의례를 참관했었는데, 기도모실 때 이마를 땅에 조아리는 고두(叩頭: Kowtow)를 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관도 총회 분들은 식사할 때 다른 사람의 접시에 먼저 음식을 대접한 후, 각자 식사를 하는 문화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늘 남을 살피는 자세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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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회를 통해 대만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신종교들의 특성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공통점으로는 유불선 전통의 통합을 추구하거나 그중의 한 부분을 강조하면서 현대사회에 맞는 가치를 구현하려 한다는 점이었다. 일관도의 경우도 유불선 삼교총합으로서의 위상을 강조했지만, 달마 이후의 선불교의 계보를 계승했다고 하면서 유교와 도교사상을 가정종교의 형태로 혼합한 형태라는 점에서 우리 진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우리 도는 신도(神道)이고 삼계(三界)의 대도로서 그 지류(支流)인 유불선(儒彿仙) 삼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도전님께서도 우리 교리는 유교나 불교와 하등의 관계없는 해원상생지리인 우주 자연의 법리라고 하시지 않았겠는가⋅ 일관도 교리 또한 무극과 태극을 본원으로 인정하면서 미륵을 신앙했는데, 우리 도가 바로 그 본원(本源)의 도이자 미륵이 내놓으신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 얼마나 놀라게 될지 궁금했다. 질의 토론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이번 국제학회는 공식 ⋅ 비공식적으로 해외 학자들에게 대순사상의 독자적 위상과 가치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장이었던 것 같다. 학자들은 한결같이 우리와의 지속된 학술 교류를 희망했다. 

  학회가 끝난 후, 일행은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말라카와 쿠알라룸푸르 역사 문화 탐방에 나섰다. 말레이반도 남부 서안에 위치한 말라카 고시(古市)에 도착하기 전에 도교사원인 삼보궁(三寶宮)에 들렀다. 삼보궁은 15세기 말 중국 명나라로부터 건너온 도교의 진인(眞人)을 기려 말레이국의 라자(Raja; 국왕)인 한리포(Han Li-Poh) 세대에 세운 것이다. 내부에는 삼보정(三寶井)이라는 우물과 복록수명을 비는 관세음보살 등이 모셔져 있었다. 

  말라카는 1402년에 수립된 말레이 왕조의 수도로서, 동남아시아 최대의 상업 항구도시였으며, 야자의 일종인 말라카라는 나무가 많아 유래된 지명이다. 이곳에서는 금과 상아, 주석, 향료, 비단 등을 전 세계에 수출했는데 당시 명(明)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던 터라 많은 중국인들이 이주해왔다. 지금도 청나라 때 이주한 주민들의 마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당시의 실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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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카 고성 안에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통치 시기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근세 열강들의 침략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말라카는 1511년 포르투갈 지배하에 있게 되자 동양 최강의 요새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130년 동안 큰 방벽과 궁전, 교회 등이 건조되었다. 1641년부터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다가 1824년에 영국이 양도받아 19세기 말 북쪽에 위치한 페낭으로 주요 상업기지가 옮아가기 전까지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곳은 말라카 왕조의 3대 왕이 세운 회교사원과 최초의 불교사원, 그리고 포르투갈 성벽 및 기독교 교회들이 합쳐져서 중세 스타일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말레이는 산스크리트어로 ‘산지의 나라(산국)’라는 뜻이다. 1세기 경 인도에서 힌두교와 불교인들이 이주한 흔적인 것 같다. 여전히 이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미프트라(Bumiputra), 즉, 땅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말라카를 떠나 쿠알라룸푸르로 오는 길은 야자수와 고무나무, 빈랑나무, 벵갈 보리수, 난초 등의 열대우림 식물들로 뒤덮인 도로였는데, 뙤약볕 속에서 약 20분간 열대성 호우가 더위를 식혀준 뒤 순식간에 사라지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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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알라룸프르에 도착하기 전 세렘방(Serembang)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쿠알라품프르로 진입하자 현지 참석자들이 쌍룡건설에서 건설했다는 트윈 타워를 쿠알라룸프르의 상징이라면서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한류열풍과 더불어 우리의 이미지를 고양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아 친밀감과 함께 약간의 자부심이 들었다. 말레이시아는 13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로 9주의 술탄이 호선으로 국왕(Yang-di Pertuan Agong)으로 재직하는데 임기는 5년이다. 우리가 국왕궁전(Istana Negara)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국왕이 내년 초에 취임하기 전의 교체기로 부재중이어서 국왕기가 내려져 있었다. 13주의 주정부는 제각기 독자 헌법이 있으며, 말라카와 동말레이시아의 사바, 사라와크 등 4주에는 연방정부에서 임명하는 지사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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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이어서 국립회교사원(Masjid Negara), 국립박물관 등을 거쳐 시 북방에 있는 바투 동굴을 참관했다. 수도하는 마음으로 272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니 커다란 종유동 동굴이 나왔는데, 그 안의 가장 큰 종유동에는 힌두교 신을 모신 사원이 있었다. 1월말, 2월초의 타이푸삼(Taipusam)04 제례 때에는 성대한 행사가 거행되는데 신도들이 냇물에서 몸을 정결히 한 후, 돌계단을 행진할 때 승려가 참회자의 혀와 가슴에 핀을 찌른다고 한다. 힌두사원에 들어갔더니 한 승려가 축원을 하면서 행운을 준다는 붉은 끈을 손목에 감아주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바투동굴에서 내려오자마자 그간 연락이 안 되던 말레이시아인 동창생으로부터 20년 만에 연락이 와 있었다. 덕분에 친구가 일하는 국립은행도 둘러보고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친구는 우리 같이 진리를 찾고 수행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욕망으로 파괴된 이 지구가 되살아날 수 있다며 서로의 마음 속 깊이 동감했다. 

  마지막 날, 일행은 행사 안내를 맡았던 일관도 측 변호사 댁에서 만찬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우의를 다지고 다음 기회에는 우리 도장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의 정을 나누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프탈링쟈야(Petaling Jaya)라는 시 남서쪽에 위치한 위성 도시를 지나갔다. 끝없이 넓은 언덕 위에 조성된 계획도시였는데, 과천정부청사와 같은 행정지구들이 깔끔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부슬비를 맞으며 앞으로 지속된 우의에 기반을 둔 교류 ⋅ 협력을 기대하면서 우리 일행은 쿠알라룸프르에 작별을 고했다. 

<대순회보> 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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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입술이 상하면 치아가 시리다는 뜻으로 상제님께서 중국이 부흥하면 한국도 부흥한다는 함의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 
02 조호르바루(Johor bahru)시는 말레이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조호르 주의 주도이다. 조호르 지방은 19세기 후반 이슬람 군주인 술탄이 왕궁을 건설한 후 발전한 지역인데, 조호르 왕국은 빈탄 섬을 근거로 포르투갈에 대항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조호르’는 말레이시아 특산 거목이며 ‘바루’는 ‘새로운’이란 뜻이다. 
03 몸,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계율. 험담, 욕설, 이간, 사특한 말, 교언, 술, 고기, 파, 마늘 달래, 부추 등의 오훈채를 금한다.

04 말레이시아에서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3일 동안 열리는 무루간 신을 향해 참회와 속죄의 의미로 고행의 행진을 하는 힌두교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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