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거상제님께서 알려주신 척신과 魔가 풀리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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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08 조회4,860회 댓글0건본문
글 민원실
Ⅰ. 들어가는 말
대순진리회의 도(道)는 신도(神道)이다. 신도(神道)란 상제님의 상생대도(相生大道)를 뜻한다. 그러므로 ‘신도를 닦는다’는 말은 인도(人道)를 바르게 세우고 상제님의 진리를 힘써 닦아나간다는 것이요 그 결과 신명의 호위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신도(神道)란 상생대도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신도로부터 원을 푸는 것’(공사 1절 3장)을 ‘신의 원을 풀어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상제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순회보』 81호 「신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실려 있듯이, ‘신도로부터 원()을 푼다’거나 ‘신도를 풀어 조화한다’(예시 9절)는 말은 상제님의 상생대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천지공사로 인해서 비로소 삼라만상의 모든 원이 풀리게 되고 세상이 조화(調和)를 이룩하게 된다는 뜻이다.
실로 신을 본다거나 신을 느낀다거나 신을 떼어낸다거나 신을 물리친다거나 신을 해원(解)시킨다거나 하는 것을 신도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상제님께서 “술수를 거두리라.”(예시 76절)고 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을 보거나 하는 등의 신적(神的)인 행위는 무당들이 하는 일이거나 혹은 허령(虛靈)에 빠진 광증(狂症) 현상일 뿐, 인도(人道)를 바르게 세우고 상제님의 진리를 힘써 닦아나가는 대순진리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로 할 수도 없는 일이요, 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사람에게 신을 붙여주면 다른 사람에게 붙어있는 신(척신이나 魔)을 보게 되고, 그 척신이나 魔를 떼어다가 교화를 하면 그것들이 해원(解)을 하여 신선·선녀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 이런 행위를 벌이다가 적발되어 징계위원회에서 제명된 사례가 있었다. 신을 붙여주고, 신을 보고, 신을 떼고 신을 해원시키는 행위는 이미 허령에 빠져 난법난도(亂法亂道)를 저지르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도인들에게 붙어있는 신, 즉 척신·魔에게 교화를 함으로써 그 척신·魔들의 원()을 풀어주고 그 결과 척신·魔들을 신선·선녀로 바꾸는 것도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데, 이 글에서는 왜 그러한지 그 이유에 대해서 밝혀보고자 한다. 일단 척과 魔가 언급되어 있는 『전경』 18곳01, 『대순지침』 6곳02, 그 외 도전님 훈시를 바탕으로 해서, 즉 상제님과 도전님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이에 대한 내용을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수도를 잘못하여 극단적인 벌을 받은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도의 정서상 맞지 않는 일이기는 하나, ‘善者師之 惡者改之(좋은 것은 스승으로 삼고 나쁜 것도 고쳐서 배운다, 행록 3장 44절)’라는 상제님의 말씀도 있듯이 이런 사례를 통해서 무엇이 문제이고 또 잘못되었는지를 배워 교훈으로 삼아보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2. 척신과 魔란 무엇인가?
상제님과 도전님께서는 척()이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교법2-44】 속담에 ‘무척 잘 산다’ 이르나니 이는 척이 없어야 잘 된다는 말이라. 남에게 억울한 원한을 짓지 말라. 이것이 척이 되어 보복하나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
【교법2-46】 이웃 사람이 주는 맛없는 음식을 먹고 혹 병이 생겼을지라도 사색을 내지 말라. 오는 정이 끊겨 또한 척이 되나니라.
【『대순지침』 27쪽】 내 경위만 옳고 남의 주장을 무시하는 데서 반발을 일으켜 서로 미워하다가 마침내 원한을 품어 척을 맺는 법이다. <83. 5. 5>
【『대순진리회 요람』 19쪽】 척은 나에 대한 남의 원한이니, 곧 남으로 하여금 나에 대하여 원한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는 것이나 남의 호의를 거스리는 것이 모두 척을 짓는 행위인즉, 항상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온공(溫恭) 양순(良順) 겸손(謙遜) 사양(辭讓)의 덕으로써 남을 대할 때에 척을 짓지 않도록 하라.
이에 따르면 척()은 남이 나에게 갖는 서운한 마음이나 원한(怨恨)을 뜻하고, 억울한 원한을 짓거나, 남을 미워하거나, 호의를 거스르고 정을 끊거나, 남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하는 등, 스스로의 잘못된 행위 때문에 발생한다. 이외에 척은 집안으로부터 대물림으로 내려오는 것도 있다. 척을 가지고 있는 신이 곧 척신(神)이며, 척신은 내가 지은 죄과 혹은 집안의 업보로 인해 발동하는 마(魔)의 한 형태임에 분명하다.03
魔에는 업보로서 나타나는 척신뿐만 아니라, 호사다마(好事多魔) 즉 좋은 일에는 魔가 많이 따른다는 옛말에 나오듯 잘 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발동하는 마귀와 같은 존재도 있다. 이에 대한 예로서는 서가여래의 깨달음을 막기 위해 나타났던 파순(波旬)을 들 수 있다. 파순은 서가여래의 척에 따른 업보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남 잘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발동했던 魔였다.
이상을 다시 한 번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 표와 같다.
3. 척신과 魔는 어떻게 풀리는가?
척은 원의 일종04이므로 척이 풀린다는 것은 곧 그에 해당하는 원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명된 사람의 주장대로 내가 지은 척 혹은 집안의 척으로 인해 나타나는 척신에게 교화를 함으로써 그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가?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말만 가지고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척, 즉 원()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우선 다음의 『전경』 내용을 살펴보자.
【행록4-54】 상제께서 하루는 경석에게 검은 색 두루마기 한 벌을 가져오라 하시고 내의를 다 벗고 두루마기만 입으신 후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고 여러 사람에게 “일본 사람과 같으냐?”고 물으시니 모두 대하여 말하기를 “일본 사람과 꼭 같사옵나이다.” 하노라. 상제께서 그 의복을 다시 벗고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 이웃 아이와 먹으로 장난을 하다가 그 아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돌아가서는 다시 그 서당에 오지 않고 다른 서당에 가서 글을 읽다가 얼마 후 병들어 죽었도다. 그 신이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해원을 구함으로 그럼 어찌 하여야 하겠느냐 물은 즉 그 신명이 나에게 왜복을 입으라 하므로 내가 그 신명을 위로 하고자 입은 것이니라.”고 이르셨도다.
상제님께 원한을 품었으니 그 신은 척신이다. 여기에서 상제님께서는 그 척신의 원()을 풀어내실 때, ‘왜복을 입으시라’는 척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법을 사용하고 계심을 주목해야 한다. 해원(解), 즉 원을 푸는 것에는 부정적인 방법과 긍정적인 방법이 있다. 부정적인 해원 방법은 자신이 지닌 원을 복수를 통해서 푸는 것이요, 긍정적인 해원 방법은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교법 1장 56절)는 상제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원을 정화(淨化)하여 상생(相生)의 길로 승화시켜 풀어내는 것이다.
척신이 교화·감화가 되는 존재라면, 척신은 가르침을 받아 긍정적 해원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제님께 왜복을 입으실 것을 요구하는 척신의 해원방법은 분명 부정적이다. 상제님께서는 삼계를 개벽시키는 권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척신이 부정적인 방법으로 해원을 하는 것을 그냥 두셨다는 것은 척신이 교화에 의해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음의 사례를 보자.
【행록4-47】 이후에 백암리에서 상제를 박공우와 신원일이 모시고 있었도다. 이때 종도 김경학의 천거로 김영학이 상제를 배알하였을 뿐 상제께서 이레 동안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도다. 영학이 매우 불만을 품기에 공우와 원일이 그에게 “그대가 상제께 삼가 사사하기를 청하면 빨리 가르쳐 주시리라.”고 일러주니 그때야 그는 사사하기를 청하니 상제로부터 승락을 얻었느니라. 그런데 상제께서 갑자기 그를 꾸중하시는 도다. 영학은 두렵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니라. 상제께서 영학을 불러들여 “너를 꾸짖는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을 물리쳐 내려하는 것이니 과히 불만을 사지 말라.”고 타이르셨도다. 영학이 “무슨 척이니까. 깨닫지 못하겠나이다.”고 되물은 즉 “너는 열여덟 살 때 살인하고 금년에 또 살인하였나니 잘 생각하여 보라.”고 회상을 촉구하시니 그는 옛일을 더듬었도다. “그 나이 때에 제가 남원에서 전주 아전과 말다툼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분격하여 그에게 화로를 던져 머리에 상처를 입혔는데 이것으로써 신음하다가 그 이듬해 삼월에 죽었도다. 또 금년 봄에 장성 다동에서 사는 외숙인 김요선이 의병으로부터 약탈을 당하여 의병대장 김영백을 장성 백양사로 찾아가서 그 비행을 꾸짖으니 그 대장은 외숙에게 사과하고 그 의병을 찾아 총살하였도다.”고 영학이 이 두 가지 일을 아뢰었도다.
상제님께서는 처음으로 당신을 따른 사람에게 반드시 자신이 그동안 지내오던 허물을 낱낱이 회상하여 마음속으로 사하여 주시기를 빌게 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허물을 하나하나 깨우쳐주시고 또 반드시 그의 몸을 위하여 척신과 모든 겁액을 풀어 주셨다.(교운 1장 2절) 김영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상제님께서는 꾸짖음을 통해 척신을 물리쳐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 꾸짖음의 대상이 ‘척신이 아니라 김영학 본인’이라는 점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상제님의 권능으로 척신을 불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김영학의 척신을 불러내어 그 척신을 꾸짖으셨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김영학을 꾸짖으셨다. 이러하였기에 김영학은 두렵고 분함을 느끼는 괴로움을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해 김영학에게 붙어있던 척신이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김영학 척신의 경우도 해원 방법은 역시 부정적이다.
척신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차원으로 발동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상대가 괴로움을 겪도록 요구한다.
【공사2-4】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의 차별로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가 없고 청국으로 넘겨도 그 민족이 우둔하여 뒤 감당을 못할 것이라.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 신명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일시 천하 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와 일월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주어서 역사케 하고자 하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이니라. 만일 인자까지 붙여주면 천하가 다 저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인자를 너희들에게 붙여주노니 잘 지킬지어다. …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 될 것이오. 저희들은 일만 할뿐이니 모든 일을 밝게 하여주라. 그들은 일을 마치고 갈 때에 품삯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덕하게 하라.
일본은 도술 신명 사이에 척을 품고 있었으나 조선 침탈을 통해 그들의 척을 풀 수 있었고, 조선의 입장에서는 국권을 빼앗기는 고통을 당하고서야 척이 풀릴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척신 역시 부정적인 해원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경』에는 모두 척신이 부정적 방법으로 해원을 하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을 뿐,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원을 하는 존재임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여기에서 잠깐 원()에 대해 살펴보자. 상제님께서는 온 우주가 진멸의 지경에 빠져버린 이유가 천지인 삼계에 가득 찬 원 때문임을 간파하셨으나, 이를 교화로써 풀어내시지는 않으셨다. 다만 상제님께서는 해원시대를 여시어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들이 이 세상에서 한바탕 각자의 원을 푸는 ‘해원판’을 벌이도록 만들어 놓으셨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서 원은 단순히 위로나 설득, 감화 등의 방편으로는 풀려나갈 수 없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원은 ‘실제적인 보상이나 대우’가 있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척신도 교화로써, 꾸짖음으로써 척(원)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대가 괴로움을 겪을 때 즉 복수를 통해서 그들의 척을 푼다. 이것이 척신이 그들의 척(원)을 푸는 원리이다. 따라서 나 자신의 입장에서 척신을 풀려 한다면, 오는 괴로움을 받아서 직접 겪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거기에 단순히 견뎌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남 잘되는 공부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할 때 척이 풀리고 결국 해원상생이 이룩된다는 것은 다음 박공우의 예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교법3-12】 상제께서 천원 장에서 예수교 사람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수십 일 동안 치료를 받으며 크게 고통하는 공우를 보시고 가라사대 “너도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완쾌된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내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 공우가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후일에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할 것을 생각하니라. 수일 후에 천원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 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려 상제께서 가라사대 「네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 두 고을 목사가 움직였노라」 하시니라. 그 후에 상처가 완전히 나았도다.
사실 이와 같은 척신이 풀리는 원리는 도전님께서 이미 가르쳐 주신 바 있으니, 다음의 훈시를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1991년 5월 14일 도전님 훈시】 도인은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는 것이 몸에 배이고 생활화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며 여기에서 척이 사라진다. 나를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그것은 전생에 내가 남을 때려서 척이 생겼는데, 그 척이 지금 그 사람에게 의지해서 나를 때리므로 풀리는 것이다. 도적이 내 물건을 훔쳐갔다면 괘씸하겠지만 전생에 내가 남의 물건을 훔쳤었는데 그 척신이 그 사람에게 의지하여 복수함으로써 풀리는 것이니, 오히려 그 사람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받으면 풀린다. 상제님께서도 어렸을 적에 글방 다니는 친구가 척이 되었는데, 그 친구가 죽어 일본사람을 제일 싫어한다고 하였기에 척을 풀어주시기 위하여 일본 옷을 입으신 것이다. 우리는 척이 남으면 안 된다. 척은 다 풀어야 한다.
수도과정에는 척신뿐 아니라 파순과 같은 사악한 魔도 역시 발동한다. 이 魔는 아직 도통을 받지 못한 수도인들로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존재로, 오직 상제님의 덕화와 신명의 조화가 있지 않으면 물리칠 방법이 없다.
【1991년 5월 14일 도전님 훈시】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三界解魔大帝神位願天尊關聖帝君)이라고 하였다. 삼계의 魔를 풀어주는 것이 관성제군이다.
도전님의 훈시에서 알 수 있듯이, 상제님의 명을 받아 魔를 풀어내는 신명은 해마주(解魔呪)에 나오는 관성제군이다.
【1994년 7월 11일 도전님 훈시】 복을 받기 위해서는 밖에서 좋은 평을 받아야 한다. 속담에 남에게 욕을 많이 얻어 먹어야 복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 있다. 복을 받으려면 먼저 화를 겪어야 한다. 삼계복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이니 복을 받기 위해서 들어오는 모든 魔를 관성제군께서 풀어주신다. 남에게 나쁜 구설을 받아서 들어오는 魔도 관성제군께서 늘 막고 물리치신다.
이와 같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화(禍)를 겪어야 하고, 그런 연후 관성제군께서 그 魔를 풀어주신다. 따라서 魔가 풀리는 원리는 간단하다. 발동하는 魔를 참고 견디고 있으면 관성제군께서 그 魔를 풀어주신다는 것이다. 단, 관성제군의 음호(陰護)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법(眞法)에 충실해야 함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 수도인이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아직 도통을 하지 않은 이상에는 그 어떤 교화나 회유를 한다 하더라도 魔를 풀어낼 재간은 없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하여 계시는 분이 바로 관성제군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신명은 수도인들의 수도생활에서 중요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대에서 치성을 모실 때 관성제군이 원위(元位) 다음으로 술잔을 받으며, 해마주 외에도 진법주, 운장주에 걸쳐 무려 세 차례나 주문에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4. 맺음말
이상과 같이 척신을 포함하여 ‘魔’라고 하는 존재는 교화·감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화를 한다고 해서 魔가 해원을 하는 법도, 魔가 풀리는 법도 있을 수 없다. 즉 척신·魔 같은 신은 오직 ‘고통을 받아 겪으면서 해원상생을 실천할 때’라야 그 원이 풀리게 되고 또한 신명의 도움으로 물리쳐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도인에게 붙어있는 신(척신 魔)에게 교화를 함으로써 그 신들의 원()을 풀어주고 그 결과 신들을 신선·선녀로 바꾼다는 주장은 허황하기 이를 데 없다 하겠다.
상제님께서도 하신 적이 없고 또한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이러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대순진리가 아닌 난법난도(亂法亂道)에 해당하고, 결국 허령(虛靈)에 빠져 허황된 짓을 벌이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은 허령이 단지 ‘눈의 검은 눈동자가 없어지고 하얗게 되는 비정상적인 상태’만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도전님께서는
【『대순지침』 40쪽】
(다) 삿된 방법을 감행하는 것은 욕심을 앞세우기 때문에 정기(正氣)는 물러가고 사기(邪氣)가 선동하여 허령(虛靈)이 되는 것이다. <84. 3.11>
(라) 허령은 사람이 보기에 곧 광증(狂症)이므로 "허가 내리면 진을 받지 못한다" 하셨으니 매사를 경홀히 생각 말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 <84. 3.11>
라 하셨으니, ‘삿된 방법’을 감행함으로써 타인에게 광증(狂症)으로 보이게 되면 그것이 모두 허령인 것이다. 도주님께서 50년 공부 종필로써 도전님께 전해진 진법(眞法)은 그대로 우리들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진법을 통해서만이 수도가 이루어지고 도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인데, 뒤늦게 깨달았다고 주장하면서 혹은 도주님이나 도전님께서 따로 알려주신 비법이라고 하면서 엉뚱한 행위를 벌인다면 그것이 곧 삿된 방법을 감행하는 것이다. 50년 공부 종필의 법으로 전해진 진법, 이외에는 그 어떠한 법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난법난도자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신도(神道)’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선각의 교화가 어떻게 후각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선각의 지극한 교화와 정성이 있다면 후각이 마음을 열고 잘못된 마음을 바꿔먹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도는 신도(神道)이기 때문에 마음을 통해 드나드는 신명으로 인해 체질과 성격이 바뀌게 된다.(교법 3장 4절)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어 그 결과 도가 닦여지고 덕을 많이 베풀어 기국이 커지게 되면 그에 따라 새로운 신명의 호위를 받게 된다.(교법 2장 17절)
이와 같이 선각의 교화는 후각으로 하여금 마음을 바르게 바꾸도록 도와주고, 후각은 직접 해원상생의 실천을 통하여 수도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척·魔가 발동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 받아서 겪어나갈 수 있게 되어 척은 풀리게 되고, 또한 이런 과정을 지켜 본 신명은 魔를 물리쳐주는 것이다. 이것이 선각이 후각에게 교화를 하게 되면 척· 魔가 풀리고 물리쳐지게 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선각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후각을 이끌어주는 것이지, 선각 그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후각의 척과 魔가 풀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야기가 길었지만 재차 이 글의 요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척신·魔의 발동을 직접 온 몸과 마음으로 다 받아 겪으면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오직 남 잘되게 하는 상제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원이며 척·魔는 바로 여기에서 풀려나가고 사라지게 된다. 또한 선각은 후각이 바른 마음을 먹도록 인도해 줄 뿐, 마음을 직접 바꾸어주거나 기운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울러 명심해야 한다.
01
행록3-16, 행록4-47, 행록4-54, 행록5-38, 공사2-3, 공사3-39, 교운1-2, 교운1-30, 교운2-42, 교법1-9,
교법2-14, 교법2-15, 교법2-44, 교법2-46, 교법3-4, 교법3-12, 예시17, 예시58
02
『대순지침』 27쪽, 43쪽, 94쪽
03
자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82호의 「복마(伏魔) 그리고 해마(解魔)」를 참조하기 바람.
04
박용철, 「전경에 나타난 원의 본질과 구조」, 『대순사상논총』 제1집, 대순사상학술원, 1996, 389~391쪽.
《대순회보》 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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